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 * *
어느 날 갑자기 위혼이 녀석의 집무실로 호출당했다.
“형님. 요즘 들어 사천성 내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소문? 그런 거야 뭐 한둘도 아니고…….”
“인적이 드문 절벽에 정체불명의 괴이한 무리들이 집단으로 등반하는 것이 사냥꾼들의 눈에 종종 목격된다고 합니다.”
“…녹림 놈들이 새로 둥지를 틀었나?”
역시 산적 자연 발화설은 옳은 진리다.
그 사이 산적놈들이 산채를 만든 것이 분명했다!!
“약초꾼들도 잘 드나들기 힘든 험지의 수풀이 황폐화된 자국들이 종종 발견된다 하더군요.”
“산짐승!! 산짐승 들이 분명하다!!”
하루라도 빨리 해수구제사업(害獸驅除事業)을 진행해야 하는 건가?!
“어디선가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과 신음이 깊은 밤 내내 들려온다 하더랍니다.”
“서, 설마 사교도가?! 큭… 내가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 미처 사교도 놈들이 사천에 뿌리를…….”
“사교도라…….”
후룩―
위혼이 녀석이 자신의 자리 앞에 놓여있는 찻잔을 들어 홀짝였다.
짙은 독차의 풍미가 피어오를 때, 녀석이 다시금 그것을 제자리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럴 수 있지요. 그 기이한 괴음의 진원지가, 본가라는 소문만 아니라면.”
세상에나.
“무척이나 억울한 표정이시군요.”
“억울하다마다!!”
이건 억측이고 모함이다.
예로부터 세상에는 충성스러운 충신을 모함하는 간신배들이 우두머리의 귀에 사특한 간언과 모략을 일삼았다고 한다.
사천의 치세를 혼란케 만들려는 치사하고 악독한 무리가 분명 위혼이 녀석의 귀에…….
“형님.”
“…으, 응?”
“제가 어찌하여 형님께 시간을 내어주시길 부탁드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어… 글쎄……?”
내가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자, 위혼이는 들어올 때부터 한가득 쌓여있던 죽간(竹簡) 더미를 끌어다 가운데에 놓았다.
“오늘 자, 제게 올라온 상소문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고작 오늘 하루라는 점이었다.
“자축(自祝)해야 할 일일까 싶습니다. 본가의 위상이 나날이 올라가며, 그 위세가 사천 전체를 진동케 하자 사천인들은 사천 내에 분란이 생길 때마다 본가에 성토를 하고 있습니다.”
“그건… 본가가 사천의 지배자로 다시금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증거겠지.”
“예, 그렇겠지요.”
옛날 옛적부터 사천의 패자를 자칭하던 당가였기에, 먼 과거로부터 사천에는 양민들이 힘든 일이 생기고 억울한 일이 생기면 탄원을 제출하도록 만든 공간이 있었다.
그동안 당가가 몰락했을 때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공간이었지만, 내가 복귀한 날로부터 나날이 부흥을 반복한 지금에선 하루가 머다 하고 상소문들이 쌓였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보며 우습다고도 생각합니다.”
“무엇이… 말이더냐?”
녀석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하지만 그건 결코 기쁨으로 맺어진 미소는 아니었다.
“우습지 않습니까? 본가가 고난 속을 거닐 땐 손 하나 내밀어주지 않던 이들이, 이제 와 본인들이 힘들 땐 앞다투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말입니다.”
“위혼아!!”
그건,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녀석이 이런 말을 한다는 사실이.
후룹―
녀석은 다시금 독차를 한 모금 홀짝인 뒤 자리에 내려놓았다.
“협의(俠義). 그것은 분명 옳은 가치입니다.”
텅 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총관께 들었습니다. 저희 아버님과 할아버님께서는 그것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 여기셨다지요. 물론, 저 역시 그것이 중(重)하다고 느낍니다. 하나, 그것이 가족만 할까 싶습니다.”
“…위혼아.”
녀석의 말이 참 마음 아프게 들려왔다.
“형님이 오시기 전에 이 사천성 내에는 용독문이라는 대망(大蟒)이 있었습니다. 사천삼주가 풀어놓은 그 뱀은 협의를 짓밟고 기어다니며, 양민들의 신음과 고통, 비명을 삼키며 몸집을 불려왔습니다.”
