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45화 (245/350)

245화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이 말은, 반대로 하면 작은 것을 포기함으로써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사제’는 그리 생각했고 그들의 종파 역시 그 사실을 진리라 여겼다.

그리고, 그 격언이 이번에도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

‘…흐으, 죽는 줄 알았군.’

투둑투둑.

무언가 흙바닥에서 치솟으며 그 자리에 있던 알갱이들이 옆으로 밀려났다.

처음에는 새싹이 솟아오르듯 봉긋 부풀어 오른 그것은 곧 열매가 맺히듯 크게 몸을 부풀렸다가 반으로 쩌억 갈라졌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끈적끈적한 액체로 뒤덮인 사람의 육신.

‘사제’라고 불리는 이는 아직은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산적 놈과 시체쟁이, 그리고 한낱 장사치… 큭큭, 중원이란 곳은 겨우 그런 놈들에게 군림당하고 있는 건가?”

우습고도 우습다.

자신들이 저 척박한 대지에서 위대한 의지를 계승하기 위해 와신상담하고 있을 때, 이 비옥한 토양에서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으며 살아가는 불신자들은 겨우 그런 것들 아래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니.

“한심한 것들.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면 고작 그 정도의 수준으로 절대자를 논하는가…….”

사제는 갑작스런 사패천의 습격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불귀곡이라 이름 붙이고, 조심스레 진행하던 대계(大界) 역시 산산이 짓밟혔다.

기껏 모았던 각종 연구 성과들을 강탈당했고, 그를 따라 파견되었던 교(敎)의 소중한 생명들이 꺼져 가야만 했다.

하나, 그럼에도 사제는 웃을 수 있었다.

“교를 위하여 순교한 이들이여, 너무 섭섭지 말라. 그대들의 의지는 내게 이어져 있으니, 위대한 의지는 반드시 계승되리라.”

자신의 시체마저 가져간 더러운 불신자 무리이지만,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은 고작해야…….”

“더러운 껍질일 뿐이겠지.”

“껍질뿐… 누구냐?!”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들려와서는 안 될 곳에서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크아아악!!”

뒤이어, 끔찍한 고통이 들이닥쳤다.

* * *

사패천이랍시고 깝죽거리는 놈들은 자기들이 사제를 때려잡은 것마냥 꺼드럭거렸지만,

‘내가 병신이냐? 그 말을 믿게.’

나는 당연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물론, 그놈들이 현시대의 절대자들인 것도 맞고, 사제라는 구시대의 망령 같은 놈들을 내 손으로 두어 번 다시 파묻어 둔 적도 있다.

하지만 같은 사제라고 해도 그들이 가진 힘은 천차만별이었고, 그들이 익힌 것이 단순히 무공이 아니라는 점에서 보일 수 있는 권능도 천양지차였다.

그들이 부리는 것은 술법과도 비슷하기에, 준비된 제물의 상태에 따라 그 권능이 월등히 강화되기도 하니 당연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놈들 죽었다 살아나는 걸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말이지.’

이제 마교도 놈들이 부활할 수 있다는 정보는 공공재나 다름없다.

‘형태만 다를 뿐, 그들은 각기 다르게 죽음을 속일 수 있으니까.’

폭식종은 그 형태가 분열이었고,

나태종은 그 형태가 재생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녀석은…….’

아직 만나보지는 않았으나, 지금껏 광동에서 벌어진 일을 바탕으로 추측하자면 떠오르는 종파가 하나 있다.

타인의 것을 뺏고, 흉내 내며, 그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미친놈들.

그들에게도 죽음을 속일 수단이 있었으니, 그걸 모른다면 분명 사패천의 세 얼간이들은 자신들이 승리한 줄 알고 가짜 시체를 얼싸안고 돌아갔을 것이다.

“여기구나.”

그런 녀석들이 온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전투의 여파가 선명히 남은 계곡이 보였다.

강시였던 것이 파괴된 잔해가 곳곳에 너부러져 있고,

누군가 머무르던 가건물들은 완전히 무너져 있으며,

핏물과 육편이 썩어가며 끔찍한 악취를 풍겨 오기까지 했으나,

재앙이 휩쓸고 갔다 봐도 무방한 곳이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이곳 풍경이 얼마나 끔찍하냐 따위가 아니었다.

‘일어나라 게으름뱅이야.’

조금 전 가볍게 힘을 썼다고 다시금 똬리를 틀고 잠에 들려는 녀석을 흔들어 깨웠다.

- 크르르…….

기분 나쁘다는 듯 사나운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걸 들어줄 틈은 없었다.

‘마기의 잔향을 찾아내라. 이제 슬슬 녀석이 부활할 시간이야.’

사제로 추측되는 놈이 부활한다면 곧장 이곳을 떠날 것이다. 사패천은 물론이고 정천맹 역시 진을 치고 있는 이 땅에 굳이 녀석이 남아 좋은 꼴을 볼 일은 없으니, 부활하자마자 호다닥 튀기 전에 잡아 족쳐야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역할에 탐(貪)은 안성맞춤이었다.

