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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33화 (233/350)

233화

광동.

그중 장강의 어느 지류가 닿은 강가에 수십 척의 밀항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때로는 국가에서 금한 물품에 대한 밀수를 일삼기도 하고, 때로는 국가에서 지정된 대역죄인이 이국으로 탈출하도록 밀항을 돕기도 하는.

매번 수송하는 것이 다르며, 그 어느 것도 범상치 않은 것이 없는 밀항선들이지만 이번에 수송하는 것은 유난히 특이했으니―

“빨리빨리 내려라, 이 자식들아!!”

“네놈들 뒤에 내릴 놈들만 일천이 넘는다!!”

우선 일천이 넘는 녹림의 산적들이 그 첫 번째였으며―

“야이, 씹… 밀지 마, 인마!”

“빨리빨리 내리라면 내리… 윽, 젠장. 저놈들이 있었군.”

포악하게 생긴 거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흉악한 산적들마저 꺼림칙하게 할 강시들이 둘째였다.

“…….”

“…….”

“…….”

아무런 표정 변화도, 그 어떠한 사람의 말조차 없다.

숨은 쉬는지, 눈은 깜빡이는지.

볼 때마다 불쾌감을 선사하는 강시들을 흑시문의 술사들이 하역시키는 걸 보며 산적들은 최대한 그들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 노력하며 뭍가에 대열을 형성했다.

그리고,

“흐하하하, 대단하군. 역시 상천(商天)이야.”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는 이가 한 명.

의복 대신 호피(虎皮)를 두르고, 등 뒤에는 사람 몸통만큼 거대한 대부(大斧)를 든 이는 바로 그들 산적들의 두목.

녹림투왕 조취산이 껄껄 웃음을 터트리며 뭍에 도열하는 병력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한 밀항선을 순식간에 조달해서 강남 땅에 수송시킬 수 있다니. 중원 구주팔황에 흑상의 상행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지만, 이 투왕이 다시 한번 감탄했어.”

그가 웃음을 터트리는 것만으로도 가장 거대한 밀항선의 돛이 펄럭였다.

평생 싸움에 미쳐 살아 왔던 녹림의 투왕(鬪王)은 그만큼이나 지금 이 순간에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곳이 강남인가!’

소싯적부터 중원 전역이 좁다고 쏘다닌 투왕이지만, 강남 아래로 내려온 적은 없었다.

그건 그가 명성을 얻기 전엔 아직 강북을 쏘다니기에도 이 대지가 워낙 넓었기 때문이고, 명성을 얻은 이후엔 그가 강남으로 남하하려는 걸 기를 쓰고 막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빌어먹을 물개 놈들 때문에 살아서 이 땅을 밟을 일은 요원하다고 여겼는데 말이야. 크하하하!!”

싸움에 미쳐 살았던 투왕이지, 싸움도 되지 못할 자살 행위에 미쳐 살았던 자살 기도자가 아닌 조취산이었다.

암만 지상에서라면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으나, 자신보다 반 시대 앞서서부터 그 위명을 자랑하던 장강용왕과도 상대할 자신이 있는 그였지만, 솔직히 수전에선 영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리도 쉽게 강남 땅을 밟게 되었다.

그 어떤 이도 자신들의 도하를 막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어떤가 상천. 이제 무엇을 하면 되지? 강남 촌놈들에게 강북의 도끼 맛을 보여주면 되겠나?”

곧바로 정복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의욕만만의 그가 줄곧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천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에,

“이상하군요.”

돌아온 말은, 그의 뜨거운 혈기에 찬물을 붙는 것과 같은 것.

“이상하다니? 뭐가 말인가?”

“너무 쉽게 도하에 성공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조취산과 같은 뜨거움에 전염될 일 없는 흑상은 그저 내려서는 일천이 넘는 병력 너머의 지평선을 향해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우리가 오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흠, 그 무림맹인가 정천맹인가 하는 놈들 말인가?”

“그들뿐만이 아닙니다.”

아직 신설되지 얼마 안 된 정천맹이기에, 그들의 정보 조직을 힘들지 않게 속여 넘긴 흑상이지만, 마냥 자신의 능력을 맹신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 객관화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요, 물건의 값어치를 냉정하게 매기는 상인의 가장 기본적인 상도(商道)라 여겼기에 강남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두 가지 난관을 예측했다.

첫 번째는 장강수로채.

지금은 비록 해체해서, 장강수로상단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이름으로 활동하는 그들을 흑상은 결코 만만하게 여기지 않았다.

‘남들은 어설픈 눈속임이요, 같잖은 수작질이라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이적(耳赤)의 수.’