그런 때가 있었다.
고작해야 일 년 전이라지만, 이제는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그런 때.
하지만 녀석에게는 결코 과거가 될 수 없는 그런 시절.
“그 시절에 그 누구도 본가를 돕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본가에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습니다.”
녀석의 눈이 먹먹해졌다.
“오로지, 형님을 제외하곤.”
“…….”
그 눈빛을 감히 마주하지 못하고, 나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형님. 만일 형님께서 이 상소문 따위에 형님께 쓴소리를 할 거라 생각하셨다면, 그건 정말 크나큰 오해이십니다. 설령 이번일 뿐 아니라, 앞으로도 형님을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멋대로 지껄이는 말에 제가 형님께 감히 무어라 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 말라고.
자신의 믿음은 변치 않으리라고.
단순히 입에 말린 말이 아니라,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진실함이 결코 변치 않을 영원함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아프구나. 가슴이… 너무나 먹먹하게 쓰라려.’
어째서였을까?
‘이 녀석은, 사유가 아니고… 사명이 또한 아닌 것을.’
나는 무의식중에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당사유가 그랬고, 당사명이 그랬듯―
이 녀석 역시 어떤 힘들고 모진 고난 속에서도, 협의의 기치를 잃지 않고 험로를 담담히 걸어가리라고.
하지만,
‘그래, 이 녀석은 사유가 아니고 사명이가 아니다.’
당위혼(唐衛魂).
가장 힘든 순간에도 홀로 당가의 혼을 지켜온 녀석은, 분명 녀석 나름의 가치와 기치가 따로 있을 수밖에.
“…그러, 하더냐…….”
입이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항상 믿어준다는 말을 들음에도,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나를 감싸 안는 걸 느꼈다.
그건 뭐랄까.
‘실로 오랜만에, 세상에 동떨어진 듯한…….’
이 낯선 세상이, 어째서인지 크게 실감이 되는 그런 기분이라 할까?
그 사실에 차갑게 식어버린 독차를 들이키고 있을 때―
“그렇지만, 형님. 그렇기에 더더욱 여쭙고 싶습니다.”
“으, 응?”
“잡룡단이라고 하였던가요? 형님께서 직접 단련시키고 있는 그들, 형님께서는 내인으로 받아들일 생각이십니까?”
녀석은 빈 찻잔에 다시금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독차를 따르며 말했다.
“그건… 왜 그러느냐?”
“만약 그렇다면, 가주로서 당부의 말씀 한마디 정도는 올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도 넘게 이런 괴소문이 몰려든다 합니다.”
이러다 애들 잡는 거 아닙니까?
차마 가주로서 그 우려를 지울 수 없는, 그 솔직한 표정에,
“…하, 하핫… 하하하!!”
“형님?”
나는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해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하, 그래… 그렇지.”
그럼 그렇지.
“네 말이 맞다.”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조금은 낯설기는 하지만.
“내가 성급했구나.”
역시 너는, 그 녀석들의 후손이 맞구나.
어설프게 혼자 결론내려 버린 나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며―
“미안하다.”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 * *
위혼이 녀석에게 혼나버렸다.
사소한 소문들 따위에 자신을 의심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가인이 될지 모를 녀석들을 너무 심하게 굴리는 거 아니냐고―
녀석들의 곡소리와 비명 소리가 자신의 귀에도 끊이지 않자 차마 걱정을 금치 못해 나선 것이다.
‘에잉, 쯧. 그런 문제를 야기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방계 녀석들을 더 굴려야겠어.’
비명을 지를 힘이 남아 있다니.
‘내가 녀석들을 직접 굴릴 때는 분명 그런 일 없었는데 말이야.’
어쩐지 처음 만날 때부터 지명이 놈이 용이 되게 해주겠다니 뭐니 하며 감성팔이 할 때부터 알아봐야 했다.
분명, 설렁설렁 굴리니 이런 헛소리가 나도는 거겠지.
‘뭐, 그건 그렇고.’
이제 놈들을 굴린 지도 어언 이주 가량이 지났다.
방계 녀석들이야 앞으로 한 달하고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수련만 죽어라 하면 되리라 생각하겠지만―
‘그건 속 편한 이야기지.’
