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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08화 (208/350)

208화

* * *

당유혼이 대규모 독살 음모를 꾸미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착실히 흘러갔다.

수백 명이 참전했던 잠룡전은 여덟 명의 용을 남기게 되었고, 슬슬 이야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새로이 등장한 팔용(八龍)이니 뭐니 하며 새로운 별호를 짓자고 작당 모의를 시작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구경하는 사람들의 입장일 뿐, 직접 비무를 참가하는 이들의 마음은 또 달랐으니―

누군가는 어깨에 내려진 막중한 책임을,

누군가는 스스로가 나아갈 길에 대한 다짐을,

누군가는 타고난 운명을 조소하며 시간을 보냈으니―

개중에는 또 분명, 가장 맘 편하게 생각하는 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조오오오아, 내가 첫 번째구만!”

당불퇴였다.

쾅쾅!

주먹을 맞부딪치며 비무를 앞둔 흥분을 가리지 못하는 그를 보며 당지명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걱정할 놈을 걱정해야지.’

처음에는 저놈 저거 어디 잘못되는 거 아닌가, 싶던 걱정을 하게 만들던 당불퇴였지만, 어느새 완벽하게 회복해서 원래의 성격을 되찾았다.

특히나, 지난번 반쯤 그들의 공동전인이라 여기던 구중보의 비무를 본 이후로는 뭔가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것인지 더더욱 의지를 불태우며 기세를 돋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른 방계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미친놈, 팔 강에서 바로 떨어질지 모르는데 좋아하고 있네.”

“그러게 말이야. 저러다 팔 강에서 광탈하면 잘도 대형이 좋아하시겠다.”

“흐흐, 부러우면 부럽다 말하시지?”

“부럽겠냐? 그 괴물 같은 놈이 상대인데 말이야.”

첫 번째 비무를 배정받은 당불퇴의 상태, 그는 다름 아닌,

“그 오호도가 하필 팔 강 상대라니 말이야.”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자, 오호도 팽천강이었다.

‘그 양반이 내 상대란 말이지.’

구중보의 비무를 본 날, 당불퇴는 자신이 어째서 무공을 익히기 위해 아등바등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라서였지.’

당불퇴는 고아 출신이었다.

삼십 년 전 사천은 마교의 침공에 의해 거대한 전쟁의 화마에 휩쓸렸고, 그와 같은 전쟁고아들이 대규모로 발생했었다.

그렇기에 당불퇴가 당가로 온 날에는 이미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형제들이 꽤 많은 상태였다.

‘그때는 글자조차 몰랐으니까.’

방계로 들어와 당씨 성을 받아 뛸 듯이 기뻐한 주제에, 정작 그 당(唐)이라는 글자조차 읽지 못했었다.

그래도 마냥 좋았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게 좋았고, 새로운 형제들이 생긴 게 좋았으며, 함께하게 될 이들이 생겨 좋았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전대 차양당주를 따라 무공을 익히는 것도, 그저 형제들과 함께하기에 좋았었다.

‘그래. 그때는 그저 이 녀석들과 함께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었다.’

틀린 건 아니었다.

분명 무공 수련은 고달팠지만, 언젠가 자신이 이걸 배우고 익혀 고수가 되면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가문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기며 열심히 수련했다.

이후, 전대 차양당주가 이 세상을 떠나고 슬퍼 눈물을 펑펑 흘렸음에도 계속해서 무공 수련을 해나간 건 같은 이유였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대형이라는 정체불명의 괴물이 들이닥쳐서 폭력을 수반한 수련을 강행시켰을 때도 가장 열심히 따라간 것도 같은 이유였었다.

‘아니지, 정확히는… 그렇다고 생각했었지.’

어느 순간부터는 관성적이었던 것 같았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무공을 열심히 익혀서 고수가 되어 가문에 도움이 될 거라 다짐했지만, 대형이 오기 전엔 자신이 그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가문이 무너지는 게 먼저일 것임을 알고 있었고, 그 이후엔 암만 노력해 봐야 대형이란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언젠가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결국 자신은 이전이나 이후나 크게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어느 새부턴가 정체되어 있었다.’

