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문전성시(門前成市).
적웅이 슥 하고 다가와 툭 하고 뱉고 간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저, 저게 무슨 일입니까?”
“내가 다 묻고 싶은 말이구나…….”
빼꼼.
돌담 너머로 바깥 상황을 몰래 훔쳐보던 방계들은 얼떨떨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입단을 희망한다며 줄을 선 무인들이 저잣거리 저 끝까지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뭔… 어? 저 녀석은?”
당최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해 당황해하는 그들의 눈에 문득 익숙한 얼굴 하나가 가장 선두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구중보?”
그 이름은 구중보.
무려, 이번 비무로 소패룡(小覇龍)이란 별호를 얻은 패왕보의 소문주이자 차양당의 비공식 공동전인 구중보가 길게 늘어진 줄의 선두에 서서 당당히 어깨를 펴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자자, 다들 조용하십시다! 아직 이른 아침입니다. 형님들께선 바쁜 수련 일과를 진행 중이시기에 소란을 벌이시면 좋지 않습니다!”
어느샌가 찾아온 입단 희망자들의 교통정리까지 도맡아 수행하고 있었다.
“쟤… 저기서 뭐하냐?”
“그, 글쎄요?”
방계들로선 얼빠져서 멍하니 보고 있는데―
“이보시오, 소패룡! 진정 당신이 일취월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당가의 무인분들께 있는 것이오?”
“훗, 그야 물론이오. 나는 본디 일류를 간신히 넘어서던 보잘것없는 중소 문파의 무인에 불과했소. 하지만 그런 나를 이끌어 주시고 지도 편달해 주신 당가의 형님들이 계시오. 그분들이 있기에 나는 과분하게도 소패룡이란 별호를 얻을 수 있었소.”
구중보는 알아서 홍보 활동까지 가열차게 진행하고 있었다.
“오오, 진정 당신이 당계의 공동 전인이란 말이 사실이었구려!”
“그, 그렇게 불러준다면 고맙지만… 아직까진 비공식에 불과하오…….”
괜히 쑥스럼까지 한번 타주는 것이, 여기 모인 인파가 누구 덕분인지 알 만해지는 순간이었다.
“…저 녀석이 끌어들인 것 같은데요?”
“그러게 말이다.”
기껏 작성한 홍보지가 무색하게 되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최 우릴 어찌 홍보한 건지…….”
이쯤 되면 방계들도 무서웠다.
괜한 기대를 샀다가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 어찌 될는지…….
“일단, 저 녀석부터 소환해 보죠.”
“그러자꾸나.”
돌아가는 상황부터 알아봐야겠다.
* * *
구중보를 소환했다.
도저히 저 인파 앞으로 나갈 자신은 없는 방계들이었기에, 소환 절차는 삑삑이를 통해 진행되었다.
“이리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형님들! 아 물론, 삑삑이 너도!”
“삑삑!”
자신이 데려온 공로를 자랑하듯 새가슴 활짝 내민 삑삑이를 적당히 쓰다듬어준 구중보를 다른 방계들은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 표정은 각기 달랐지만, 공통적인 의미는 같았다.
‘이 녀석, 대체 무슨 일을 저질러 버린 거냐…….’
삑삑이를 통해 구중보만을 빼올 때도 난리가 일어났다.
왜 저 녀석만 받아주냐, 이미 잡룡단의 인원이 다 찬 것이냐, 혹시 무슨 뇌물 좋아하세요? 등.
이래저래 어지러운 시간이 흘러 흘러 지나가야만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소요가 가라앉았을 땐 대충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디 붙을 곳 없는 중소 문파의 후기지수들은 다 몰려왔다는 거냐?”
“그렇게 볼 수 있죠.”
“허허…….”
현재 사신단의 편제는 꽤 간략하게 나뉠 수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 청룡단.
명실상부 사신단 최강의 집단이며, 최고의 집단이었다.
