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22화 (222/350)

222화

정천맹 대회의.

무력은 몰라도, 정치력 초절정의 경지는 우습게 넘나드는 대문파의 늙구렁이들이 몰려있는 뱀굴.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고개를 쳐든 놈은 과연 지독한 독니를 가지고 있는 놈이었다.

‘첫수부터 비겁하게 사실 적시 공격이라니…….’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로 승부할 것이지…….

“대답하시오! 노사부!”

내가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고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는 뇌절.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캬악~ 퉷!!”

“이런 미친!! 어디서 타액을 뱉는 것이오?!”

“이노오옴!! 네 아비가 누구냐!!”

“뭐, 뭐요?”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삼강오륜도법이다.

“내가… 나이를… 먹어도… 네놈보다… 반 갑자는… 더 먹었다!!”

“뭐 이런 미친 노인네가…….”

철판을 긁는 듯한 칼칼한 목소리.

세월을 느끼게 하는 숙성되다 못해 썩은 말투.

뇌절 호연승이 당황해 뒷걸음질 칠 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몰아친다!

“우리… 애들… 밥 좀… 먹인다고… 어딜… 유세더냐!!”

“밥? 이 작자가 정신 나간 소리를! 이게 어디 밥 한 그릇 두 그릇 먹는다고 나올 계산서요?”

덜렁덜렁 장부를 흔들었다.

‘저거 저거 독한 놈이네.’

어찌 철두철미하게 조사한 건지.

흘깃 보니 사용 예산과 요청 예산 등이 푼 단위는 물론이요, 문 단위로까지 빼곡히 적혀 있다.

“크흠… 내가… 눈이… 침침해서… 안 보이는구먼…….”

“뭐… 라고?”

“안 보인다고!! 네놈이… 내게… 눈에 좋은… 영약이라도… 맥일 게냐!! 어디서… 소리를… 높이느냐!!”

소리는 네가 먼저 높였잖아?!!

호연승은 말문이 막히는지 뒷 목을 잡고 쓰러졌다.

‘좋아, 한 놈 격파.’

뱀 한 놈의 모가지를 잡고 고이 토굴에 처넣어주자 그다음 주자가 나섰다.

“갈(喝)!! 어디서 망발을 일삼고 있는가!!”

다음으로 나선 이는 뇌절이라 불리는 노괴보다 족히 반 갑자는 더 산 것으로 보이는 노인네.

호연승의 나이가 대충 불혹을 살짝 넘겨 보인다면, 다음으로 나선 주자는 손자 손주 모아놓고 칠순 잔치나 열어야 할 듯해 보였다.

‘나이 처먹었으면 손자 손주놈들 재롱이나 볼 것이지…….’

결코 범상치 않아 보이는 늙은 뱀의 등장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맹의 예산이 우습게 보이는가? 이것은 강호의 동도들이 전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한 푼, 두 푼 소중히 모은 협과 의의 기치이다! 한데, 그것을 타 사신단보다 곱절로 쓰면서 정작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출처에 대한 표기도 쓰지 않았다! 이것이 횡령이 아니면 무엇인가!!”

횡령이라니!!

‘조금 빼먹었기로서니 말이 심하잖아?’

희번득 눈을 뜨고 소리친 노인네를 똑똑히 쳐다봤다.

“어허? 답하질 못할망정 감히 어딜 눈을…….”

“갈(喝)!!”

유혼화법(流魂話法) 일 초식.

말하는 와중 말 끊기가 전력으로 전개되었다.

“뭐, 뭣?”

그렇다면 곧이어 이 초식을 전개―

“네놈은… 또… 누구냣!! 정체를… 밝혀라!!”

연고지 조사가 작렬했다.

“…뭐라?”

“어디… 사는… 개잡놈… 이기에… 감히… 대(大)… 사천당가의!! 이 몸… 에게… 끼어드느냐……!!”

참지 못한 녀석이 소리쳤지만,

“이익!! 나는 대비연검문의 당대 장문인, 한목림이다!”

“풋!!”

