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09화 (209/350)

209화

쿠구구구…….

비무장을 덮은 흙먼지가 관중석의 시야를 가렸다.

그 놀라운 파괴의 후폭풍에 관중들은 감탄조차 잃었고, 먼지가 완전히 가라앉고 나서야 하나둘 다물어진 입을 다물 수 있었다.

“크으으…….”

그리고, 굉음 후 드리워진 침묵의 휘장을 드리워 걷어낸 것은 비명 섞인 경탄.

“진짜 죽는 줄 알았소, 당형!”

비무하다 죽을 뻔했던 팽천강이 엉망진창이 된 몰골로 히쭉 웃었다.

“엄살은, 그 정도로 끄떡없다는 걸 내가 잘 아는데.”

“흐하하, 진짜라니까 그러네. 여기, 뼈 보이는 거 안 보이시오?”

권격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한 허벅지 어림은 깊게 파여 뼈까지 드러나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절로 찌푸려질 만하건만, 팽천강은 그저 히쭉히쭉 웃을 뿐!

“이거 피가 끓어서 못 참겠군!”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도 팽천강을 둘러싼 증기는 더더욱 맹렬히 뿜어져 나왔다.

뿐만 아니라,

‘저, 저건 또 뭐야?’

분명 뼈가 보였던 팽천강의 상처 부위가, 눈에 보이는 속도로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한 번씩 일수를 교환하는 건 더 이상 감질나서 못 참겠군! 우리 한번 제대로 즐겨 봅시다!”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쌍호출림(雙虎出林).

거기서 그치지 않고 팽천강의 도가 휘둘러져 왔으니, 그 기세에 당불퇴는 깜짝 놀라 옆으로 몸을 빼냈다.

‘뭐 이런 무식한 수가… 어엇?’

그런데 간발의 차로 피해 냈다 싶은 순간,

“…컥?!”

날아드는 도기 뒤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도기가 옆구리를 후려쳤다.

콰아앙!!

적중한 도기는 폭발하며 당불퇴의 신형을 비무대 끝까지 날려 보냈다.

‘도, 도기 뒤에 도기가 이중으로 숨겨져 있어?’

당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크하핫! 또 간다!”

높이 떠오른 태양을 등지고 뛰어오른 팽천강이 무시무시한 도강을 휘둘러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친!’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삼호맹위(三虎猛威).

태양을 등졌기 때문일까?

이번엔 분명 보였다.

세 갈래로 갈라지는 도강이 차례로 내려찍히는 그 모습이!

콰콰콰쾅!!

그건 진짜 미친 척 않고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다른 거 생각할 겨를 없이 일단 피하고 나자, 바닥에 세 갈래 상흔이 새겨졌다.

“당형! 피하기만 해선 재미없소!”

재미가 없어?

‘이쪽은 목숨이 없어질 판국이구만!’

황소보다 더 거대한 덩치의 괴물들과도 맞서 싸운 당불퇴지만, 진지하게 이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

무슨 강기가 이중 삼중으로 덮쳐 날아든단 말인가?

“자꾸 그렇게 재미없게 나오면, 나 또한 생각이 있소!”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삼호교란(三虎攪亂).

도기가 퍼부어졌다.

이번엔 무려 세 갈래로 갈라져서는 회피할 도주로를 모두 막아버리며 날아들었다.

‘이 양반 진짜!’

절묘한 시간차를 두고 날아드는 도기의 세례는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정면 돌파하는 수밖에!’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일점돌파(一點突破)!

정중앙을 향해 일권을 날리며 뚫고 나아갔다.

“으하핫! 그렇게 나와야지!”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칼을 휘둘러오는 팽천강이 반겨왔다.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맹호출림(猛虎出林).

거대한 호랑이의 형상이 드리웠다.

먹잇감을 사냥하듯 그 앞발을 들어 광포하게 내리찍는 일격에 당불퇴 역시 이를 악물며 주먹을 내뻗었다.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진공(眞空)의 영역이 생겨났다.

힘과 힘이 부딪치며 역장과 영역이 충돌하며 그 사이의 것들이 모두 밀려난 것이다.

“큭!”

뒤로 튕겨 난 건 당불퇴 역시 마찬가지.

아슬아슬하게 비무장 끝까지 밀려난 당불퇴는 폭발의 여파에 신음하면서도 주변을 훑었다.

