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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12화 (212/350)

212화

* * *

벌써 몇 달 전 일일까?

당지명은 자신이 앉은 당주라는 책임과 자신이 가진 비루한 재능 속에서 몸부림쳐왔다.

‘더, 더, 더, 더, 더!! 나는, 강해져야 한다!!’

쾅― 콰아앙! 쾅!!

연신 울려 퍼지는 굉음 끝에 수련용 나무 인형이 부서졌다.

나무 인형이라고는 해도 안쪽에 강철판을 덧대어놓았으니 그 단단함은 말할 것도 없을 터―

그럼에도 주변에 그런 것들이 부서져 잔해가 되어버린 것이 오늘만 벌써 여섯 개가 넘었다.

“하아… 하아… 하아…….”

수련이라기보단 학대에 가까웠다.

그것은, 그만큼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타오르는 무언가가 당지명의 내부에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그 녀석이 죽을 뻔했다.’

당불퇴.

장난스레 패배의 상징이라 불리는 녀석이고, 당지명 역시 그에 동조하며 놀리고는 하지만, 사실 그는 단 한 번도 진심으로 함께 웃어 본 적이 없었다.

‘당지명, 이 멍청한 놈! 동생이 벽력조에게 물려갈 동안 너는 뭘 한 거냐!!’

“이제 네가 당주란다. 다른 아이들을 부탁하마.”

전대 차양당주가 자신에게 남긴 말이 아직까지 눈만 감으면 밟힐 듯 선명하다.

그런데,

‘대체 몇 번이나… 녀석을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한 거냐!!’

또다시 녀석이 죽을 뻔했다.

당율기에게는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저 자신은 정작 단 한 번도 괜찮았던 적이 없었다.

‘이 무능하고, 또 멍청한 머저리 녀석아!’

그렇기에 당지명은 당가로 돌아온 날부터 즉시 밤늦게까지 수련하고 또 수련했다.

그리고, 절망하길 반복했다.

“젠장!! 젠자아아앙!!”

쾅쾅쾅!!

고련에 가까운 수련, 그리고 그걸 반복할 때마다 질리도록 느끼는 것은 하나.

‘빌어먹을 재능!’

자신의 재능이 비루하기 짝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당가의 성세가 지금처럼 몰락하지 않았다면, 사실 원래의 자신 따위는 당가에 들어올 수도 없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젠자아앙!!”

이 빌어먹을 현실이 주는 좌절감은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푹!

“악!”

“이 자식아! 당가 전세 냈냐?!”

어디선가 날아온 젓가락이 뒤통수에 뾱― 하고 박혔다.

당연하지만, 당가 내에서 이런 잔학무도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대, 대형?!”

당유혼.

그의 등장에 당지명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설마, 조금 전 자신의 외침을 들었을…….

“으휴, 쪽팔리지도 않냐? 그 나이 처먹고 그런 말이나 하고 있으면?”

하하, 들었구나… 하하… 그래, 못 들었을 리가 없지…….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나오는 당지명이었고, 그런 그를 보며 당유혼은 쯧쯔― 혀를 찼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재능 탓이야?”

자신의 고련 자체를 부정하는 말,

“큭! 재능 탓이라니 너무 하십니다! 세상엔 저따위 범재를 짓밟는 무수한 천재들이 있고, 그런 천재들마저 우습다 여기는 괴물들이 있다고 하신 건 대형이잖습니까!”

그에 발끈해 소리치는 당지명이었지만―

“이 새끼가 미쳤나, 어디서 소리를 질러?”

뾱― 하고 박혀 든 또 하나의 젓가락이 곧장 그 발끈을 진압했다.

어흐흑, 어흐흑.

결국 구슬픈 울음소리만 울려 퍼질 뿐!

“안 다물어?”

물론 그마저도 곧장 진압당했지만.

“쯧쯧, 지명아, 지명아. 언제까지 그렇게 궁상맞을래? 네가 당궁상이니?”

존장에 대한 존엄은 개나 줘버린 모습에 당지명은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는 대형 같은 재능이 없는데요.”

“하이고, 또 그놈의 재능 타령이냐?”

“설마 세상에 재능 같은 것은 없다 부정하시는 겁니까?”

