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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34화 (234/350)

234화

“…옙?”

이게 무슨 삑삑이 새끼 낳는 소리일까?

하윤호의 표정은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어째서? 대체 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그에, 육언은 섭선을 살랑살랑 부쳐 순풍을 만들어내며 답했다.

“첫 번째 이유는 좀 전에 말씀드린 것들과 같습니다. 장강에서 싸운들, 그들을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요.”

제아무리 잘난 천재 군사 나리라도 가능한 게 있고 불가능한 게 있다.

장강십팔채 내전 당시, 백경채 홀로 남은 열일곱 채와의 연이은 전투에서 기적의 교환비를 뽑아냈던 육언이라지만, 사패천이라는 장강수로채보다 더 강한 집단 넷이 뭉친 이들과의 전쟁은 답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보내준다면 더욱 불리한 것 아닙니까요?”

수상전에서도 답이 없는 상대를 지상에서 회전으로 맞이하면 그건 곧 재앙이 될 것이다.

그건 분명 합당한 이의 제기지만,

“그걸 아십니까? 원래 군략에서 가장 상책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임을.”

군략의 천재는 생각을 달리하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유리한 선상에서 싸워도 불리하고, 지상에서 싸운다면 더더욱 답이 없는 전쟁. 그렇다면, 전쟁을 벌이지 않으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예?”

“자, 대전략을 다시 세워보지요.”

하얀 옷소매가 지도 위를 훑었다.

그 위에 놓여 있던 각 세력의 전력을 상징하던 말들이 전부 사라지고, 맨땅만이 남게 됐을 때 그중 한 지점을 툭 하고 가리켰다.

“사실 저희는 생각 그 이상으로 막막합니다. 사패천이 어느 정도의 병력을 끌고 오는지 알 수 없고, 광동 내에 도사리고 있을 세력이 어떤 놈들인지는 더더욱 모르지요. 귀하의 문파에서 마교와 손을 잡았을 수 있지만, 어디 이상한 사교도와 손을 잡았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게 아닌 다른 무엇인가 일 수도 있지요.”

과거에 실전되었다 전해지던 어느 고대 문파의 악랄한 비법을 우연히도 발굴해 그것을 복구시켰다든가, 혹은 외국에서 고용한 불법 용병들을 키우고 있다든가.

하오문이란 정보만 다루던 집단이 무언가 꿍꿍이를 키우며 세를 불리고 있는 걸 보면 뭐가 있는 것은 확실한데,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런 상태에서 양면 전선이라… 이건 정말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당장, 전선을 어딜 어떻게 세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병력을 얼마나 빼돌려 수상을 봉쇄해야 할지, 병력 중 얼마만큼을 광동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막는 데 분배해야 할지 전부가 막막하지요. 당연히, 광동에서 하오문과 그들이 결탁한 이들을 찾는 것은 또 어찌할지도 곤혹스럽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악스럽게 출진시키다시피 한 이 병력으론 할 수 있는 게 제한되어 있다.

그러니까,

“저희는 철저하게 저희의 장점을 활용해야 합니다.”

“저희의 장점이라면…….”

“아, 실례. 저희라기보다는… 정파의 장점을 활용해야겠지요.”

모략과 음모를 꾸미는 것은 하윤호의 특기지만, 군략은 천재 군사 육언의 특기.

그리고 자고로 군략이란, 얼마나 일방적으로 적들을 불리한 위치에 가둬놓고 불합리하게 쥐어패는가에 따라 상책 중책 하책이 가려진다.

“정파의 장점은 첫 번째가 명분, 두 번째는 명분, 세 번째도 명분이 아니겠습니까.”

“그야… 그렇습죠. 정파하면 명분이니까…….”

정파를 양지로, 사파를 음지로 가누는 게 어째서인가?

둘 다 국가의 지엄한 법도로 나누자면 불법 도검 패용의 범법자 집단이지만, 또 세상 돌아가는 입장에서 보면 한쪽이 한쪽을 일방적으로 쥐어팰 수 있는 명분을 가졌다는 큰 차이가 있다.

“자, 정천맹이 광동 땅에 발을 들여놓음과 동시에 첩보 하나가 전해질 겁니다. 그건 바로 사패천이 대군을 이끌고 강남에 도달했다는 내용이지요.”

