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 * *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쯤 되면 어지간한 병신이 아니고선 알 수 있었다.
‘나… 뭔가 잘못한 건가?’
검극을 내민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남궁수의 모습을 가만 지켜보길 약 다섯 호흡 정도.
자꾸 기세만 돋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혹시 자신이 뭔가를 모르고 있나 싶어 물었다.
“…그, 혹시. 그렇게 검을 뻗는 건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식의 인사입니까?”
어느 지방 사람들은 자신들의 병장기를 부딪쳐 서로 간의 뜨거운 정을 나눈다더니, 이게 남궁세가가 속한 안휘식 인사법일까?
‘흠흠, 그럼 나도…….’
사실 당지명은 기분이 살짝 상기된 상태였다.
아닌 척하지만, 무려 검룡도호의 일인이라 불리는 창궁검룡이 자신을 알아봐 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검극을 내뻗는 것도 같은 연장선상의 일이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값비싼 비도를 꺼내 그 끝에 부딪쳤다.
챙―
울려 퍼지는 명쾌한 쇳소리.
“잘 부탁드립니다. 흠흠.”
뿌듯했다.
유명인 옆에 서면 자기도 뭔가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여전히 자존감이 바닥을 기는 이 시대의 소시민, 당지명은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뭔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어깨를 들썩였다.
하지만,
“……?”
어째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남궁수의 모습은, 아니, 점점 딱딱히 굳어가는 그 모습은 당지명이 병신이 아니고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게 했다.
“…이거 아닙니까?”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보는데,
“…어떻게.”
“예?”
“어떻게… 당신, 아무렇지도 않소?”
아무렇지도 않냐고?
‘아뇨… 진짜 죽도록 쪽팔리는데요…….’
확실히 깨달았다.
이건 결코 인사법이 아니란 것을.
대체 뭘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수줍게 다가가 챙― 하고 병장기를 부딪친 뒤 다시금 몇 걸음 물러서는 자신의 모습이 대체 무엇으로 보였을까?
“크흠… 조금, 곤란하긴 합니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
‘곤란하다고?’
남궁수의 표정은 더더욱 딱딱히 굳어졌다.
“당신… 혹여, 내게서 느껴지는 게 없소?”
“느껴지는 거 말입니까? 어…….”
느껴지는 거라면…….
“음, 뭐… 대단한 기세이기는 하군요.”
“대단한… 기세?”
고작 느끼는 게 그거라고?
“예. 제가 만약 당가에서 자라나지 않은 상태에서 남궁 공자를 처음 뵀다면 확실히 긴장했을 법한 기세입니다.”
하지만 당지명으로서도 할 말은 딱 그것뿐이었다.
‘뭔가 대단한 기세가 느껴지긴 하는데, 그래 봐야 대형이 열받았을 때만 못하네.’
확실히 눈앞의 남궁수는 기세만으로 사람 잡을 수준이기는 했다.
그런데 당가에는 그런 사람이 하나 더 있는 게 문제였다.
‘그런 기세를 벌써 일 년도 넘게 받고 살아왔는데…….’
기세에 밀릴 수는 있지만, 기세에 짓눌리는 일은 우스울 따름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봅시다.”
무인으로서 인사라 할 수 있는 기세 싸움도 했고, 이젠 진짜 끝을 거둘 순간이다.
힘을 뺀 두 팔을 가볍게 내리자 남궁수 역시 인상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돌풍을 일으키는 사천당가이며, 그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자다. 무언가 한 수가 없다면 오히려 우스운 일.’
창천검에 찬란한 검기가 맺히며 그 끝이 상대를 향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상대는 현재까지 잠룡전을 진행해 오며 진면모를 보인 적이 없다. 그렇다면…….’
가벼운 견제부터.
천뢰제왕신공(天雷帝王神功).
오의(奧義).
천뢰기(天雷氣).
파지직!!
남궁수의 전신에 벼락이 흘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타고 흐르는 전류가 한 차례 폭발하며 당지명의 눈이 저도 모르게 크게 뜨일 때,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
섬여일검(閃如一劍).
파파팟!!
그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이 속도를 쫓지 못하는 건가?’
당지명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남궁수는 그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남궁가의 직계들만 익힐 수 있는 기공인 천뢰제왕신공을 극성으로 익혔을 때 도달할 수 있는 천뢰기의 상태.
