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굽이굽이 진 좁은 골목길.
그곳을 기녀 하나가 다급히 달리고 있었다.
“거기 서라!!”
뒤쪽에서 들려오는 우악스러운 목소리.
잡히면 결코 험한 꼴 면치 못한다는 건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조, 조금만 더……!’
턱 끝까지 차는 가쁜 숨이 폐부를 터트릴 것만 같이 밀려올 때,
탁!
‘아……!’
미처 보지 못한 돌부리가 발끝에 걸리며,
쿠당탕!!
“꺄아아악!!”
여인의 신형이 거칠게 바닥을 굴렀다.
‘아, 안 돼…….’
쓰라린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보다 더 최악인 것은―
“하, 이 빌어먹을 년. 겨우 잡았군.”
“왜 이렇게 날랜 거야?”
땅바닥을 구르며 몸에 힘이 풀린 사이, 그녀를 쫓아오던 이들이 지척에 도달했다는 것.
“그러게 좋게 좋게 말할 때 멈췄으면 좋잖아.”
“흐흐, 대가는 알아서 치러야지?”
한 손에 험악한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다가오는 그 모습에 기녀의 얼굴에 공포가 얼룩졌다.
그때,
“멈추시지요.”
인적 없을 골목길에 울려 퍼진 목소리.
다가서던 장정들은 순간 멈칫하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래를 돌렸다.
“너는… 또 뭐 하는 년이냐?”
붉은 삿갓과 붉은 의복.
전신을 붉게 물들인 채 얼굴엔 면사까지 드리운 특이한 복색의 난입자에 장정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년이긴 한데…….’
뒷바닥을 굴러다니는 이들은 보통 감이 좋았다.
잘못했다가는 억― 하고 가버리는 직업 특성상, 감이 안 좋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으니까.
지금 막 그 감각의 경종이 찌르르 울려 퍼졌지만,
‘왜 하필 이럴 때…….’
여기서 물러났다간, 어차피 자신들의 우두머리에게 죽는다.
그 사실에 장정들은 손에 쥔 몽둥이를 더욱 질끈 붙잡았다.
“젠장, 네가 오른쪽에서 덮쳐! 내가 왼쪽을 맡을게!”
“그래, 간다!!”
두 명의 장정이 각기 양쪽으로 나뉘어 달려들었다.
그에, 홍단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목숨을 빼앗지는 않겠습니다.”
파팟―
직후 그녀의 신형이 섬전처럼 움직였다.
우선은 우측에서 달려들던 정장에게 돌진, 상대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두 손이 빛살처럼 움직이더니 남자의 명치와 복부, 목젖을 차례로 두들겼다.
“커헉!”
순식간에 한 명이 무력화.
남은 하나가 달려들다 말고 그 그림 같은 풍경에 탄식을 흘렸다.
“이 미친, 절정 고수…….”
왜 하필 저런 고수가 자기들 같은 잡배들 앞에 나타나는 건지.
한탄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날아든 홍단의 권격에 복부를 얻어맞은 그는 억울함을 느낄 새도 없이 의식이 끊겼다.
“괜찮으십니까?”
순식간에 장정 둘을 처리한 홍단이 아직까지 이 광경이 비현실적인지 어벙벙한 표정을 짓던 기녀에게 다가갔다.
“아… 아, 도, 도와주세요!!”
기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홍단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후우.”
한숨을 푹 내쉰 홍단은 품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건네며 고개를 저었다.
“기루에서 도망치신 분 같군요. 제게 여유가 없어 자매님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여비로 이 도시를 떠나시지요.”
하윤호는 언제나 그녀에게 하오문의 의의에 대해 얘기했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집단.
그렇기에, 도울 손이 있다면 서로에게 내밀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고 종종 말해 왔고, 그녀가 선뜻 내밀 수 있는 도울 손도 여기까지였다.
“그, 그게 아니라 제 가족들을……!”
“가족까지 있으십니까? 하나, 그건 무리입니다.”
단호한 거절.
친절과 호의를 베풀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여력 내에서 해야 한다.
당장 자신에게 주어진 여유도 얼마 없기에 이 이상은 무리였다.
그에 발걸음을 돌려 돌아가려 할 때,
“다 죽어요!! 다 죽는다구요!!”
