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어디선가 거대한 대전이 발발하고 있을 때, 당불퇴는 성도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불안한 표정의 구중보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저… 형님.”
“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뭘 하고 있냐니. 당연히 수색이지.”
당유혼은 말했다.
이 근방에 분명 마교도 놈들과 연관된 흔적이 있으니 머리털 한 올까지 다 뒤져보라고.
“가끔 정신 나간 소리를 종종 하는 대형이시지만, 그래서 범인은 상상도 못하는 결과물을 가져오는 대형이시니까. 분명 뭐가 나오긴 나올 거다.”
“아니…….”
당가가 마교에 가진 분노와 증오는 들어 알고 있다.
멸문지화의 은원이란 결코 가벼울 수가 없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아니, 그래서 더욱 말해야 했다.
“그러니까… 그걸 왜 여기서 찾냐는 겁니다…….”
다른 이들은 하오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주루나 기루를 뒤적이고 있었다. 실제로 소득이 있어 그들의 흔적을 발견한 이들이 한가득이며, 경쟁하듯 실적을 쌓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들은 이런 곳이나 뒤적이고 있는가?
“대장간에 푸줏간, 비단점… 이런 곳을 찾는다고 흔적이 나오겠습니까…….”
진심 어린 충언을 던져오는 구중보였지만, 당불퇴는 오히려 쯧쯧― 혀를 차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중보야, 중보야. 남들이 다 가는 길을 따라가면 결국 남들이 다 가는 곳으로밖에 도착하지 못하는 법이다.”
뭔가 굉장히 있어 보이는 말.
하지만,
‘그러다가 아무 곳도 도착 못할 것 같으니 말씀드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암만 존경하는 형님이라도 이건 진짜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형님?”
한결같이 당당한 보무로 척척 걸어 나가던 당불퇴의 걸음이 문득 멈추어졌다.
뭔 일인가 싶어 축 처졌던 고개를 들어보니,
“중보야. 여기 이상하지 않냐?”
웬 푸줏간 앞에 멈춰선 당불퇴가 팔짱을 낀 채 잔뜩 분위기를 잡고 있었다.
“…예, 뭐. 어떤 것이 말입니까?”
“음…….”
이상하다.
무지무지 수상하다.
하지만,
‘…뭐가 수상한 거지?’
일단 자신의 감각은 이곳이 무지막지하게 수상하다 하고 있으나, 사실 당불퇴도 뭐가 수상하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이라 했다간 안 그래도 자신을 데리고 사람 많은 곳으로 데려가고 싶어 하는 저 보모 같은 동생 놈이 입술을 댓 발 튀어나와서 자신에게 잔소리를 해댈 게 분명했다.
그런 끔찍한 결말만은 차마 피하고 싶어 하는 당불퇴였기에 애써 뭔가 하나라도 껀덕지 잡을 게 없을까 열심히 눈을 굴렸다.
‘수상한 거… 수상한 거, 수상한 거… 그러니까… 응?’
그렇게 눈알을 굴려대던 당불퇴는 결국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너무나 수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보야. 푸줏간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깨끗할 수가 있나?”
“…예?”
“내가 아는 푸줏간이라는 건, 한여름이 아니더라도 앵앵대는 날파리들로 넘쳐나는 곳이거든. 그런데 여기는 그런 게 없네?”
사천도 한더위 하는 곳이지만, 광동은 더한 곳이다.
거기다 습하긴 또 얼마나 습한지, 당가의 독물과 관련된 서적에는 광동 땅이 독충이 자라나기 좋은 곳이라 쓰여 있기까지 했다.
‘그런 곳인데, 이렇게 날파리 하나 없다고?’
“그야 뭐, 관리를 잘했기 때문… 자, 잠깐! 형님!! 갑자기 내공은 왜 끌어올리시는……?!”
구중보의 기겁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대형. 자기가 다 책임질 테니 마음껏 뒤엎으라고 하신 거, 내가 분명히 기억합니다?’
이미 당불퇴는 내면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니―
“다 엎어버려. 책임은 내가 진다.”
당불퇴는 자신의 직감이 말하는 가장 의심스러운 곳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콰쾅!!
“혀, 형님! 애꿎은 지면은 왜……!”
