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30화 (230/350)

230화

도박장 내부로 들어선 홍단은 천천히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여인에게 안내받은 게 있기에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고, 허름한 목조 구조의 통로를 지나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제대로 왔군요.’

아래로 내려갈수록 아까부터 느껴지던 기이한 향이 짙어지는 걸 느꼈다.

처음엔 불콰한 취객들이 흩뿌리는 주향인 줄 알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진해지는 게 지하에 무언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향은… 혹시, 아편?’

아니, 그건 아냐.

머릿속에서 떠올린 가정 하나를 소거시키며 안으로 안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기자 곧 내부가 다시 넓어지며 여러 감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관리 상태가 얼마나 끔찍한지, 짙은 악취가 코를 찌르는 곳에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닌 몰골의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으으으…….”

“끄으…….”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흘러나오고, 힘없이 풀린 동공은 초점을 잡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렸다.

‘딱히 모진 고문이 가해진 것 같지는 않은데…….’

무엇이 그들을 이리 만들었을까?

고민이 깊어 지고 있을 때,

“……!”

휘릭!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무언가가 그녀의 감각에 경종을 울렸다.

서둘러 몸을 피하자, 그녀의 옆을 스쳐 간 암기가 벽에 박혀 파르르 떨렸다.

“흘흘흘, 웬 쥐새끼가 있다는 소리에 와보니, 그놈 참 화려한 쥐새끼구나?”

나타난 것은 우락부락한 체구를 자랑하는 대머리 사내.

험상궂은 인상을 일그러트린 그는 생긴 것만큼이나 느껴지는 기세도 심상치 않았다.

‘저보다 윗줄의 고수.’

혼자만 나타나도 쉽지 않을 텐데,

“기가 차는군. 좀 숨어들 거면 눈에 띄지 않는 옷이라도 입고 왔어야지. 안 그러냐, 얘들아?”

“대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실로 멍청한 놈입니다!!”

하필 상대는 부하들을 이끌고 있었다.

“어차피 별 기대는 안 하지만, 한번 물어는 보자. 어디 사는 웬 놈이냐?”

“…….”

“그래, 기대도 안 했다.”

대머리 사내는 쯧 하고 혀를 차며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단검을 꺼내 들었고, 다른 부하들 역시 저마다 단검을 꺼내 들었다.

“걱정 마. 아무리 고집이 쇠심줄마냥 질긴 것들도, 몸에 구멍이 열 개쯤 뚫리면 술술 말하더라고.”

단검 위로 날카로운 검기가 맺혔고,

“잡아 와라.”

주변을 둘러싼 무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녀 역시 양 허벅지에 묶어놨던 두 자루 은장도를 꺼내 들었다.

장검이라 하기엔 짧고, 단검이라 하기엔 긴 두 자루 은장도가 그림처럼 휘둘리며 날아드는 단검들을 쳐냈다.

채채챙!!

연신 울려 퍼지는 쇳소리.

위기의 상황에서도 홍단은 침착하게 은장도를 휘둘렀으나―

“흐핫! 여기도 있다!!”

서걱!

한 손이 열 손을 감당하지는 못하는 법, 금세 빈틈을 노리고 달려든 단검 한 자루를 허용해 왼 팔뚝에 붉은 자상이 새겨졌다.

‘……!’

입술을 곱씹으며 비명을 삼킨 채 물러서는 홍단.

화끈한 통증이 들이닥쳤지만, 그보다 그녀를 심란케 한 점은 따로 있었다.

‘이것은… 본문의 사망비검(蛇蟒飛劍).’

그건 바로, 이들이 쓴 무공이 하오문의 무공이라는 것.

그 사실에 홍단은 결국 결단을 내려야 함을 깨달으며 뒤로 물러섰다.

“제법 칼 좀 휘두르는 것 같은데. 그 정도로는 무리인 것 같지 않나?”

뒤편에서 관망하기만 하던 대머리 사내가 이죽거렸다.

‘일신의 무력도 범상치 않은데, 생긴 것과 달리 신중한 성격이군요.’

당장 앞으로 나서기보다는 부하들을 보내 조금씩 피해를 누적시키는 데서 상대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만했다.

그렇다면,

“…예, 저의 비천한 무위로는 당신들을 뚫기 힘들겠죠. 하지만… 이거라면 어떨까요?”

무공 말고 다른 수단을 동원하면 그만일 뿐.

품에서 기다란 죽통(竹筒)을 꺼내든 홍단이 그 끝을 슬금슬금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이들을 향해 겨눴다.