“비, 비웃어?”

“창궁검… 뭐? 그거… 역사가… 백년은… 되느냐?!”

될 리가 있나.

‘그거 내가 뻔히 내 시대에 창설되는 거 봤는데.’

“배, 백 년? 그 정도는…….”

한목림은 비록 장문인이라는 직급상의 우위를 지녔을지언즉, 근본력(根本力)에서 밀리고 말았다.

“떼에에에엑!!”

그럼 승부가 안 되지.

“고작… 백 년도… 안 되는… 세월로… 대… 사천당가… 앞에… 주름을… 잡느뇨!!”

우리 집이 한때 좀 말아먹긴 했지만, 살아온 세월만 수백 년을 넘는다고?

“다… 좋은데… 썻으니… 그대는… 경거망동… 하지… 말라!!”

두 번째 뱀도 어질어질해져 뒤로 넘어져 갔다.

쯧쯧, 나이도 많아 보이는 양반이…….

‘그러게 평소에 몸 관리를 잘했어야지.’

두 명의 중진들이 뒤로 넘어가자 사회를 맡은 이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중재에 나섰다.

“그만! 이대로 가다가는 본 안건에 들어가지도 못하겠군.”

탕탕탕―

모든 이의 발언권을 강제로 중지시킬 수 있는 나무망치가 탁자를 두들기며 회의장에 소란을 잠재웠다.

아직도 분이 식지 않은 이들이 눈알을 부려왔지만,

‘뭐? 쳐다보면 어쩔 건데?’

정천맹 설립의 최대 공신이 바로 이 몸이다.

그런 정천맹의 군기를 순찰할 외부 감사단이 될 녀석들이 바로 잡룡단이고.

‘그럼 다 정천맹을 위한 건데, 내가 좀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쓸 수 있는 거 아냐?’

당가의 곳간이 채워지긴 하겠지만, 이건 전부 다 정천맹을 위한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 * *

정천맹 대회의는 밤 늦게 늦게 끝이 났다.

내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임을 깨닫자 그들은 섣불리 이빨을 드러내다가 목덜미를 물어뜯길 대신, 확실히 승리가 가능하다 싶은 이들을 향해 독니를 번뜩였고, 덕분에 회의는 한참이나 지연되어야 했다.

‘피곤한 놈들.’

하지만 또 그렇다 해서 오늘 일정이 모두 다 끝났냐면, 당연히 그건 아니었다.

“자자, 고생들 하셨으니 회식이나 갑시다. 제가 운치 좋은 곳에 술상을 준비해 뒀으니까.”

자고로 회식은 근무의 연장이라―

술자리를 가장한 이차전이 준비되어 있었다.

“노사부, 그쪽도 갈 것이오?”

“클클… 주도하면… 또… 이 몸을… 빼놓을… 수… 없지!!”

내게도 도전장은 던져졌고, 당연 나 역시 피할 생각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이 몸뚱이도 얼마 전 부로 성년(成年)이구나.’

설정상 주장한 나이일 뿐이지만, 당가에 복귀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아직 어리다고 술도 못 얻어먹었던 날들을 생각하면 시간 참 금방금방 흘렀다.

“복면도 벗지 않고 무슨 생각을 그리하시오, 노사부.”

길어진 상념은 술자리에 도달하고 나서야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니 맞은 편에 앉은 뇌절이 술병과 술잔을 건네오는 게 보였다.

“클클… 애송이… 네가… 주도를… 알겠느뇨?”

“주도? 큭… 재밌군.”

내 도발에 뇌절은 곧장 몸을 떨며 반응해왔다.

“우리 뇌절검문에도 주도가 있지. 웃어른에게 먼저 잔을 올리는 것이 본문의 주도일터, 어떻소. 한잔 받으시겠소?”

한잔 받겠냐고?

“그야… 물론이지!!”

주는 술 거부하는 놈이 어디 있을까.

곧장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은 옳다구나 하고 술병을 기울였다.

“자, 받으시오!”

쪼르륵…….

기울어진 술병으로부터 곡주(穀酒)가 흘러내렸다.