여기까진 진실.

“그런데 세상에, 광동 땅에는 뿌리 깊게 내린 사파의 거대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패천과 결탁하여 정천맹의 병력은 안팎으로 기습하려는 첩보가 추가로 전해지는 겁니다.”

“아니, 잠깐.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거대 세력?

하오문 정도면 충분히 거대 세력이 맞다.

비록 그 근본이 소매치기나 기녀 노름꾼 같은 하류층의 집단이라지만, 본단이 위치한 광동쯤 되면 그 위세가 구파일방이라도 한 수 접어줘야 되니까.

다만,

“본문은 높은 확률로 그들과 결탁하지 않았습니다요!”

그거랑 하오문이 사패천과 결탁했던 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아, 물론 그럴 수 있겠지요.”

하윤호의 외침에 육언은 천연덕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게 꼭 중요할까요?”

“…예?”

“하오문이 실제로 사패천과 결탁했든 안 했든, 그게 그리 크게 중요한가 하는 말입니다.”

“아…….”

이해했다.

정말 이해하기 싫지만, 이해해 버렸다.

“정파의 명분이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관계의 전후가 중요치 않은. 일단 결론 짓고, 추론과 검증은 그 이후에 해버려도 되는. 그 압도적인 폭거가 정파의 명분이 아니겠습니까.”

역사 속에서 여러 번 검증된 사실.

그리고,

“이 대전략을 가장 먼저 세워서, 직접 실행하여 훌륭히 성공시킨 분이 바로 지부장님 아니십니까.”

“…….”

애초에 있지도 않던 사패천을 강남 땅에 있는 것으로 둔갑시켜버리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각 정천맹의 중진들과 명숙들에게 협박 서신을 보내 그들을 충돌질했던 당사자.

오히려 있는 것들을 기반으로 진실을 꼬아버린 자신보단, 아무것도 없던 공백에서 거짓을 흩뿌려 훌륭히 한 폭의 그림을 그려버린 그쪽이 더 대단한 것 아니겠냐고.

천재 군략가의 말에 하윤호는 허탈하게 웃음 지어 버렸다.

“하하… 하… 그건…….”

“자, 거기까지.”

짝―

그 모든 풍경을 지켜보던 내가 끼어든 것도 거기서부터였다.

“대충 결론이 났으면, 이제 빨리빨리 수긍하자고.”

잔뜩 힘이 빠진 녀석의 표정을 보는 건 영 기분이 좋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실, 이 정도는 너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잖아? 그냥, 생각하기 싫었을 뿐이지.”

육언이 천재 군략가라면, 하윤호는 정보를 수집하고 모략을 꾸미는 모사라고 할 수 있다.

몇 달 동안이나 헛된 시간만 허비하던, 정천맹이라는 거인을 움직이게 만든 하윤호가 이런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럴 리가 있나.

“그래도 자기 집이라고,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 같지만. 더 하다간 그 몸뚱이에 난 종기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까지 커버릴 거야.”

“…후우.”

그사이 십수 년은 더 늙어버린 하오문의 지부장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이번 대전쟁을 꾸민 세 명의 의견이 만장일치 된 셈.

“그럼, 바로 시작하지요.”

굳이 사패천과 싸우지 않고, 그들을 통과시킴으로써 그들을 명분으로 써먹는.

그리고 일방적으로 칼자루를 쥐고 저 너구리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마음껏 찔러버릴 수 있는.

“아, 그전에. 이번 작전의 이름은 무엇이 좋겠습니까?”

“제일 좋은 게 이미 정해져 있잖아?”

전쟁이 아닌 사냥의 시작.

“너구리 사냥. 그렇게 명명하자고.”

* * *

사파 사냥, 혹은 너구리 사냥.

본격적인 정천맹의 횡포가 시작됐다.

“쿠헬헬, 여기 술과 고기를 더 가져와라!!”

“아, 아직 주문할 걸 다 드시지도 않았잖습니까!”

“뭐지? 술과 고기를 더 가져오지 않아? 설마 숨기려는 건가? 이 자식! 사패천의 간자구나!!”

“아니, 그게 무슨 인과 관계…….”

“시끄럽다! 창고를 보여라! 내가 직접 안내하겠다!!”

