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그것은 우연이며, 또한 필연이었다.
잡룡단에게 주어진 두 달의 시간.
그것이 꼭 두 달이었던 이유는 마찬가지로 다른 사신단 역시 두 달간의 합숙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었고, 그 시간 동안 사신단의 일익(一翼)인 현무단 역시 고된 수련을 반복한 것 역시 필연이었다.
그리고, 누구나 고된 수련을 마친 뒤에는 든든한 국밥을 먹고 싶은 것은 참된 진리 아니겠는가?
현무단이 국밥집으로 향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응? 저들은 또 누군가?”
국밥집에는 하필 선객이 있었다.
정확히는, ‘선객들’이 있었다.
“윽… 냄새가…….”
“너무 심한데?”
야산에서 흙먼지 속을 매일매일 굴러다닌 잡룡단이었다. 씻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고, 지금도 곧장 뛰쳐나와 국밥집으로 다가와 뜨끈한 국물로 배를 채우며 그 열기에 온몸에서 육수를 뽑아내고 있었다.
보통 국밥집에 오는 상남자들이야 그런 것쯤 돼지 비린내와 함께 무시하겠지만,
“윽… 백 공자, 좋은 곳이래서 왔더니 여긴가요?”
“저는 좀 안 맞네요…….”
하필 같이 온 이들 중엔 여자들도 있었다.
단련된 상남자들도 버티기 힘든 땀내를 제아무리 무인이라 해도 여인들이 버티는 것은 무리.
비난의 목소리가 하나둘 들려오기 시작하자 국밥파 무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때,
“응? 잠깐, 저 녀석은…….”
개중 하나가 누군가를 발견하고 동그랗게 눈을 떴다.
“왜 그래, 수한?”
“저 녀석… 그 녀석이야.”
“그 녀석?”
“왜, 잡룡단으로 들어간 놈들 있잖아.”
‘이크.’
하필 눈을 마주쳐버렸다.
그 사실을 깨달은 구중보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그거 재밌군.”
아무래도 늦은 모양이었다.
“어이, 주인장.”
들어왔던 현무단 무인 중 하나가 국밥집 주인을 불렀다.
“이 가게 안의 인원을 전부 소개(疏開)시켜 주었으면 좋겠는데.”
“예, 옙?”
“허허, 잘 안 들렸나? 사람들을 다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아, 물론 값은 쳐주지.”
자, 받게나.
은자 두 냥이 국밥집 주인의 손에 쥐어졌다.
평소라면 이게 웬 떡이냐, 횡재를 부를 만한 액수지만,
‘아이고, 하필 오늘……!!’
저들 걸신, 아니, 재신 무리가 퍼먹은 국밥 값만 이미 은자 열 냥이 넘는다.
이미 가마솥 두 개째를 동내고도 부족한지, 속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자면 족히 먹은 만큼은 더 먹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끄으응…….’
무림은 결국 힘이 전부다.
저들이 아예 힘으로 싹 몰아낸다면 모를까, 이런 상황에선 가게 주인장으로도 어쩔 수가 없다.
“저, 소… 손님들… 죄송합니다만 나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요?”
“우급?”
“우물우물… 꿀꺽!”
갑작스러운 주인장의 축객령에 잡룡단원들은 눈만 껌뻑였다.
“옙? 왜요?”
“우리 돈 다 떨어졌어?”
“훈련 들어간 뒤로 하나도 안 쓰지 않았나?”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단원들이 아직 덜 비운 가마솥만 부둥켜안고 있을 때,
“거, 말귀를 못 알아먹으시나.”
“나가라고 하잖아, 이 거지놈들아.”
조롱이 가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지?”
“우리 말하는 거냐?”
잡룡단원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했고, 곧 등 뒤에 적힌 현(玄) 자를 발견했다.
“…아, 그렇구나.”
그 글귀를 보자마자 이해했다.
비록 그들은 어느 세력에도 끼지 못한 중소 문파의 후계자들이지만, 그렇다 해서 세상이 돌아가는 법을 모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누구보다도 더욱 지독하게 알았다.
‘…노사부가 말씀하신 대로구만.’
