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천마살(天魔殺).
마교도의, 마교도만의, 마교도를 위한 독.
오로지 놈들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독이 주입당한 질투의 사제는 그 효과가 얼마나 달달한지 온몸을 비틀어대며 극찬했다.
- 너, 이 불신자 놈……!! 어디서 더러운 이름을……!!
“너희들도 어지간히 진짜 광기다.”
온몸을 녹여 내리는 독의 고통보다, 그 독의 이름이 주는 분노에 더더욱 발광하다니.
그렇다면 바로 진정제를 투입하는 수밖에.
천마살, 두 배로.
“좀 닥쳐봐.”
- 끄아아악!!
진짜 광기마저 깔끔히 녹여주는 천마살의 위엄에 온몸을 비틀길 한참, 결국에 반쯤 몸이 녹아내리며 축 늘어진 녀석을 향해 다가가 주저앉았다.
“어이.”
- 그으으… 더러운… 불신자 놈…….
“그래그래. 마음대로 불러라 광신자 놈아.”
이제 와서 호칭 가지고 싸우는 것도 우습다.
그러니, 그것보단 더욱 건설적인 얘기나 하자고.
“너흰 대체 뭘 원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 흐흐… 뭘 원해서 이러냐고? 그야 당연히… 그분이 가져올 진실된 미래를 믿기 때문이다……!
죽음이 물씬 가까워지며 녀석은 자신이 더 이상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라도 했는지 무언가 해탈한 모습으로 조소를 머금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비굴한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는 것인지, 나를 향해 한껏 비웃음을 선사하는 그 모습은 실로 광기의 결정체.
그건 참,
“아이~ 싯팔. 천마살 맛 좀 볼래?”
- 끄아아아악!!
아침부터 죽상으로 만드네.
- 이 빌어먹을 불신자 놈!! 네놈을 죽이겠다!! 네놈의 일가를 저주하겠다!! 저주받을 흉왕의 핏줄들이여!!
“선 넘네…….”
천마살, 오백 배.
- 끄아아아아아아악!!
죽음은 가깝지만, 고통은 더욱 가까운 법.
- 끄아… 아아아… 아아아…….
질투의 사제가 보여주는 재생 속도에 맞추어 주입한 천마살이 녀석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조소를 보일 여유도 없는 마교도라니, 실로 복되고 또 복되도다.
“역시 천마살이야. 성능 확실하구만?”
하지만 역시 착한 마교도는 죽은 마교도뿐.
절반 정도 착해진 질투의 사제는 아직 절반 남은 나쁜 마교도로서 입을 나불거렸다.
- 그으으… 불신자……!! 그 불경한 입 다물라……! 그분께서는 돌아오실 것이다. 지금은 비록 윤회의 회랑에서…….
“뭐래는 거야. 윤회의 회랑이 아니라 하늘 나라겠지.”
- 뭐, 뭐라……?
“니네 천마 님 돌아가셨다고. 사지가 녹아내려서 말이야. 그것도 모르냐?”
- 끄아아아아아!!
돌아오시긴 개뿔.
이미 돌아가 버린 양반 붙잡고 꺼이꺼이 우는 게 아쉬워 현실을 직시시켜 주자, 녀석은 천마살을 주입당했을 때보다 더더욱 즐거워하며 온몸을 비틀어댔다.
- 네 놈이… 네놈이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느냐!! 그분은 돌아오신다!! 반드시 돌아오신다!! 그분과 영광을 함께했던 위대한 세 분의 주교께서 현세에도 그분이 밝히신 신성한 등불을 잇고 있으니!! 재생(再生)의 비술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그것이 완성되는 날 너희 더러운 불신자 놈들은…….
그렇게 공동이 무너져라 쩌렁쩌렁 소리치던 녀석은 문득 말을 멈췄다.
- 잠…깐, 네가… 네가 그분의 최후를 어찌… 분명, 그 최후의 전장에서 생존자는 아무도… 서, 설마?
녀석의 눈이 부릅 뜨였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불신과 경악이었으며, 당황과 공포였으니…….
- 말도… 말도 안 된다… 하지만, 하지만 설마… 설마…….
“이야, 너 감 좋다.”
녀석의 깨달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해 주었다.
“이 세상에서 그걸 알아챈 건 네가 처음인데 말이야.”
- 이놈… 너, 너 설마… 휴, 흉왕(凶王)?!
“그런데, 너무 빨리 알아채는 것 아니냐?”
- 으아아… 흉왕!!
그 사실에 녀석은 발작을 일으켰다.
불룩불룩 몸이 부푸는 게 금방이라도 터질 듯하던 놈은 곧,
- 크… 크하하하하……!
