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어처구니가 없군.”
믿기 힘든 결과였다.
가을량은 눈앞에 벌어진 현실이 믿기 힘든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단(丹)을 먹었음에도 위험했다니…….’
아슬아슬했다.
찰나의 순간, 상대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지더니 자신을 위협해 왔으니까.
실제로 그 순간 몇 배로 강맹해진 일권은 자신의 박도를 반파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끄으으…….”
“혀, 형님!!”
당불퇴의 분전은 거기까지.
박도가 반파되는 순간 몸을 빼낸 가을량은 더욱 빠른 속도로 파고들며 당불퇴의 복부에 박도의 파편을 쑤셔 넣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속도로 상대방을 찍어누른 셈이지만, 가을량은 자신이 위기감을 느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벌레 같은 것. 요행에 기대서 일격을 날리는 것이 고작인 주제에 나와 대적하려 했느냐.”
너의 주먹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 모든 것을 비웃으며 이죽거리는 가을량에게,
“흐… 당신,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구만?”
피를 철철 흘리는 당불퇴는 고개를 들며 마주 웃었다.
“…뭐?”
“맞잖아. 상승 도법에 고강한 내공. 눈으로 좇기도 힘들 속도까지. 모든 게 나보다 윗줄이지만…….”
분명 그렇기는 하지만,
“어설프잖아.”
“……!!”
울컥―
“다 죽어가는 주제에 입만 살았구나!”
가을량으로부터 무시무시한 살기가 치솟았다.
고강한 내공이 만들어내는 무형의 살기는 가뜩이나 핏물을 게워내던 당불퇴의 기혈을 뒤집어 버렸고, 또다시 한 사발이나 되는 울혈을 토해 내야 했지만,
“흐흐, 당신이 완벽했다면… 나는 진작에 죽었겠지.”
입가에 검붉은 피를 치덕치덕 묻힌 채로도 당불퇴는 미소를 머금었다.
“어설픈 흉내는 관두고, 진짜를 보여주시지?”
“진짜? 큭… 크흐흐… 큭큭큭… 진짜라고?!”
‘뭐, 뭐여?!’
당불퇴는 가벼운 도발을 던진 것 뿐이었지만, 그 효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가뜩이나 가을량을 중심으로 몰아치던 살기 섞인 기세가 더더욱 무시무시해지더니, 마치 폭풍이라도 강타한 것마냥 주변에 있던 집기들이 휘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좋다!! 좋다고!! 진정 진짜를 보길 원한다면, 응당 보여줘야겠지!”
도축장 벽 한편에 걸려 있던 기다란 꼬챙이 하나가 날아들었다.
그것을 움켜쥔 가을량의 손아귀로부터 검은 안개가 생겨나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십년 전 광동을 공포에 떨게 했던 흑살검귀(黑殺劍鬼)의 흑살검무다. 흑살검기에 닿는 순간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고, 그에 당한 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음을 맞이한다지.”
네가 원한 게 이것이겠지?
“내, 내가 언제?!”
당불퇴는 직감했다.
저건 못 막는다고.
‘몸 상태가 최상이라도 답이 없는데, 저걸 어떻게 막아?!’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는 당불퇴였지만, 흉폭한 미소를 머금으며 달려드는 가을량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주마!!”
검은 죽음이 눈앞을 가득 채울 때!
“혀, 형님!!”
채앵―
챙!
구중보의 비명을 가르며, 두 자루의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다, 당신들은…….”
“당형, 괜찮소?”
“비켜라. 내가 먼저 왔다.”
좌우 측에서 뻗어져 흑살검무를 막아낸 검과 도.
각기 다른 병장기를 쥔 둘은 곧 무림에서 검룡도호(劍龍刀虎)라 불리우는 이들이었으니,
‘남궁수… 팽천강?!’
그들 둘이 장내에 나타난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 비켜라. 내가 먼저 왔다.”
“젠장, 자기가 더 늦게 왔으면서 센 척하긴!”
둘의 관계는 말 그대로 용호상박.
도저히 친하다고는 할 수 없는 둘의 말다툼에 뒤늦게 정신 차린 당불퇴가 소리쳤다.
“조, 조심하쇼! 저놈 더럽게 세!!”
“안 그래도 그래 보이기는 하구만.”
“마지막으로 말한다. 비켜라, 내가 먼저 발견했다.”
“이 어린놈의 자식들이?!”
얼마나 자신을 얕잡아 본 것인지.
검을 맞댄 상태로 한 명은 만담을, 또 하나는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현실에 가을량은 흑살검기를 더더욱 거칠게 뽑아내며 꼬챙이를 휘둘렀다.
콰아앙!!