단주인 남궁수부터가 진혁수를 제외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무인이며, 그마저도 양패구상을 했다지만 왼팔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이뤄낸 결과기에 당지명보다 윗줄로 평가받았다.
게다가 소속 가문이 사실상 오대세가의 수장 자리를 차지해 왔던 남궁세가였기에 검을 다루는 이들 중 오대세가 파벌에 속한 이들은 전부 청룡단으로 몰려갔다.
‘주작단은 오대세가 중 도를 다루는 이들이고.’
오대세가는 다른 구파일방보다 훨씬 속가 문파를 많이 두는 경향이 있었고, 청룡단과 주작단은 그 광대한 파벌 중 검과 도를 다루는 이들을 나뉘어 흡수했다.
그렇다면 백호단은?
‘구파의 파벌이 그리로 갔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화합과 경쟁을 반복해 온 역사가 있으니 나머지는 전부 백호단으로 몰려갔다.
그러다 보니 남은 중소 문파들은 자연스레 현무단으로 통합되었다.
“구파도, 오대세가에도 연줄이 없지만 그래도 제법 세력이 있는 중소 문파들. 그들이 현무단으로 통합되었다라…….”
자영이 남궁수에게 남겼던 일격이 다른 무림인들에게 꽤 큰 반항을 준 듯했다.
‘게다가, 그자는 완전히 바닥을 보여준 게 아니니까.’
자영이 보여준 미지의 한 수.
비록 엉망진창의 몰골로 기권하긴 했지만, 분명 그때의 그에겐 아직 여유가 남아 있어 보였었다.
“해서, 그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전부 우리에게 몰려왔다라.”
“거참, 정천맹의 악성 재고 같네요.”
툭 하고 내뱉은 당불퇴의 짤막한 촌평이 작금의 현실이었다.
“…사실은, 그렇기도 합니다.”
일문을 이을 후계자인 구중보 역시 그 정도의 상황 파악 정도는 이미 하고 있었기에 쓰게 웃었다.
하지만 그는 또렷한 눈빛으로 방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저는 형님들께서 저들을 수용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너 우리에 관해 믿음이 너무 큰 거 아니냐?”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하는 당불퇴였지만,
“당연한 믿음입니다. 제가 지난 이 주간 보고 배웠던 당가는 바로 그런 곳이었으며, 형님께서 보여주신 당가도 바로 그러했으니까.”
협의지문(俠義之門),
“안 그렇습니까? 형님들.”
사천당가(四川唐家).
그 이름을 읊는 문외 비공식 공동전인의 물음에,
“그 말이 옳다.”
당지명은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데려왔다.”
“그러게, 어떻게 딱 필요한 녀석들을 데려왔다냐?”
“완전 우리 취향인데?”
다른 방계들이 고개를 끄덕인 것 역시 당연지사.
“그럼 굳이 약초로 안 꼬셔도 되겠네?”
“악성 재고로 암기를 뿌려도 별말 안 하겠는데요?”
“어쨌거나 강해지고 싶다는 것들이잖아. 그럼 좀 빡세게 굴려도 되겠구만?”
모처럼 그들의 의견이 합일되었다.
“그럼, 우선 얼굴들 좀 볼까?”
받아들이기로 결정되었으니, 다음은 얼굴들 좀 볼 차례였다.
“…구중보 및 백십 명 집결 완료했습니다!”
가장 선두에 도열한 구중보를 포함해 총 백십 명의 근본 없는 무인들이 빈 공터에 도열했다.
우선 어떤 녀석들인가 싶어 면면이나 보기로 한 방계들이었고, 도열한 이들을 하나하나 확인한 그들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개판이구만.”
“그러게.”
“어찌 저리도 난잡할까.”
모인 이들은 이 자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구원의 동아줄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덕분에 껄렁껄렁하게 선 이들은 없었고, 최대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로 각 잡힌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럼에도 모지리 투성이었다.
“병장기들은 하나도 통일 안 되어 있고.”
“자, 잠깐! 난 더 못 보겠어!!”
“왜?”
