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20화 (220/350)

220화

【 잡룡단(雜龍團) 】

사신단이 본격적으로 자리매김하며, 정천맹의 정치 구도는 네 개의 축으로 개편되었다.

원래부터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으르르컹컹 되는 것이야 당연했지만, 그게 조금 더 명확해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렇게 구분이 덕분에 각 파벌의 대립은 더더욱 첨예해졌다.

다른 파벌들이 뭘 하는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이 잡힌다 하면 저놈들이 당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을까 머리를 굴렸다.

왜냐면, 자기들도 다 각기 그러고 있으니까!

“분명 저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다!”

“더러운 오대세가 놈들, 눈만 떼면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게 확실해!”

“남궁세가 놈들, 앞에선 오만하고 고고한 척하지만 뒤에서 수작질 부리는 건 유명하지.”

한데, 산적 때려잡겠다고 뭉친 맹(盟)이 맞긴 한가 싶을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는 와중, 그들의 신경과민을 더더욱 이끌어줄 존재가 나타났다.

잡룡단(雜龍團).

네 개의 파벌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이들이 뭉친 기이한 맹외집단(盟外集團)이었다.

* * *

일도양단(一刀兩斷).

그 뜻도 호쾌한 성어(成語)가 일필휘지의 장엄한 필체로 쓰인 족자로 벽에 걸려 있다.

무림에 많고 많은 문파가 있다지만, 이 단순무식한 성어를 가훈으로 삼는 가문은 딱 하나뿐이었다.

하북팽가(河北彭家).

천하제일 도가라 불리는 가문이 바로 그곳이요, 그 족자가 걸린 이곳은 하북팽가가 주축을 이룬 파벌, 주작단의 단주 집무실이었다.

“으하하하하!! 역시 당 형이야! 잡룡단이라니, 이름부터가 당 형다운걸?!”

집무실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웃음소리의 주인은 당연 팽천강.

푹신푹신한 집무실 의자에 몸을 묻고 탁자를 쾅쾅 두들겨대는 그는 아주 좋아죽으려 했다.

“쯧, 오라버니는 그게 그렇게 좋으세요?”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운 아미를 좁히고 있는 여인이 한 명―

그녀의 정체는 팽설희.

온통 열혈 바보라 불리는 팽가에서 흔치 않은 냉혈을 지닌 이었으며, 그녀의 남매들이 폭주할 때마다 적절히 머리채를 잡아채 주는 고삐 같은 여인이었고―

“저와 참모부는 그 이름부터 괴이한 집단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말이죠.”

팽가의 지낭(智囊)이라 불리는 인물이기도 했다.

“엥? 왜 또 머리가 아프다는 거냐?”

“하아…….”

오라비가 또다시 이게 인간의 지능인지, 어류의 능지인 지 알 수 없는 물음을 던져오자, 지끈지끈거리는 두통이 함께 찾아오는 걸 느꼈다.

‘당최, 이 사람은 하북팽가라는 거대한 가문의 후계자라는 지각이 있는 걸까?’

대게 대문파라 불리는 집단의 후계자들은 어릴 때부터 개인의 무위(武威)뿐 아니라 심계(審計) 역시 기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팽천강은 그딴 걸 몰랐다.

당장만 해도―

“설희야. 솔직히 말해 봐라, 이번 잠룡전에 너 말고 막내 녀석 출전시켜줬다고 삐진 거지?”

“이딴 개소리나 하고 있으니…….”

“개, 개소리라니!!”

동생의 독설에 상처받은 팽천강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팽설희는 그딴 것쯤은 신경 쓰지도 않고 참모부서에서 올라온 보고서들을 훑어보았다.

“정말, 오라버니는 그들이 신경 쓰이지 않으신가요?”

“신경 쓰이지 않다니? 내 흥미는 오로지 그들 뿐이야! 완전 신경 쓰고 있단다!!”

“네네, 그러시겠죠.”

정천맹에 속한 파벌이 네 개의 축으로 기틀이 다져지고, 그들은 각기 물밑 전쟁을 시작했다.

아무리 사대 파벌이라고는 하지만, 파벌끼리 힘이 동등한 것은 당연 아니었기에 때때로 힘이 약한 파벌은 동맹을 맺기도 했다.

아닌 척해도 주작단이 백호단과 어느 정도 교류를 하고 함께 청룡단을 견제하고 있는 것도 암묵적으로 청룡단이 사신단 중 최고라 인정하고 있기 떄문.

그러나―

‘이 오라버니는 그딴 거 안중에도 없겠지…….’

백호단주?

원래는 거절하려 했었다.

“내가 왜? 싫어, 귀찮아! 그거 하면 함부로 싸우지도 못하잖아!!”

자리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맨날 싸우고 싶은데 이놈의 가주라는 자리 때문에 세상을 떠돌지도 못한다고.

어릴 때 즐겨두라는 가주이자, 아버지라는 작자의 하소연을 귀에 딱지가 얹히도록 듣고 살았기 때문인지, 팽천강은 모든 사회적 지위를 거절하려 했었다.