그 상태에서 시전자의 속도는 말 그대로 벼락처럼 가속하고, 쾌검(快劍)인 섬전십삼검뢰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남궁세가가 패도(覇道)를 걸음에도 쾌검으로 이름난 검가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하나, 그렇다 해도 가벼운 견제일 뿐임에도 반응하지 못하는 당지명의 모습에 남궁수의 표정이 실망으로 물들 때,
‘……?!’
갑작스레 감각에 포착되는 예기(銳氣)에 남궁수는 저도 모르게 검을 휘둘렀다.
카카캇!!
타격점이 맞지 않는 불협화음이 울려 퍼졌다.
검이 채 휘둘러지기 전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먼저 자신의 검로를 방해했고, 그 사실에 위기감을 느낀 남궁수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뭐였지?’
식은땀이 흘렀다.
조금 전 것이 무엇인지를, 반격하며 물러난 지금까지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허.”
그런 그에게 들려오는 감탄 어린 탄성.
“그건 뭡니까? 웬만큼 빠른 이들은 다 만나봤다 싶었는데, 단연코 이런 쾌검은 처음입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당지명의 표정엔 경탄이 가득했다.
처음엔 자신을 놀리는 건가 싶던 남궁수는 이내 그 표정에 어린 진실함을 깨닫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 속도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 잠깐, 설마.’
설마 싶은 남궁수는 당지명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창궁비연검(蒼穹飛燕劍).
비연검풍(飛燕劍風).
파파팟!!
수십 개의 검기가 검풍을 타고 날아들었다.
당지명을 중심으로 주변 삼 장여를 전부 휩쓸어버리는 가공할 검기 폭격!
그리고 그것들은,
카카캉!!
정확히 당지명을 중심으로 한 일 장여에서 무언가에 격추당해 사그라졌다.
‘검막? 아니, 그럴 리가 있나.’
광범위한 방어막이란 효과는 검막(劍幕)과 비슷하나 남궁수의 감각은 검기들이 충돌하는 순간 반짝이는 무언가를 포착했다.
“길고 가는 은사(隱絲)… 설마, 반경 일대를 전부 그 은사로 뒤덮은 것이오?”
그 정체는 무려 상대의 주변 일대를 전부 빽빽이 뒤덮은 채 모든 방위의 공격을 막아내는 은사의 방어막!
그 말에 당지명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비천은사(秘淺隱絲)라고 합니다.”
원래는 내공을 실어 휘두르거나 그 끝에 암기를 담아 쏘아 보내는 것이 고작인 수법이었다.
하지만 지난날 밤의 일이 경과한 후 폭발적으로 내공이 증가한 당지명은 한 가지 더 나아가 여기서 미친 짓거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걸 꼭 휘두를 필요가 있나? 애초에 천년혈주가 은사를 쓴 방식도 이게 아니었잖아.’
궁구하고 궁구한 끝에 당지명이 완성한 무공의 첫 초식.
“남궁 공자께서 제게 가벼운 인사를 해주셨으니, 저 역시 답례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그 말과 함께 당지명의 양팔이 휘둘러졌다.
그러자, 무수한 은사의 더미가 사방으로 쏘아졌다.
파파파팟!!
“……!”
남궁수가 깜짝 놀라 자신에게 쏘아지는 은사들을 검으로 쳐냈지만, 뻗어진 은사 다발을 수백 개에 달했으니―
푸푸푸푹!!
연무장 바닥, 연무장 벽, 연무장 주변의 건물들과 그 근처에 심어진 나무들까지.
그 전부에 박히며 연결된 은사들이 오롯한 영역을 형성했다.
‘이것이, 내가 내놓은 첫 번째 해답.’
차양십이지명(遮陽十二之命).
일초(一招).
천년혈주(天年血蛛).
돌고 돌아 결국 기본에 이른 해답.
무수히 뻗어진 은사의 영역, 그중 하나로 가볍게 올라탄 당지명이 두 팔에 힘을 풀며 자연체의 상태에서 말했다.
“차양(遮陽)의 영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허…….”
영역, 인가?
제왕검형(帝王劍形)이 제왕의 영역을 구사하듯, 상대 역시 자신의 영역을 이 비무대 위에 만들어버렸다.
그에 남궁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
영역 싸움에서 이미 자신은 한 수 밀려나 버렸다는 것을.
하지만,
“…재밌군.”
남궁수의 표정엔 오히려 미소가 깃들었다.
“나의 앞에서 영역이라.”
차라리 개인의 무도(武道)라면 몰랐으리라―
만약 그가 뛰어난 암기술을 보였거나, 극독을 펼쳐 보이며 승부를 걸었다면 남궁수의 심장이 이리 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남궁가의 가주는 무인이되 일반적인 무인이 아니니까.’
