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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19화 (219/350)

219화

내세울 건 쥐뿔도 없는 이들이 용(龍)이라 불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그런 물을을 던진다면, 사실 내놓을 답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필요한 게 많다는 뜻일 테니까.

그래서 당지명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별것 있나. 우리가 한 만큼 하면 되겠지.’

다행히도 저들에게는 독기가 있었다.

그냥 사천당가에 오기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약해 빠진 정신머리를 가진 이는 없었다.

‘하긴, 당연하겠지.’

가문의 모든 자산을 바닥까지 긁어서 머나먼 만리타향으로 찾아온 이들이다.

하나하나가 어깨 위에 사문의 흥망을 얹고 찾아온 이들.

바보가 아닌 이상, 그간 잡룡단이라는 이름으로 사천에서 말썽을 부리는 정천맹 소속 문파들을 쥐잡듯이 두들겨 팬 사천당가에 속한다는 게 어떤 일인지 잘 알 것이다.

그렇기에 여기까지 온 것은 그들에게도 나름 최후의 결정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럼, 그걸 얼마냐 잘 다듬냐가 가장 중요한 요소.’

해야 할 것을 정한 당지명은 곧장 철기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예? 이미 준비되어 있단 말입니까?”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답변을 철기방주 당야철에게 들을 수 있었다.

“음? 도련님께서 맡겨놓은 걸 가지러 온 것 아닌가?”

원래 철기방에가서 그들이 처음 수련할 때 착용했던 족쇄들을 주문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발주가 완료되어 있을뿐더러 제작도 끝이 나서 가져가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다.

“넉넉잡아 이백 개 정도 만들어 놓으라고 말씀하셨다네. 이맘때쯤이면 자네가 찾아올 거라 하였는데…….”

내가 찾아올 걸 알고 있었다고?

뭔가 묘해지는 당지명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족쇄를 받아들였고―

그 비슷한 상황은 다른 곳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 * *

“옜다. 가져가거라.”

“…어, 이게 무엇입니까?”

“저것들을 가져가려고 온 것 아니더냐?”

당가에는 아직 제대로 된 의약당이 존재하지 않았다.

보통의 문파는 약초학에 대한 지식이 있는 인재가 흔치 않지만, 당가에는 그런 인재쯤은 차고 넘쳤다.

필요하면 알아서 약재 창고를 뒤적거리다가 가져가면 될 일이었고, 그 명단만 총관인 당궁상이 관리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대규모로 약초를 반출하려면 보고 정도는 해야 했기에 당궁상을 찾아간 당율기였는데,

“그놈이 네가 찾아오라면 전해 주라고 해서 따로 준비해 놨었다. 시기도 이맘때쯤이라 하였는데, 필요한 게 아니었느냐?”

한쪽에 잔뜩 쌓인 약초 더미.

함께 놓인 목록을 보니,

‘대부분 내가 필요한 것들이잖아?’

진짜 딱 필요한 것들로 꽉꽉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자님. 이건 어디 두면 되겠습니까?”

“엥? 단주님, 여긴 어쩐 일로…….”

“하하, 어쩐 일이시긴요. 은인께서 부탁하신 것이라면 제가 직접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열 대가 넘는 수레에 잔뜩 쌓인 것은 수련용 나무 인형.

수백 개에 달하는 나무 인형을 싣고 온 광세운이 그것들을 연무장 한가운데에 쏟아두고 돌아갔고, 이후에도 수련에 필요한 것들이 차곡차곡 도착했다.

각자 필요한 걸 가지러 다녀온 방계들이 하나둘 모였을 땐, 다들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대형의 소행 같은데?”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준비된 것들.

연무장 한가운데 쌓아놓고 보니 더더욱 의심스러운 그것들을 보자니 그들의 불안감이 봄철 들판에 자라나는 잡초처럼 무성하게 폭증했다.

그런 그들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문구.

“잡룡단을 정식으로 창설해라. 사람 많이 모으고, 최대한 번창시켜라.”

“…설마.”

“…아니겠지?”

“아니겠냐, 하하.”

애써 현실을 부정해 보려는 그들이지만, 현실은 언제나 압도적인 폭력으로 들이닥쳤다.

“대형은 이미 여기까지 보신 거야.”

