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사천을 떠들썩하게 만든 소식, 그건 당연히 내 귀에도 들려왔다.
“그러니까, 녀석들이 현무당 골통을 깨버렸다고?”
“…대형, 그 표현이 좀…….”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긴 하냐?”
벽에 처박힌 백가 놈은 의식불명 상태로 의원에 실려 갔더란다. 그 뒤로도 이래저래 사투가 벌어졌지만 당연하게도 이쪽의 압승.
애초부터 개개인의 무위에서 우위에 있던 놈들이 쪽수에서 밀어붙이기까지 하니 상대가 될 리 있나.
전전긍긍하는 지명이 녀석은 내 눈치만 살피고 있지만, 글쎄.
“넌 뭐가 또 눈치가 보여서 그러냐?”
“…그, 다른 문파들의 반발이 심하지 않았습니까?”
“반발? 뭐, 이 정도?”
와르르―
쌓여 있던 죽간과 서찰을 엎어버렸다.
탑처럼 쌓여 있던 것들이 무너지며 내용물들이 드러나자 지명이 녀석의 표정은 더더욱 썩어들어 갔다.
“설마, 이것들이 전부…….”
“항의문이지 뭐겠냐?”
노사부를 향한 마음들이 이만큼이나 애틋했다.
“덕분에 올해 겨울은 따뜻하겠어. 장작 거리들이 이렇게나 많으니 말이야.”
“죄, 죄송합니다.”
“으이구, 지명아, 지명아. 언제까지 그렇게 궁상떨며 살래?”
정작 이름이 궁상인 놈은 잘만 떵떵거리고 사는데.
“하지만…….”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잘 기억해 둬라, 지명아. 네가 누군가의 우상이 되고, 또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건 말이다. 또 누군가에겐 증오의 대상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원한이 된다는 뜻이다.”
세상이 그렇다. 조금만 잘나가면 시기와 질투가 따라오고, 조금만 밖으로 튀어나오면 귀신같이 정을 맞는다.
인간 세상 천태만상이라지만, 추악한 인간의 본성이란 기본적으로 남 잘되는 꼴을 못 본다.
“애초부터, 이 일의 시작에 본가가, 그리고 녀석들이 잘못한 게 있더냐?”
“그건… 없죠.”
“그래. 뭐… 백 번 정도 양보해서 입 좀 털었다고 사람을 전치 칠 주 정도로 눕힌 게 과실치사라고 할 수도 있겠지. 쓰러진 놈 맘에 안 든다고 기어코 쫓아가서 자근자근 밟아서 사지 관절의 방향성을 자유롭게 만들어준 게 도를 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그렇다 해서 그 백가 놈이 마냥 피해자더냐?”
그럴 리가 있나.
“여기서 피해자가 있다면 애들이 난리 치느라 한쪽 벽이 무너진 그 국밥집 정도겠지. 그래도 그 피해 보상에 관해선 나름대로 철저히 하지 않았느냐?”
벽을 허물어버림에 따라 당분간 장사를 접게 된 국밥집에게는 심적 보상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물론, 이렇게 양민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까지 무덤덤해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자고로 무림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적당히 냉혹해지기도 해야 하지.”
양민에 피해를 끼치면 안 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는 있다.
그에 따른 피해 보상이야 당연히 철저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만큼 잊어서 안 될 건 또 하나.
“건드린 놈은 확실히 박살 낸다. 우리를 함부로 가늠하려는 놈들은 그 손가락부터 잘근잘근 씹어버려야 해. 그래야 함부로 안 건드리지.”
콕콕 찔러보다간 똑똑 부서질 수 있도록.
그것이 약육강식의 무림이란 세계였다.
“자, 일단 이야기까지는 하고.”
짝―
박수를 쳐 분위기를 환기시키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침 잘 됐으니 너도 채비를 하거라.”
“예? 채비라뇨? 어디 가십니까?”
어디긴 어디야.
“청문회.”
* * *
예로부터 인간은 선망과 우상의 동물이었다.
