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25화 (225/350)

225화

* * *

하나의 소문이 사천을 강타했다.

두 달간의 합숙 수련을 끝내고 복귀한 현무단원들이 사천 내에서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것!

말이 집단 폭행이지, 그 대상이 잡룡단이란 소문이 퍼지자 마자 사천인들은 깨달았다.

‘아, 잡룡단이 사신단 하나를 다져버렸구나.’

사실 누구나 예상한 사실이었다.

한쪽은 정천맹을 대표하는 무력 부대 중 하나요, 한쪽은 그런 정천맹의 각 기관들을 감찰하는 맹외 감찰 호법단이었다.

대게 부서 간의 알력 다툼은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게 몸을 쓰는 무력 부대들 간의 사이라면 더더욱 심해지는 게 당연지사.

그래도 하나 예상치 못한 게 있다면, 다들 복귀한 첫날만큼은 서로 눈치만 보다 냉전(冷戰)에 그칠 거라 여겼는데 첫날부터 화끈하게 한쪽을 밟아버리다니?

그 결과가 일방적 폭행이란 게 알려 퍼지자 사천은 물론이요, 이제 막 발족한 정천맹의 일거수일투족에 주의를 기울이던 전 무림이 동요했다.

그리고, 이에 각 사신단주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우선 청룡단.

“그런가.”

자신의 집무실에서 서찰을 받아 읽던 남궁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주군.”

소식을 가져온 남궁영이 부복하며 말했다.

“비록 현무단의 완전한 전력은 아니었지만, 일방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일방적인 결과라… 그곳에 현무단주도 있었나?”

“현무단주는 없었다고 합니다.”

“쯧, 그럴 줄 알았다.”

현무단주 자영.

단주직을 맡게 된 이후에도 두문불출하며 외부에 자신의 존재감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자.

그리고 자신에게 씻기 힘든 상처를 준 남자.

‘놈이 없다면… 어차피 쭉정이 무리겠지.’

녀석은 실로 특이했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현무단은 중소 문파를 규합하여 자신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집단이었다.

그럼에도 자영은 쉽게 밖으로 나돌아다니지 않았고, 또 그러면서도 현무단 내에서 자신의 위상은 공고히 지키고 있었다.

듣자 하니 대리인을 내세워 적당적당히 현무단의 균형을 맞추며 외부로 세력을 확장시킨다 들었는데, 그렇다 해도 합숙 훈련에도 참가하지 않아 드러난 정보가 거진 없다시피 했다.

‘덕분에, 현무단은 사신단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래봐야 쭉정이는 쭉정이.’

당장 오늘만 해도 근본 없는 것들에게 처참하게 밟히지 않았던가.

‘물론, 하나 정도는 눈에 여길 만한 이가 없지 않아 있긴 하지.’

잡룡단 소속 무인 구중보.

단주인 당지명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곳에 속한 평무인인 구중보 역시 자신에게 인상적인 기억을 남겨주었다.

‘쯧.’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인상이 찌푸려진다.

무승부라니, 자신이 무승부라니!

“됐다, 치워라.”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남궁수는 신경을 끄기로 결정했다.

* * *

“으하하하!! 역시, 역시 당 형이야!!”

“당 형은 무슨 당 형이에요? 오라버니가 좋아하는 그 사람은 이번 일에 있지도 않았거든요?”

그다음은 백호단.

잡룡단이 현무단을 지르밟아줬다는 소식에 좋아 죽는 팽천강에게 팽설희가 뾰족이 핀잔을 줬다.

물론, 그딴 거 듣지 않는 팽천강은 그저 좋다고 두 발로 박수를 쳤다.

“내 말했지 않느냐, 설희야! 당 형은 큰일을 할 사람이라고!!”

“글쎄요. 그 사람이 뭘 할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걸로 하나는 확실해졌네요.”

“오호, 뭐가 말이냐?”

“오라버니 말마따나, 큰일이 일어날 거라고.”

지난 두 달간 사신단원들은 각기 저마다의 시간을 가졌다.

