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11화 (211/350)

211화

정천맹 내부의 별채.

맹의 주요 인물들에게만 주어진 별채는 장원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장원이나 다름없었고, 거대한 연못이 마치 해자처럼 그들의 공간은 외부의 공간과 별개의 것으로 구분했다.

그 밖에는 비록 남궁세가에 속하지는 못하나, 오히려 그들을 대신하여 더더욱 남궁세가의 권세를 주장하는 이들이 자리를 차지한 채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으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당대의 남궁가주는 자신의 아들에게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수야.”

“예, 아버님.”

“저들은 어이하여 자신의 일도 아닐진대, 남궁가의 이름을 연일 연호하고 있는 줄 아느냐?”

“…….”

남궁수.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자신에게 떨어진 가주의 질문에 입술을 꾹 다물고 생각했다.

‘또다시 시험인가.’

그의 아비는 종종 자신을 시험하기를 즐겨 했다.

그리고, 하필 이 상황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답은 뻔히 정해져 있는 것.

“저희가 제왕가(帝王家)이기 때문입니다.”

“옳은 답이다.”

남궁가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자신보다 잘난 이를 시기한다. 질투하고, 시샘하며 기회가 된다면 잘난 이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끌어내리고 싶어 하지. 하지만 그건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 상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인간은 언제나 그렇다.

“저 하늘에 손을 뻗어 타오르는 태양을 쥐고 끌어내리리라 생각하는 이들은 없지. 그들에게 하늘은 그저 올려다보며 숭배할 대상이다. 시기와 질투 따위는 머물 여력도 없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

긴긴 세월 동안 변치 않았던 진리.

“본가가 제왕가였기 때문이다.”

구파일방 오대세가로 대표되는 정파의 구도에서도 언제나 검(劍)의 명가로 군림해 오며, 오대세가 중에서도 항상 으뜸으로 군림하던 곳이었기 때문.

“그런데.”

구구구…….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짓눌리는 무형의 압력이 남궁수의 목을 분지를 기세로 그의 머리를 내리눌렀다.

“그런 위명에… 네가 먹칠을 해버렸더구나.”

“……!!”

꾸구국!!

고통스러웠다.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든 압력은 폐부를 강하게 조여왔고,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땅바닥만을 바라보는 남궁수에게 아비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혹여, 승리했다는 안일한 생각 따위는 집어치워라. 승리는 당연한 결과이니, 제왕가에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궁수와 자영의 비무는 남궁수의 승리로 끝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문제였다.

“제왕가가 제왕가이기 위해선 언제나 대중 위에서 군림해야 한다. 그들과 칼을 맞대며 맞수가 되고, 경쟁자가 되거나 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왼팔의 부상은 무엇이더냐.”

비무를 끝내기 위해 마지막 일검을 휘두르는 순간―

‘걸렸네요?’

그림자에서 솟구치듯, 불의의 암습이 남궁수의 왼팔에 긴 자상을 남겼다.

콰아앙!!

물론 그 이후엔 거대한 폭발과 함께 자영은 뒤로 튕겨져 비무장 밖까지 날아가고, 입에서 폭포수 같은 울혈을 토해 낸 뒤 항복을 선언했다.

관중들은 연신 그의 압도적 승리를 환호했지만,

“방심했다 말하고 싶으냐?”

그의 아비가 본 것은 그런 당연한 승리 따위가 아니었다.

“방심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오만한 것은 강자의 특권이요, 의무이니까. 다만.”

그 과정 중 보였던 남궁수의 실책.

“오만하면서도 아랫것들에게 당해 주어서는 안 된다. 빈틈을 보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감히 찌를 엄두도 낼 수 없게 만들어야 하지.”

말도 안 되는 주문이지만, 그것은 제왕의 길을 걷는 이라면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숙명.

그러지 못한 아들에게, 아비는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워 담거라.”

우승 따위는 당연한 결과.

그가 해야 할 것은,

“짓밟거라.”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도록.

* * *

“다 짓밟아라. 고개도 들지 못하도록.”

허허, 이건 또 무슨 개소리실까.

당지명은 오랜만에 집 나갔다 돌아온 대형이 얼굴을 보자마자 꺼낸 첫마디에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뭘 쪼개고 있어. 내가 쪼개줄까?”

두 쪽으로 이쁘게 쪼개주랴?

말로만 하는 비유 상의 표현이 아닌, 현실로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두 손이 가까워짐에 당지명은 재빨리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오랜만에 대형을 다시 뵈니 반가워서 그렇죠. 실로 오랜만이십니다. 무양하셨습니까?”

“문자쓰고 있네. 됐고, 내 말뜻은 이해했지?”

“그야 뭐… 잠룡전에서 우승하란 말씀 아니십니까?”

“그건 당연한 거고, 압도적으로 우승하라고.”

“…대형.”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자니, 당유혼의 만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불가능 할 것 같냐?”

