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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14화 (214/350)

214화

‘놀랍구나.’

남궁수는 적잖이 감탄했다.

천 개의 실을 숨기고, 그중 진짜를 또 숨겼다.

일천에 달하는 은사 역시 결코 가짜는 아닐 진데, 그 사이에 진정한 비수를 숨겼으니 속을 수밖에.

“기권하시지요.”

그 상태에서 상대는 패배를 권유해 온다.

거미줄에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된 사냥감을 바라보듯, 이미 승리를 확신한 그 모습에 남궁수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재밌군.”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각인지.

벅차오르는 무언가에 저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입을 열었다.

“그걸 알고 있나? 본가에는 천뢰제왕신공(天雷帝王神功)이라는 내공심법이 있어, 그 오의를 깨달을 시 전신에 뇌기를 두르는 호신강기, 천뢰기(天雷氣)를 습득할 수 있다네.”

파지직…….

무언가 타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하지만 그것은 직계들이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것. 그중에서도 특수한 비결을 더해서야만 얻을 수 있는 극초오의(極超奧義)인 천뢰신왕기(天雷神王氣)는 오로지 가주와 소가주에게만 전해지는 것이지. 해서, 본가에서는 이걸 제왕의(帝王衣)라고 부르지.”

제왕이 입는 옷.

그것을 전신에 두른 남궁수가 한 걸음을 더 내디디자 목에 걸린 은사가 목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 질문해 보지.”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아가는 남궁수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제왕의(帝王衣)를 입기에 제왕(帝王)일까, 아니면. 제왕(帝王)이 입기에 제왕의(帝王衣)일까?”

‘설마…….’

그 모습에 남궁수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오는 걸 느꼈다.

“정답은, 당연 후자일세.”

투두둑!

가공할 열기를 견디지 못한 은사가 끊어졌다.

당지명이 개발한, 아주 특수한 그것은 기존 비천 은사보다 다섯 배는 예리하고 질긴 성질을 지녔지만 남궁수가 그저 호신강기를 두른 채 몸으로 밀어붙이는 움직임을 버티지 못하고 끊어진 것이다.

“제왕검형(帝王劍形)! 오로지 제왕도(帝王道)를 걷는 자에게만 허용된 이 무공을 익힌 이는, 진정 제왕으로 화하게 되는 것이지.”

만인(萬人)을 억압하는 제왕의 위세?

그것은 아주 기본일 뿐, 진정한 위용은 그 육신마저 초인(超人)의 그것으로 만들어주는 것!!

‘이런 미친…….’

경악과 충격에 휩싸인 당지명을 향해 남궁수는 창천검을 휘둘렀다.

“제왕의 검을 보여주겠네.”

제왕검형(帝王劍形).

제왕일검(帝王一劍).

콰아아앙!!

가벼운 일검에 당지명이 서 있던 일대가 박살 났다.

좌도 우도 앞뒤도 전부 파괴 범위에 휩쓸렸으니 피할 곳은 오로지 저 하늘 밖에.

“과연, 날다람쥐처럼 날쌔군.”

저 높이 체공하는 당지명을 보며 남궁수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하지만 허공에서도 그렇게 날쌜 수 있을까?”

구구구구…….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

외식(外式).

십삼극천뢰옥(十三極天雷玉).

남궁수의 검극 끝으로 열세 개의 뇌옥이 생성되었다.

하나하나야 구슬치기하는 데 쓰일 만큼 작은 그것들이 검극을 중심으로 맹렬히 회전하자 무시무시한 살벌함이 몰아쳤다.

“받아보시게!”

슈슈슈슉!!

가볍게 휘둘러지는 창천검을 따라 열세 개의 뇌옥들이 솟구쳤다.

날개 달린 새가 아니라면 어설픈 낙법으로 피할 수 없는 공격!

그에,

‘이건 진짜 괴물이잖아!!’

파파팟!!

당지명은 비록 날지는 못했으나, 허공을 박차며 뇌옥들을 피해 냈다.

“과연! 은사를 밟고 움직이는 건가!!”

그 깔끔한 회피 동작에 남궁수가 더 좋아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끝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나!”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

외식(外式).

십삼극천뢰옥(十三極天雷玉).

또다시 뇌옥이 날아들었다.

‘또?!’

순수 강기 덩어리를 쏘아붙이는 강기공이었다. 내공 소모가 무시무시할 텐데, 고작해야 절정의 단계에서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지!!

‘피하기만 해선 답이 없다! 뇌옥에 휩쓸리는 은사들이 다 끊어지면, 내가 운신할 폭도 대폭 줄어들게 된다. 그러니, 그 전에 반격을 하는 수밖에!’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텐가!”