애초에 바라보는 시점이 다르기에 남궁수는 지금껏 여타의 무인들과 부딪치면서도 진정한 경쟁자라 여기지 않았다.
하다못해, 팽가의 오호도와 경쟁자 취급을 받을 때도 그건 자신의 아주 일부… 그러니까, 무인(武人)으로서의 경쟁자로 여길 뿐이었다.
그러나 만약 상대가 스스로의 영역을 선포했다면?
그때부턴 이야기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
“아주, 재밌군. 제왕(帝王)의 앞에서 영역을 선포한다라.”
이제부턴 개인의 비무가 아니다.
‘이제부턴, 전쟁(全爭)이다.’
남궁수가 결정을 내린 순간,
천뢰제왕신공(天雷帝王神功).
극초오의(極超奧義).
천뢰신왕기(天雷神王氣).
콰아아앙!!
그의 정수리부터 지면을 수직으로 내리꽂는, 가공할 뇌기(雷氣)가 몰아쳤다.
‘저기서… 더 강해진다고?’
그 결과 폭증한 기세는 놀라울 정도.
분명 조금 전 시전한 무언가가 속도를 상승시켜준 게 분명했는데, 지금 새롭게 시전한 무언가를 더 하니 그 중압감조차 몇 배로 상승했다.
그리고 그게 단순히 보여주기식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타닥… 타다닥…….
‘기세만으로 비천은사가 타버리고 있다…….’
천년혈주의 거대한 몸체를 버틸 정도로 내구도 좋은 은사를 각종 약물로 강화시킨 게 비천은사.
그런데, 그것들이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타버리고 있다!
“그대의 영토를 하나씩 파괴하겠소.”
그 상황에서 남궁수의 오연한 선언이 울려 퍼지고,
제왕검형(帝王劍形).
제왕일검(帝王一劍).
그만큼이나 오연한 일검이, 비무장 정중앙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앙!!
‘허… 미친.’
하늘에서 거대한 검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그 자리를 피해 낸 당지명은 자신이 있던 자리에 생겨난 거대한 구덩이를 보며 침음을 삼켰다.
그때,
“다른 데 한눈을 팔아도 되겠소?”
지근거리에서 남궁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반응하려는 순간,
천뢰삼장(天雷三掌).
뇌령인(雷零印).
쩌엉!!
무시무시한 일장(一掌)이 당지명의 가슴팍에 때려 박혔다.
“큭!!”
그 충격에 날아가 처음 제왕일검이 만들어냈던 구멍에 처박혔다.
타는 냄새와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신기한 방어 수법이군. 이 주변의 은사로 갑옷을 만든 것인가?”
남궁수는 직전에 느낀 손맛에서 제대로 치명타를 입히지 못한 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끙, 감각이 좋으십니다.”
의복은 다 타버렸지만, 그 안쪽엔 비천은사를 몇 겹으로 감아낸 은사 갑주가 있다.
‘이게 아니었으면, 갈비뼈가 다 부러져 죽었을지도 모를 일…….’
투지(鬪志)는 있어도 살의(殺意)는 없는 저 모습을 보자면, 남궁수는 이미 자신이 이 정도에 죽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 듯했다.
‘높게 봐줘서 고마워해야 할지.’
당가 내에서 당불퇴 다음으로 이리저리 치이고 다니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해 보면, 전 무림에서 가장 촉망받는 후기지수에게 인정받는 이 신세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당지명의 반응을 보며 남궁수가 말했다.
“확실히 방어 수법은 감탄이 나올 만하군. 하지만 고작 그뿐이라면 실망스러울 것이오.”
자신과 전쟁을 할 정도면 이 정도에서 그치면 안 된다고.
그 경고 아닌 경고에 당지명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것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호오, 보여줄 한 수가 있는 것인가?”
“뭐… 보여줄 건 딱히 없지만.”
몸을 일으킨 당지명이 앞으로 손을 쭉 뻗어 손가락을 까딱였다.
‘뭐지?’
그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려던 남궁수였으나―
움찔!
“……?”
어느새 목 아래 드리워진 예기에 남궁수는 내디디려던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이미, 걸리셨습니다.”
보여주는 것 대신, 보이지 않는 한 수.
“…허.”
은사(隱絲)가 비수(匕首)가 되어 자신의 목젖을 겨누고 있음을 깨달은 남궁수에게 당지명은 씨익 웃어 보였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당신이 발을 들인 이곳 이곳은 이미,
“제 영역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