수백 년 동안 한낱 수적에 불과했던 이들을 현 중원에서 가장 강대한 성세를 자랑하는 상단으로 탈바꿈시킨 이는 전대 장강용왕의 둘째 제자요, 정당한 후계자라 여겨지며 소용왕(小龍王)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집안싸움으로 몰락해 가는 장강수로채를 일통하고, 이후 몰락했던 성세를 복구시키기 위해 상단이라는 형태의 업종 변환에 성공.

기껏해야 장강 유역에 불과하던 자신들의 세를 단번에 중원 전역으로 퍼트리며 양지화에 성공한 것은 상인이란 직종에 종사하는 흑상의 입장에선 놀라우리만치 감탄스러운 한 수였다.

‘양지화가 쉽다면 아무나 했겠지. 당장, 우리 흑상 역시 대역을 앞세워 사용하는 몇몇 신분이 있으니까.’

흑상이라고 어디 맨날 침침하고 쾌쾌한 음지에서만 활동할까.

이득을 추구하는 상인의 특성상 양지에서 활동해야 할 경우도 있었고, 그를 위한 신분도 몇몇 존재했다.

하지만 그건 말마따나 어디까지나 잔뿌리 수준에 불과했으니, 정식적으로 양지화에 성공한 장강수로상단의 그들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들이 양지화에 성공했다 해서, 이전까지 사용하던 음지의 통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

말하자면 음지와 양지 전부를 거머쥐었다고 할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당연히 이 장강을 건너기까지 무수한 험로를 거치리라는 예상이 당연했고, 실제로도 그는 여기까지 도달함에 꽤 많은 위험 부담을 대비했다.

당장, 이 밀항선에 실린 물품들 역시 관아에 적발당한다면 고작 관병 수십 동원되는 거로 끝날 일이 아닐 테니까.

그런데,

‘아무런 마찰도 빚어지지 않았다고?’

우습지도 않은 농담이다.

게다가,

‘두 번째 경우의 수. 하오문 조차 없다라…….’

강북이 만가쟁패의 시대에 부르는 역풍을 정면으로 맞았다면, 강남은 상대적으로 그 혼란이 덜했다.

물론 자잘한 혼란의 경우야 강북보다 더 심했겠지만, 거대 세력의 혼란은 훨씬 적은 편이었다.

기본적으로 강남에 뿌리를 둔 거대 세력이 덜하기도 했을뿐더러,

‘강남의 정보망은 하오문 꽉 틀어쥐고 있다 여겼거늘.’

하오문의 본단이 광남 땅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오문은 몇 년 전부터 문주의 행방이 묘연했고, 그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흑상에서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한데, 그런 하오문에서 우리를 쉽게 남하시켜줬다는 건…….”

“꿍꿍이가 있다는 건가?”

“꿍꿍이가 있거나, 여유가 없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최악을 가정하는 건 상인의 기본이지만, 자신의 꾀에 자기가 빠져 허우적대며 자승자박하는 건 그냥 멍청한 짓이다.

“음, 난 무식해서 그런 복잡한 건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결론이 뭔가?”

흑상이 홀로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있을 때, 결국 참다 참다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조취산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그에,

“별것 있겠습니까.”

흑상은 여느 때와 같은 여상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 강남 땅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혼란하다는 것이겠지요.”

* * *

강남은 혼잡했다.

연고를 둔 거대 정파가 마땅치 않은 강남이기에 혼잡하지 않은 날이 없는 강남이라지만, 지금은 더 했다.

일단 광동 땅에 유래없는 대병력이 들어선 것이 첫 번째 이유고,

“쿠헬헬! 비켜라! 대정천맹 납신다!!”

어지간한 사파 못지않게 행패를 부리는 그들의 정체가 정천맹이란 게 두 번째 이유였다.

“빨리빨리 방을 비우지 못할까?”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대협!!”

“어어? 이것 봐라, 안 비키네? 안 빼네? 네 녀석, 사패천 나부랭이들 앞잡이구나!!”

“예? 그,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사패천 개새끼 해봐!!”

“그게 뭔…….”

“너 이 새끼, 사패천의 간첩이구나!!”

갑자기 광동에서 벌어진 미증유의 혼란.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은 며칠 전으로 돌아간다.

“장강수로상단의 백언입니다.”

“하오문 사천지부의 하윤호입니다요.”

장강수로상단에서 정천맹을 위하여 제공된 십수 척의 선박.

그중에서도 고오급 선박의 최고급 선실에 평소라면 전혀 연관 없을 것 같은 인물 셋이 모였다.

“육자방이라 불리신다 들었습니다요.”

“과찬입니다. 그러는 지부장님께서야 말로 과거 하오문을 이끌 두 명의 지보 중 하나라 들었습니다.”

초면인 둘의 대화는 오가는 칭찬으로 시작.

“…이제는 옛이야기일 뿐입니다요. 지금은 장강수로상단의 군사님께 금언을 청하기 위해 왔을 뿐입지요.”