예를 들자면, 당장 무공부터 그랬다.
학권(鶴拳), 호권(虎拳), 사권(蛇拳) 등.
무공의 태동기를 살피자면, 무공의 원류가 되는 고대 무공은 동물의 행동을 모방하고 그로부터 장점을 이끌어와 탄생했다.
자신보다 날렵하고, 민첩하고, 강한 무언가를 선망하며 그것을 우상화하여 본뜨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
그런 인간의 천성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왔으니, 당장 대협(大俠)이라거나 용봉에 사람을 빗대며 각종 별호를 붙여 영웅으로 추존하는 게 그 연장선상이었다.
‘당장 추풍대주 갈무흔도 그랬지.’
죽었다 살아나 지금은 장강 어귀에서 그 전설을 이어 갈 흉악범 갈무흔.
그의 도법이 진짜 바람을 불러일으켜서 추풍도법일리는 없다. 하지만 그런 놈도 떡잎 누런 사파 꿈나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기에 그런 별호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개 그런 영웅의 삶은 피곤했다.
광적인 추종자들은 영웅의 발자취 하나하나를 추적하길 원했고, 당장 사후 영웅의 흔적이 담긴 물건들은 그걸 얻고자 하는 수집가들로 인해 천정부지 가격이 뛸 정도였으니―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의 삶은 그만큼 피곤한 것이며, 그런 영웅의 삶이란 하나하나 광적인 추종자들에 의해 수집되는 것이다.
당장, 내가 그랬다.
“노사부!! 이걸 보시오!! 이 회계 장부에 생긴 이 공백!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
“노사부! 지난번 잡룡단의 임시 거처에서 있었던 상단주들과의 회합! 그 뒤에 당신의 행방이 묘연하단 소문이 있소!”
“서명하시오! 노사부!!”
이 후끈후끈한 열기 좀 보라고.
“자,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분명 잡룡단 꼬꼬마들이 현무단 꼬꼬마들을 쥐어팬 것에 대한 사유로 청문회가 열렸던 것 같은데, 어느새 빗발치는 화살의 대상은 내가 되어 있었다.
나를 따라온 지명이 녀석이 허둥지둥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혼란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쯧쯧… 지명아, 지명아. 그런다고 되겠니?’
청문회 처음 와보는 녀석 아니랄까 봐.
“정숙! 정숙해 주십시오!! 여긴 어디까지나 잡룡단과 현무단의…….”
“저리 비켜!!”
“지금 그게 중요해?!”
인파에 밀린 녀석은 어디론가 표류하듯 떠밀려 갔고, 지명이 녀석이 혼신의 힘을 다해 구축하던 방어선이 무너지자 흥분한 관중들은 나라는 우상을 향해 물결처럼 밀려왔다.
“노사부! 이걸 보시오!!”
가장 앞서 온 자가 장부를 펼치며 내용물을 보였다.
‘고놈 참 빽빽하게도 써 왔구만.’
어찌 저리도 잘 조사해 왔는지.
하윤호 놈이 날 팔아먹은 게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해볼 정도로 잘 쓰여진 장부를 들이민 중년인이 소리쳤다.
“이거, 이 공백!!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
어떻게 설명하긴?
“끄응… 눈이… 침침해서… 글씨가… 잘…….”
안 보인다 이눔아.
“뭐, 뭐?”
절정 고수의 시력이 영 좋지 않은 건에 대하여 중년인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고, 자연스레 발언권은 뒷사람에게 넘어갔다.
“글이 안 보인다면 직접 읽어드리지! 그대들 잡룡단이 지난번 활동비 명목으로 인출해 간 돈이 은자로 십만 냥이오, 십만 냥! 사신단 평균 활동비가 오만 냥에 불과한데, 대체 남은 오만 냥은 어디로 간 것이오!!”
아, 그거?
“헐헐… 그건… 어쩔 수가… 없었느니…….”
다 이유가 있다.
“우리… 애들이… 인구가… 많다 보니…….”