또다시 뇌옥을 생성해내 날려 보내는 남궁수. 그에 당지명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걱정 마십시오! 나라고, 피하기만 할 생각은 없으니!”

뚜두둑―

암기통이 뜯겨나가며 수백 개의 천골저가 허공에 수놓아졌다.

일정 고도로 올라간 천골저들은 곧 만유(萬有)를 끌어내리는 인력(引力)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으니―

차양십이지명(遮陽十二之命).

폭우시(暴雨矢).

폭우처럼 내리꽂히는 화살이 되어 비무장 전 지역을 뒤덮었다.

“하하하! 재밌군!!”

그럼에도 남궁수의 미소에는 변함이 없었으니―

제왕검형(帝王劍形).

검정천하(劍定天下).

창천검을 앞으로 쭉 내뻗는 것으로, 그 방향으로 생겨난 무시무시한 강기의 보호막이 천골저가 닿는 족족 태워버리기 시작했다!

파치치치칙!!

검막(劍幕)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무도한 폭거에 가까운 현상!

본디 검막이란 쾌속무비한 속도로 검을 휘둘러, 다가오는 것들을 모두 쳐내 다른 외부의 것이 자신의 공간을 침범하는 것을 막아내는 것인데 남궁수의 것은 그딴 움직임 하나 없이 순수 내공만으로 검막을 만들어낸 것이다.

‘자, 어쩔 테냐. 고작 이 정도로는 나를 뚫을 수 없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기로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는 남궁수.

한데 그 순간,

피슉!

뒤편에서 날아든 무언가가 그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응?’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남궁수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그와 동시였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혀야 하는 게 당연한 폭우가 어느새 전후좌우, 심지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기 시작한 것은!

파파파팟!!

“하……!”

대부분의 것을 쳐낸다고 쳐냈지만, 그러지 못한 것들은 제왕의라 불리는 천뢰신왕기를 뚫고 제왕검형을 익히며 초인의 경지에 이른 육신을 가르며 상처를 남겼다.

어떻게라는 의문은 필요 없었다.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남궁수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으니까.

‘은사! 은사에 암기를 튕겨 내게 쏘아 보냈구나.’

오싹오싹했다.

수백 개의 암기를 쏘아 보내면서도 그 궤적을 계산해 주변 은사에 부딪치게 만들어 자신에게 쏘아 보낸다?

‘무시무시하구나.’

진정 이 비무장 전역을 자신의 공간으로 만들지 않으면 불가능한 공간 인지력과 공간 장악력이었다.

‘저자는 진정 거미의 왕이구나!’

소름이 이는 상황에서 남궁수는 당지명이 그렇게 보였다.

사천이란 변두리 지방에 도사리고 있는 거미의 왕.

자신의 영토에 거미줄을 쳐 그 일대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침입자를 향해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전투를 유도하는 자!

그야말로,

“정복하고, 군림할 가치가 있는 적수구나!!”

너무나 즐겁지 아니한가?

‘뭐, 뭐라는 거야, 저 양반?!’

한편, 그걸 보는 당지명은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아득함이 느껴졌다.

‘비천은사를 수백 개나 깔아놓고, 거기다 수백 개의 암기를 뿌려도 고작 생채기를 내는 게 고작이라고?’

뿐만 아니었다.

단지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당지명은 사천당가의 독인답게 은근슬쩍 독을 뿌리기도 했었다.

생명에 위중하지만 않으면 일정 수위 내에선 독의 사용도 허가가 되기에 내공을 흩트리는 산공독이나 몸을 굳게 만드는 마비독 몇 가지를 흩뿌렸다.

하지만,

‘저 뇌기에 닿는 순간 전부 불타버리니…….’

독기의 극상성이 열기임을 증명하듯, 전신에 두른 뇌기는 독의 침범을 허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거기서 남궁수의 괴력은 끝나지 않았으니―

“우선, 네 영토부터 정복하겠다!!”

제왕검형(帝王劍形).

천뢰무한(天雷無限).

반쯤 섞어 쓰던 하오체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광소와 함께 휘둘러지는 검 끝에 벼락이 생겨나 온 주변을 휩쓸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벼락을 잡아다 채찍처럼 휘두르면 저런 모습일까?

비무장 바닥이고 그 주변에 있는 비천은사고 할것 없이 전부 휩쓸어버리는 압도적인 폭거.

상황이 그 지경까지 이르자, 당지명의 입에선 오히려 감탄이 흘러나왔다.

