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이즈음 광동 땅에 가지를 뻗고 있던 하오문의 정보망은 뿌리부터 말라가고 있었다.
정천맹발 정의의 협객들이 사파라면 쥐 잡듯이 패둔 덕에, 그들이 뿌려 놨던 정보원들이 타의적 실직자가 된 것이다.
그렇게 그늘을 드리웠던 정보 집단이 사라진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하오문 사천지부의 인원들이었다.
물론 그 겉 포장은 어디까지나 정천맹 소속의 정보 집단인 조서당(鳥鼠堂)이었으니―
대외적으론 사패천과 하오문의 연결 고리를 수색하고, 내부적으론 거기에 더해 마교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그들 덕에 마교와 사패천이 같은 산맥에 사이좋게 처박혔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여튼 사파 놈들이나, 마교 놈들이나.’
괜히 사마외도(邪魔外道)라 하여 함께 묶이는 게 아니다.
‘하는 짓거리가 아주 똑같지.’
마교도 놈들이야 원래 이곳 지역 유지인 하오문 본단과 연계해서 괜찮은 자리를 알아냈다 치지만, 사패천 이놈들은 근본이 산적 놈들 아니랄까 봐 관병을 피해서 명당에 터 잡는 솜씨가 예술이었다.
“이딴 곳은 또 어떻게 알아낸 건지.”
중단전을 일깨운 뒤 천잠무흔(踐潛無痕)을 발동,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까지 파고든 뒤 주변을 훑었다.
‘숨긴다고 숨긴 거 같지만, 다 숨기긴 무리가 있겠지.’
과연, 조서당으로 위장 취직한 하오문 정보원들이 말한 사패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규모 부대가 움직이며 남길 수밖에 없는 흔적들이 채 숨겨지지 않아 곳곳에서 발견되었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전에 만들어진 흔적 역시 알아챌 수 있었다.
물론, 그걸 알아채는 게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되는 나뭇가지의 부서짐에서부터, 어느 나무 밑동에 모여 있는 한 줌 정도 되는 나뭇잎의 메마름과 눈에 힘을 주고 봐야 할 정도로 미세하게 다른 토양의 뒤섞임 등등.
그 어느 것도 추적술의 달인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면 알기 힘들고, 분명 앞서 지나간 두 집단도 가능한 자신들의 존재를 은폐하려 한 노력이 확연히 남아 있는 아주 미세한 흔적들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안 좋았어.’
이렇게 숨고 숨기며 또 그걸 헤집는 지루한 숨바꼭질은, 삼십 년 전 중원 땅에서 가장 넓은 산맥을 자랑하는 십만대산에서 질릴 정도로 했다.
‘매복한 놈 찾아내야 했고, 질긴 목숨줄 부여잡아 보겠다고 숨은 놈 찾아 죽여야 했지.’
찾아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으니, 마교도와의 전투에서 나 역시 목숨이 경각에 달할 뻔한 적이 여럿 있어 흔적을 싹 다 지우고 숨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추종술과 추적술, 은신술은 그때 정점을 찍었고, 당궁상에게 알려주었던 천잠무흔은 이 과정을 거쳐 전혀 다른 권능의 영역에 도달했다.
그렇기에 사패천이 숨은 방향을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었다.
‘저기구나.’
이곳 지역의 약초꾼과 사냥꾼으로부터 구해 온 정보를 바탕으로 다섯 장의 지도를 만들어 냈다.
거기에 더해 흔적이 남긴 방향을 쫓아가니 산채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그리고.
‘여기가 저들이 식수를 공급할 수원이고.’
저들 엄마 말도 안 듣고 자라났을 사파 놈들을 이끌고 있을 누군가.
그놈이 대체 뭐 하는 놈인지는 정보가 부족해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행적만 봐선 뱀처럼 간교하고 독처럼 음습할 성향일 가능성이 컸다.
‘사패천이 결성되기 전까지 산적 놈들을 자제시키고, 일거에 일으켜 거대 세력을 일구었다. 그리고 완벽한 정보 장악력을 토대로 정천맹이 알기 전에 다른 구패를 들이쳐 흡수, 복속시켰지.’
정천맹을 만드는 과정도, 여기까지 오는 계획도 화끈하기 그지없었지만 놈이 보인 행적은 분명 이것보다 더했다.