과거의 이야기에 복잡한 표정을 짓던 하윤호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며 주요 안건을 꺼냈다.

“광동 땅에 모일 정천맹과 사패천, 그리고 기존에 있던 하오문과… 마교까지 얽힌 이 복잡한 난전을 타계할 계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요.”

“완전히 타계할 계책까진 아니지만, 한 가지 계책이 있긴 하지요.”

나야 한 번 들었던 것이지만, 본격적인 대수술에 앞서 당사자라 할 수 있는 하윤호는 딱딱히 굳은 표정을 지었다.

“본문이… 존속할 수 있는 계책입니까요?”

“물론입니다. 다만, 따르는 대가가 적지는 않을 듯합니다.”

“후우…….”

하오문에는 마교란 끔찍한 종기가 생겨버렸다.

그 크기가 조금 작기만 해도 바늘로 콕 찔러 터트려 치료하겠지만, 여기 있는 셋 중 누가 봐도 그 견적이 결코 작지는 않았다.

“더 늦었다간, 전부가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종기 수준일 때 살을 찢는 수술일지언정 시행해야 한다고,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리라는 말에 하윤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견을 청합니다요.”

“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보호자의 동의가 떨어지자 육언은 자신의 섭선으로 중앙의 탁자 위에 놓인 지도 한 부분을 가리켰다.

“아시겠지만, 광동 땅으로 사패천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정천맹의 공식 발표가 그들을 도발한 것인지 꽤 많은 병력이 준동한다는 정보가 전해졌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들과의 정면충돌은 무척이나 곤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은 하오문과 마교요, 뒤는 사패천이라.

정천맹이 그간 만가쟁패의 시대 동안 축적된 정파가 가진 거력의 정화라 할지라도, 그건 상대 쪽도 마찬가지였다.

“군략에선 양면 전선은 필히 피해야 할 요소라고 하였습니다. 해서, 저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가 될 겁니다.”

“첫 번째는 역시 선제 타격입니까요?”

“예. 그렇습니다. 본 상단에는 다행히도 상선을 호위하기 위해 존재하는 전투선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아직 수적선에서 상선으로 전환이 덜된 놈들이다. 애초부터 전투와 약탈을 위해 마개조 시켰던 놈들은 상선으로 전환하기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고, 괜히 재개조하려다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것들을 따로 빼둔 상태였는데 이번 경우에 쓸 일이 생긴 것이다.

“마침 본 상단엔 수전 경험이 노련한 이들이 다수 존재함에 따라, 사패천에서 뭍에 발을 디디기 전 요격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치른다면 상대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수적이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에서 일방적인 전투를 치른다.

그 말만 들으면 승부수를 던질 만하지만, 하윤호는 마냥 기뻐하기보단 육언이 선택한 특정 단어에 집중했다.

“상대적인 이득이라… 확실한 이득은 못 됩니까요?”

“그렇습니다. 이전이라면 모를까, 호위선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본 상단이 그간 장강의 평화를 이룩하며 전투를 멀리하다 보니 어쩔 수 없더군요.”

이 역시 더 정확히 말하면, 장강을 장악하고 몰래 넘어가려는 상선들을 쥐어패기만 하던 장강수로패가 장강수로상단으로 업종 전환을 하다 보니 있던 전투선들을 대부분 개조해 버렸다는 뜻이었다.

항상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기만 했기에, 자신들이 칼자루를 내려놓을 때 이리 빠르게 다시금 칼자루를 쥐어야 할 날이 올 줄은 미쳐 몰랐던 것이다.

“더군다나, 상대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흑상이 사용할 것은 높은 확률로 밀항선일 겁니다. 그들은 수틀리면 국가의 수군과도 맞설 준비가 된 이들. 무장해제 된 본 상단의 호위선에 비해 결코 꿀리지 않을 뿐더러, 그들이 밀거래를 통해 축적된 위협적인 병기의 수준을 따지면 마냥 일방적인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게다가.”

문제는 하나 더 있으니―

“하필 이들이 사용할 것으로 추측되는 지류는 양 간격이 매우 좁습니다. 본 상단의 전투선들이 가진 수적 우세를 활용하기 힘들 뿐더러, 자칫하면 백병전이 벌어져 그들의 이점만 살릴 확률이 높습니다.”

수전이 벌어지면 장강수로채의 과거가 드러나니 정천맹의 전력을 사용하기 힘든데, 장강수로채가 구패 중 넷과 일대 사로 붙어야 한다.

암만 육언이 신출귀몰한 군략을 부린데도 여기서부터는 그냥 답이 없는 수준.

그래서,

“저는 두 번째 책략을 제안할까 싶습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습니까요?”

“간단합니다.”

육언은 이 방안을 타개할 아주 간단한 방안을 제시했다.

“그냥 보내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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