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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32화 (232/350)

232화

* * *

정천맹이란 거인이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는 소식은 사패천에게도 전해졌다.

그곳엔 누구보다도 정보에 민감한 이가 있었기에 소식이 늦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이가 없군.”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녹림투왕 조취산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우리 애들이 언제 장강까지 갔다는 거지?”

그 말에 가만 서찰을 들여다보던 흑상이 덤덤히 말했다.

“이용당했군요.”

“이용당해?”

“광동이면… 하오문이군요. 최근 하오문의 소식이 심상치 않더라니, 내전에 우리를 이용하려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흑상은 당가의 노강호와 복수에 눈이 돌아버린 하오문 지부장의 회합 장소에 있지 않았음에도 정확히 돌아가는 일을 추론했다.

정작 같은 성내에 있는 정천맹의 중진들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것을, 수천 리 떨어진 타지에 있는 그가 알아챈 것이다.

“…이용만 당하고 가만 놔둘 것인가, 상천(商天)?”

그런 그에게 뒤에서 다가온 흑서문주가 물어왔다.

그에 흑상은 냉막한 얼굴로 답했다.

“상천(商天)이라, 아직은 과하군요. 정기 총회가 열리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흥, 어차피 시간 문제 아닌가?”

흑상의 정기 총회가 열린다면 여기 있는 흑상이 정식으로 상천으로 습격받는 것은 따 놓은 당상.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위대한 거래를 이루어 낸 그의 공로를 철저한 실적주의인 다른 흑상들이 인정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런 단꿈을 꾸게 하는 말에도 흑상은 여상한 표정을 지으며 탁자에 올려진 중원 전도를 훑을 뿐이었다.

“광동이라……. 강남은 아직 일정이 아니지만, 광한루가 마침 강남에 있었던가요?”

원래라면 집어삼킨 야차전의 전력을 천천히 소화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된 거, 강을 한번 건너보지요.”

굳이 저곳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연호한다면, 호응해 주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어쨌거나, 하오문이나 광한루나 정천맹이나… 전부 정리해야 할 대상이니까.’

이렇게 된 거, 도매금으로 정리해 버리는 것도 괜찮지 아니한가.

천하를 팔아넘길 상인의 머릿속에서 주판알이 튕겨지는 순간이었다.

* * *

“빌어먹을! 빌어먹을!!”

당금 무림에서 가장 주가를 올리는 두 세력이 한창 용트림을 하는 와중, 그사이에 끼이게 된 어느 불쌍한 세력의 주인은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왜 하필, 왜 하필 지금이냔 말이다!!”

그의 정체는 천하 삼대 정보 집단, 하오문의 문주.

정보를 다루는 이들의 수장인만큼, 공식적으로 움직이는 정천맹의 움직임도, 비공식적으로 움직이는 사패천의 움직임도 모두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걸 꿰뚫으면 뭐 하냔 말이다!!’

뭐, 아는 건 좋았지만 문제는 알아봐야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

모르는 게 약이라는 걸 충실히 증명하듯 찾아오는 두통은 그의 몸을 전력을 뒤틀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단순히 정보 집단으로 남지 않게 할 비장의 수단이 완성 직전이었건만, 그 전에 들이닥치려 하는 거대한 두 집단의 방문 소식에 하오문주의 안색은 푸르죽죽하게 썩어들어 갔다.

그때,

“상황이 좋지 않군.”

그의 뒤편에서, 가면을 쓴 흑의인이 나타나 이죽거렸다.

“젠장, 알고 있으니까 닥쳐.”

탁자 위에는 몰려오는 정천맹의 군세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무려, 사신단이 전부 몰려온단다.

“둘… 아니, 셋까지만 해도 어떻게 해볼 만할 텐데…….”

“넷이 전부 몰려오는군. 아니, 사신단만 전부 몰려오는 건 아니지.”

원치 않은 강제 출병을 하게 된 정천맹 중진들은 발상의 전환을 이루었다.

차라리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공적이라도 세워가자!

그런 발상에 반자발적 참여가 우후죽순 이어지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어마어마한 대군세가 창설되었다.