그렇게 화끈하면서도 침착하였으니, 천하를 자신의 대국(大局) 위에 올리며 가늠하던 놈은, 과연 자신이 타인의 의지로 또 다른 대국 위에 올라서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
‘당연히 자중하며 상황의 추이를 보지 않겠어?’
우리가 광동 땅으로 온다고 하자 곧바로 이곳까지 따라올 정도의 행동력을 가졌지만, 그건 곧장 맞서 싸우겠다는 뜻이 아니라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정보를 확보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해야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정천맹이 화려하게 광동 땅에서 날뛸 때는 옳다구나 하고 우리의 행보를 관측할 가능성이 컸다.
‘혹시나 하오문이 반발하면 이득, 거기서 분쟁이 일어나면 정천맹이란 신생 집단의 무력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더한 이득이지.’
읽힌다, 읽혀.
뱀 같은 놈의 사특한 수작질이 말이다.
하지만,
‘네놈도 분탕질 좀 친 것 같은데. 나도 한 분탕질 치거든.’
그런 놈들이 밥 먹고 남들 이간질만 시키느라 분탕질 치는 게 특기인 놈들이지만, 또 그런 놈들 잡는 게 내 특기다.
‘그래서 잘 알지. 그런 놈들은 대개 남을 더럽게 못 믿는다는 것.’
분탕질을 친다는 건, 인간 본연에 가진 뿌리 깊은 인간 불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저 자신부터가 다른 사람을 못 믿기에 다른 사람들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확신을 가진 놈들이다.
사파 놈들 태생이 그렇다.
“힘과 이권을 위해 뭉쳤을 땐 누구보다 뿌리 깊게 얽힌 것 같지만, 그게 뜯겨 나가는 것은 결국 한순간이지.’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한 번에 끊을 독을 가지고 있다.
첨벙―
정보를 관측한다는 것은 이들이 이곳에 머물 시간이 길어진다는 뜻.
애초에 산채를 세운 것부터가 장기전을 예상했다는 뜻인 만큼, 설혹 끼니야 가져온 식량을 통해 해결한다 치더라도 식수는 이곳 산맥의 수원을 통해 공급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크르르…….
자기 차례가 된 걸 알고 고개를 든 탐(貪)이 기껍다는 듯 울음소리를 냈다.
‘네놈들을 위해 준비된 가장 지독한 녀석을 준비해 주마.’
먹자마자 죽는 극독은 안 된다.
여기까지 찾아온 놈들 전부에게 공평히 선사되야 할 독은 무색(無色), 무향(無香), 무취(無臭), 무미(無味)함은 기본에, 경지에 닿은 놈도 그 효과가 어지간히 돌기 전까지는 그 정체를 눈치채선 안 된다.
모든 이들의 체내에 독효가 뿌리 내릴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그만한 잠복 기간은 가진 놈이어야 했고 또 이 넓디넓은 산맥의 물길을 타고 흐르느라 다 중화되서 사라져서는 안 될 질긴 놈이어야 했다.
실로 복잡한 주문 사항이지만, 다행히도 이 게으르고 까탈스러우며 흉폭하기도 한 놈은 그럴 재주가 있었다.
- 크르르…….
정신에 직접 들려오는 듯한 울음소리가 퍼져 나가고, 장심(掌心)을 통해 검푸른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처음엔 검푸른 색이던 그것은 어느 순간 물에 녹듯 사라져서 완전히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나, 그렇다고 진짜 사라진 건 아니었다.
‘잘 흘러가는구나.’
저 멀리 흘러가는 독기(毒氣)가 내 눈에는 보였다.
인세(人世)에는 존재하지 않던, 중단전을 통해 활성화시킨, 오로지 탐(貪)의 권능으로만 만들어낼 수 있는 극독.
그것이 저 어딘가에 숨어 있을 산적 놈들을 향해 흘러 흘러 들어갔다.
“자, 이제.”
서로 죽여라.
* * *
상인은 부지런해야 한다.
한낱 보부상으로부터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흑상이 한 번도 어겨본 적 없던 기치였다.