‘어딨지?’

순간적으로 팽천강의 기척을 놓쳤다.

밀려난 건 서로 마찬가지일 텐데 상대만 사라진다고?

그 순간,

‘…옆!!’

시야의 사각, 우측 측면에서 맹렬한 기세가 무(無)에서 유(有)가 탄생하듯 생겨났다.

“하핫! 이쪽이요!!”

목소리가 들려올 땐 이미 칼날이 옆구리를 반으로 갈라버릴 기세로 세 치 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쾅!

지면을 박차며 공중제비를 돌듯 뛰어올랐고, 간발의 차이로 도격이 스쳐 지나갔다.

“크압!!”

허공으로 체공하는 상황, 그 상태에서 당불퇴는 수레바퀴처럼 온몸을 회전시키며 발차기를 날렸다.

콰아앙!!

“흐하하하!! 굉장하군!”

자신의 도를 등 뒤로 돌려, 목 위에서 받치듯 눕혀 각법을 막아낸 팽천강이 씨익 웃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위에 당불퇴를 올려 태운 모양새가 되었는데, 한 덩치 하는 당불퇴를 목 위에 받쳐 들고도 힘든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진짜 굉장한 건 지금부터가 될 거요!”

그에 당불퇴는 도면을 박차고 더더욱 높이 뛰어올랐다.

이게 비무인지 곡예인지 모를 연속 속에서 삼 장여 높이까지 뛰어오른 당불퇴는 단전에서 용솟음치는 내공을 끌어올려 두 주먹에 담아 마구마구 내리찍었다.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유성락(流星落).

콰콰콰콰쾅!!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권강의 세례!

그건 마치 유성우가 떨어지는 것만 같았으니, 비무장 전역을 뒤덮는 권강의 폭풍우가 몰아쳤다.

“흐하하, 이거지!!”

그런 와중에도 팽천강은 광소를 터트리며 도를 휘둘렀다.

퍼부어지는 권광을 전부 썰어버리겠다는 기세로 종횡무진 애도를 휘둘렀고, 그 결과 자신을 중심으로 한 일 장 내의 공간을 안전지대로 만들었다.

타닷―

그리고, 그 일 장 남짓의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자신이 만들어낸 파괴흔의 구멍 위로 착지한 당불퇴는 무자비한 폭격의 흔적 속에서 새삼스레 깨달았다.

‘역시, 어지간해선 답이 없겠군.’

적당히 하려는 마음으론 절대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 팽천강 역시 비슷한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당형. 정말이지 즐겁기 그지없소만, 이젠 슬슬 결착을 봐야 할 것 같소.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이려 하는데… 혹, 괜찮겠소?”

빙빙 둘러 말했지만, 지금부터 초필살기를 갈길 테니 알아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냐는 물음이었다.

이게 진정 호형호제하는 이들이 친선 비무상에서 할 말이 맞나 싶었지만,

“흐흐, 어떻게 알았수? 나도 마찬가지인데.”

끼리끼리 만나니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그건 당불퇴 역시 바라던 바였다.

“좋군! 그럼, 시원하게 한 방 싸움으로 가지.”

“역시 뭘 좀 아는 양반이구만!”

상호 합의가 이루어지자, 둘은 짜 맞춘 듯 서로 거리를 벌렸다.

거의 비무장 끝까지 거리를 벌린 당불퇴는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내공을 모았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 그리고, 가장 자신 있는 것.’

평소 단순무식하단 소릴 툭하면 들어오던 당불퇴였기에, 가장 잘하는 것 역시 특별한 건 없었다.

‘그건 바로 압축. 그리고 또 압축!’

한계까지 내공을 모으고 모으고 또 모아서 일권(一拳)에 때려 박는 것!

‘압축압축압축압축압축압축압축압축압축압축!’

단 한 가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영약을 먹어 쌓인 내공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몰려들었다.

‘압축압축압축압추우우우욱!!’

혈관이 터져 나갈 것만 같다.

뼈와 관절은 금방이라도 원래 자리를 잊고 뒤틀릴 듯했고, 근육은 갈기갈기 찢겨 나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내공을 때려 박고 또 때려 박길 멈추지 않자 당불퇴의 오른 주먹을 중심으로 점점 검푸른 구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수한 힘의 구체.