“미친놈들. 진작 이 정도 군세를 이룰 수 있었다면, 이미 구패가 아니라 칠패는 되었을 텐데!”

구패가 구패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나타협의와 만가쟁패의 시대를 거쳐 저 끈끈이 같던 정파 놈들이 마침내 흩어졌기 때문이다.

무림맹의 붕괴와 함께 뿔뿔이 흩어졌던 정파.

그런데,

“대체 왜!! 왜 하필 우리를 상대로 다시 뭉치냔 말이다!!”

기적 같은 대통합의 현장이 자신들을 상대로 일어나는 건지. 그 운 없음에 하오문주는 끔찍하게 절규했다.

“…진정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겠지?”

“닥치라고!!”

쨍그랑―

사납게 던진 벼루가 깨져나갔다.

그럼에도 가면 쓴 흑의인은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다.

“대놓고 이곳을 쑤시려는 이를 그렇게 쉽게 놓아주다니. 함정까지 다 파놓고 너무 멍청했던 게 아닌가?”

“젠장!! 누가 몰라?!”

홍단이 떠나는 즉시 하오문주는 그녀를 잡아 죽이려 했다.

문제는 진작 죽일 수 있었던 그녀를 놓쳐버렸다는 게 전적으로 그의 헛된 기대에 의한 것이라는 점.

‘하윤호… 네 녀석이라면 나와 같은 꿈을 꿀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하오문 내에서 역대 최고의 기재라 칭해지는 녀석이었다.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맨손으로 사천에 하오문 지부를 복구해 내는 데 성공한 입지적인 인물이 바로 그였으니까.

‘어째서냐. 네 녀석도 우리의 밑바닥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 지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느냐!!’

그걸 위해 평생 싸워왔던 그인 만큼, 충분히 얘기가 통할 거라 여겼거늘.

[하오문은 하오문다워야 합니다.]

서찰에 적혀 있는 한 구절의 문장.

제 딴에는 얼마나 힘주어 썼는지, 그 자국이 여실히 남아 있으나,

‘하오문이 하오문다워야 한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그 대전쟁을 겪고도 이 모양 이 꼴이지!!’

그의 진심은 자신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나약해 빠진 정신으론 대업을 이룰 수 없다 여겼기에, 알량한 기대를 접고 그가 보내온 사절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답하려 했다.

하지만,

‘그년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버리다니…….’

물론, 진작 죽였어도 하윤호가 움직이긴 했겠지만, 그럼에도 그가 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할 거지?”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떻게 해.”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하오문주는 맹세했다.

“죽고 싶다고 제 발로 사지로 찾아오는 놈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맞이할 건 하나뿐.

“전부, 원하는 대로 해드려야지.”

* * *

정천맹이 드디어 출범했다.

솔직히, 사신단끼리 치고 박는 행사가 한 번 정도는 더 있고서야 출발할 줄 알았던 이 게으른 거인이 생각보다 일찍 몸을 일으킨 것은 예상외였다.

‘보아하니, 녀석 역시 자기만의 생각이 있어서 움직이다 엉겁결에 얻어걸린 거겠지만…….’

하윤호가 어째서 홍단을 하오문 본문으로 보낸 건가.

그 안에는 분명 그들만의 내부 사정이 있을 것이고, 또 개인의 사사로운 이유에 따름이겠지만,

‘하오문. 녀석들이 마교와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지.’

우연의 일치인지, 필연인지.

홍단이 듣고 보았던 것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심상치 않은 정황이 나의 다른 정보망에 포착되었다.

“다시 뵙습니다, 소협.”

“그러게, 다시 뵙네. 우리 천재 군사 나으리.”

다름 아닌, 장강수로채에게 말이다.

“그 일대에서 사람이 종종 실종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이제는 장강수로상단으로 업종 변환을 성공리에 마친 상단의 총 행수.

천재 군사 육언이 우리를 태운 배의 뱃머리에 함께 선 채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처음엔 흔한 노예 무역인가 싶었으나… 그렇지 않더군요.”