그건 바로 그들이 밟고 선 지면!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에 콜록거리는 기침을 하던 구중보였지만, 이내 연기가 걷히고 그 안에서 발견된 것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어… 이, 이건……?”
커다랗게 뚫린 구멍, 그리고,
“왜 여기 공간이……?”
그 구멍보다 더욱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파팟!
그리고 그 구멍 사이로 누군가가 솟구쳐 올랐다.
“…운이 없는 놈들이로군. 그냥 지나쳐 갔으면 곱게 보내줬을 텐데…….”
솟구쳐 오른 이는 저잣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정과 같은 차림새를 입고 있었다.
하나 풍겨오는 기세가 결코 한낱 백정 따위는 아니었다.
‘나보다 결코 아래가 아니야. 미친, 정말 형님의 말씀대로…….’
상대방이 자신보다 훨씬 윗줄의 고수라는 사실에 구중보의 몸이 딱딱히 굳을 때,
“뭐래는 거야. 난 곱게 보내줄 생각 없었는데.”
당불퇴는 히죽 웃으며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형님! 물러나셔야 합니다! 저 놈은 저희가 함께 덤벼도 못 이깁니다!”
“뒤의 놈은 그나마 감이 좋군. 하지만 어쩌지? 너희가 내 얼굴을 본 이상, 살려둘 생각은 없다.”
“큭…….”
넘실거리는 살기는 상대가 이미 자신들을 살려 보낼 생각이 없음을 처절히 알려주었다.
하나,
“그래? 나는 널 얌전히 살려서 데려가야 하는데. 내가 좀 불리하겠네.”
어느샌가 넘실거리는 내공에 둘러 쌓인 당불퇴는 이미 싸울 생각으로 만반이었다.
“혀, 형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길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그 사실을 느낄 정도이니 그의 형님이 느끼는 무력함이야 그 이상이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구중보는 오히려 한 걸음 더욱 앞으로 내디디며 물어왔으니―
“중보야. 내 이름이 뭐냐?”
“불퇴… 형님?”
“그래. 내 이름은 당불퇴.”
물러서는 것 따윈, 배우지 않은 남자다.
콰앙!!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당불퇴는 앞으로 쏘아지듯 내달렸다.
말 그대로 쏜살같이, 시위를 떠난 화살 같이 상대방을 향해 뛰어든 당불퇴는 내공이 잔뜩 담긴 주먹을 장전해 휘둘렀다.
쩌어엉!!
그리고 울려퍼진 굉음.
찰나의 순간, 옆에 놓여져 있던 도축용 박도를 집어 들어 권격을 막아낸 사내가 흐릿하게 웃었다.
“흐, 그렇게도 먼저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주지.”
파파팟!!
다음 순간 사내의 도가 눈에 채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휘둘러졌다.
푸확!!
“형님!!”
허공에 그려진 붉은 선이 당불퇴의 몸 위에 낙서처럼 새겨졌고, 그 자리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고기가 질기고 가죽이 두껍군.”
사내가 씹어뱉듯 뱉었다.
얼핏 보기엔 치명상을 입힌 것 같지만, 실제로는 겉만 베고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당불퇴 역시 히쭉 웃었다.
“어쩌냐, 소원을 이루어주기엔 힘들어 보이는데?”
구웅!!
다시금 내공을 담은 주먹이 휘둘러졌다.
얼마나 강대한 힘이 실린 건지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허공의 대기가 압축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느려터졌군.”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 권격을 피해 낸 백정은 뒤이어 밀려오는 풍압을 아무렇지 않게 거스르며 도를 휘둘렀다.
푸화아악!!
“어떠냐, 이번은 제법 깊지 않나.”
가슴팍이 베이며 선혈이 흩뿌려졌다.
그 붉음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구중보는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끊겨나감을 느꼈다.
“이노오옴!!”
패왕권(覇王拳).
패천일권(覇穿一拳).
항상 권사의 주먹은 침착해야 배워온 구중보지만, 분노에 눈이 멀어 내지른 일격은 그 가르침이 무색할 정도로 강맹했다.
내지른 구중보 역시 자신이 이 정도의 주먹을 내지를 수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일격.