강남에 도착하자마자 부지런히 사람을 풀어 정보를 모았고, 요충지를 발견하자마자 부지런히 움직여 터를 잡았으며, 터가 괜찮으니 부지런히 녹림도를 부려 산채를 지었기까지 했으니, 순식간에 완성된 산채를 바라보며 녹림의 투왕은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상천이야. 사람 부리는 솜씨가 일품이군.”
“과찬이십니다.”
따지고 보면 가만히 있던 자신의 부하들만 일을 시켜 완공해 낸 산채지만, 조취산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건 흑상 역시 마찬가지.
자신이 부하를 부림에 조취산이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파악한 뒤론 다른 쪽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이상하군.’
그들의 산채는 전방으로 탁 트여 있어, 아래를 바라보면 적막한 산하가 보이고 거기서 안력에 더욱 집중하면 광동성 일대를 훑을 수 있었다.
경지에 이른 고수라면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주변 일대의 병력 움직임을 관측할 수 있었고, 흑상 역시 그런 고수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곳에 터 잡은 이후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고 광동성 일대의 흐름을 관측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병력의 움직임이 없군.’
광동성 일대에는 대규모 전투를 치르기에 적합한 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강남 땅을 밟았다는 소식이 분명 전해졌을 텐데, 정파 측에선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아니, 움직임이 없지는 않아 분명 있다.
‘꽤 요란한 움직임이 있지. 마치, 대놓고 자신들이 뭘 하는지 보라 하는… 잠깐.’
생각이 거기까지 와닿았을 때 흑상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고, 투왕이 말을 걸어온 것도 동시였다.
“상천. 표정이 계속 좋지 않군.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응? 모르겠다니?”
“지금까지 저희는 사패천의 이름으로 만들어놓은 대국(大局) 위에 다른 이들을 끌어들여 왔습니다. 사패천이라는 이름의 천하가 만들어 갈 그 판 위에 말입니다.”
그건 책사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딱히 어느 책사가 더 뛰어남에 상관없이, 하나의 책사가 하나의 책략을 짬은 곧 상대방을 자신이 만들어놓은 대국 위에 끌어들임이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를 끌어들인 이들은 누구인지, 저희가 싸워야 할 이는 누구인지, 심지어 이 대국이 무엇을 위함인지까지.”
“허 참, 천하의 상천이 아무것도 모르고 당하고 있다는 뜻인가?”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 어떤 목적도 의도도 찾아볼 수 없는 헛짓거리뿐.
그것도 이렇게 대놓고 행하는 헛짓거리라면, 분명 시간 끌기가 분명할 터.
그에 흑상이 불안감을 드러낼 때,
“저희가 이 터에 자리 잡은 지도 어언 이 주.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슨…….”
“총 채주님!! 큰일 났습니다!!”
그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독입니다! 지금 산채 전체에 중독 증상이 보이고 있습니다!!”
“독이라고?!”
설마.
불길한 예감이 물씬 풍겨왔다.
“부하들의 상태가 어떻지? 아니, 지금 당장 안내해라!”
조취산은 곧장 급보를 알려온 산적을 앞세워 병영으로 향했고, 흑상 역시 그 뒤를 따라 달려갔다.
그리고,
“끄으으…….”
“으윽… 우웩!”
“사, 살려줘…….”
발견한 것은 이곳이 병영(兵營)인지 병동(病棟)인지 알 수 없는 현장.
“이게 어찌 된 거냐!!”
분노에 찬 일갈이 터져 나왔고, 그를 안내한 산적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며 답했다.
“여, 여느 날과 같았습니다……. 다들 식사를 끝낸 뒤 순찰을 돌고 있는데, 하나둘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지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여느 날과 같다고? 아무런 사전 징후도 없었단 말이냐?”
“그, 그렇습니다!”
산적 하나가 자신의 무고함을 토로하고 있을 때, 서늘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중독 증상이 맞소. 식량에는 이상이 없고, 식수에 이상이 있더군.”
“…흑시문주.”
강시를 다루는 흑시문의 문주.
강시라는 게 사람의 시체를 기본으로 각종 약물과 독물이 첨가되어야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이중 독에 관한 가장 해박한 지식을 지닌 게 그였다.
“독이라면… 정천맹 놈들을 말하는 것이오?”
정천맹에는 사천당가가 있다.
당연 독이라 하면 그들을 떠올리는 게 맞지만,
“글쎄. 애매하더군.”
흑시문주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주술독(呪術毒)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