사패천이라는 기적의 명분.

무적의 논리를 손에 쥔 정천맹은 전가의 보도라도 된 것 마냥 그것을 마음껏 휘둘러댔다.

“억울합니다! 이게 무슨 횡포……!”

“똑바로 서라, 사패천!”

뭐만 하면 사패천이라 몰아가니 광동의 주루는 단체로 정천맹의 압수 수색을 감내해야 했다.

광동은 하오문의 본문이 뿌리를 내린 곳.

원래라면 구파일방 중 일개 문파가 찾아온다 할지라도 하오문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탄압을 불가했겠지만, 하필 지금은 정천맹이란 어마어마한 군세가 집단으로 투여된 상태였다.

기존 어깨에 힘 좀 넣고 다니던 흑사파 왈패들은 알아서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아야 했고, 사패천이란 명분을 지닌 정천맹의 무리들은 이 잡듯 하오문이라 의심되는 뒷골목 영업체들을 들쑤셨다.

“야, 우리 이래도 되나?”

그 수준이 얼마나 심했는지, 파견된 사신단 대원들도 이게 맞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몰라. 장로님들이 하나도 놓치지 말고 발본색원하라잖아.”

그들의 훨씬 윗줄부터, 그러니까 아닌 밤중에 갑작스러운 협박 서신을 받아 이 이역만리 광동까지 향하게 된 정천맹의 명숙과 중진들은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

“허허… 광동의 뒷거리에 사파가 암약하고 있다고 하더이다.”

“이런이런. 그렇다면 철저히 조사하여야지요.”

“옳습니다. 사패천이라는 그 근본 없는 것들과 조금이라도 끈이 닿아 있다면 철저히 뿌리까지 파헤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당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상, 자신들의 분노를 합법적인 곳에 풀고 싶은 게 당연지사.

“샅샅이 뒤져라!”

면죄부와 명분의 칼자루가 쥐어졌으니, 남은 것은 마음껏 휘두르는 것밖에.

덕분에,

“응? 이게 뭐야.”

“아악!! 그, 그건!!”

“비밀 장부? 허 뭐야, 이 자식들 하오문 지부였어?”

소 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으로 숨겨져 있던 하오문의 비밀 장부들이 속속들이 정천맹 무인들에게 발견되기 시작했다.

“여기가 하오문 소속이란 말이지? 이 자식들, 진짜 뒤가 구린 놈들이었잖아?”

“아, 아닙니다! 저희가 하, 하오문 소속인 것은 맞지만 사패천이랑은…….”

“뭐래, 니들 똑같은 사파잖아.”

중원인들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오랑캐라 부르듯, 정파 입장에서 정파가 아닌 모든 이들은 그냥 싹 다 모아 사파였다.

“구속시켜!”

오랏줄이 하오문 끄나풀들을 하나둘 엮어 근방 관아로 안내했다.

아무래도 하오문 소속으로 국법 한 번 안 어긴 이는 없을 테니, 설령 그들이 사패천 소속은 아닐지라도 그들 하나하나가 정천맹 소속 무인으로선 ‘공로’로 인정받을 만한 것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둘 잡혀가기 시작하니―

“젠장!!”

그 사실을 속속들이 보고 받고 있던 하오문주는 마침내 꼭지가 돌아버렸다.

“이 정신 나간 놈들이! 왜 여기서 이 지랄들이냔 말이다!!”

요즘 강북에서 사패천이라 불리는 놈들이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야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강 너머에서 일어나는 불 난리와 같은 것.

그걸 왜 하필 방화범들의 증거를 강 건너 불구경하던 엄한 집에 와서 찾아내겠다고 이 난리를 부린단 말인가?

“젠장! 젠장! 젠장!!”

한참을 욕지거리를 뱉으며 난동을 부리던 하오문주가 돌연 우뚝 정지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버럭 소리쳤다.

“빌어먹을!! 당신네들은 이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이오?”

“…어이가 없군. 왜 내게 책임을 전가하는 거지?”

“책임 전가? 내가 더 어이가 없군.”

진정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는 흑의인을 향해 하오문주가 두 눈에서 불꽃을 피워올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대들 교(敎)에 대한 정보마저 저 정천맹 놈들에게 새어나갈 것이란 걸 진정 모르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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