“인구가 많아? 웃기지 마시오! 당신네들 인구가 많아 봐야 현무단보다 많소?!”
잡룡단 활동비 명목으로 타간 액수가 머릿수 하나로는 제일인 현무단보다 많단다.
‘그건 나도 몰랐네.’
있는 대로 뽑아 써서 좋은 곳에 차곡차곡 쓰긴 했는데, 벌써 그만큼 썼대?
“크흠… 참… 거… 젊은 사람이… 그렇게… 인색해서야… 에잉… 쯧… 애들이… 밥 좀… 많이… 먹을 수도…….”
“밥을 많이 먹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물론 진실은 우리 집 곳간 안에 있겠지만, 그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
‘이미 장강수로상단을 통해 무림 전역으로 널리널리 흩뿌려졌거든.’
남은 돈은 사천당가에서 맛있게 나눠 먹었습니다!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바닥까지 박박 긁어모은 예산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노인네가!! 이따위로 할 거면 청문회 왜 했어?!”
분을 참지 못해 자체 발화를 시작하는 이들이 하나둘 보였다. 실로 삼매진화의 고수들이었고, 가만 놔두면 누구 하나는 폭발하겠다 싶은 순간,
“이 미친 늙은이야!!”
진짜 누구 하나가 폭발해 버렸다.
조금은 인위적인 분노 섞인 외침과 함께 무언가가 슉― 날아왔으니,
‘오호.’
그 정체는 썩은 계란.
터지면 고약한 냄새가 풍겨 나오는 것으로, 흔히 청문회 필수 소모품과 같았다.
‘각도 좋고.’
보통 그것은 누군가 하나 포문을 열면 집단으로 청문회 뒤쪽 단상으로 던져져 청중들의 강한 분노를 나타내는 물건이지만,
퍼석―!
이번엔 그 분노가 좀 더 특출났는지, 내가 착용한 삿갓 끄트머리에 맞아 깨졌다.
“헉?”
맞춘 사람도 실제로 맞출지 몰랐는지 당혹성을 흘렸다.
“이, 이건…….”
“이놈… 감히……!!”
감히 대 잡룡단의 노사부에게 썩은 달걀을 던져 맞추다니.
“잠깐!! 이건 오해요!! 누, 누군가 허공섭물로 계란을……!”
“오해는… 어디… 바다느뇨……!!”
지엄한 노사부의 권능을 받아라.
“커억?!”
내가 손가락 끝으로 당황하는 중년인을 가리키자 상대방은 몸을 크게 떨더니 그 자리에서 거꾸러졌다.
“무, 무슨…….”
“설마… 독?!”
“저 미친 작자가 청문회에서 독을 써?!”
노사부라는 신분이 사천당가에서 나온 걸 아는 이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노사부, 진정 미친 게요?!”
“홀홀… 독이라니… 이건… 약일지니~!”
“뭔 개같은… 응? 잠깐. 이게 무슨 냄새… 흡?”
비명을 지르던 이들은 이내 딱딱히 굳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하나둘 코를 막기 시작했고, 설마 하는 시선들이 거꾸러진 중년인을 향했다.
“아, 아냐… 나, 나는… 나는……!!”
그제야 새파랗게 질린 중년인의 표정이 뭔가 이상한 걸 깨달은 청중들이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으니―
“한대협, 설마…….”
중년인이 한씨였는지, 그를 부른 누군가 설마 아니겠지 하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지리셨소?”
“아니야!!”
네~ 그렇답니다.
한대협의 진심 어린 고백에 모두가 끔찍한 표정을 지으며 파바밧 뒤로 물러났다.
사람으로 꽉꽉 찬 청문회장 한가운데에 절규와 함께 일장 여의 구멍이 만들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으니―
‘저 정도면 정천맹주의 권능으로도 불가능한 이적이겠구만.’
나는 내가 만들어낸 대이적에 만족스레 고개를 주억거렸다.
‘진짜 약이었다고?’
저 녀석에게 투여한 건 진짜 약이었다.