그 위력은 확실히 강력해 검룡도호가 함께 날붙이를 맞댔음에도 뒤로 밀려나야 했다.
하지만,
“뭐야?”
“…반푼이군.”
당불퇴가 몇 합을 교환해서야 깨달았던 것을, 그보다 재능이 넘치도록 뛰어난 둘은 단 일 합의 교환만에 직감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구만?”
“칼끝이 흔들리는군.”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둘.
그에 가을량의 표정은 더더욱 일그러졌다.
“애송이들이, 입만 살았구나!!”
검은 연기로 휩싸인 꼬챙이가 휘둘러지며, 흑살검기가 사방으로 폭사했다.
그때마다 둘은 뒤로 반걸음씩 쭉쭉 밀려나야 했고, 그 모습을 보며 가을량은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제아무리 후기지수 중 수위를 다툰다고 칭송받아도, 겨우 둘로 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후기지수는 후기지수일 뿐이라고, 고작 둘로는 우습다고 소리치는 가을량이었으나,
“둘이 안 된다면, 넷은 어떨까?”
그에 답하듯 이번엔 반대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 저도 끼워 주시는 건가요?”
이번에 나타난 이는 진혁수와 현무단주 자영.
사실상 사신단의 단주를 맡은 네 명이 전부 모이자 가을량의 안색도 딱딱히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이… 애송이 놈들이……!!”
“애송이라, 그럼 우리가 협공을 한다 해도 불만은 없겠지?”
가을량의 분노를 가볍게 받아넘긴 진혁수가 자신의 쌍검을 뽑아 들었다.
“협공은 내 취향은 아니지만… 쩝, 상황 가릴 때가 아니기는 하지?”
“흥, 기껏해야 사마외도를 걷는 금수와 같은 놈. 금수를 사냥함에 협공이라는 말은 우습다.”
“그렇다고 하네요?”
나머지가 각기 돌아가며 자신의 병장기를 들어 보였고, 그에 진혁수가 먼저 청운적하검을 전개했다.
청운적하검(靑雲赤河劍).
적하만연(赤河漫然).
붉은 안개가 생겨나 가을량의 주변을 뒤덮었다.
적하에 뒤덮인 가을량은 자신의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버럭 소리쳤다.
“정파라는 놈이, 어디서 사술을 펼치느냐!!”
가만 놔두었다가는 결코 좋은 꼴을 못 볼 게 분명하다 싶자 가을량은 재빨리 흑살검무를 펼쳤다.
이 안개의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그의 흑살검기로 갈기갈기 찢어버리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때, 어느샌가 지척에서 나타난 자영이 뱀처럼 두 자루 검을 휘둘러왔다.
“이런, 그러면 안 되죠.”
“큭?”
자영의 검은 특이했다.
베는 것도 찌르는 것도 아닌 것이, 순간적으로 가을량의 사각에서 나타나 그가 검을 휘두르는 궤적 사이로 자신의 쌍검을 쑤셔 넣어 검이 채 휘둘러지기 전에 그것을 저지해 낸 것이다.
철저하게 상대의 허를 찌르고 그것을 방해하는 독특한 검법에 가을량이 당황해 할때, 남궁수가 자신의 검을 높게 들어올렸다.
“꿇어라. 금수.”
제왕검형(帝王劍形).
제왕지세(帝王之勢).
쿠쿠쿵!!
잠룡전에서 무수한 후기지수들이 검조차 채 뽑아들지 못하고 무릎 꿇게 했던 압도적인 제왕의 기세!
한 층 더 그 권능을 다루는 데 완숙해진 남궁수가 그 기세를 오로지 가을량 하나에게만 집중시키자 그의 무릎이 저도 모르게 앞으로 굽혀졌다.
“크윽?!”
당하는 입장에선 전신을 짓누르는 중력이 몇 배로 강해지는 듯한 느낌!
덕분에 가을량의 자세가 무너졌을 때 팽천강은 이때다 싶어 달려들었다.
“좋아! 딱 붙잡고 있으라고!!”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삼호풍생(三虎風生).
세차게 몰아치는 세 갈래의 도기가 팽천강의 칼끝에서 하나로 합쳐졌고, 단번에 가을량의 목을 벨 기세로 날아들었다.
“크아아아!!”
“크악?!”
그야말로 간발의 차.
생사의 찰나에서 가을량은 더더욱 내기를 끌어올려 자신을 짓누르던 중력을 이겨내고, 적하를 갈라낸 뒤, 자영의 쌍검마저 튕겨내며 꼬챙이를 휘둘렀다.
그 과정에서 많은 힘이 소모되었으나, 그럼에도 드러난 결과는 박빙.
아니,
“크하! 분명 어설픈데, 출력 자체가 더럽게 강하잖아!”