녀석들은 아직 집단에 속한 적이 없어 맹(盟)이라는 거대한 연합체에 속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예전에는 이 비슷한 것들을 알아서 해주는 놈들이 많았는데…….’
인재들이 싹 다 증발해 버린 당가에는 귀찮은 일을 대신해 줄 녀석들이 없다.
즉,
“어디 한번, 애새끼들 뒷바라지하러 가보실까.”
끼기긱―
거대한 문을 열어젖히며, 본격적인 뱀놈들의 토굴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늦으셨군.”
“역시, 맹주의 사랑을 듬뿍 받으시는 곳 다우시구려.”
“우리 역시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 빠르게 진행하였으면 좋은데 말이오.”
도사리고 있던, 무수한 뱀들이 아가리를 벌려 사특한 혀를 슉슉 놀려 왔다.
‘귀찮은 것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사신단을 대표해 나온, 사신단의 껍질을 뒤집어쓴 대문파의 노괴(老怪)들.
기나긴 세월 속, 노회하고 또 노회한 각 문파의 노물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무거운 엉덩이를 자리한 이곳은 바로―
“자자, 조용 하시오. 사람이 다 모였으니, 본격적으로 대회의를 시작하겠소.”
정천맹, 대회의장이었다.
‘에잉, 쯧. 이 나이 먹고 이놈들이랑 뻑적하게 굴러야 되다니…….’
구파일방 오대세가, 혹은 그에 준하는 대문파엔 그런 놈들이 있었다.
무림에서 쌓인 세월과 경험이 보통이 아닌 이들, 개중 무공이 그리 특출나진 않으나 그간 쌓은 것들을 바탕으로 각 문파들 간의 이권 다툼에 나서 사문의 이득을 쟁취해오는 이들.
칼끝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혀끝, 붓끝으로 싸운다지만, 그 살벌함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만 같다 하여 냉전(冷戰)이라 불리는 전장!
그곳을 거니는 이들이 모인 뱀굴을 훑어보자니, 호시탐탐 노려들 보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뭘 야려? 눈알을 확 뽑아버릴까 보다.’
마음 같으면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버리고 싶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선 어설프게 무력을 선보였다간 역으로 당한다.
‘말하자면, 청원 같은 놈들이 모인 곳이랄까?’
무력 대신 정치력만 쌓은 놈들의 전장.
어제의 동지가 내일의 원수가 되는 게 당연한 공간이지만, 이 승냥이 같은 놈들이 가장 먼저 노릴 상대는 또 정해져 있으니―
“첫 번째 안건에 들어서기에 앞서… 뇌절검문의 호연승 장로께서 이의를 제의하고 싶은 게 있다고 들었소만.”
그건 당연, 가장 살이 야들야들해서 물어뜯기 쉬운 상대.
즉,
“뇌절검문의 호연승이오. 내 먼저, 잡룡단에서 들려오는 풍문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소.”
가장 만만한 상대였다.
“당신이 노사부라지? 다시 한번 소개하리다. 나는 뇌절검문의 장로, 호연승이오. 강호 동도들은 부족하나마 뇌절(雷切)이라 불러주고 있소.”
뇌절, 호연승.
그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은 상대였다.
‘일 절, 이 절만 하지 못하고 귀찮게 말꼬리 물고 늘어질 것 같은 놈인데…….’
대문파에서 상대의 약점과 흠을 잡고 지독스럽게 물어뜯을 패로는 아주 적절한 이름이었다.
‘좋아, 한번 덤벼봐라.’
그 썩은 독니를 모조리 뽑아줄 테니.
오연히 고개를 들어 녀석을 마주했다.
그러자, 녀석 역시 사특한 눈빛을 번뜩이며 품에서 장부 하나를 꺼내 들어 펼쳤다.
“이게 보이오?”
그러자 그 안에서 비추어지는 것은 아주 그득그득 적힌 글자.
“대답하시오, 노사부. 당최 이게 말이나 되는 것인지!!”
치를 떠는 목소리로 그는 소리쳤다.
“대체 어떻게 하면, 잡룡단이 맹에 요청한 예산 내역이 다른 사신단이 요청한 예산 내역에 곱절이나 되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