“저 녀석 빈틈이 많은 거 봐!! 더 보다간 나도 모르게 천골저가 날아갈 것 같아!!”
“…그거 병이야, 인마.”
대형에게 옳은 당유혼병.
한편, 뒤쪽에서 방계들의 구시렁거림이 들려올 때도 당지명은 진중한 눈빛으로 모인 이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곧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다들 반갑습니다. 차양당의 당주, 당지명입니다.”
그리 크지는 않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또렷하게 힘이 담긴 목소리는 도열한 인원의 뒤쪽까지 닿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여러분이 들어오고자 하는 잡룡단의 단주이기도 하지요.”
잡룡단(雜龍團).
웃기지도 않은 이름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스스로 내뱉고 있자니 문득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너희들을 용(龍)이 되도록 해주마.”
꽤 오랜 기억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고작해야 일 년이지만, 먼지 쌓인 창고를 뒤적이다 찾아낸 낡은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궁금하구나.’
지금의 자신은, 과연 그때의 자신과 달라져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그의 목소리에는 저도 모르게 힘이 실렸고, 중구난방 수근수근거리던 방계들의 목소리를 저절로 잦아들었다.
“여러분이 이곳까지 오신 이유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도, 각 문파에서 희망이라 생각하는 이들일 겁니다. 거기 적삼의를 입으신 분, 한번 앞으로 나와보시겠습니까?”
“저, 저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지목받은 검수 하나가 쭈뼛쭈뼛 앞으로 나왔다.
낡은 의복과 유난히 손질이 잘된 철검, 애써 숨기려는 듯한 발을 뒤로 뺐지만 그래서 더 눈에 띄는 한쪽 바닥이 닳은 짚신이 인상적인 검수였다.
“소속과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금사문의… 비형입니다.”
“금사문의 비형…….”
그 이름을 당지명이 나지막이 읊조리다 허리춤에 채용된 강철검을 향했다.
“그 검의 연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제 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무척이나 관리가 잘 된 것이군요.”
“가, 감사합니다!!”
알아봐 준 것이 무척이나 기쁜 듯 비형은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이 검은 사실… 본문의 보물입니다. 먼 옛날 개파조사께서 사용하셨던 명검이며, 대대로 물러져 오다 제가 잠룡전에 참가한다고 하자 사부님께서 들려주셨습니다.”
“과연.”
일문의 보물이라 하기에 그리 좋은 검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검은 검집부터 검병까지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낡은 옷과 바닥이 닳은 짚신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 그에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문의 상황은 넉넉한 편이십니까?”
“예… 예?”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들어서 알고 있지만, 저희는 딱히 입단하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받지 않습니다.”
“그, 그게… 사실… 본문의 사정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궁핍하다 해야 정확한 표현이겠지.
사실, 금사문은 비형을 사천까지 보내는 것만으로도 큰 지출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들 문파는 이미 과거의 영광을 잃고 영락한 상태였고, 장문인마저 산에서 약초를 캐고 사냥을 하여 문파의 가계를 꾸려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렇기에, 먼 길을 보내는 제자가 어디서 굶지 않도록 곳간을 바닥까지 긁어 쌀 주머니를 챙겨 보내기도 했었으니, 문득 말을 하던 비형은 먹먹해져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걸 느꼈다.
“…….”
“…….”
모인 이들이 절로 숙연해졌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눴을 뿐이지만, 다들 오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들,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당지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인 이들을 크게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실로 잘 오셨습니다.”
“……?”
“예, 예?”
모인 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여기 오신 분들이라면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저희 가문 역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고작 일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러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영락하고, 쇠퇴한 가문.
삼십 년 전에는 가장 높이 올라 있었기에,
삼십 년 후에는 가장 낮게 떨어져 내렸던,
그런 사천당가의 방계들을 대표하는 당지명이었기에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그런 저희기에, 여러분께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리 만나게 되어 실로 반갑습니다.”
다시 한번, 그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수 있었다.
“저는, 여러분들이 용(龍)이 될 수 있도록 해줄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