당유혼이 그들에게 곧 다가올 미래를 설파하긴 했지만, 사실 그들이라고 자신들의 앞날이 모멸과 핍박에 둘러싸일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저 한낱 단꿈이라도 좋으니 취해 보고 싶었던 것뿐이며, 지금은 그 단꿈을 일깨워 줄 현실이라는 차가운 물이 퍼부어졌을 뿐.
“어떻게 하냐?”
“어쩌긴 어쩌겠어.”
현무단원들이 대놓고 시비를 걸어왔지만, 그들은 한 곳만 쳐다볼 뿐이었다.
“중보. 나가야겠지?”
“…그래, 그러자.”
그들의 고삐이자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구중보.
그는 자신을 따라주는 동료들의 물음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장. 계산은 다 했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인사를 끝내고 우르르 밖으로 빠져나가는 잡룡단원들.
그에,
“뭐, 뭐야?”
“이게 아닌데?”
더욱 당황한 건 현무단이었다.
“수한아, 이러면 저놈들 그냥 나가버리는데?”
“이, 이러면 안 되는데?”
시비를 일으킬 목적이었던 이들이 당황했고, 가장 먼저 알은체를 하며 티를 냈던 마수한은 당황하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구중보!!”
“…마수한.”
아는 얼굴이었다.
‘너를 여기서 만나다니.’
가계의 형태로 이어져 온 패왕보와 달리 백학검문은 외부에서 제자를 받아들이는 검문이었다.
백학검객 장산해는 따로 슬하에 자식을 두지 않았고, 대신 제자를 받아 후계를 정했으니 그게 바로 마수한이었다.
“흐흐,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여전히 거지꼴이구나.”
마수한이 구중보에게 가진 감정은 당연 좋지 않았다.
기존 섬서에서부터 썩 좋은 사이가 아니었을뿐더러, 지난번 구중보가 백학검문의 문주인 백학검객 장산해에게 창피를 준 일이 있었다.
‘잘 걸렸다, 이놈.’
그 뒤로 상황은 더더욱 악화일로를 걸었다.
사실 구중보야 그 뒤로 딱히 그들에게 이렇다 할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잠룡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남궁수에게 일 권을 날리는 등, 구중보의 명성은 연일 상한가를 갱신했고, 그때마다 마수한은 이를 갈아야 했다.
‘나는 고작 예선도 뚫지 못하고 참패했었다… 하지만, 좌절하던 내게도 기회가 왔지.’
그가 속한 백학문은 섬서에 있을 때부터 문파의 세를 확장시키며 이웃 지역과도 긴밀히 교류해 왔다.
발전할 수 있는 무력이 한정되어 있으니 정치력을 발전시킨 결과였고, 덕분에 중소 문파의 연합이라 할 수 있는 현무단에도 한자리 만들 수 있었다.
‘이름도 웃긴 집단에 들어간 너와 달리, 나는 당당히 사신단에 입단했다.’
비록 그를 위해 백학문의 내정이 흔들릴 정도의 지출이 받침이 되었지만, 마수한은 스승에게 물려받은 정치 수완을 총동원해 그 소비의 대부분을 메꾸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광범위한 인맥도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
네놈에게 결코 잊지 못할 수치를 남겨주마!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려나?’
두 눈에서 이글이글 불꽃을 피워올리는 마수한, 그를 보며 구중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속 좁은 친구야, 어쩌다가 그 지경까지 몰락한 건가.’
그의 아비와 상대의 스승이 경쟁자였듯, 한때는 마수한이 자신의 경쟁자이던 시절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목표로 삼아 검과 주먹을 교차하던 그 시절.
비록, 이제는 너무 옛날이 되어버렸음에도 낭만이 살아 있던 시절이라 여길 때였다.
하지만,
‘이제 자네에겐 그런 게 없겠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선 어떻게 해서든 자신에게 창피와 모욕을 주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느껴진다.
그게 단순히 자신의 스승이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라면 여기서 몇 번 맞아주고 끝내겠지만,
‘자네의 마음은 결코 그런 뜨거운 사제지간의 감정이 아니겠지.’
누군가를 짓밟음에서 느끼는 저열한 쾌감.
그 질척한 감정이 지독히도 묻어나는 시선에 구중보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자네는 신수가 훤해 보이는군. 축하한다네.”
“크크, 축하라…….”
마수한은 비릿하게 웃었다.