“응? 저게 뭐… 자, 잠깐… 설마?!”

처음엔 뭔가 싶던 대머리 사내는 이윽고 무언가의 이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다급히 소리쳤다.

“이 미친… 피해라!!”

그렇게 말하며 허겁지겁 물러난 대머리 사내였지만, 그의 부하들은 자신들의 대장만큼 박식하지 못했다.

웬 대나무 통을 꺼내 들고 있나 싶어 비웃는 게 반절이었고, 이상하다 느끼면서도 그 자리에 멍청히 서 있는 게 남은 반절이었으니까.

재앙은 그때 퍼부어졌다.

콰콰쾅!!

죽통의 끝이 폭발하며,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비침들이 폭우처럼 퍼부어졌다!

“끄아아악!!”

“으아악!!”

“이런 미친년!! 폭우우모침(爆雨牛毛針)을 대체 어디서 구해서!!”

폭우우모침.

지금은 쇠락했다 전해지는 당가에서 전성기에 만들어 가솔들이 휴대하고 다니던 무시무시한 암기였다.

사파 계열에서 모방해 만들어보려 시도하다가 다들 죽 쓰기만 했기에 진본은 없고 가품만 뒷세계에 나돌았고, 그마저도 구하기 어렵다는 게 정설이었다.

근데 그딴 게 여기 있다고?

‘그분께 감사해야겠군요.’

물론, 홍단이 가진 건 그런 가품 따위가 아닌 진품.

다른 누구도 아니고 당유혼 본인이 직접 만들어준 것이었다.

“네가 그 녀석 휘하에서 일한다며?”

휘적휘적 다가와 툭 하고 던져준 보따리.

그 안에는 과거 당가의 전성기에만 존재했다던 비보들이 한가득이었다.

“정보 캐와야 하는데, 괜히 이상한 데서 객사하지 말라고.”

자신이 하윤호의 심복이기에 받았던 물품들.

그중 하나를 꺼낸 그녀는 연이어 또 다른 죽통을 꺼내 들었다.

“야, 야!! 저년 잡아!!”

그 행동을 목격한 대머리 사내가 비명 수준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퍼펑―!

그냥 바닥으로 냅다 던지기만 하면 되는 행동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있나.

바닥에 부딪쳐 깨져 나간 죽통으로부터 뭉게뭉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막탄? …아니잖아! 이런 젠장, 독이다!!”

순식간에 공간 내부를 채워버리는 연기에는 극독이 섞여 있었다.

무공 수위가 낮은 이들은 그 자리서 피를 뿜으며 거꾸러졌고, 대머리 사내 역시 독기를 막기 위해 운기조식을 해야만 했다.

그사이, 홍단은 재빨리 출구를 통해 빠져나왔다.

“…하아, 하아.”

도박장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그녀는 입 안에 미리 물고 있던 구슬을 뱉었다.

피독주(避毒珠).

입에 물고 있으면 독의 침범을 금한다는 물건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형편 좋은 물건은 아니었다.

“이건 피독주라는 건데, 웬만한 독의 중화제는 다 넣어놨거든? 그런데 이건 중화제지 결코 해독제는 아냐.”

독을 해독해 준다기보다는 최소한의 상태로 중화시켜주는 물건이었기에, 그녀의 안색은 실시간으로 붉으락푸르락을 반복하며 중독 증세를 보였다.

심지어,

“효용이 다 하면 그냥 맛없는 돌멩이니까 대충 아무 데나 버려.”

그 찰나의 시간에 효력을 다 했는지 빛바랜 구슬이 되어버린 피독주는 더 이상 중화 효과를 제공해 주지 못했다.

“잡아라!!”

“애들 다 풀어!!”

시시각각 위기가 다가오는 상황.

그 상황에 한숨을 크게 내쉰 그녀는 평소 입어왔던 붉은 의복을 망설임 없이 벗어던졌다.

“너는 항시 붉은 의복을 입고 다녀라. 너의 모습을 특정시켜서 타인에게 각인시켜두어라. 그럼, 위기 상황에서 재빨리 다른 복장으로 변복(變服)하면 다른 이들이 네 모습을 순간적으로 알아보지 못해 한번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금선탈각(金蝉脱殻)의 계(計)이니라.”

“놈은 온통 시뻘건 의복을 입고 있었다!!”

“주변에 붉은색이 보이면 일단 소리부터 질러!”