‘정말, 괴물이 따로 없구나.’

좋은 집안, 좋은 재능, 좋은 무공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단순히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강대한 초상승의 무공이 너무나 화려해 오로지 그것만 눈에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렇게 서로를 향해 검 끝을 겨누니 알 수 있다.’

상황에 다른 적재적소의 무공 활용.

낭비에 가까운 내공 소모를 보이는 것 같지만, 그보다 적합한 대처가 또 없으리라 한 수준이었다.

압도적이기에, 또한 완벽하게 자신의 공세를 원천 차단해 버리는 방식은 그만큼 자신의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뜻.

‘아쉽다.’

만일, 자신이 저들처럼 어릴 때부터 무공을 익혔다면 어땠을까?

하다못해, 대형을 일 년만 더 빨리 만났더라면?

‘다, 헛된 망상이지만.’

그런 생각들이 전부 부질없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지명이었기에, 조금 더 현실적인 망상을 꿈꾸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이기길 바라는 것!

어쩌면 그것 역시 한낱 망상에 불과할지라도, 당지명은 해볼 때까지 해보기로 결정했다.

“좋은 눈빛이군. 승리를 보기로 결정했나?”

남궁수 역시 그 마음의 결심을 눈치챘는지 웃음 섞인 물음을 던지자 당지명은 지상으로 착지하며 작지만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암기 하나를 꺼내 던졌으니―

“훗, 고작해야 암기 하나 정도로… 음?”

일천 개의 암기를 던져도 답이 없는데 고작 한 개 정도로 되겠냐고.

웃으며 말하려던 남궁수의 눈에 문득 보이는 괴이한 현상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날아드는 암기를 뒤로 그 주변 공간이 무수한 나선을 그리며 회전하고 있다는 것.

‘저건 설마…….’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 미처 반응할 틈도 없었다.

사실, 알았다 해도 이것만은 못 피하겠구나 싶어 창천검을 휘두른 순간―

차양십이지명(遮陽十二之命).

천년혈주(天年血蛛) 외식(外式).

천라지망(天羅地網).

휘리리리릭!!

암기가 검면에 부딪쳐 튕겨 나가고, 그 대신 날아든 수십수백 개의 은사가 창천검과 창천검을 쥔 팔뚝에 휘감겨버렸다!

‘핫……!’

이 일대에 존재하는 모든 은사가 자신의 팔 하나를 묶기 위해 소모된 것이다.

그리고,

파팟―!!

어느새 반대쪽 측면에서 나타난 당지명이 비도 하나를 손에 꾹 쥔 채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는 게 보였다.

‘하필 왼팔… 아니, 다 노려서 왼팔이군!’

자영과의 승부에서 입었던 왼팔의 부상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그것마저 노린 채 달려드는 거미의 왕을 보자니 적잖은 소름이 전신에 일었다.

“…좋군.”

최종 국면(最終局面).

마지막을 결착할 시기가 이리도 빨리 왔나 싶지만, 그 역시 남궁수는 기쁘기 그지없었다.

‘나를 끊임없이 위기로 몰아넣고, 가장 불합리한 상황에서, 가장 불리한 상처를 파헤치는 거미의 왕이여. 그대는 이 한 수로 제왕을 찔러 거꾸러트릴 수 있을 것이라 보는가?’

휘익―

가볍게 손목을 튕겨 오른손의 창천검을 왼손에 옮겨졌다.

분명 남궁수는 우수검(右手劍)을 익히는 오른손잡이에 왼팔은 또 부상을 입었지만―

“오만한 것은 강자의 특권이요, 의무이니까.”

“오만하면서도 아랫것들에게 당해 주어서는 안 된다. 빈틈을 보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감히 찌를 엄두도 낼 수 없게 만들어야 하지.”

머릿속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때는 그저 불합리하다 여겼던 말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것이 아주 당연하다 느껴질 만큼 즐거웠다.

“와라, 거미의 왕!”

당지명은 알고 있을까?

이 순간 불합리하다 여겼던 자신의 적수가 또 한 단계 성장해 버렸다는 것을.

하지만,

‘이 한 수로 끝낸다!!’

설령 그 답을 알았으리라 해도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을 당지명의 비수 끝은 예리하게 날아들었으니―

차양십이지명(遮陽十二之命).

유혼비도(流魂飛刀).

제왕검형(帝王劍形).

제왕일검(帝王一劍).

구우우우우우우웅!!

비무이자 전투, 전투이자 전쟁이었던 그것은, 거대한 굉음과 함께 결착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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