‘그때 진짜 힘들었는데…….’

그런 팽천강을 설득하기 위해 팽설희는 갖은 곤욕을 치러야만 했고, 다시 생각하면 정말 진저리가 나는 경험이었다.

‘정작 그렇게 하고도 단주 일은 다 나한테 떠밀어버리고 본인은 언제 청룡단주랑 맞붙을 수 있냐는 헛소리만 종일 해대고 있지만…….’

그게 참 골이 아팠다.

어쩌면, 지금 그 잘난 청룡단 보다 더 주의를 집중시켜야 할지 모르는 집단이 생겼는데도 이 오라버니는 헛소리나 삑삑 해대고 있으니―

‘진짜 오라버니고 뭐고 두들겨 패버려?’

“…왜 또 그런 표정이느냐?”

“무슨 말씀이시죠?”

“거, 내가 백호단주 하기 싫다니 도갑(刀匣)으로 개처럼 팰 때의 표정이잖느냐.”

“어머? 표현이 너무 상스러우시네요.”

그저 설득을 위해 약간의 물리적인 수단이 동반되었을 뿐인데 말이다.

“…크흠, 그래. 뭐가 문제라서 우리 동생이 그리 신경이 곤두섰더냐?”

그래도 무인으로서의 육감인지, 아니면 오랜 기간 여동생에게 맞고 살아온 오빠로서의 직감이 발달한 것인지, 더 이상 마냥 탁자만 두들기며 즐거워하고 있다간 이 탁자처럼 처맞을 것이란 위기감을 느낀 팽천강이 자세를 바로 하며 물어왔다.

그에, 팽설희는 한 번 더 고운 아미를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잡룡단, 그들의 성립 과정과 배경이 너무 의심스럽거든요.”

“그들이?”

“네. 암만 생각해도, 그들 뒤에는 청원이 있는 것 같아요.”

청원자.

정천맹주의 도호였다.

“맹주님 말이냐?”

“네. 그 속에 구렁이 백 개쯤은 키우고 있는 늙은 여우 말이에요.”

“거참, 맹주님한테 하는 표현하고는.”

팽천강이 그녀의 말본새를 지적했지만, 팽설희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는 비록 무위는 구파일방의 장문인들 중 하위권에 속한다고 평가받지만, 그 심계만큼은 바닥을 알 수 없다고 평가받는 자예요. 그리고 이곳 사천으로 오고 나서 확실하게 느꼈죠. 다른 건 몰라도, 그는 정치력만으로는 이미 천하를 오시할 경지에 이르렀단 걸.”

저게 칭찬일까 아니면 고도의 비꼬는 것일까.

일반적인 무인에게 했다가는 상당히 모욕적인 표현이겠지만, 단순 모독이라 생각하기엔 진지한 여동생의 표정에 팽천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심계가 뛰어나다는 뜻이냐?”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죠. 확실한 건, 저 역시 아직 그의 수를 전부… 아니, 반도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에요.”

“허… 진짜냐?”

팽설희는 하북팽가의 무인답지 않게 무(武)에 대한 욕망은 별로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건 방향성의 차이일 뿐이었으니, 그녀는 비록 무혼(武魂)이라 불릴 만한 것은 없을지언즉, 지략을 겨누고 심모원려(深謀遠慮)에 관한 승부욕은 팽가의 딸이라 불릴 만큼 강했다.

‘그만큼 수읽기와 수 싸움에 자존심 강한 게 이 설희인데, 그런 아이가 상대를 이리도 높게 평가한다고?’

“정말 자존심 상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팔짱을 낀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뭐래도, 그는 본가를 비롯한 현 정천맹의 사대 파벌이 각자의 이권을 위해 정치전을 벌일 때도 중심에서 그 축을 유지하며, 교묘히 청성의 이득을 챙겨낸 사람이니까요.”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정천맹이 설립된 이후, 청성의 위세가 날이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천삼주라 했던가요? 원래 그들은 서로 동맹을 맺었으면서도 내부적으론 서로 경쟁하는 관계라 들었는데, 정천맹 설립 반 년만에 이미 그 균형이 깨졌다고 했었지요.”

불과 삼 년 전까지만 해도 사천이라 하면 아미, 점창, 청성 셋이 있다고 평가받았지만, 이젠 사천이라 하면 사천당가와 청성 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그만큼 청원은 보통이 아니에요. 비록 도인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능히 천하를 교란시킬 모사(謀士)가 바로 그 자입니다.”

때문에, 팽설희 역시 청룡단보다 더더욱 신경 쓰는 자가 바로 청원이기도 했다.

“그런 자가 입김을 불어 만든 집단이 바로 잡룡단이에요. 즉, 잡룡단은 그의 직속 부대까진 아닐지라도 그가 휘두를 검이 아닐까 싶은 의심까지는 들수 밖에 없어요.”

“검이라…….”

팽천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검이라기에는 날이 무척 무디기는 해요.”