그러나,
“이놈은 더 느리군.”
자신이 처음 도달해보는 속도의 세계에서도, 상대방은 그저 산보라도 나온 듯 이죽거리며 도축용 박도를 휘둘러왔다.
그리고, 이질적이게도 그 속도는 무척이나 느릿느릿해 보였다.
‘느리… 다… 고…?’
느리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느린 것은 박도의 속도뿐만이 아니었으니, 홀로 중얼거리는 자신의 혼잣말은 그보다 더욱 느릿느릿했다.
마치 굼벵이가 기어가는 듯한 사고의 흐름 속에서 구중보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주마등이라고.
‘죽… 는… 다……?’
목전으로 휘둘러져 오는 박도.
눈을 질끈 감기에도 부족한 그 찰나의 순간,
쩌엉!!
“흐, 어딜 가시나?”
느려터진 속도의 세계를 박살내며 내리꽂힌 주먹이, 휘둘러져 오던 박도의 궤적을 바꾸며 나타났다.
“…허업!”
뒤늦게 모든 속도가 원상태로 돌아오며 거친 숨을 내쉬는 구중보가 눈을 부릅 떴다.
“혀, 형님?!”
“물러서라. 네 상대가 아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는 결코 물러날 수 없다고 했으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도망치라 말하는 당불퇴를 보며 구중보는 목이 메여 오는 걸 느꼈다.
‘도망치라고? 젠장! 그럴 수는 없어!’
두려움에 후들후들 떨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바로 섰다.
그 모습에 굳은 결심을 느낀 당불퇴는 굳이 두 말하지 않고 눈앞의 사내를 응시했다.
“어이, 당신. 이름이 뭐지?”
“곧 죽을 놈이 별게 다 궁금하군.”
“나는 사천당가의 당불퇴 님이시다. 너도 밝힐 만한 이름이 있다면 당당하게 밝히시지?”
“하?”
원래라면 무시할 말이었다.
하지만 ‘당당하게’라는 말이 사내의 심기를 자극했다.
‘빌어먹을 정파의 후손 놈. 당당하게라는 말이지?’
평생 타인의 발밑에서 짓밟히며 살아온 하오문의 문주.
그런 그에게 있어 당당하다는 말은 거리가 있는 말이었고, 그렇기에 그의 변덕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좋다. 지옥에 가면 염라대왕에게 말해라. 당대 하오문의 문주, 가을량이 보내서 왔다고!”
그 말과 동시에 가을량의 박도가 날아들었다.
하오문의 문주라는, 자신의 신부를 밝히며 날아드는 박도는 실로 무시무시한 속도를 자랑했다.
‘역시.’
하지만 당불퇴는 놀라지 않았다.
상대의 정체가 자신의 생각보다 더한 거물이라는 것도, 지금 이렇게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로 날아드는 무시무시한 박도의 속도도.
이미 걸음을 내디딜 때 그는 각오를 다졌기에,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보단 자신이 해야 할 것에 집중했다.
‘한 번이다.’
자신이 발할 수 있는 유일한 변수.
그마저도 상대방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으리란 확신은 가질 수 없지만, 그 유일한 것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당불퇴가 결심을 내리는 순간, 그의 심장으로부터 검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르르륵!!
“뭣?”
검푸른 불꽃에 휩쌓인 당불퇴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가을량의 칼질은 애꿎은 허공을 갈랐고, 그가 고개를 돌리기 전에 당불퇴는 상대의 배후를 점했다.
“크아아아!!”
뜨겁다.
그리고 괴롭다.
그가 개방한 중단전은 다른 형제들과는 달랐다.
이능(異能)이라 불릴 만큼 특이하고 남다른 재능을 얻게 된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당불퇴는 중단전으로 얻은 힘마저 단순하고 무식했다.
빨라지고, 강해지는 게 고작.
그 대가로 얻는 것이, 다른 방계들에게는 구경도 할 수 없을 끔찍한 고통이라지만―
‘그만큼, 나는 강해진다!!’
당불퇴는 순간이나마 가을량이 보이던 속도의 세계에 발을 걸치는 데 성공했으니,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검푸른 불꽃을 뒤짚어쓴, 진정한 의미의 푸른 야수가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