그녀가 모시는 주군의 추천에 따라 항시 붉은 의복을 입고 다니던 그녀는 곧장 흰색 삼베옷으로 갈아입고, 의복 속에 숨겨 놓았던 몇 가지 도구를 꺼내 들어 화장을 고쳤다.

그리고,

“어이! 거기!”

우르르 몰려온 무리가 홍단의 앞을 멈춰 섰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 시뻘건 의복을 입고 지나가던 년을 못 봤냐?”

“예? 그게 무슨…….”

“쯧, 못 봤으면 됐다.”

그들은 홍단의 반응에 곧장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뛰쳐 갔다.

“대장, 저놈 좀 수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아니 뭐… 저렇게 창백하게 생긴 놈은 처음 보지 않습니까?”

“쯧, 난 또 뭐라고. 그냥 약쟁이겠지. 약 많이 한 놈들이 저렇게 허여멀겋잖아? 그리고.”

“그리구요?”

“우리가 찾는 건 ‘년’이잖아. ‘놈’이 아니라.”

“아하.”

멀어지는 대화 소리를 들으며, 홍단은 중독되어 계속해서 변화하는 안색을 숨기기 위해 짙게 칠한 분칠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이 정도면 됐어.’

휴대용으로 들고 다니는 작은 면경에 비추어진 서생의 모습, 그것을 확인한 뒤 그녀는 곧장 발걸음을 옮겨 항구로 향했다.

‘…이곳도, 쉽지는 않겠군요.’

항구에는 어느새 우락부락한 무리가 행인들을 제지하며 거칠게 추궁하고 있었다.

자신을 쫓은 이들의 세력이 이 도시 전체를 장악했다는 걸 증명하는 풍경.

주변을 훑던 홍단은 어쩔 수 없음을 느꼈다.

‘가자.’

스릉―

가지고 다니던 은장도는 진작 버렸고, 남은 건 품에 숨겼던 단검 한 자루.

“잠깐, 거기 멈… 뭐, 뭐야?”

웬 서생 하나가 단검 한 자루를 들고 오자 주변을 수색하던 왈패 하나가 당황성을 흘렸다.

그리고 그에 다른 이들이 반응했을 때,

“끄아아악!!”

최초로 홍단을 발견한 왈패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저기 있다!!”

“저놈이다!!”

“잡아!!”

날붙이를 뽑아 들고 다가오는 무리를 향해 홍단 역시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그리고,

“…하아, 하아…….”

엉망진창.

다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엉망인 꼴로 겨우겨우 배의 짐칸에 숨어든 그녀는 짚단 속에 몸을 숨겼다.

가진 모든 장비를 동원해서 항구를 장악했던 이들을 쓸어버리고, 그대로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뒤이어 몰려든 추가 병력의 눈을 속이기 위해 다른 쪽으로 가는가 싶다가도 대롱을 꺼내 입에 물고 물속에서 세 시진을 버텼다.

그렇게 해가 지고 어스름이 찾아올 때, 사람의 시야가 가장 어두울 때가 돼서야 장강수로상단을 상징하는 깃발이 꽂힌 배를 찾아 짐간으로 파고든 것이다.

‘장강수로상단의 배는 사천으로 향하기 마련.’

그 사실을 떠올린 홍단이었기에, 녹초와 같은 몸을 이끌고 짚단에 몸을 뉘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아직, 아직이야.”

의식이 흐릿한 게 언제 정신을 차리고 또 언제 정신을 잃을지 몰랐다.

해야 할 건 많은데, 시간은 없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의 기로 속에 그녀는 품에 꽁꽁 숨겨 놨던 공백의 서찰을 꺼냈다.

그리고,

‘우선…….’

핏물에 적셔 지금까지 그녀가 보고 들은 것에 관한 혈서를 써 내렸다.

설혹 이 자리에서 자신이 쓰러지더라도, 누군가 이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사천당가에 닿을 수 있게.

물론, 최선은 자신이 직접 전달하는 것이지만 그 만에 하나의 경우까지 쓰며 혈서를 써 내린 그녀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서찰을 품에 넣고 지금껏 아껴둔 단환 하나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생환단(生還丹).

당유혼이 건넨 보따리에 남아 있던 마지막 비보이자, 그녀가 붙잡을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그것을 입에 털어 넣은 홍단은 그대로 귀식대법을 운용하며 밀려오는 수마 속에 몸을 맡겼다.

‘부디, 그분께 닿을 수 있기를.’

설령 자신이 살아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이 서찰만은 지킬 수 있게.

혈서를 품에 안은 홍단은 그것을 지키듯 둥글게 몸을 말은 채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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