대형이 오고 나서 바뀐 당가의 성세 덕분에, 매일 같이 좋은 훈련 기구와 좋은 훈련 장소, 좋은 영약들을 물 마시듯 들이키며 꾸역꾸역 강해졌지만… 그건 내실 없는 외양에 불과했다.

그저 지금까지 해왔기에 같은 걸 반복했을 뿐, 속 빈 강정과 같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을 뿐 정확히 어딜 향해 나아가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째서 무공을 익히는가.’

그 답을 구중보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참 간단한 이유였지.’

별것도 없었다.

그저,

‘나는, 무(武)가 좋은 거야.’

그뿐인 이유였다.

‘강해지는 게 좋다. 더 나은 경지로 나아가는 게 좋다. 미답(未踏)의 영역에 밟을 디디는 게 좋다.’

자신이 머리가 썩 좋지 않다는 건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그래도 다행인지, 타고난 몸뚱어리는 제법 단단해서 남들은 미친 짓이라는 수행과 고련을 반복해도 썩 잘 따라와 주었다.

‘나는 계속해서 강해진다. 강해질 수 있고, 강해지는 게 좋다.’

복잡하고 머리 쓰는 것들은 잘난 형님들이 알아서 해줄 거다.

가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고, 대형이 지시하는 대로 하면 되고, 당주 형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그래도 모르겠는 사소한 건 당율기에게 물어보면 되고, 자신은 그저 그들이 하라는 걸 할 수 있게 강해지기만 하면 된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운 좋은 일이냐.’

무(武)를 익히는 것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인데, 그것만 하다 보면 가족 형제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까지 하다니.

가장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할 것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의 삶이 좋았고, 그래서 그걸 할 수 있게 해주는 무(武)가 미치도록 좋았다.

그런 생각으로 비무대에 섰다.

“형장, 기분 좋아 보이시는구려.”

“흐흐,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그리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 표정의 상대를 바라봤다.

“오호도… 큼, 이 표현은 좀 그런데.”

“그냥 편하게 팽 형이라 불러주시오. 나도 가능하면 당 형이라 부르고 싶은데, 어떻겠소?”

“그거 좋지. 팽 형. 그쪽도 나랑 싸우게 돼서 엄청나게 기분 좋아 보인단 말이지.”

그 말에 비무대에 오른 팽천강 역시 입이 찢어져라 함박웃음을 지었다.

“당연하지! 나는 지금 최고로 기분이 좋거든!”

넘실거리는 투기는 이미 주체하지 못할 수준.

지난날 흥분으로 밤잠도 못 자고 일어났는데도 신체 상태는 최고조를 달하고 있었다.

“흐흐, 그럼 최고의 한 수를 겨뤄보자고.”

“좋지!”

이억만 리 타향에서 태어나, 평생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던 둘은 첫 만남부터 호감이었고, 이제는 서로를 향해 투지를 물씬물씬 풍겨냈다.

그리고 심판의 시작 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내달렸다.

콰아앙!!

강맹한 주먹질이 도면에 박혀 들었다.

그걸 받아낸 팽천강은 적이 감탄했다.

‘굉장한 힘, 그리고…….’

제아무리 원초적 박투를 좋아하는 팽천강이라지만, 뛰어난 실력의 권사가 내지르는 주먹을 도면으로 받아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즉, 이건 순전히 상대방이 의도한 것.

‘그 찰나의 순간에 반 박자 빠르게 주먹이 들어왔다.’

일정 이상 수준의 고수들이 부리는 칼질과 주먹질은 사실 웬만해선 모든 동작을 눈으로 좇기가 힘들었다.

그 때문에 숙련된 이들일수록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게 된다.

미세한 발걸음과 미세한 손의 움직임, 찰나의 순간 보이는 것들을 종합해 어느 순간 그것이 자신의 목전에 도달하리라 생각하고 미리 움직이게 되는데, 상대는 그걸 변칙적으로 섞어 자신이 채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주먹을 때려 박은 것이다.

‘나 정도 되는 사람이 그걸 쉬이 놓칠 리는 없고…….’