- 크르르?

“아, 네놈이 다 먹게 해줄 테니까 빨리 찾아내라고.”

- 크르르…….

마기를 처먹은 뒤, 이 게으름뱅이 녀석은 마기를 찾아내는 기가 막히는 탐지 능력을 얻어냈다.

그게 얼마나 기가 막히냐면,

- 크르르르!

“새끼, 거기 있었구나.”

땅 밑으로 다섯 장이나 되는 깊이에 있는 마교도 놈까지 찾아낼 정도였다.

“뭘 얼마나 대단히 숨으시려고 거기 처박혔어?”

땅속에 비밀 공간이 있는 게 확실했다.

“입구는 이쪽인가?”

마침 딱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동굴이 옆에 하나 뚫려 있다.

당연, 그 동굴 안쪽의 상태도 썩 좋지는 않았다.

‘눈물겨운 농성 연기라도 하셨나?’

계곡 입구부터 이어진 핏자국은 동굴 입구에서 절정을 찍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발동되었다가 압도적인 무력에 박살 난 기관 장치의 흔적과 각종 화살, 독침, 암기 등등이 너부러져 있었고, 그에 당한 사패천 잡것들의 시체 역시 적지 않게 깔려 있다.

‘그리고, 저게 마교도 놈들의 흔적.’

흑시문주라고, 시체쟁이 하나가 붙었더니 지들 부하 시체는 놔둔 주제에 마교도놈들의 시체는 싹 다 사라지고 없다. 그들이 흘린 핏물과 찢긴 옷 자국만이 그 자리에 무언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 그 뿌리가 되는 것은 아마 새로운 강시 연구의 소체로 납치당했겠지.

‘이래서 사마외도 족속들이란.’

시체마저 강탈해 가는 침략자나, 그 안쪽에서 이미 산 사람을 납치해 의식을 진행하고 있던 마교도나.

누가누가 더 극악한가를 따지는 똥오줌의 분뇨 대결이라니, 이게 실화냐?

‘진짜 가슴이 옹졸해진다.’

그 더러운 오물 냄새 풀풀 풍기는 통로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곧 더 이상 나아갈 곳 없는 거대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부로부터 이어진 결사 항전의 흔적이 어느 순간 뚝 끊기고, 그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황량함이 장내를 가득 채웠다.

당연, 원래부터 이러지는 않았을 테니―

“보물 창고라는 건가?”

뻔하다 못해 진부하다시피 한 이야기.

원래라면 이곳 가득 재화와 물자가 가득 차 있었겠지만, 패배한 세력의 창고에 그딴 게 남아 있을 리가 있나.

‘사파 잡것들이 다 털어갔겠군.’

여기저기 땅이 눌린 흔적이 있는 걸 봐서 무언가 꽤 묵직한 것들이 쌓여 있었던 듯하지만, 먼저 온 선객들이 알뜰살뜰하게도 털어간 것 같다.

실로,

“멍청하게 말이야.”

머저리 같은 것들.

‘아마도, 그놈들은 눈앞에 깔린 보물만 보고 그게 전부인 줄 알고 돌아갔겠지.’

산더미 같이 쌓인 재화와 각종 물자.

누구보다 욕망에 솔직한 사파 놈들이라면 눈 돌아가기 딱 좋을 것이다.

‘개중에 머리 쓰는 놈도 있긴 했겠지만. 하나로 나머지를 설득하긴 역부족일 테고.’

흑상.

그놈이 혼자 찾아왔다면 이곳에서 며칠이고 죽치고 앉아 혹시 뭐가 더 없을까 탐색했겠지만, 그는 말 안 들으면서 머리만 큰 놈 둘을 데리고 왔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 제한까지 있는 마당에 장시간 탐색은 불가하여 눈앞의 재물을 챙기고 돌아갔을 테고, 덕분에 내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날로 먹을 기회가 말이야.’

보자.

아무것도 없는 공동의 벽면이지만, 아까 지면으로 내공을 흘려 넣었을 때 분명 더한 지하 공간이 있다는 걸 확인한 이후였다.

그렇다면, 이보다 밑으로 내려갈 비밀 통로가 있다는 뜻일 텐데,

“만약 내가 생각하는 ‘그 종파’가 맞다면…….”

공동 중앙으로 다가가 선다.

이후, 땅바닥에 다시 손을 대고, 일정한 순서와 시간 차를 두고 내공을 흘려보내자,

쿠구구구…….

“됐다.”

지각이 움직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부의 기관 장치가 작동하며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구닥다리 놈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 방식을 쓰고 있어?”

실로 역사의 퇴물 같은 놈이로고.

암구호는 자고로 한 달에 한 번씩 바꿔주는 것인데, 삼십 년도 더 전부터 쓰이는 방식을 그대로 이행해 준 놈들 덕분에 어렵지 않게 보안을 뚫고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열린 길.