뒤로 나가떨어져 추하게 몇 번이나 땅바닥을 굴러야 했던 팽천강이 한탄하듯 소리쳤다.
‘내 내공이 조금만 더 심후했다면!’
이번 합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못내 아쉬운 팽천강이었고, 실제로도 기혈이 역류해 안색이 새파래졌으나 장내의 그 누구도 패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패색을 보인 건 가을량.
‘이 내가… 고작해야 반 수 정도의 이득을 취했다고?’
제아무리 차기 천하제일의 자리를 노리는 후기지수들 넷이 모였다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하오문을 이끄는 문주였다.
거기다, 그는 자신이 그간 연구해 온 비장의 수단까지 사용한 뒤였다.
‘비록, 최상품의 단(丹)이 아니라지만…….’
드러난 결과에 가을량은 믿을 수 없어 눈을 크게 떴고, 그 안에 황망히 흔들리는 눈동자에 문득 저 멀리서 수많은 무리가 몰려드는 게 비추어졌다.
“저기다!! 저기 하오문의 수괴가 있다!!”
“단주님들이 놈의 발을 붙잡고 있다!!”
“어서 가자!!”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정천맹.
진작에 광동성을 점거하고 어디에 가을량이 있을까 들쑤시고 있던 그들이 연이어 들려오는 굉음에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
분노가 한계점을 넘기면 오히려 차분해진다고 할까?
가을량의 표정은 더 이상 형언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 넷으로도 겨우 반 수 앞설 뿐인데 저들까지 끼어든다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노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머리가 차갑게 식었고, 냉정한 현실이 그에게 들이 밀어졌다.
“젠장. 애송이 놈들, 운 좋은 줄 알아라.”
포위망이 완전히 형성되기 전,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사신단의 단주들이 달려들기 전 가을량은 한 발 앞서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퍼엉― 소리와 함께 뭉게뭉게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고,
잠시 후―
“이런, 도망쳤는데?”
장내에선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 * *
“불퇴야!! 괜찮으냐?!”
“이게 괜찮아 보이슈?”
창백해진 안색의 당지명이 방 안으로 들어오며 소리쳤고, 침상 위에 기대듯 누워있던 당불퇴는 괜히 입술만 삐쭉 내밀었다.
“아파 뒈지겠수다, 형님.”
“입이 살아 있는 걸 보니 아직 명줄이 붙어 있긴 한가 보구나.”
“…아니, 그게 할말이요?”
배에 구멍 뚫린 동생이 아파 죽겠다니 오히려 안심하는 모습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차는 모습에도 당지명은 언제 안색이 창백해졌냐는 듯 평상시의 표정을 지었다.
“뭐 어떻느냐. 대형의 젓가락에 머리가 뚫리기도 했는데.”
“그거랑 이게 같은 건가 싶긴 한데…….”
뭔가 기분이 묘하지만, 마냥 부정할 수는 없는 그런 현실.
더 생각해 보다 괜히 머리만 아파지자 에라 모르겠다 싶은 당불퇴는 다시금 침상에 기대며 붕대로 감싸인 자신의 복부를 내려다봤다.
“그 양반이… 하오문의 문주였다면서요?”
“그렇다고 하더구나.”
“흠… 그 사람이 하오문의 문주라…….”
“왜 그러느냐?”
자신이 묘한 표정을 짓자 왜 그러나 싶어 물어보는 당지명이었지만, 당불퇴로서는 그런 형의 질문에 답하기가 곤란했다.
“아니, 그 양반… 뭔가 문주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말이지.”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끙…….”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당불퇴는 스스로의 처참한 언어 능력에 통탄을 느꼈다.
가장 알맞은 어휘를 짜내는 뇌가 곧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그 두통이 복통으로 이어지자 결국 당불퇴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로 결정했다.
“아, 모르겠수다. 해서, 그 양반은 잡았답니까?”
정천맹의 무인들이 몰려오고, 이곳 침실로 수송된 지 어언 반나절.
그 자리에서 가을량이 사라지는 것까지는 봤지만, 정천맹의 무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흔적을 찾기는 했을 것이다.
“아니, 아직 잡지 못했다.”
“예? 왜요?”
“흔적은 찾았고, 그가 어디로 도망친지 까지는 확인했는데… 그 이후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하더구나.”
“난항이라니요?”
그 질문에 당지명은 순간 조금 전 자신의 동생이 지었던 표정과 비슷한 걸 느꼈다.
이걸 당최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
“그러니까…….”
최대한 좋게 말하려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당지명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가 숨어든 협곡을 발견했는데, 그곳에 누가 들어갈 지로 한참 싸우는 중이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