애초에, 아무리 나라도 이렇게 많은 인파 속에 손짓 한 번으로 독을 집어넣는 건 힘들었다. 일정 이상 수준으로 오른 고수들은 본능적으로 이물질이 신체에 들어오는 걸 느낄 수 있기에 진짜 죽일 작정으로 뿌리는 게 아니면 어정쩡한 독은 무리였다.
하지만,
‘약은 다르거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는 이로운 성분은 좋은 건 알아서 다 처먹으려는 육체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것.
정신적으론 피폐해졌겠지만, 녀석의 장 건강은 아주 좋아졌을 것이다.
‘뭐, 그건 그렇고.’
잘 봤냐, 지명아.
중간부터 넋이 나가서는, 아주 영혼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의 지명이 놈을 슬쩍 돌아봤다.
‘청문회는 이렇게 하는 거야.’
처음 청문회에 간다고 했을 때 녀석은 세상이 망하기라도 하는 듯 부산을 떨었다.
우리 쪽에 쌓인 비리 장부가 어떻고, 그것들을 어떻게 숨겨야 할지 종알종알거리는데,
‘청문회는 솔직하게 있었던 일을 고하고 칭찬받는 곳이 아니란다.’
판관 포청천이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고 소리친다고 미주알고주알 있었던 일을 말하는 건 청문회의 미덕이 아니었다.
자고로 청문회의 미덕이란 어떻게든 빙빙 말을 돌려가며 청문회가 끝나기까지 시간을 끄는 것.
이것이야말로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청문회의 전통이요, 수백 년 후에도 이어져 나갈 청문회의 전통일 것이다.
물론, 아직도 이 진리를 체득하지 못한 지명이 녀석은 ‘이럴 거면 대체 왜 청문회를 연 것입니까!!’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나라고 별수 있겠냐고?
‘맹주 놈이 하라는 걸 어떻게 하겠냐.’
“그냥 하라면 해!! 누가 많은 걸 바랐나? 자리만 지켜달라고! 그 웃기지도 않을 노사부 흉내라도 내고 있으란 말이다!!”
화가 잔뜩 나서는, 시뻘게진 얼굴로 선물 받은 게 뻔한 고오급 벼루까지 집어던지며 소리치는 청원의 모습에 나 역시 반쯤 끌려온 것뿐이다.
‘어쨌든, 대충 상황은 정리됐나?’
혼란에 빠진 청문회는 대충 그렇게 끝을 맺는 듯했다.
‘앞으로 이런 짓을 몇 번을 더 해야 될지 모르겠다만.’
원래 정치판이란 그런 거 아니겠어?
대충 이놈 저놈 멱살 몇 번 잡아주다가도 끝나고 회식 자리 가면 폭탄주 말아주고, 장기자랑 몇 번 보여주면 어화둥둥 화목해지는 게 이 바닥 국제 규범이다.
아마 이런 방식은 바다 건너 조선국에서도 통하지 않을까?
‘그렇게 몇 번 하다가 사신단 모아서 비무 대회나 일으키면 끝나겠지.’
귀찮다, 귀찮아.
저렇게 새파랗게 어린놈들이 해야 할 걸 이 나이 먹고 내가 하고나 있으니,
적이 통탄을 금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그래도 이 정도면 오늘치 업무량은 끝이련다.
그렇게 퇴근각을 잡고 있는데―
“그, 급보입니다!!”
벌컥―
청문회장 문이 열려 젖혀지더니 바깥에서 사람 하나가 날듯 뛰쳐 들어왔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이 혼란의 와중에도 누군가 정석적인 대사를 뱉었다.
‘그러게, 우리 집 삑삑이가 새끼라도 낳니?’
뛰어 들어온 난입자보다 저 대사를 뱉은 이에게 시선이 쏠리던 와중, 난입자는 다시금 자신에게 주의를 집중시키는 결정타를 토해 냈다.
“하북팽가가 습격받았습니다! 흉수는 스스로를 사패천(四覇天)이라 칭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