가능하게 해줄까?

“아니!! 대형! 그렇게 말씀하셔도 진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치. 너에겐 뒈지는 것도 자의로 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에 존재하긴 해.”

“차라리 그게 쉽죠! 혀 깨물거나 저기 짱돌을 머리에 박거나…….”

“나한테 처맞거나. 참고로, 앞의 선택지들은 선택 불가란다.”

네가 가능한 건 오로지 내가 제안한 것 하나뿐이지.

“…살려주세요.”

결국 당지명은 바닥에 넙죽 엎드렸고, 그 모습에 당유혼은 쯧쯧 혀를 찼다.

“일어나, 인마. 명색이 당주라는 놈이 왜 이렇게 패기가 없냐?”

“이게 패기로 될 일이랍니까? 불퇴 녀석 비무 못 봤습니까? 그 녀석, 그 와중에도 발전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고작해야 동수, 아니, 그마저도 반 수 밀린 게 고작이었잖습니까.”

팽천강과의 일전.

마지막 순간 당불퇴는 분명 자신의 한계를 넘어 눈부신 일격을 날렸다.

하나, 그럼에도 결과는 동률에 불과했으니―

“그보다 낫다고 평가받는 남궁가의 괴물을 제가 어떻게 이깁니까…….”

그런 놈을 잡으려면 우리 당가에서도 괴물이 출전해야 한다고, 예를 들면 대형 같은 괴물이요! 라고 강렬히 눈빛으로 항변하는 당지명의 모습에 당유혼은 팔짱을 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진짜 요즘 것들은 왜 이리 약해빠졌는지. 몸뚱어리도 야들야들한 게 정신력도 야들야들하기 그지없구만.”

나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말이지.

“…대체 그놈의 나 때가 언제인지 궁금한 건 둘째치고, 진짜 답 없습니다. 대형. 짓밟기는 무슨, 그냥 우승도 답이 없습니다. 아니, 사실 그건 대형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미친놈처럼 보이고, 실제로 미친놈이기도 하지만, 이미 범인을 초월하고 천재의 영역마저 아득히 나아간 괴물의 영역에 존재하는 게 그들의 대형.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경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가 어째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주문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묻자 당유혼은 혀를 차며 답했다.

“쓸모없는 놈들. 꼭 키워놓으면 필요할 때 이렇게 무능해.”

“필요할 때요?”

“그래, 지금 좀 문제가 생겨서 말이지.”

사실, 원래라면 지금 자신이 당가에 돌아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한창 정천맹 내부의 일로 문서 더미에 깔려 있었어야 할 자신이 이리도 일찍 가문으로 돌아온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저기, 광신도 무리들께서 더럽게 꽥꽥거리고 있거든. 그놈들 입을 다물게 해주려면, 너희가 두서와 같은 성적을 거둔 뒤 곧 있을 토벌대에서 한 자리씩을 차지해 줘야 한다.”

“아…….”

생각해 보면, 정천맹은 이전 무림맹과 같은 형태로 뭉쳐서 그렇지 원래는 녹림을 토벌하기 위해 모인 의용군이다.

“그런데 불퇴는 이미 탈락했는데요?”

“그래서 조지고 왔다.”

“…아.”

아까 들려오던 비명 소리가 그거였구나.

“어쨌든, 지금으로선 힘들다 이 말이냐?”

“그쵸.”

“숨겨둔 깨달음 같은 거 없냐?”

“…깨달음이 무슨 호주머니 속 물건입니까?”

필요할 때 꺼내다 쓰게.

“에잉, 쯧. 쓸모없는 녀석.”

차가운 시선이 비수처럼 뿍뿍 꽂혀 든다.

괜히 고개만 숙여질 때,

“그러지 말고, ‘그거’ 쓰면 안 되냐?”

툭 하고 던져진 무심한 한마디가 당지명의 몸을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예?”

“모른 척하지 말고. 괜히 완벽을 기한답시고 아직 엄두도 내지 않는 것 같은데, ‘그걸’ 쓰면 되잖아.”

“알고… 계셨습니까?”

“그럼, 모를 것 같았고?”

“하하…….”

역시.

미친놈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미친놈이 맞지만…….

‘그런 상태로도, 모든 걸 꿰뚫어 보시고 계신단 말이야.’

무엇을 숨길까.

당지명은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걸’ 쓸 수 있다면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쓰고 싶어도 못씁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 그건 바로―

“아직 이름조차 짓지 못한 미완성의 무류(武流). 형님 말씀대로, 괜히 꿈만 크게 크며 완벽을 기하다 보니… 일 초식도 제대로 펼칠 내공이 부족합니다.”

아직 그 이름조차 짓지 못해, 무공명(武功名) 미정(未定)이라 칭하던 그것.