더 이상 단일 문파가 아닌, 여러 문파의 연합체로 거듭나기 위해 각 문파의 장로들이 모여 회의를 가졌고, 그들은 자신들의 후기지수들을 위해, 그리고 연맹의 끈끈한 단합력을 위해 공동으로 익힐 무공을 만들기도 했다.

‘그 경쟁이 꽤 치열했었지요.’

한두 명이 익히고 끝날 것이라면 모를까, 정천맹이 세대를 이어갈수록 그렇게 만들어진 무공은 자신들의 업적이 될 것이다.

명성에 목마른 무인들의 특성상 한번 만들 때 제대로 만들자는 말들이 오갔고, 다른 사신단에서도 같은 행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서로 경쟁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무단의 무공은… 분명 그 장소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기는 했겠지요.’

당시 현무단에서 만들어낸 무공에 대해선 팽설희 역시 정보력을 동원해 알아낸 바가 있었다.

그것은 좁은 지역에서 사용하긴 불리한 무공이었으니 이번 패배가 현무단에게도 어느 정도 불리하게 적용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이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현무단에서는 자존심이 크게 상했을 거예요. 당연 설욕을 하고 싶겠죠. 그리고 그들이 움직여 본격적으로 안건을 낸다면, 가뜩이나 두 달간 힘이 쌓여 잔뜩 분출하고 싶은 다른 사신단들 역시 적극적으로 찬성할 거예요.”

“안건?”

“예를 들자면, 본격적으로 녹림 토벌에 앞서 사신단끼리 한번 친선 비무를 겨뤄보자는 거겠죠. 거기다 잡룡단까지 껴서.”

다른 사신단에게 있어 잡룡단은 부에 불과하겠지만, 어쨌거나 다들 찬성할 것이다.

“오라버니도 만약 그런 안건이 올라온다면 찬동하시겠죠?”

“당연하지!!”

그걸 몰라서 묻냐고, 혹시라도 누가 반대할까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이는 오라비의 모습에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로서는 부디, 쓸모없는 소요는 막고 싶은 심정이지만…….”

아무래도 일이 그렇게 흘러갈 것 같지는 않았다.

* * *

사건이 대충 그렇게 흘러가고 있을 때, 이 일에서 가장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신단의 주인은 언제나와 같은 표정으로 서찰을 읽고 있었다.

“…그렇게 됐다라.”

다른 이들은 참모들이나 수족이 하나씩 붙어서 정보를 읊어주는데, 홀로 독실에 앉아 정좌를 한 채 서책을 읽는 것은 바로 백호단의 주인, 진혁수였다.

“그 녀석다운 일이라고 해야 할지, 그 녀석답지는 않은 일이라 해야 할지.”

들을 이 없는 혼잣말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이것이 현재 그의 신세.

단주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없고, 동시에 이렇다 할 수족도 없는 게 진혁수의 현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혁수로서는 그게 별로 싫지는 않았다.

“녀석이 나처럼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이렇게 문제를 만드는 녀석은 아니란 말이지.”

한 집단의 단주나 되어서도 진혁수는 이전처럼 자신의 세력을 일구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능력이 없냐면 결코 또 그런 건 아니었기에 실무적인 것도 곧잘 해내고는 했다.

단지, 진혁수는 원래 청성에서 해왔던 대로 자신이 할 일만 하고 굳이 다른 이들과의 접점을 만들려 노력하지 않았다.

이대 제자와 삼대 제자는 그래도 같은 문인이요, 선배라는 존경할 만한 이유가 있어 그 뒤를 따랐지만, 정치 무인들의 집합소인 정천맹 내에선 가뜩이나 원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던 구파 소속의 무인을 뭉쳐놨기에 더더욱 외톨이가 되었다.

“하지만 또, 나와는 달리 피붙이끼리 달라붙는 성향은 분명하니… 그 휘하의 것들도 같은 성향이라고 보는 게 옳을 터.”

몇 번 턱밑을 문지르던 그는 홀로 결론을 냈다.

“보나 마나, 누군가 사천당가를 모욕했겠군. 그에 분노한 잡룡단의 누군가가 문제를 만들었겠고.”

그리고, 그 결론은 소름 끼치도록 정답에 근접했다.

“장문인께서 보시면 아주 좋아하시겠어.”

