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옛날, 한 무인이 있었다.
그리 대단한 무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 작은 상가의 후손이었고, 사실 무인이라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전 무공을 조금 익힌 수준에 불과했다.
어쩌면 평생 무림과는 큰 연이 없이 살다 죽었을 지도 모를 그런 이였고, 딸아이가 장성할 때까지도 이렇다 할 은원에 휘둘리는 일 없이 살아가던 누군가의 아비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상행을 다녀오던 그는 돌아온 마을이 엉망진창이 된 것을 발견했다.
온통 불타오르고 엉망이 된 마을의 풍경. 마을의 초입에 쓰러져 있던 이에게 들으니 그가 상단을 이끌고 자리를 비운 새 산적들이 마을을 습격했다고 하였다.
부리나케 상단으로 돌아가 보니,
“아버지…….”
반쯤 눈이 풀린 채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있는 딸과 그 아이의 앞에서 죽어 있는 아내의 시체가 있었다.
그 이후, 끔찍한 일을 겪은 딸아이는 하루하루 시름시름 앓으며 죽어 갔고,
“꽃이… 보고 싶어요…….”
얼마 못 가, 슬프디슬픈 유언을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아… 아… 안 돼…!!”
가족들이 죽고 홀로 남게 된 아비는 온종일 목놓아 울었다.
아이를 잃은 아비의 피눈물은 삼 일 동안 내리흘렀고, 시간이 흘러 다시금 세상으로 나왔을 때 그는 대를 이어온 상가를 스스로의 손으로 해체시켰다.
남은 이들에게 적당한 재물을 챙겨준 아비는 그 날로 발걸음을 옮겨 당가에 도달했다.
“부탁드립니다……. 제 모든 재산을 바칠 테니… 제게, 제게 복수할 힘을 주십시오…….”
당시, 사천당가는 자신들을 찾아온 이 방문자가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단다.
아비가 가져온 돈은 결코 적은 게 아니지만, 겨우 그것으로 산채 하나를 박살 내기에는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알아보니, 하필 그 마을을 습격한 산적은 말단에 불과하나 어정쩡한 것들은 아니었고 녹립칠십이채에 정식으로 소속된 산채였다.
고작해야 작은 마을에서 상가를 이어 오던 이가 전 재산이랍시고 바친 액수로는 녹림칠십이채와 은원을 쌓기에는 너무나 미약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돌려보내기에는 아비의 사정이 너무나 딱하였으니,
“그렇다고 가만 놔두기엔 시체 하나 치울 것 같으니…….”
그를 보다 못한 당가의 장로 하나가 그를 불러들였다.
“미리 말해 두겠네. 이건 아주 희박한 가능성을 일러주는 것에 불과하네. 하지만 그 작은 가능성의 대가로 자네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걸세.”
성공 가능성은 아주 희박한데, 그 대가로 따라오는 부작용은 확실한 죽음.
그럼에도 이 방법을 택하겠냐 묻는 당가의 장로에게 아비는 옅게 웃으며 답했다.
“제가 찾는 게, 바로 그런 것입니다.”
애초부터 살기를 포기하고 죽을 자리를 찾아온 아비의 미소는 너무나 처연하여 장로는 더 이상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대신하여 한 가지 심법을 알려 주었으니,
“…이건, 자네가 스스로 독을 복용하여 독인(毒人)이 되는 심법일세.”
당연, 전설상에 나오는 만독불침의 신체와 핏방울 하나가 극독이 되는 경지의 독인을 뜻함은 아니었다.
그저 체내에 극독이 흐르게 하고, 종국에는 스스로를 포함하여 주변 일대를 전부 중독시켜버리는 인간 독폭탄이 되는 수법이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사실상 당가 내에서 아직 미완성에다 불안정하기 짝이 없어 반쯤 폐기되다시피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감사합니다. 그저 살아생전 이 은혜를 다 갚지 못함에 송구할 따름입니다.”
아비는 큰절을 올리고 당가를 떠나갔다.
사실, 아비에게 심법을 알려준 장로 역시 이 일이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무척 회의적이었다.