아는 사람의 눈에만 보일 그것을 당연 꿰뚫어볼 수 있던 팽천강은 온몸의 솜털이 곤두설 만큼 오싹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숫제 괴물이 따로 없구나!!’

어떻게 저걸 맨몸으로 견딜 수 있을까?

‘본가에 존재하는 특수한 내공 심법을 익힌 것도 아닐 진데, 저걸 그냥 순수한 정신력과 극기로 견뎌낸다고?’

이런 정신 나간 사람이 또 있을까!

‘하면, 나 역시 결례를 범할 수 없지.’

저건 하북 제일의 쾌남이라 불리는 자신조차 똑같이 따라 할 수 없지만, 비슷하게나마 흉내라도 낼 것은 다행히 존재했다.

‘비록 미완성에 불과하지만.’

마음속으로 각오와 결심을 하는 순간, 팽천강의 체내에서도 무시무시한 내공의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놀랍게도, 그렇게 하여 흐르기 시작한 내공은 각기 다른 네 줄기로 혈도를 질주했다.

‘각기 다른 다섯 종류의 내공을 단전에서 질주시켜 그 파괴력을 폭발시키는 게 본가의 비전, 오호단문도.’

비록 그 공전절후(空前絶後)의 도법을 대성의 경지로 달성하지 못하여 네 마리의 호랑이를 단전에 품었을 뿐인 팽천강이지만,

‘나는 아직 그 네 마리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했지.’

지금까진 고작해야 세 마리 호랑이를 다루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저 정도의 실행(實行)을 보여줬다면, 나 역시 이 정도는 해줘야 인지상정(人之常情)!’

아직 미답(未踏)의 영역으로 향하는 발걸음과 다름없는 그 행보에 목구멍으로 울혈이 치솟아도 꾹 삼키며 그 광기 어린 도전을 속행했다.

그리고 양측의 준비가 끝난 순간, 둘은 또다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무극권(武極拳).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사호멸악(四虎滅惡).

서로가 준비한 최강의 필살기가 충돌하는 그 순간,

“……!!”

그 찰나의 영역에서, 당불퇴는 문득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뭐야, 이건?’

그 기이한 영역 속에서 또렷한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사고뿐. 처음에는 진짜 시간이 멈춘 것 같았지만, 또 가만 보니 그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멈춘 게 아니야, 너무나 느리게 흐르는 거지.’

설마, 이게 주마등인 건가 싶었지만, 당불퇴는 곧 그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죽음을 앞둔 이들이나 경험한다는 주마등이 주는 두려움보다는, 그 순간 그의 눈에 보이는 기이한 현상이 더더욱 이목을 집중시켰기 때문이었다.

‘저게 뭐지?’

흐름이 보였다.

그건 팽천강의 체내에 존재하는 흐름이었다.

‘네 줄기?’

각기 다른 네 줄기 흐름이 혈도를 타고 질주하고 있었고, 그게 충돌할 때마다 서로 경쟁하듯 뿜어져 나오며 강맹한 위력을 발휘했다.

‘아, 저게 그 폭발의 비밀이었구나!’

그 정체가 내공이란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고, 덕분에 자신이 저걸 흉내 내겠다고 얼마나 멍청한 짓거릴 한지도 쉽게 깨달았다.

‘애초부터 넷으로 나눴어야 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체내에서 내공을 폭발시키고 있으니 얼마나 멍청한 짓을 한 것일까?

‘아깝다.’

그리고, 그 정체를 깨달으며 동시에 곧 벌어질 일도 알 수 있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내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 찰나에 벌어지는 이 모든 것이 깨달음의 편린이었다.

이 깨달음을 수습할 시간이 반나절만 있었더라면 이후의 결과를 바꿀 수 있었겠지만, 지금으로선 저 네 마리의 호랑이를 패퇴시킬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뭐, 지금 당장 이기지 못하면 어때?’

당불퇴는 얼마 전 구중보에게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보고 있냐, 중보야.’

그리고 지금쯤 자신의 비무를 지켜보고 있을 녀석을 떠올리며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멋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물러나지만 않으면 그만이지!’

불퇴(不退).

언제나, 그 자신의 이름처럼.

패배할지 언즉, 물러나지 않는 사나이 당불퇴는 닥쳐오는 패배를 향해 또 한 걸음 나아갔고―

콰아아아앙!!

시간의 흐름이 정상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거대한 폭발이 그의 전신을 휩쓸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