장강수로상단 역시 마교에 데인 전적이 있었던 만큼, 만만치 않게 그들의 꼬리를 뒤쫓고 있었고 그러다 광동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보통 노예 무역을 위한 사냥이란 실종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이들을 위주로 진행되는 것. 그런데 강남에서 근래 들어 무림 고수가 종종 사라지는 이들이 발생했습니다.”

“그게, 도저히 하오문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규모란 거지?”

“그렇습니다.”

처음엔 흑서문의 소행인가 싶었단다.

사람을 납치해 강시로 만드는 그들은 고수의 시체일수록 더욱 강력한 강시로 만드니까.

하지만,

“흑서문은 저 위에서 저 난리를 치고 있으니 제외. 그럼, 제 삼의 세력이 놈들을 돕고 있다는 것인데…….”

암만 봐도 구린 냄새가 나는 게, 딱 더럽고 치사하며 흉악무도한 마교 놈들 소행이란 촉이 팍팍 몰려온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솔직히, 업종 변경을 끝낸 저희 혼자서는 도저히 무리였는데 말입니다.”

“쩝, 평소라면 자랑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이번 일은 나 말고 다른 녀석이 혼자 해낸 거란 말이지. 게다가, 이 많은 병력을 수송할 수 있는 건 전적으로 군사 나리의 덕이고 말이야.”

정천맹이 광동에서 준동의 낌새를 보이는 녹림을 토벌하겠다는 발표를 하자마자,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다는 장강수로상단에선 의문의 대규모 함선을 지원했다.

자신들의 막대한 병력을 어떻게 강남으로 수송할지에 대해 갑론을박하며, 그 사이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가문과 소속 상단에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을 싹 다 입 다물게 만드는 압도적인 수송 선단의 도착.

덕분에 정천맹의 토벌군은 쾌속 진군을 반복하며 강남에 이를 수 있었다.

다만, 그 와중에 문제가 하나 더 발생했으니―

“한데, 사패천 그놈들도 도하 가능성이 있다고?”

“그렇다고 하는군요.”

어지럽네.

‘갑자기 규모가 너무 커져 버렸는데?’

사파 놈들도 자근자근 밟아주어야 할 잡초 놈들은 맞고, 마교 놈들은 당장 근원부터 박멸해 버려야 할 해충인 것은 맞지만, 그들과 이리 갑작스럽게 전쟁을 벌이게 될지는 몰랐다.

“어쩌면, 만가쟁패의 시대가 도래한 이래 가장 규모가 큰 대전쟁이 벌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실을 직감한 것은 천재 군사 나리도 마찬가지인지라 자신의 섭선을 접어 턱 밑에 걸쳤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교도 놈들도 제 상태는 아닐 것 같다는 건데…….”

군사 나리의 정보에 따르면 지금까지 광동을 필두로 강남에서 일어난 일은 최대한 비밀리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 꼬리가 길어 겨우겨우 포착한 거지, 상대방도 안간힘을 다해 숨긴 흔적이 눈에 훤한 사업.

‘만약 마교가 예전 성세의 절반에 절반만 회복했어도, 이렇게 일 처리를 하진 않았을 거야.’

광신도 놈들은 자고로 오만하기 짝이 없다.

자신들의 유일신이 옳다 믿는 놈들은 남들 깔아보고 무시하기 일쑤라 조심이란 말 따위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놈들이 몸을 사린다? 그건 분명 놈들 상태도 영 좋지 않다는 건데…….’

완전 전력의 사패천과 전력 미상의 마교 그리고 하오문 연합.

그놈들을 싹 다 족치려 하니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켰다.

그렇다면 어쩔 수 있나.

“우리 군사 나리는 좋은 생각 없어?”

머리 좋은 놈 도움 좀 받아야지.

“좋은 생각이라…….”

그 말에 육언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사실, 계책 하나가 있기는 했습니다.”

“오오, 진짜?”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모습.

“그렇습니다. 공명정대한 정파의 군세를 이끄실 소협께서 있기에 채택할 수 있는 계책이지요.”

그 미소에서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상대를 엿 먹이겠다는 확실한 의지가 있어야만 보일 수 있는 그 짙은 악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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