한두 달 잠잠하다 싶다가 또 문제를 만드냐고 온몸을 비틀고 있을 청원을 생각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힌다.

근 두 달간의 시간.

거칠기 짝이 없던 진혁수란 인간을 반듯이 갈아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예리함은 한 층 더 해졌다.

* * *

그리고 현무단.

당장 이 일의 가장 큰 피해자요, 피의자인 그들 집단의 단주인 자영은 올라온 보고에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 그것참 큰일이군요?”

말투만 들으면 전혀 큰일이 아닌 것 같지만, 하오문에서 자영에게 붙여 준 수족이자, 현무단의 일 조장이기도 한 사내는 말없이 부복 자세를 유지했다.

“다른 분들의 반응이 다들 뜨겁다 하셨나요?”

“금방이라도 사달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흐으음, 곤란하네요. 저희 현무단은 백호단 다음으로 단주의 권력이 약한데 말이에요.”

중소 문파의 연합체란 건, 결국 이놈이고 저놈이고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비슷비슷하다는 뜻이었다.

지금이야 자영이 보여준 게 있다 보니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으나, 이 정도의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 지배권이 공고히 될 거란 기대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다들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는 여론인가요?”

“그렇습니다.”

“후후, 우습기 그지없네요. 머릿수가 많아지니 없는 자신감도 늘어난 걸까요?”

정보를 다루는 하오문 소속인 자영이기에 지금 현무단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사실상 사천당가와 동맹 관계인 본문으로부터 들은 사실이 있기에 잡룡단이 어떤 괴물 양성소인지도 확연히 깨닫고 있었다.

‘보나 마나 대차게 깨질 게 분명하지만…….’

뭐, 그것도 나쁘지 않다 여겼다.

이 집단에 큰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은 자신을 주워준 은인에게 은혜를 보답하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

오히려,

‘애매하게 있는 것들이 더더욱 없는 이들을 무시하고 짓밟지.’

자영은 현무단이 잡룡단에 더더욱 대차게 짓밟히면 어떨까, 하는 작은 기대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좋네요. 진행시켜 보죠.”

뭘 말하는지야 두 번 물어볼 것도 없다.

그의 수족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고, 자영은 그 모습을 보다 더더욱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제 쪽에서 먼저 선물을 드릴게요.”

이 선물을 받은 당가에선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영은 그 반응이 몹시 궁금했다.

* * *

사천을 한창 뜨겁게 만든 주인공.

온 사천의 시선을 끌어모은 잡룡단과 그 본거지인 사천당가는 현재, 혼란과 환란, 혼돈의 집합소였다.

“으하하하! 잘했다, 아주 잘했어!”

“헤헤, 그쵸?”

현무단을 흠씬 두들겨주고, 자근자근 밟기까지 한 다음 복귀한 잡룡단원들은 쪼르르 당불퇴에게 달려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구중보가 아구창을 갈겨버렸단 이야기에서 감탄을 한 당불퇴는 이후 구중보가 화끈하게 다 덤비란 선언을 한 부분에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형님! 이 정도면 명예 당가인 아닙니까?”

“…조용히 해라, 이 녀석아.”

“어… 지, 지명 형님. 저희가 잘못한 것입니까?”

“아니다. 너희들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

가족이 욕을 보이고 가문이 욕을 보였다.

굳이 당불퇴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신이 거기 있더라도 사달을 일으켰을 것이다.

‘대형이 있었다면 더 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 자리에서 문파 여럿이 봉문을 선언해야 하지 않았을까?

다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끄응.’

우두머리된 입장이란 이 상황에서 마냥 즐기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저놈들이 무책임한 쾌락을 즐기고 있을 때, 누군가는 또 쾌락 없는 책임을 짊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필 그게 나라는 게 문제군.’

저들이 하루 종일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잔치를 벌이는 동안, 현무단을 비롯한 사신단의 단주들은 휘하 단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에게도 단주 회합의 초청장이 날아왔다.

‘단주 회합이라…….’

원래는 사신단의 단주들끼리만 벌이는 회합이지만, 그게 자신에게도 왔다면 그게 좋은 의미일지 나쁜 의미일지.

당지명으로선 주름만 깊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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