설마 그걸 부정하냐 싶어 물어봤지만,

“아니, 그걸 왜 부정해? 너랑 나랑 타고난 재능 차이가 얼만데.”

“…….”

괜히 듣고 싶지 않은 진실만 긍정 당했다.

“쯧쯧. 내가 언제 재능 차이를 부정하더냐? 다만, 그걸 아직 그 나이 먹을 때까지 연연해하고 있으니 한심해서 그렇지.”

“좀 연연해하면 안 됩니까?”

“안 되지. 이미 너 나이대에 애들은 그런 현실쯤은 진작에 받아들이고 자기 현실에 집중하고 있을 테니까.”

“…….”

체념, 인가.

몰려오는 허탈함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이제 와서 재능을 더 따져봐야 무슨 소용일까.’

말마따나, 이젠 현실에 순응하고 받아들일 때도 됐으니까.

그런 허망함이 당지명을 가득 채우고 있자니―

“지명아, 지명아. 너 또 병신같이 순응이니 체념이니 하는 궁상맞은 생각이나 하고 있니?”

뾱뾱―

이 양반이, 이제는 아예 젓가락으로 머리를 쿡쿡 쑤셔온다.

“큭!! 아님 뭐, 당최 다른 것이라도 있습니까?”

“자꾸 말귀 못 알아듣네. 지명아, 내가 다른 애들이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지, 언제 그 현실에 체념하고 순응하고 있다고 했니?”

“…예?”

그 둘이, 다른가?

“지명아, 지명아.”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당유혼은 말했다.

“결국 저 정상에 오르면 말이다. 그 아래는 다 비슷비슷해 보이기 마련이란다. 시작점이 어디 있든, 어느 높은 봉우리에서 미리 시작하든. 결국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는 말이지.”

“…그게 무슨 뜻입니까?”

“어휴, 이걸 이해 못하냐? 아. 하긴 봉우리도 아직 못 올라봤지?”

굳이 기분 나쁜 말 한마디씩 더 쏘아붙인다.

“재능이 다르다, 출신이 다르다. 이 말들은 결국 하나 같이 출발선상이 어디냐의 차이를 논하는 일일뿐이다.”

알겠냐?

“결국 그런 것들쯤은,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고.”

고만고만하다고나 할까?

“……!”

무심하게 뱉어지는 말들이 당지명에게는 비수처럼 쑤셔박혔다.

“형님께서 보기엔… 남궁의 검룡이나, 팽가의 도호가 거기서 거기라는 뜻입니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큭큭, 용? 호랑이? 그래봐야 다 미물 아니더냐.”

그의 대형은 그게 너무나 같잖다는 듯 조소로 답해 주었다.

“지명아. 벽을 넘고, 초월의 경지에 이른다는 건. 제아무리 잘난 재능을 갖다 대어도 우습기 그지없는 것이란다.”

조금 빨리 시작하고, 조금 수월하게 시작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런 것에 의지하는 놈은 결코 저 하늘에 닿을 수가 없는 거다.”

“……!!”

다리에 힘이 풀렸다.

후들후들 떨리는 게,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어졌다.

절망스러워서?

설마, 그럴 리가.

“그렇다면… 저, 저도…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까? 벽을 넘고, 초월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까?”

오히려, 북받치는 희열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명아, 지명아.”

그에,

“꿈이 너무 큰 것 아니냐?”

차가운 시선이 내리꽂혔다.

“아, 안 됩니까?”

“그냥 어이가 없어서 말이야. 기지도 못하는 놈이 날겠다고 깝치고 있으니…….”

“…으윽.”

그럴 거면 희망이라도 심겨주지 말든지!!

부풀어 오른 마음이 급속도로 쪼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그때,

“뭐, 그래도 마냥 불가능한 건 아니지.”

“저, 정말입니까?!”

줬다 뺏는 질 나쁜 장난이 반복되지만, 그래도 당할 수밖에 없으니 반복되는 것이라―

“물론이지. 과거에도 있었거든.”

너 같이 이런 장난에도 잘 속아오고, 결국 그 끝에 자신의 재능마저 속여 저 하늘에 닿았던 녀석이.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너도 속여야겠지.”

“속이다니, 무엇을 말입니까?”

“뭐긴 뭐겠어.”

너의 재능을 말하는 거지.

* * *

그로부터 몇 달이 흘렀을까.