“그러는 자네는 동정받아야겠군. 몰골이 이래서야 원… 어떤가, 당장 밥 한 끼 해결할 여유가 없다면 내가 좀 도와줄 수 있네. ‘우리’ 현무단이 이 가게를 전세 낼 생각이거든.”
굳이 ‘우리’를 강조했다.
이미 개인이며 무인이 아닌 집단이며 정치 무인으로 영락해 버린 마수한은 의도적으로 안타깝다는 시선을 던졌고, 그에 구중보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마음은 고맙네만 나도 일이 바빠서 말일세. 이만 가보도록 하겠네.”
대놓고 도발함에도 고개를 돌리는 구중보.
혹시 자신들의 대장이 일을 만드나 싶어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잡룡단원들이 탄식을 흘리는 순간―
‘이, 이게 아닌데?’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음에 당황한 것은 마수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존심만큼은 무쇠 심줄보다 더하던 놈이…….’
몰락하던 와중에도 꿋꿋이 소신을 지켜나간 패왕보요, 그 후계인 구중보였다.
이 정도로 건드렸으면 당장에 주먹이 날아올 줄 알았건만, 못 보던 사이 구중보는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그리고,
‘이놈이, 끝까지 잘난 척을……!!’
그 사실이 마수한의 열등감을 더욱 부채질했다.
“하하, 어딜 그리 바쁘게 가는가?”
어떻게든 저놈의 평정을 깨트리고 싶었다.
저 해탈해 보이는 평정을 무너트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시비라도 붙는 순간, 자신의 뒤에 있는 현무단이 나설 것이다.
그러니까,
“아, 그러고 보니, 소문은 들었네.”
어떻게든 저놈을 화나게만 만들면,
“잡룡단인가 뭔가 이상한 집단에 들었다지?”
화나게만 만들면……!
“그리고, 그 비렁뱅이 집단이 원조 비렁뱅이 가문인 사천당…….”
그 말을 뱉는 순간, 마수한은 보았다.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구중보의 표정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흉신악살(凶神惡殺)과 같이 일그러지는 것이.
‘아, 됐다.’
콰앙!
그리고, 그것이 마수한이 본 마지막 풍경이었다.
“휘유.”
“갔네, 갔어.”
“시원하게 갈기는데?”
굉음이 두 번 울려 퍼졌다.
첫 번째는 마수한의 안면에서 울려 퍼진 것이고, 두 번째는 마수한이 날아가며 건물 한쪽 벽을 무너트리며 울려 퍼진 것이었다.
그래서 마수한은 어떻게 됐냐고?
“어, 어? 수한!! 수한!! 정신 차리게!!”
“마 공자?!”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처맞고 날아간 마수한은 눈이 뒤집힌 채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입에서 게거품을 물며 바들바들 떠는 게 한 방에 실신해버린 모습.
그렇게 되자,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관망하던 현무단원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게 변했다.
“이놈이 감히……!”
“손속이 사마외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구나!”
처음엔 적당히 잡룡단이란 놈들의 기강을 잡으려 했다.
앞에 잡(雜)이란 우스꽝스러운 글자가 붙었다 해도, 감히 단체의 이름에 용(龍)이란 글자를 붙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들의 역할이 자신들을 감찰하는 집단이라는 걸 떠올리면 더더욱 초장에 기세를 꺾어나야 한다 싶었다.
‘근본 없는 놈들이 누굴 감찰해?’
특히나, 잡룡단의 구성원들이 현무단에 들어오지도 못할 정도로 근본 없는 소문파 출신이란 게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거, 그냥 가긴 글렀지?”
“그런 것 같은데?”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는 현무단원들의 모습에 잡룡단원들은 시시껄렁하게 웃었다.
딱히 그들이라고 조금 전 마수한의 언변에 분노를 느끼지 않은 건 아니지만,
“우리 대장이,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말이야.”
그게 어디 사천당가라면 자신의 두 번째 가족이라 여기는 구중보만 할까?
“어이, 대장. 어떻게 할까?”
화약이 잔뜩 차오른 폭탄.
그 심지에 누군가 불을 붙이자,
“…아까, 형님 말씀 못 들었냐?”
후욱후욱…….
마수한을 날려버린 뒤 고개를 숙이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구중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옥면(玉面)이 흉신악살의 그것으로 바뀐 채, 그는 말했다.
“다 물어뜯어 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