“그리고 본인이 보신 걸 현실로 만들어 놓으라고 하신 거지.”

선 주문, 후 실천이랄까?

일단 주문해 놨으니 전부 이루어놓으라는 강한 의지.

조금만 늦었더라도 아슬아슬했을 이 무시무시한 상황에 다들 오싹오싹 소름이 일었다.

“…됐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나마 당지명이 나서 불안해하는 그들을 다독였다.

“어쨌거나, 긍정적으로 보자면 필요한 게 다 준비되어 있으니 곧장 수련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

“그건… 그렇죠?”

“그리고, 듣자 하니 다른 사신단 역시 비슷하게 수련을 진행한다더구나.”

본격적으로 녹림을 토벌하기까지는 두 달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전까지 각 무력대끼리 합을 맞추기 위해 합숙을 진행하며 수련을 행하는 시간이 약 두 달여―

“우리 역시 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그 시간에 맞춰 수련을 진행하고자 한다.”

당지명 역시 그에 맞춰 수련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어떤 식으로 진행하려 하십니까?”

“중보 때처럼 할겁니까?”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만약 원래 그들이 처음 수련했던 대로라면 구중보가 받았던 수련이 딱 적당할 듯했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건 사람 잡는 거지.”

“그마저도 하나뿐이니까 우리가 다 함께 도와줄 수 있었던 거고.”

“우린 대형이 아니잖아?”

“그래. 우린 사람답게 하자.”

암만 각오가 선 이들이라도 그대로 진행했다간 절반쯤 탈주하지 않을까… 싶은 게 솔직한 걱정이랄까.

“내 생각 역시 그렇다.”

당지명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꼭 이번 두 달 안에 모든 걸 다 할 필요는 없다 싶다. 저들을 용으로 만들어줄 거란 다짐은 진심이지만, 그 일정을 두 달 안에 모두 소화하고자 하는 건… 영 아닌 듯싶구나.”

그랬다가는 망가질지 모르잖아.

그나마 방계들 중에서 상식인을 자처하는 당지명인 만큼, 머릿속 계획은 저들이 따라올 수 있을 만큼이었다.

그러니까, 원래 계획은 그랬다는 소리다.

만일, 그 와중에 들려온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이놈… 쉐리덜… 파딱파딱… 안 일어나느뇨!!”

연무장 내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외침.

일단 앉아서 뭘 할지 기다리고 있던 예비 잡룡단원들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뭐지?”

“누구시지?”

카랑카랑한 외침의 주인공은 삿갓을 푹 눌러쓴 채 나타났다.

그마저도 그 아래로 보이는 얼굴엔 검은 복면을 둘러쓴 상태였는데, 들려오는 목소리만 따지자면 꽤 나이가 있어 보였다.

“캬악~ 퉷!! 나 때는… 쉴 때도… 수련… 이었거늘… 어린 것들이… 뭘… 하고… 있느냐……!!”

어째 한마디 한마디에 쉰 냄새가 잔뜩 낀 목소리.

듣고 있던 방계들은 저도 모르게 서로를 돌아보았다.

“…맞지?”

“…그런 것 같은데?”

분명 목소리 자체는 그들도 처음 듣는다.

하지만 저 영혼부터 배배 꼬인 듯한 아니꼬움은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형이다!’

뭣보다 저 빌어먹을 복면부터가 문제였다.

“당장… 일어나지… 못할깟……!!”

“네, 넵!!”

넵!

예비 잡룡단원들이 허겁지겁 밀집 대형으로 정열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군기가 팍팍 든 모습이다.

뭐랄까,

‘직감적으로 저 양반한테 걸리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있는 건가?’

알아서 제 살길 찾아가는 예비 잡룡단원들의 앞으로 삿갓 괴인(?)이 팔자걸음으로 다가왔다.

바짝 얼어붙은 예비 잡룡단원들, 그들 앞에 선 그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나를… 노사부(老師傅)라… 부르도록……!!”

노사부?

자연스레 예비 잡룡단원들의 시선이 당지명에게로 향했지만,

“…큼, 크흠…….”

당지명은 물론이고, 차양당의 방계들 전부가 이를 악물며 다른 곳을 돌아보는 척하느라 바빴다.

“이놈… 쉐리… 덜!! 감히… 이 노사부가… 말하는데… 어딜… 보느냐……!!”