돌연 그 발작이 거짓인 듯 축 하고 가라앉더니, 우렁차게 광소를 터트렸다.
- 이놈 흉왕……!! 그래, 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네놈이라면, 네놈이라면……!! 끝까지 그분의 앞길을 막아섰던 네놈이라면 다시 현세에 도래하여 위대한 의지를 가로막을 수 있다 생각했으니까!!
“그건 좀 놀랍네. 우리 집 애들도 내가 돌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우리 집안도 기대 안 해서 모르는 걸, 왜 남의 집안이 더욱 굳게 믿고 있는 건지.
- 흐흐… 기나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비해 왔다. 네놈이 돌아와 그분의 앞길을 가로막음을 대비하기 위해, 인고의 기간 동안 대계를 준비해 왔음이니… 커억……!
“잘 알아, 이 새끼야.”
잘 알지.
삼십 년 만에 돌아왔더니 집이 홀라당 다 타버린 꼴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 모를 수가 없다.
- 큭, 크흐흐… 잘 알기는…….
입 안에 발길질이 틀어박히고도 녀석은 푸들푸들 몸을 떨며 말을 이어 갔다.
- 미리 준비해 두길 잘했구나. 이 어리석은 놈… 네놈은 하오문의 그 쓰레기를 말살시키기 위해 함께 갔어야 했다!! 그놈은 비록 구제 불능의 쓰레기 불신자이지만, 그런 놈도 재활용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놓았으니……!
고통도 잊은 듯, 희열에 가득 찬 모습으로 소리쳤다.
- 저주받을 흉왕이여!! 네놈이 돌아갔을 때, 또다시 네놈은 네 터전을 모두 잊고 허망한 최후만을 목도하리… 꾸엑!
“아, 새끼. 잘 안다니까?”
곧 착해질 녀석이라, 어지간하면 다 들어주려 했는데.
“귀 아파서 못 들어주겠다.”
적당히 소리쳐야지.
- 그흐… 흐… 왜… 두려우냐? 또다시… 모든 것을… 잃을까 봐… 두려운… 것이냐……?
이젠 정말 한계인지 뚝뚝 끊기는 놈이 비죽 조소를 흘렸다.
하지만,
“너 병신이냐?”
- …뭐, 라?
“너희도 나한테 하도 당하다 보니 대비했잖아. 그리고 너도 나를 인정했잖아. 그런데, 그런 내가 니들의 개수작에 대한 대비를 안 했겠냐?”
몇 번이고 말했잖냐.
“나는 방심 같은 거 안 해. 잡초 같은 너희들을 상대할 땐, 언제나 삭초제근을 다짐하며 뿌리까지 뽑아버리려 한다니까?”
- 이놈… 어디서… 허세를……!
“허세인지 아닌지는, 착해져서 이미 착해진 네놈들의 천마 님 옆자리서 직관하시고.”
하늘 나라에서 좋은 자리 깔고 앉아 내려다보면 잘 보일 거야.
아니지. 지옥에서 열심히 타오르고 있을 테니 잘 안 보이려나?
“여하튼, 극비 정보는 잘 들었으니 이제 가라.”
- 크르르…….
지금껏 잘 참고 있던 탐이 이빨을 드러냈다.
그 모습이 이제는 상대에게도 보이는지 녀석은 눈을 크게 떴다.
- 너… 그건… 네가 어찌 그걸…….
“너, 진짜 감이 좋네.”
지금까지 탐을 본 녀석은 둘 정도 더 있지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 녀석이 처음이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겠지만.”
콰직―
이빨을 드러낸 탐은 그 흉폭한 몸뚱이를 움직여 질투의 사제를 덮쳤다.
“후우우…….”
그것으로 끝이었다.
녀석은 사패천을 속이기 위해 많은 것을 대가로 소비한 데다, 부활하자마자 천마살에 중독되어 시시각각 죽어 갔다.
사실상 죽다 살아난 식물인간의 막타를 친 것과 다름없달까?
꺼진 불씨도 다시 짓밟고, 줄기가 반 갈죽 당한 잡초도 뿌리까지 뽑아 활활 태우는 과정까지 거쳤으니, 이제 이 녀석이 짜잔― 사실은 그것도 껍질이었습니다! 하고 나타날 가능성도 없다.
그렇게 모든 걸 끝냈지만,
“재생의 비술이라…….”
뒷맛은 영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미친놈들. 사지가 녹아내리고, 골백번을 고쳐 죽인 놈을 기어코 살려냈다는 거냐?”
천마.