어둠이 그득한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 안쪽은 삼 장 간격으로 빛을 내는 무언가가 벽과 천장에 박혀 있었다.

“야명주.”

어둠 속에서도 홀로 빛을 내는 성질이 있어, 그 값이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비싸다는 보옥이다.

그것을,

뽀옥―

- 크르르?

“뭐 인마. 야명주 뽑아가는 거 처음 봐?”

가져온 주머니에 하나씩 챙겨 넣었다.

“이게 다 돈이라고 인마.”

비밀 공간을 찾겠다고 탐을 깨운 뒤로 녀석은 흘러나오는 마기에 흥미가 동했는지 깨어난 채, 내 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야명주를 하나둘 뽑아내기 시작하자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네가 집 나갔다 오니 집안이 쫄딱 망해 봤어?”

삼십 년 만에 돌아온 집이 폭삭 망한 걸 경험해 본 유경험자로서, 자꾸만 돈 되는 걸 보면 손이 나간단 말이지.

“아니, 근데 이 자식들은 왜 아직도 잘 나가?”

비밀 공간을 만든 것은 둘째치고 그 안을 이렇게 야명주로 채워 넣을 수 있다니.

가져온 주머니가 볼록해질 때까지 뽑고 난 뒤에야 겨우 지나온 통로가 어둠에 잠겨 들었다.

“아이고… 지명아, 지명아. 이래서 협의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는 거란다.”

협의를 지키겠다고 산화한 가문은 말 그대로 산화해 버렸고, 흉악무도한 마교도 놈들은 아직도 꿍쳐 둔 돈으로 잘 먹고 잘살고 있다.

‘정말 두고 볼 수 없는 일이구만.’

꿈과 희망, 정의의 수호자인 이 몸께서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가 악의 소굴인가?”

그렇게 어둠 속 통로를 지나쳐오니 드디어 종점에 도착했다.

이곳이 끝이라고 확신시켜주듯 사방에서 풍겨 나오는 마기가 짙게 느껴지는 거대한 공간.

벽면에는 수직으로 세워진 석관이 십수 개가 넘게 박혀 있고, 그 가운데는 딱 봐도 의식을 위한 제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천장에는 지금껏 뽑아왔던 야명주의 숫자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별처럼 박혀 있으니―

“송장 썩는 끔찍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 더러운 음모가 도사리기 참으로 좋은 곳이로다.”

- 크르르…….

풍겨 나오는 마기에 탐 녀석도 군침이 도는 듯 몸을 일으켰다.

허락만 떨어지면 당장에라도 주변을 다 때려 부수고 게걸스러운 식사를 시작할 기세지만,

“가만 있어 봐. 너도 느껴지잖아. 진짜는 이제 시작이라고.”

사방에서 풍겨오는 마기의 근원이 되는 곳.

저 제단의 중심에서,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일어날 듯 마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다행히 나를 인지한 것 같지는 않고.’

주변에 설치된 기관은 아직도 건재하지만, 딱히 침입자를 격퇴하기 위한 술식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만약 그런 게 있었다면, 진작 작동해서 나를 죽이려 들었을 테니까.’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소용돌이치듯 일점에 몰려드는 마기의 유동뿐이니, 아마도 이 제단의 목적이란 순수하게 부활을 위한 용도가 끝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숨어줘야지.’

천잠무흔을 발동시켜 제단 뒤로 돌아가자, 시기적절하게 모여들던 마기가 폭발했다.

그 중심에서 무언가가 솟구치고, 더러운 열매가 맺히며 쩌저적 갈라졌다.

‘나왔구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체액을 뚝뚝 흘리는 나신의 존재.

피부 상태를 보아선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와 같으나, 외형은 이미 다 성장한 성인의 그것이었다.

나타난 존재는 갑자기 자리에 앉더니 큭큭 웃기 시작했다.

“…산적 놈과 시체쟁이, 그리고 한낱 장사치… 큭큭, 중원이란 것은 겨우 그런 놈들에게 군림당하고 있는 건가?”

‘뭐지, 저 병신은?’

자폐증이라도 걸린 건지 혼자 웃기 시작하던 놈은,

“한심한 것들.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면 고작 그 정도의 수준으로 절대자를 논하는가…….”

그리고는 곧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에 묻은 체액을 닦아내기 시작하는데,

“교를 위하여 순교한 이들이여, 너무 섭섭지 말라. 그대들의 의지는 내게 이어져 있으니, 위대한 의지는 반드시 계승되리라.”

그 순간 나는 강렬한 직감이 들이닥치는 걸 느꼈다.

‘이건 각이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은 고작해야…….”

“더러운 껍질일 뿐이겠지.”

“껍질뿐… 누구냐?!”

자기 혼자 흑막인 줄 알고 낄낄대는 놈의 뒤통수를 후려버릴 각!

“크아아악!!”

쩌렁쩌렁 웅장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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