“죄, 죄송합니다!!”

그렇게 한 차례 소요가 있었지만, 대개 소란이 그렇듯 어느 정도 일단락되고 나자 다들 하나둘 상황 파악에 나섰다.

우선, 첫 번째.

스스로를 노사부(老師傅)라 소개한 노괴(老怪)는 잡룡단의 단주인 당지명이 칠일 밤낮을 빌고 또 빌어서 간신히 초청한 외부 강사라고 한다.

물론, 그게 정말인지 싶어 예비 잡룡단원들이 당지명을 쳐다봤지만,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만 보며 허허 웃는 모습에 제대로 된 답변은 듣지 못했다.

그래도 감히 면전에서 그리 외치는 데 부정하지 못하니 다들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들은 총 열하나의 대대로 나눠지게 되었다.

일개 대대의 대주는 따로 없지만, 본래 차양당의 방계들이 삼인 일조로 뭉쳐 대대를 이끌게 되었고, 그 셋을 따라 열 명씩 배정되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게 가장 중요했는데…….

쿠웅!

문은 항상 등 뒤에서 닫힌다고,

천천히 닫히는 대문의 굉음과 함께 예비 잡룡단원들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놈들… 너희들은… 모두… 잡룡단이… 될 것이라… 서명했다… 맞느냐!!”

어느새 가져온 연판장에 하나둘 이름을 쓴 잡룡단원들.

어째 사기 계약에 휘말린 것만 같은 기분 속에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넵! 그렇습니다!!”

“넵! 그렇습니다!”

“넵! 그렇습니다!!”

“좋다……!!”

그에 노사부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숙련된… 조교들… 앞으로……!!”

숙련된 조교?

‘…우린가?’

처음엔 긴가민가한 방계들이었지만,

“앞으로……!!”

“예, 옙!!”

한 번 더 저 소리가 나왔다가는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다는 강렬한 예감에 허겁지겁 앞으로 튀어나왔다.

“묵룡환(墨龍環)을… 채워라……!!”

묵… 뭐요?

언제부터 저딴 쇳덩이에 그런 그럴 듯한 이름이 붙은 건지.

철컥철컥―

그것을 직접 채워주면서도 방계들은 미안함을 숨기지 못했다.

“…쩝, 이렇게 된 거, 그냥 알아서 버텨라.”

“그래, 너희가 선택한 잡룡단이잖아.”

“악으로 깡으로 버텨.”

마지막으로 갈수록 어째 변질된 것 같지만, 묵룡환을 전부 채우는 순간 그들에게서 당황성이 흘러나왔다.

“뭐, 뭐야 이거?”

“엄청 무거운데?”

“그, 그게 끝이 아냐!! 내공이……!!”

뭐?

‘내공이 금제 되었다고?’

당지명은 설마 싶어 아직 자루에 남겨져 있는 다른 묵룡환들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미친… 신체와 맞닿는 부분이, 혈도를 짚게 되어 있잖아?’

방계들이 찼던 족쇄는 진짜 순수한 족쇄의 역할만 해서, 그저 죽도록 무겁다는 특징만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 족쇄는 거기다 더 해 안쪽에 돌기가 있어 내공을 금제하는 기능까지 있었다.

‘이, 이렇게 되면…….’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당지명 앞에 어느새 다가온 노사부가 척― 하고 멈춰 섰다.

“지명아.”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온 목소리.

당연 예비 잡룡단원들에게는 들리지 않고, 당지명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당유혼은 말했다.

“굴려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너희가 굴렀을 때만큼만 굴려.”

“지, 진심이십니까?”

“그럼? 내가 너희랑 농담 따먹기라도 할까?”

그러다가 애들 다 잡습니다!!

차마 양심이 내지르는 비명을 참지 못하는 의협지문 사천당가의 차양당주 당지명은 그리 외치려 했지만,

“알아둬. 쟤들이 못 구르면, 그다음 구르는 건 너희야. 아직 족쇄 여유분 봤지?”

그런 걸 왜 구비해 뒀겠냐고,

반짝반짝 묵빛 광을 토해 내는 묵룡환 앞에―

“헤헤, 제가 또 굴리는 것 하나는 전문입죠!”

양심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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