그 무시무시한 공포의 마왕과 벌인 최후의 사투는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칠대종이 각기 죽음을 피하기 위해 쓰는 술법을 전부 쓸 수 있던 녀석인 만큼, 결사대 하나의 목숨을 한 번의 기회로 삼아 녀석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렇게 일백이 넘는 죽음의 횟수를 넘어, 마침내 재생할 수 없을 수준까지 몰아간 뒤에 사지를 다 잘라버리고 혈독의 늪 속에 빠트렸다.
비록, 이 세상에 눈뜨기 직전의 기억이 흐릿하긴 해도, 그 전의 기억만큼은 선명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반 죽여놨던 녀석의 부활이 곧 막바지에 다다른다 이 말이지.”
일개 사제에 불과한 이 녀석조차 그걸 확신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걸 방증 삼아 내가 돌아오는 것에도 놀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으니―
‘하… 그것 역시 단순히 광기라고 치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놈들이 셋이나 살아남은 이상……. 기정 사실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주교.
진정으로 저주받을 그들의 존재는, 이미 죽어 나자빠진 놈의 믿음을 한낱 광신으로 치부할 수도 없게 했다.
‘실제로도, 그놈들은 천마가 없었다면 능히 천하제일을 다툴 괴물들이었으니까.’
마교 칠대종파를 이끄는 우두머리.
달리 마교 칠대종사라 불리며, 스스로는 주교라 칭하는 그들은 천마 이전부터 존재해 오던 마교의 실질적 지도자였고, 또한 하나하나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괴물들이었다.
‘무공뿐 아니라, 마도와 제사장으로서의 권능마저 극의에 이르렀던 놈들이 무려 일곱.’
그들이라면 진정 죽은 이를 저승에서 불러오는 것도 불가능하리라 생각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전례가 있었으니까.’
그런 미친 짓을 실제로 해 보였던 놈들인 만큼, 이제 착해져 버린 질투의 사제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협박 따위가 아닌 곧 일어날 기정사실이다.
“총체적 난국이구만.”
저 머나먼 산맥 너머에선 공포의 대마왕이 부활하려고 있는데, 정파 놈들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정치질이나 하고 있다.
천마의 부활 가능성을 말했을 때 그들이 믿어주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내가 믿을 놈들이 없다.
정말이지,
“너무 익숙해서, 소름까지 끼칠 일이야.”
내우외환(內憂外患).
나라 안은 근심이 가득하고, 밖은 환란이 가득하다더니.
정파라는 놈들은 저들끼리 밥그릇 다툼에 여념이 없는데 마교라는 극악무도하기 그지없는 것들이 하필 광신(狂信)으로 뭉쳐 한마음 한뜻으로 달려든다.
삼십 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이 구도는 달라지는 게 없냐.
“그래, 달라지는 게 어디 있겠냐.”
착한 마교도는 죽은 마교도일 뿐.
만나는 마교도마다 전부 착해지게 해주면 그만일 뿐이다.
* * *
한편, 대륙 건너편에서 누군가 깨달음을 얻어 열반의 경지에 오르려 할 때, 누군가 역시 찾아온 깨달음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이는 거적때기로 전신을 덮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드러난 안면부는 안개라도 낀 듯 흐릿하기 그지없었다.
거기다, 그 안개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기까지 했으니―
- …궁휼이 죽었다.
그 안에서 흘러나온 목소리 역시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 괴인과 함께 있던 자는 누구도 그 모습을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다.
왜냐면,
- …….
- …….
장내에 있는 다른 둘 역시, 그와 비슷하게 거적때기로 전신을 뒤덮고 있는 괴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 …자세히.
그중 하나가 관심을 보이자 가장 먼저 고개를 든 괴인이 말했다.
- 궁휼이 죽었다. 그 아이는 비문(碑文)을 복원하고 있었고, 침입자의 습격을 받아 파괴되었다.
괴인은 앉은 자리에서 수천 리는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은 단박에 알아챈 것이다.
믿기지 않는 말이지만,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 말에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대신, 물을 뿐이었다.
- …누구지?
그 일이 절대적인 진실이라는 전제하에, 누가 그러한 행위를 벌였는지.
하지만,
- 모른다.
괴인은 고개를 저었다.
- 그 존재는 검푸른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 천문을 읽어보려 했으나, 별자리의 시운에서도 벗어난 존재였다.
앉아서 천 리도 넘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괴인으로서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괴인은 놀라움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고작해야 변수 하나 정도에 일희일비하기에 그가 너무나 기나긴 시간을 살아온 탓이었다.
- 대비해야겠군.
그리고 그건 나머지도 마찬가지.
- …….
고작해야 한마디씩 툭툭 던지며 사후 행보를 결정지은 그들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이내, 장내에는 지독한 침묵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