당지명의 야심 찬 도전은 아직 미답의 영역에서 서성일 뿐이었으니―

“잡룡단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도, 여전히 내공 양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젠 진짜 밥 대신 독초를 먹어대는 당지명으로서도 그가 구상하던 걸 실행하기에는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는 듯했다.

“흐으음…….”

그에, 당유혼은 팔짱을 끼며 물끄러미 당지명을 바라봤다.

움찔!

‘무, 무슨 눈빛이…….’

그 시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져서, 발가벗겨진 듯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에 저도 모르게 몸을 떨 때,

“에잉, 쯧.”

당유혼은 영 불만이라는 듯 혀를 찼다.

“왜, 왜 그러십니까?”

“원래라면 더 숙성시키려 했는데, 네 말을 들으니 확실히 어쩔 수 없어서 그런다.”

“예?”

“네 말마따나 출력이 부족한 것 같으니까. 달리 말하면, 그 출력만 해결되면 되는 것 아니냐?”

“…어. 그쵸?”

“그럼 곧장 시작하자꾸나. 그 출력, 지금 이 자리에서 채워줄 테니까.”

“예에?!”

이, 이 자리에서요?

“자, 잠깐! 대형! 그, 제가 생각하는 구상으론 영약 몇 개 먹는다고 해결될 게 아닙니다! 창고 거덜 낸다고 해결되는 그런 쉬운 일이…….”

“뭐라는 거야. 누가 쉬운 길 간다 했어?”

이 새끼 인생 날로 먹으려 드네?

“걱정 마. 어렵게 갈 거니까.”

물론, 그 어려운 길을 갈게 누구냐는 건 뻔하지만.

“당지명.”

“예, 옙?”

“모든 구속구를 풀어라.”

“……!!”

그 말에 당지명의 눈이 번쩍 뜨였다.

“모든 구속구라면…….”

“그래, 네 사지를 봉인한 그것들. 전부 풀어버려라. 곧바로 대법을 시작할 테니까.”

당유혼이 당가에 오며 그들에게 수련을 시키며 가장 처음한 일은 바로 사지를 구속하는 무거운 족쇄를 채운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수련이 됐지만, 붉은 바위 일족이란 장인들이 오며 당지명의 구속구에는 몇 가지 기능이 더 추가되었으니―

“금침대법(金針大法)을 실시한다.”

바로, 구속구와 살갗이 맞닿는 면에 생겨난 지속적으로 혈도를 짓누르는 돌기와 바늘이 그것이었다.

“드디어…….”

그리고 그건 오로지 당지명의 구속구에만 존재하는 것이었으니―

“지명아.”

과거 어느 날, 언제나처럼 밤새 수련하던 당지명에게 다가온 당유혼이 툭 하고 던져준 물건이었다.

“찌질하게 처울지 말고, 이걸 착용해라.”

그날은 시리도록 차가운 달이 뜨던 날이었고,

“동생이 물려가는 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고 자책하고 학대할 바엔, 더 강해질 생각을 해야지.”

벽력조에게 물려가는 당불퇴를 구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밤새 고련하고, 또 그럼에도 절절히 느껴지는 자신의 재능에 절망해 구슬프게 울던 날에 주어진 선물이었다.

“…이제, 대형 노릇 한번 할 수 있는 것입니까?”

평생 재능도 없는 주제, 분수에 맞지도 않는 대형 노릇을 하던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였으니―

“글쎄다. 그건 네가 하기 나름이겠지?”

언제나처럼, 그의 대형은 여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저 길을 제시할 뿐. 그 길을 나아가는 건 너희 몫이 아니겠냐.”

“그건 그렇죠.”

우문에 돌아온 현답.

당지명은 활짝 웃으며 사지에 매여진 구속구의 봉인을 해제했다.

그러자,

쿠구구구구……!!

구속구에 억눌려 있던, 봉인되어 있던 진신 내력들이 폭주하듯 몰아치기 시작했다.

‘헉!’

그 기세에 놀란 당지명의 귓가에 당유혼의 외침이 들려왔다.

“가부좌를 틀어라!”

답할 시간도 없다.

허겁지겁 가부좌를 취해 앉으며 귀원일기공을 운용하자, 당유혼은 곧장 그 뒤로 서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금침을 한 다발 들어 흩뿌렸다.

푹, 푹, 푹!!

순식간에 수십 개의 금침이 박혀 들었고, 당유혼의 눈빛이 기이한 열기와 함께 번뜩였다.

“네가 차양당의 당주라면, 알아서 버텨내라.”

마찬가지로 대답은 없었지만, 당지명은 몰아치는 거친 내공 속에 귀원일기공을 전력으로 발동함으로써 그 답을 대신했다.

그에, 당유혼은 나머지 수십 개의 금침을 당지명의 전신에 꽂아 넣으며 마찬가지로 함께 내공을 끌어올렸다.

“당가칠대금기(堂家七大禁技). 금침대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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