허겁지겁 뱉은 기녀의 말이, 그녀의 발걸음을 붙잡고 늘어지게 만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자신을 붙잡기 위해서 내뱉은 말이라 치기에는 너무나 절절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 그게… 흐윽…….”
홍단이 자신의 말에 반응하자 설명하려는 기녀였으나,
“…이런.”
서둘러 몸을 일으키던 기녀는 도망치는 데 심력을 다 소비했는지,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하아…….”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어쩔 수 있나.
우선 쓰러진 여인을 들쳐 멘 홍단은 주변의 적당한 의방으로 향했다.
갑자기 실신한 여인과 수상한 삿갓을 쓴 여인이 찾아오자 의원이 깜짝 놀라긴 했지만, 이내 홍단이 뒷돈을 찔러주자 잠잠해졌다.
아무래도 이곳 뒷골목에선 흔한 풍경인 듯했다.
이후 추가 금액을 지불하고 필요한 약초와 침을 받아 쓰러진 여인의 기혈을 잡아주자, 한 시진쯤 지나 의식을 차렸다.
“으응…….”
“정신이 드셨나요?”
“…헉!! 여, 여긴?”
눈을 뜬 여인은 아직 채 정신을 차리지 못 했는지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의방입니다. 기혈이 혼탁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는 듯하여 적당한 곳을 구하여 모셔온 후 응급조치를 취했습니다.”
“아… 가, 감사합니다!”
그제야 이전 기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여인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를 받고자 한 일은 아닙니다. 그보다, 아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예? …아.”
다 죽는다고 했던 자신의 말이 떠오른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서둘러 말했다.
“마, 맞아요! 지금 이곳에서 기이한 약이 돌고 있어요!!”
“기이한 약?”
“네! 그, 그러니까…….”
그녀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최근 광동의 뒷골목에는 하나의 역병이 돌고 있는데, 그 역병에 걸린 이들은 피부에 반점이 돋아나고 몸에 힘이 시름시름 빠진다는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역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 얼마 되지 않아 약방에 풀리긴 했지만, 가뜩이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뒷골목 이들에게 그 약은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역병에 걸려 죽기는 싫었기에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구매하고 있었는데,
“저, 저는 도저히 약값을 마련할 수 없었어요. 역병에 걸린 저를 안으려는 이들도 많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버텨보려고 했어요.”
하루하루 시름시름 앓아도 어쩔 수 없다고, 그렇게 다짐하며 점점 심해지는 반점만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런데,
“그러던 와중 갑자기 역병이 다 나아버렸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약을 먹지 않았음에도 낫는 역병이라고?
“그제야 알게 된 거예요. 사실, 약인 줄 알았던 것은 약이 아니라 오히려 역병을 유발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역병이 심화되는 현상이라 여겼던 반점은, 오히려 역병이 치료되는 현상이란 것을.”
처음엔 주변 사람에게만 조심스레 말했다.
그나마도 자신과 같이 약을 사 먹을 돈 없이 하루하루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말했고, 자포자기하는 기녀들을 다독여 풀죽이라도 먹이며 기운을 돋우는 게 고작이었다.
솔직히 반신반의 하는 게 진심이었으니까.
그리고,
“제 말이 옳았던 거죠. 저의 말대로 했던 이들은 전부 완치되었어요.”
자신 혼자라면 우연이었겠지만, 완치된 이들의 숫자가 열을 넘어가자 그녀는 소름이 일기 시작했다.
‘무언가 음모가 퍼지고 있어!’
가장 밑바닥에서 기녀로 살며 온갖 더러운 꼴 다 보고 살아온 그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깨달았고, 서둘러 자신이 일하던 곳을 벗어나 아예 도시 자체에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하, 이년이 우리 일을 귀찮게 만든 년이라 이거지?”
“어떻게 할 거냐?”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값을 치르게 해줘야지. 요즘 신약을 실험할 대상이 부족하다며?”
그보다 한발 먼저 찾아온 이들이 그녀를 납치해 어느 감옥 같은 곳에 가둬버렸다.
“거기서 탈출한 건… 순전히 천운이었어요…….”
“아니?! 누님이 왜 여기 있소!!”
그 감옥의 간수 역할을 하고 있던 이가 그녀와 아는 사이였다.