“당 형, 이건 당최 무슨 훌륭한 수법이요?”

참지 못한 팽천강은 칼과 주먹을 맞댄 상대에게 대놓고 물어봤고,

“훗, 눈치챘군? 이건, 순간적으로 신체의 박자를 조정하는 수법이올시다.”

당불퇴는 그걸 또 곧이곧대로 말해 줬다.

“신체의 박자를 조정해? 그거… 분명 후폭풍이 작진 않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당불퇴였지만, 팽천강쯤 되는 사내라면 그걸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가 없었다.

개개인마다 당연히 존재하는 신체의 일정한 박자를 멋대로 어그러트리면, 순간적으로야 이득을 취할 수 있지만 그 반동이 몰려올 수밖에 없다.

그에,

“그 정도는 근성으로 버티면 되는 것!”

당불퇴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훌륭하오!!”

극찬, 또 극찬.

팽천강은 눈앞의 상대가 점점 마음에 들어 미쳐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만한 열혈의 사내는 우리 가문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것을!’

뚜두둑 소리와 함께 어긋난 어깨 관절을 맞추는 당불퇴의 모습에 팽천강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콧김을 뿜어냈다.

“안 되겠군. 식전주(食戰酒)를 즐기려 했으나, 그러기엔 몸이 달아서 못 버티겠어!”

전신의 열기가 가열차게 끌어오르다 못해 전신으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나 역시 전력으로 가는 수밖에!’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일소풍생(一嘯風生).

한 번의 도격에 거친 칼바람이 몰아쳤다.

이번엔 박자를 어긋내는 것으로 방해를 할 틈도 없이 휘둘러진 도격이 거센 칼바람을 일으켰다.

“흡!”

두 팔을 겹쳐 막아내자 그 위로 칼자국이 수십 개씩 새겨졌다.

내공으로 보호했음에도 칼바람에 호신강기가 갈라지며 상흔이 생긴 모습!

‘과연.’

돌담을 무너트릴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보통 신력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공을 터트리는 듯한 이 수법. 대체 무슨 원리인 거야?’

어지간한 특이한 무공은 다 만나 봤다 생각했지만, 이런 무공은 또 처음이었다.

‘내 몸뚱어리도 어지간히 단단하다 생각하는데, 대체 이 녀석은 무슨 수법을 부리는 건지.’

특유의 내공을 폭발시키는 수법은 혈도에 크나큰 무리가 온다. 직접 해봐서 가장 잘 아는 그것을 상대는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또 자유롭게 그 위력을 발휘했다.

그에 따른 의문이 들었지만,

‘킁, 그래 뭐. 세상은 넓은데, 신기한 수법 수십 가지쯤은 있겠지!’

의문은 의문으로만.

그 이상의 생각은 그만 두기로 결정했다.

‘저쪽에겐 저쪽의 길이 있고, 내게는 나의 길이 있으니까.’

나는야 내 갈 길 가련다.

더 이상 삿된 미련도, 헛된 미혹도 품지 않기로 결정한 당불퇴는 고개를 들어 상대를 또렷히 응시했다.

“칼맛이 끝내주는데?”

“암만, 별 볼 일 없는 걸 보여줄 순 없지 않겠소?”

“좋지. 그럼 내 주먹맛도 한번 보여드리지.”

“기대해도 되겠소?”

“흐흐, 그걸 말이라고 하시나.”

활짝 웃음꽃을 피우는 당불퇴의 등 뒤로 검푸른 기운이 넘실거렸다.

잠룡전이 개최되고 처음으로 중단전이 개방된 것이다.

‘저건… 맹수? 야수? 아니… 그거보다 더 거대한!’

큰 거 온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깨달은 팽천강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실렸다.

“잘 받으시오.”

내건 좀 아플 테니까.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팽천강의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 뜨이게 만드는 거대한 무언가가 당불퇴의 주먹에 어렸다.

그것은 당불퇴의 맹진과 함께 나아갈수록 커져 갔고, 끝내 거대한 탐식의 형상이 되어 비무대 위를 휩쓸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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