비무대 위에 선 당지명은 어느새 과거가 되어버린 그 순간들을 떠올렸다.

‘나는 과연, 세상을 속였을까?’

하늘이 내려주고 세상이 정해버린 것.

재능이라는 이름의 낙인을 속이는 데 성공했을까?

‘그건, 이제부터 확인해 보면 되겠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앞에선, 남궁의 검룡(劍龍)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창천검룡. 사천당가의 당지명입니다.”

언제나처럼 먼저 인사했다.

그나마 가문 내의 상식인 역할을 맡고 있는 자신이었기에, 먼저 인사하는 것은 익숙했다.

“…소문은 익히 들었소.”

“소문 말입니까?”

“당신이 당가 최흉의 무력대. 잡룡단(雜龍團)의 단주라고 말이오.”

‘아, 아닌데요?!’

당지명은 화들짝 놀라 부정하고 싶었다.

잡룡단이라니!!

‘그 엄청나게 구려 보이는 이름은 또 왜…….’

요즘 방계 녀석들이 사천의 치안을 유지하겠답시고 자경단마냥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하지만 자신은 결코 그에 어울린 적이 없는데, 대체 왜 여기서 자신의 이름이 나온다는 말인가?

“얼마 전에 나와 겨루었던 패왕보의 소가주. 그가 자신을 당가 방계들의 공동 전인이라고 자칭했다더군. 그리고, 그 방계들의 우두머리가 당신이라고 들었소.”

‘아, 아닌데요?!’

저희 우두머리는 따로 있는데…….

뭔가 맞는 말 같지만서도 이상하게 또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인정해 줄 때는 또 부정하고 싶은, 기묘한 기분 속에서 당지명은 애써 포권을 취했다.

“…일단은, 차양당의 당주를 맡고 있는 당지명입니다.”

그 모습이 남궁수에게는 참 기이하게 보였다.

‘이상한 자. 일견하기에는 굉장히 유역해 보이는데…….’

한 집단을 이끌고, 한 세대를 대표한다 보기에는…….

‘누군가를 이끄는 이로서의 패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경외의 대상이던 그 자신의 아비가 경계해 마지않던 당가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자다.

현 당가가 한 번 몰락을 경험하였다 부활하며, 실질적으로 방계들이 주 전력 층을 채우는 이상, 그들의 우두머리인 당지명은 자신과 같은 소가주 위의 인물이라 보아도 무방한바.

경계와 기대를 담아 자리에 선 남궁수는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세에 적지 않은 실망을 느꼈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특출난 것도 없어 보이는 듯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누군가를 이끌기보단 누군가에게 이끌려지는 게 더 어울리는 사내였다.

‘기도를 완벽하게 숨긴 것일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딱히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제왕검형(帝王劍形).

오만하고 고고한 제왕의 검형이 펼쳐졌다.

이미 울려 퍼진 심판의 신호에 따라, 뽑혀 나온 검극이 상대를 가리키며 제왕의 기세를 뿜어냈다!

‘찍어 누르면 될 뿐!’

쿠구구구구!!

언제나처럼, 막대한 압력이 상대를 짓누른다.

이제 상대가 보일 행동은 뻔할 터이니―

“……?”

어?

‘…뭐지?’

제왕검형이 제대로 발동 안 됐나?

그럼 다시―

제왕검형(帝王劍形).

내공을 돋우어서……!

“……?”

응?

‘무, 무슨?”

남궁수는 당황했다.

지금껏 제왕검형을 발동시키면, 그 공능에 따라 상대는 막대한 기세에 눌려 스스로 무릎을 꿇어왔었다.

그건 패왕을 자처하는 구중보도 마찬가지였고, 세가 내의 다른 어떤 무인들도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개 같은 결과를 보여왔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저기…….”

그때 들려오는 당지명의 수줍은 목소리.

“…그, 혹시. 그렇게 검을 뻗는 건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식의 인사입니까?”

마치, 촌사람이 도시 사람을 처음 보고 문명에 어색해하는 듯한 그런 모습.

그리고,

수줍수줍―

쭈뼛쭈뼛 다가온 당지명은,

챙―

자신의 비수 하나를 꺼내 검 끝에 부딪친 뒤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흠흠.”

뭔가 해냈다는 듯, 뿌듯한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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