‘흐흐, 어떠냐…라고, 생각하고 있는 표정이구만.’

당연하지만, 그냥 술을 따라주는 게 아니었다.

따라주는 술에 내공을 실어 상대를 내리누르는 고난이도의 기법이었다.

다만,

‘쯧쯧, 겨우 이딴 걸로 뭘.’

술잔이 차고 넘치도록 술을 퍼부었으나, 내 손목이 떨리긴커녕 지화자 좋구나 소리치자 녀석의 눈이 휘둥그렇게 뜨였다.

“정이… 넘치는구나!!”

“아, 아니?”

“후룹!”

단번에 술잔을 들이키자 화끈함이 목구멍 속을 채웠다.

‘비싼 술자리라더니, 확실히 고급품이구만.’

술맛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 수준이 아니라 가끔 뇌물이랍시고 납품돼서 몰래몰래 쟁여놓던 것들보다 훨씬 고급품이었다.

“그럼… 네놈 애송이에게도… 이 몸이… 주도를… 알려주련다!!”

이제 네 차례지?

“한잔… 주시오…….”

상황이 이쯤 되자 심각함을 깨달은 녀석의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정치력을 후달려도 무력은 자신있다 여긴 듯싶으나,

‘자식아, 넌 둘 다 삼류야.’

가소롭게 내뻗어지는 술잔 위로 나 역시 술병을 기울인다.

쪼르륵―

“크, 크흡?!”

달달달달―

“어디… 지진이라도… 낫나?”

보기 애처로울 정도로 떨리는 녀석의 팔.

하다하다 못해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보기도 하지만―

“아주… 공손한 게… 주도를… 좀… 아는 놈… 이구낫!!”

“끄아아!! 그, 그만!!”

그마저도 버틸 수 없게 되자 결국 녀석은 간절하게 소리쳐야만 했다.

콰앙!!

그제야 술병을 기울이길 멈추자, 녀석은 술이 쏟아지든 말든 굉음과 함께 잔을 떨어트렸다.

“저런…….”

“뇌절이, 술잔을 떨어트렸다고?”

웅성웅성.

단번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거, 무슨 난리라도 나셨나?’

이후로는 아무도 내게 술잔을 권하는 이가 없어 혼자 홀짝홀짝 자작을 반복했다.

몇몇 수군수군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 이상 내게 함부로 접근하는 이는 없었고 결국 나 혼자 복면과 삿갓 사이로 술잔을 가져갔다.

‘대충 기강 다지기는 끝났구만.’

이 자리는 결국, 각 사신단을 대표하는 자리.

영구히는 아니겠지만, 여기서 기선을 제압해 놓을수록 각 사신단 간의 알력 다툼은 물론이요, 맹 내부에서의 위상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얼른얼른 성장해라, 이 지렁이들아.’

대충 시간벌이 정도는 된 듯했다.

* * *

두 달의 시간은 유수(流水)와 같이 흘러갔다.

아직 정식 잡룡단원이 되지 못한 예비 잡룡단원은 정말 개처럼 굴렀다.

비유상 표현이 아니라, 지급받은 의복이 흙먼지로 완전히 염색될 정도로 떼굴떼굴 굴러야만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각자 개인 시간을 가지는 걸 허락한다!!”

해가 지고 밥 짓는 연기도 사그라들 때쯤이 되어서야 그들의 정규 일과는 끝을 맺었다.

“으아아아!! 끝났다!!”

“젠장!! 살았어!! 오늘도 뒤지는 줄 알았는데 살았다고!!”

훈련이 끝난 뒤 예비 잡룡단원은 비명과 안도의 한숨을 동시에 내쉬었다.

정말, 하루하루가 숨넘어가도 이상할 게 없는 혹사의 연속이었지만 또 이렇게 하루를 버텼다.

“젠장, 빨리 밥 짓자. 오늘 물 길어오는 당번이 누구냐?”

“누구긴 누구야, 너겠지.”

“아, 맞다. 빨리 물 길어올게!”