심법 자체가 워낙에 불안정한 데다가, 설령 그 심법을 익힌다고 한들 모든 것을 잃은 한낱 삼류 수준의 무인이 어찌 산채를 찾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그 심법을 익히는 것은 너무나도 극악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어서, 당가 내에서도 다들 혀를 내두르는 실패작에 불과했다.
차마 사람 하나가 모든 것을 잃고 목을 매다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부린 오지랖이나 다를 바 없었기에 장로 역시 자신의 선택을 몇 번이나 후회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미처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으니―
“…기다리거라, 딸아.”
자식 잃은 아비의 한(恨)이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웬 놈이냐!”
“멈춰라!!”
“뭐, 뭐야?! 이건 무슨 미친놈이!!”
“활을 쏴! 활을 쏘라고!!”
아비의 선택은 실로 무식한 것이었다.
수소문을 통해 산채를 찾아낸 그는 정문으로 당당히 뚫고 들어갔다.
만약 산채의 경비가 어느 명문 정파의 위병과 같았다면 절대 가능할 리 없을 테지만, 산적이란 자고로 근본 없는 것들의 모임.
웬 미친놈이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들어올 것이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기에 어어? 하는 사이 아비는 산채 안을 내달리고 있었다.
“저곳……!”
어디로 갈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단순한 산적들이란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이들일수록 가장 큰 건물을 차지하려 하니, 중앙에 가장 높게 지어진 건물을 향해 내달리면 그만이었다.
거기다, 감사하게도 그 건물엔 채주가 자신의 지위를 자랑하기라도 하려 했는지, 어설픈 깃발까지 꽂혀 있었으니―
“허억… 헉……”
뒤늦게 정신 차린 산적들이 쏜 화살이 열댓 발이 넘게 쑤셔박히는 와중에도, 아비는 꾸역꾸역 건물 앞까지 당도했다.
그리고,
끼익―
“웬 소란이냐?”
그 난리통에 채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밖으로 나왔을 때,
“…찾았, 다……!”
아비는 차오르는 고통을 씹어 삼키며,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 * *
‘그가 발견된 게 사흘이 지나서라지.’
아비가 사라지고, 당시 그 심법을 알려주었던 당가의 장로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전해졌다.
자신이 괜한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아닐까, 어떻게 잘 설득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게 해야 했을까.
못내 걱정에 서성거리던 그에게 기이한 소문이 들려온 것은 또한 필연이었다.
‘그 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수원에서 독(毒)이 발견됐다고.’
처음에는 어느 화전민이 관아에 신고한 게 발단이었다.
사천 근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당연 관아에서는 사천당가에 협조를 요청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당가의 장로는 설마 싶어 부리나케 산채로 달려갔고,
“…오셨, 군요…….”
“자네가 어떻게…….”
놀랍게도, 살아 있는 아비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이, 이후에 알아낸 사화(死花)의 이능이었지.’
사화는 단순히 일반인을 독인(毒人)으로 만들어주는 심법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사람을 인독(人毒)으로 만들어주는 심법이었으니―
‘사화를 발동시킨 순간, 사람은 하나의 독물(毒物)이 된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독으로 치환함과 동시에,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을 자신과 같은 독물로 만들어버리지.’
우연이 만들어낸 그 끔찍한 무공은 인간이라는 종 자체를 바꿔버린다. 평범한 사람처럼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체내에 흐르는 독물로 생명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건 결코 살아도 살아가는 게 아니니, 오로지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독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최적화의 상태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뿐이었다.
내장이 썩어 장독이 되고, 흐르는 피는 오염되어 혈독이 된다.
그 독에 죽어 나자빠진 시체는 곧 시독이 되니, 토양에 독이 스며들고 그에 뿌리내린 식물과 지나가던 동물들마저 사화에 휘말리는 순간 전부 살아 있던 독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끔찍한 고통을 동반한다.’
이후, 아비를 끔찍한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고 그 주검을 장사 지낸 뒤 돌아온 장로가 있었던 일을 보고하자 당가에선 눈이 돌아가 연구에 착수했다고 전해진다.
‘누군가에게는 비극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적이었으니까.’
무림은 결국 힘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세계.