정확히는, 뒷골목을 전전하던 어느 소년을 그녀가 불쌍하다며 데려와 먹여 키운 일이 있었는데 이후 소년은 대게 뒷골목 인생이 그러하듯 어느 사파로 들어가며 이별을 맞이해야 했었다.
실로 운이 좋게도, 그 소년이 장성해 간수가 되어 있었고, 그곳에 갇힌 게 자신이 알던 누이임을 깨닫고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빌어먹을!! 도망치시오, 누님! 여기 있으시면 죽는 것만도 못할 처지가 될 것이오!”
“자, 잠깐만! 그럼 너는?”
“젠장… 모르겠소. 인간으로서 하면 안 될 짓에 손을 뻗은… 천인공노할 짓을 해오며 살아온 대가겠지. 어서 떠나시오!”
번민하는 표정으로 감옥 문을 열어 그녀를 꺼내준 간수가 여인을 도망치게 해주었고, 그 이후로 지금에 이르렀다.
여인의 탈옥을 눈치챈 이들이 따라붙었지만, 운 좋게도 홍단에게 만나게 된 것이다.
‘…죽는 것만도 못한 처지라.’
이야기를 전부 들은 홍단은 인상을 찌푸리며 몇몇 정보의 조각들을 정리했다.
‘기이한 약향이 진동을 하는 곳이라 했던가?’
여인이 아는 약향이 몇 가지나 되겠냐만, 때때로 여인의 감이란 무서우리만치 예리했다.
특히나 그 약향이 불안했다는 말을 홍단은 허투루 듣지 않았다.
게다가,
‘역병을 일으킨 약이 시중에 돌고 있다는 말이지요.’
단순한 돈벌이로 취급해도 쉽게 흘려들을 수 없는 전염병의 창궐을, 누군가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이루어내고 있다면?
“그 감옥이란 곳…….”
홍단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어디인가요?”
“예? 그건 어째서… 자, 잠깐. 설마… 그곳을 찾아가시려는 것입니까?”
그건 미친 짓이다.
절대 안 된다고 말리는 여인이었지만,
“부탁드립니다. 그곳의 위치를 알려주세요.”
“아…….”
단호한 표정에서 결코 마음을 바꿀 리 없다는 것을 눈치챈 그녀는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 * *
‘여기군요.’
여인에게 안내받은 건물은 다름 아닌 불법 도박장이었다.
흔히 사파 패거리들이 운영하는 도박장.
술에 취한 취객들이 풍겨내는 주향으로 가득하고, 딱 봐도 거친 인상의 사내들이 지키고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정지. 넌 누구냐?”
홍단이 접근하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왈패 하나가 다가왔다.
사파 특유의 건들거리는 기세가 느껴졌지만, 홍단은 이럴 때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닥쳐라.”
“…뭐, 뭣?!”
평생 하오문에서 굴러온 몸.
사파의 생리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버러지 같은 게, 누구에게 말을 거는 것이냐.”
“헙?!”
누군지 알지 못한다.
증명할 수단도 없다.
일반적인 수위라면 당장 제지시키고 신분을 증명할 것을 내놓으라 소리쳐야겠지만,
짝―
“컥!!”
돌아온 것은 증명패 따위가 아니라 따귀 한 대.
“똑바로 서라.”
“네, 넵!!”
찰지게 얻어맞은 왈패는 얼얼한 볼때기를 두 손으로 감싸 안기 무섭게 들려온 목소리에 허겁지겁 기립 자세를 유지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그, 그건…….”
“네 죄를 아느냐?”
“그, 그건… 어억!”
논리정연한 말은 필요 없다.
자고로 사파의 질서란 힘의 질서.
일단 쥐어패다 보면, 알아서 상대는 자신의 상급자인 줄 알고 쫄기 마련!
“네 죄는, 겨우 너 따위가 내게 말을 걸었다는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정강이를 까이고서도 반항도 못 하는 왈패를 똑바로 바라본 홍단이 씹어뱉듯 말했다.
“한 번 더 내게 말을 걸면, 네놈의 사지를 잘라 투견의 먹이로 던져줄 것이다.”
“…흡!!”
이것이 사파의 법도.
감히 반항도 못 하고 옆으로 비켜서는 수위를 제치고, 홍단은 흉계가 일어나는 소굴로 무혈입성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