물 길어오는 당번을 맡은 단원 하나가 호다닥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들은 하루하루 들어오는 민원에 시달려 아예 숙식 하는 곳도 당가를 벗어나 어느 인적 드문 야산으로 옮긴 상태. 덕분에 야전 요리 솜씨 역시 부쩍부쩍 늘어났다.

“고기는?”

“흐흐, 아까 잡아둔 게 있지.”

어디선가 멧돼지 서너 마리와 사슴 몇 마리가 통째로 튀어나왔다.

백 명이 먹기엔 멧돼지 한 마리도 적었기에, 그들은 수련 중간중간 야생 동물이 보이면 곧바로 잡룡단 공식 암기, 천골저(穿骨箸)를 던져 수렵을 해놓았다.

“자, 먹자!!”

곧장 요리가 완성되고, 그들은 빠른 속도로 오늘 자 저녁을 해치웠다.

지게 몇 대 분량에 해당할 약초와 고기들이 사라지고, 동산만큼 부른 배를 두드리며 예비 잡룡단원들은 그 자리에 누워 밤하늘을 채운 별들을 바라봤다.

“예쁘기도 하구만.”

말똥말똥 뜬 눈에 보이는 별들이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귓가에 들려오는 누군가의 기합 소리.

“또 녀석이냐?”

“그놈 아니면 누구겠냐.”

다른 이들은 밥 먹고 기분 좋게 드러누울 때, 누군가는 소화랍시고 곧장 일어나 수련을 이어 간다.

그 이름은 바로,

“중보 녀석. 진짜 징한 놈이야.”

구중보.

패왕보의 후계자이자,

“당연하지. 그러니까 우리가 우두머리로 삼는 게 아니겠어?”

어느새, 예비 잡룡단원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게 돼버린 녀석이었다.

“큭큭, 그러게 말이다.”

근 두 달의 시간, 그들은 참 많이도 친해졌다.

중원 여기저기에서 왔기에 간혹 소수 민족 출신도 있어 처음에는 서먹서먹하기도 한 그들이었지만, 함께 매일 같이 구르다 보니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같은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야.”

“뭐.”

“우리도, 저렇게 빛날 수 있을까?”

누군가 물었다.

별 의미 없듯 툭 하니 던져진 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의미가 깊은 물음이었다.

아니, 사실은,

“…그러게.”

모두에게 깊이 와닿는 물음이었다.

‘우리도, 저렇게 빛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 이도, 질문을 받은 이들도, 모두가 마음 한편에 그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어 침묵이 찾아올 때―

“물론이다.”

그 침묵의 휘장을 열어젖히며 울려 퍼진 목소리가 있으니,

“중보?”

어느새 다가온 구중보, 그가 모두의 중앙에 서서 활짝 웃어 보였다.

“우리는 빛난다. 우리는 용이 될 거다. 잡룡단(雜龍團)의 이름으로, 전 중원에 우리의 이름을 당당히 떨칠 거다.”

그것은 확신.

저 하늘을 바라보며 말하는 그 단단한 목소리가, 모두의 가슴에 별빛처럼 내려앉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게 있지.”

“…쳇. 알고 있거든?”

“괜히 멋진 척하기는.”

그 말에 누워있던 예비 잡룡단원들이 하나둘 일어섰다.

“죽어라 수련하는 거.”

“그래, 바로 그거야.”

오늘의 나약한 나를 죽이고, 다시금 내일의 강한 나를 살린다.

모두에게 당연시된 그 사실에 예비 잡룡단원들은 죽을 것 같이 힘들던 하루 일과가 끝이 났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서 개인 단련을 시작했다.

“…녀석들.”

그 모습에 구중보는 씨익 웃으며 저 하늘을 바라봤다.

별들이 빛나는 무수한 하늘과 그 아래로 펼쳐진 천하(天下).

‘드디어, 내일인가?’

그들이 스스로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첫걸음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구중보 역시 웃음과 함께 개인 수련을 시작했으니―

그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두 달간의 시간, 그 하루 전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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