기껏해야 이류조차 되지 못한 이가, 비록 하위권에 불과하다 해도 녹림칠십이채에 속한 산채 중 하나를 몰살시켜버렸다는 것은,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하지만 그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지.’
시작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지 연구 결과 역시 비극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그 비술은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목숨을 담보로 할뿐더러, 한 번 발동되면 담보 그 이상의 것을 강매하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와 같았다.
‘한 번 비술을 사용하는 순간 사용자는 무조건 죽는다. 그러나 그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는 사용자가 결정할 수 없지.’
아무리 개량해도, 비술을 사용하는 순간 시전자가 자신의 의지대로 죽음을 맞이할 수가 없었다.
비술을 발동시키는 순간 시전자는 주변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매개체로 변모하고, 그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끔찍한 고통에 몸서리치게 된다.
‘그렇기에 이 비술을 사용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뿐.’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을 때, 그렇게 그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죽음마저 바쳐 살려야 할 사람이 있을 때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자폭 기공.
그것이 바로,
“…감사드립니다, 은인… 덕분에… 딸아이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었습니다…….”
아비의 유언에서 이름을 따와 만들어진 당가의 칠대 금기.
“이들의… 죽음이란… 꽃을…….”
사화(死花)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운이 좋았다.’
이제는 옛말이지만, 사화는 당가가 얼마나 지독한지 전 무림에 각인시킨 일등 공신이었다.
당가의 원한을 산 자, 그 끝은 결코 평화롭지 않으리라.
설령 자신보다 한 수 내지, 두 수 위의 고수라 해도 상관없다. 상대가 집단이라면 더더욱 좋다.
어떻게든 상대의 본진까지 쳐들어가 사화를 발동시켜버리면 그 일대가 죽음의 대지가 되어버리니까.
‘그래서, 당가가 그 위명을 떨칠 때는 이걸 펼칠 겨를도 주지 않았지만…….’
한 번 멸문에 가까운 몰락을 당했기 때문인지, 지금 내가 발동시킨 게 뭔지도 모르는 눈빛이다.
‘모르면 처맞아야지.’
강시가 박살 나고, 그 안에 들어 있던 독물까지 집어삼킨 검푸른 독무가 저들을 덮쳤다.
“이건… 강시독?”
도끼를 휘둘러 독무를 베어낸 조취산이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소리쳤다.
“잔 수작을 부리는구나!”
잔 수작?
그렇게 말해 버리면 큰맘 먹고 자폭기를 발동시켜 버린 내 마음이 섭섭해지잖아.
“옜다, 잔 수작.”
섭섭한 마음을 달래고자 독무를 움직였다.
그 방향은,
“끄아아아악!!”
“사, 살려줘!!”
“으어어억!!”
자신들의 우두머리 뒤쪽이라면 안전지대라 여기고 있던 산적 놈들.
살아 있는 생물처럼 독무가 조취산을 지나쳐 그의 부하들을 덮쳐버리자 비명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어디서 더러운 수작을!”
“아이고, 극찬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다!”
“칭찬 맞는데?”
우리 업계에서는 극찬이라고?
“놈!!”
벽을 넘어선 조취산 역시 감히 접근한 엄두를 내지 못한 독무였지만, 강시공을 익힌 흑시문주는 카랑카랑한 외침과 함께 정면으로 뚫고 들어왔다.
그의 손 전체가 검게 물들더니, 독무를 찢어발기며 길을 만들어냈다.
“찢어 죽여주마!!”
푸화아악!!
“크윽!”
가슴팍에서 화끈함이 일었다.
“고작해 봐야 갓 벽을 넘은 수준에 불과한 것이… 같잖은 수작을 부리는구나.”
확실히.
저놈들과 나 사이에는 아직 크나큰 간극이 있었다. 이 몸뚱이로 부활한 이후 빠르게 강해진다고 강해졌지만, 아직 나는 막 벽을 넘은 수준에 불과했으니,
“미리 말해 두마. 너는 가장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게다.”
흑시문주는 잔혹한 웃음을 띠며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핥았다.
근데 말이야.
“네놈은 죽지는 않겠지만, 죽을 만큼 고통스럽긴 할 거다.”
“뭐? …크, 크윽?!”
그걸로 넌 끝났어,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