수많은 보고서들에는 한 장 한 장마다 잡룡단에 들어온 개개인의 신상 명세서가 적혀있다.

개중에는 팽설희가 난생처음 들어봤을 정도로 작은 문파들에 대한 정보들이 가득했다.

즉, 적게 잡아도 일백 장이 넘는 보고서들이 올라왔다는 뜻.

그중에서 공통점을 찾기 위해 전부를 훑었던 팽설희였고, 그 끝에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어찌 이런 개버러지들만 모아 놨나 싶을 정도로요.”

“개버러지라니…….”

저 고운 입술에서 어찌 저런 폭언들만 흘러나오는지.

오라버니로서 저리 키운 적이 없다 생각하는 팽천강은 동생의 성장 결과가 삐뚤어졌음에 참으로 슬퍼하며 물었다.

“너는 그들을 그만큼 얕잡아보면서도 그들을 경계하느냐?”

“얕잡아 보는 건 아니에요. 아주 명확하게 보는 거지.”

보고서에 올라온 이들의 신상 명세를 보면 어찌 이리 다채로울 수 있는가 싶은 수준이다.

‘출신 성분도, 나이도, 익히고 있는 무공도, 주로 사용하는 병장기도 전부 달라.’

게다가 그들은 전체적으로 어느 사대 파벌에도 속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 빠진이들이니, 솔직히 팽설희로서는 잡룡단은 정천맹의 쓰레기통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다만, 그래서 더더욱 고민이 되는 거죠. 분명 청원 정도 되는 자가 일을 허투루 할 리는 없으니 그들을 모은 데 의도가 있겠지만, 그렇다 치기에는 모인 이들이 너무나 허접하다는 거예요.”

그게 지금 사대 파벌에 속한 참모들이 머리를 쥐어뜯고 온몸을 비틀어대는 공통적인 이유.

당최, 청원쯤 되는 이라면 분명 무시무시한 흉계를 꾸미고 있을 텐데, 그런 양반이 대놓고 모은 이들의 수준이 너무나도 쓰레기라는 게 그들의 뇌 속에서 명확한 답을 도출하지 못하도록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말, 모르겠군요.’

상황을 정리한 팽설희 역시 답을 찾지 못해 그저 인상만 찡그리고 짜증스럽게 보고서들을 꾸깃꾸깃 하고 있는 상황.

그 모습을 가만 눈치만 살피던 팽천강이 입을 연 것은 그 순간이었다.

“흠, 글쎄. 난 생각이 좀 다른데 말이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네가 생각하는 심모원려야 물론 나 역시 이해하지 못하지만. 내 생각에 네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 좀 잘못됐지 않았나 싶다.”

“관점이요?”

팽설희의 고개가 들렸다.

딱히 흥미가 동한다기보다는, 이 멍청하고 짐승 같은 오라비가 무슨 헛소리를 하냐 한번 들어나 보자는 표정이었다.

“너는 맹주님이 그들을 통해 어떤 흉계를 꾸미냐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구나. 하지만, 내가 볼 때 잡룡단이란 집단에서 주목해야 될 건 그들의 존재를 승인해 준 맹주님이 아니라… 잡룡단 그 자체다.”

“그 버러지들이요?”

버러지라니…….

끝까지 심한 말에 팽천강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 기색을 지우고 말했다.

“솔직히 난 잡룡단이 어찌 구성됐는지 모르고, 맹주님의 의도 따위도 잘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 그들을 이끌 당불퇴란 남자는 알고 있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뜨거워지는 그때 그 순간을 떠올렸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향해 주먹을 내뻗던 사내!

팽천강은 그의 주먹이 눈앞까지 다가왔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돌주먹을 가지고 있었지.”

“…예? 그건 또 무슨 개소―”

“개소리가 아니다.”

조건반사적으로 욕을 박으려는 동생의 말을 자르며 팽천강은 단언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확실했으니까.

“그는 근본적으로 보석이 아니었을 거야. 뛰어난 재능을 갈고닦아 그 경지까지 도달한 게 아닐 거다. 분명 재능은 별 볼 일 없었을 테지만, 범인(凡人)은 상상도 못할 인고의 노력으로 그 경지까지 도달했을 게다.”

그래서 돌주먹이다.

그 시작은 어떤 원석도 되지 못할 단순한 돌멩이에 부족하겠지만, 그걸 갈고 닦아 지금의 수준까지 올라온 그런 사내일 것이다.

“그리고 잡룡단은 그런 남자의 휘하에서 강해지게 되겠지.”

그게 가장 중요했다.

“설희야. 너는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잡룡단이라는 조직이 창설되었다는 소식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단 하나만 해도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무인이 어쩌면 일백여 명도 넘게 탄생할지도 모를 거란 사실이 그를 흥분케 한 것이다!

“잡룡단(雜龍團), 어쩌면 그들은 말이다.”

팽천강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말했다.

“온갖 용들이 모인, 만룡전(萬龍戰)이 되지 않을까 싶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