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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48화 (248/350)

248화

【 녹주석 】

머나먼 광동 땅의 음습한 지하에서 음모를 꾸미는 마교도 놈을 족쳤지만, 곧바로 성도로 복귀하지는 않았다.

그쪽에 이미 인원이 충분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정의의 협객으로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캬, 이 새끼들. 뭐 이렇게 많이들 남겨놨대?”

이놈들이 모아 놓은 귀중한 보물들이 나쁜 일에 악용되지 않게 막는 것.

사파 잡놈들은 저들이 여기 있는 걸 다 털어갔다고 생각하겠지만, ‘진짜’라 불리는 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 크르르르!

“어어? 야, 야! 그거 네가 먹는 거 아냐!”

벽에 가지런히 박힌 석관, 그중 하나를 뜯자 영약이 우르르 쏟아졌고 또 하나를 뜯으니 독초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걸 보고 눈이 돌아가 버린 놈이 열렬히 자신의 지분을 주장하는 걸 물리적으로 막아서는 동시에, 놈들이 뭘 챙겼나 약재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며 머릿속 기억을 뒤적였다.

“절명초에 청란화… 얼씨구, 백옥과까지?”

하나같이 구하기 힘든 것이란 점은 둘째치고,

“뭘 이렇게 알록달록 다양하게도 모았다냐?”

그렇게 구해 놓은 것들의 통일성을 찾기가 힘들었다.

‘마교도 놈들 개짓거리에는 나름 빠삭하다고 자부했는데 말이지.’

보수주의의 상징이 정파라지만, 마교 역시 그에 밀리지 않는 보수주의자라 할 수 있다.

‘사파 새끼들이야 워낙 엄마 아빠 안 가리고 설치는 놈들이지만, 마교 놈들은 어지간한 도교 문파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구닥다리 붙잡고 늘어지는 놈들이거든.’

시간이 흐르면 많은 것들이 변모하고, 그것은 문파에 전승되어 오는 무공 역시 마찬가지다.

무림이란 세상에서 대립되는 세력이 존재한다면 대개 그들은 서로를 견제하기 마련이다.

서로의 약점을 찾기 위해 서로의 무공을 낱낱이 파헤치고, 그것의 상성이 되는 무공을 만들기 위해 밤새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게 일상인 세상.

당연, 자파의 무공이 그런 극상성의 대처법에 파훼되길 대비하기 위해 사문의 무공 중 낡은 부분을 허물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 넣는 작업을 통해 새것으로 개편하는 작업도 종종 이어진다.

‘나만 해도 손댄 무공이 수십 종이 넘어서니까.’

사실상 당가의 무공 중 내 손을 거쳐 가지 않은 무공이 없고, 그중 팔 할 이상은 개편하거나 없애거나 통폐합하는 등등 유지 보수를 넘어 혁신의 과정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마교도 이 새끼들은 그런 게 없거든.”

이놈들은 그냥 과거의 유산을 발굴하기 위해 온 세상을 누벼 제물을 모으는 게 일상이다.

만약 그들의 마공에 대한 상성의 무공이 나온다?

‘그럼 더 오래전 선조 님들의 더더욱 위대한 마공을 찾으면 그만이라 생각하는 놈들이지.’

위대한 유산이요, 과거의 찬란한 영광이니 나발이니― 단체로 대마라도 흡입한 듯 구세대의 영광에 심취해서 인신공양조차 서슴지 않는 게 마교도라는 족속들이다.

‘천마 등장 이전에도 그랬으니, 놈이 현인신으로 강림한 이후로는 더더욱 그러했지.’

그래서 놈들과 오랫동안 싸우다 보면 싫어도 그들의 수법에 정통할 수밖에 없는 게 일반적이다.

당장, 나조차 마공이라 불릴 만한 것들을 알고 있는 게 그 증명이고.

그런데,

“이건 당최… 뭘 하려고 모아놓은 것들이야?”

먹으면 말 그대로 절명한다는 절명초.

생기를 북돋워 준다는 청란화.

천상의 맛을 자랑하는 데다가 부가 효과로 피부를 백옥처럼 만들어 준다는 백옥과.

“독이야, 영약이야, 별미야?”

공통점을 찾으려도 찾을 수가 없다.

- 크르르르르…….

“아니, 너 줄 것 없다니까? 아까 그 자식 처먹었으면 됐잖아.”

- 크르르!!

가뜩이나 새빠지게 머리 굴리느라 골 아파 오는데 그 와중에 탐 녀석은 자꾸만 옆에서 성가시게 했다.

그래서 대충 내쫓았더니―

- 크르르르… 크릉크릉!

철컹― 철컹!

너부러져 있던 병장기 하나를 주워 사납게 물어뜯기 시작했다.

“…네가 개냐?”

- 크르릉… 크릉!

“그래, 차라리 그러고 있어라.”

본인의 애병을 개뼈다귀 취급당하고 있는 고인에게 짧은 애도를 취한 뒤 다시 발치에 너부러진 영약들을 훑었다.

“강시 제작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영단 제작은 또 아니야.”

소림사의 대환단(大還丹)에 버금간다는 마교도 놈들의 마환단(魔還丹)의 재료 역시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이건 분명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영약의 재료라기에는 너무나 허접하지.’

이게 뭘까.

대체 뭘까?

- 크르르르…….

“야, 너 조용히 좀 씹고 있…….”

콰앙!!

주인님께서 심도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자꾸만 옆에서 개뼈다귀 씹는 소리나 내고 있는 녀석에의 행태에 화가 나 소리치자, 그에 대한 대답으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에구머니나?”

설마 잔소리 좀 했기로서니 반항기가 온 건가 싶어 호들짝 고개를 돌리자,

- 크, 크르르?

벽에다가 꼬리 치기를 갈긴 탐 녀석도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아니, 이 새끼. 도리질하다가 벽을 때려 부숴?”

요즘따라 가뜩이나 살이 올라 엉덩이가 빵실해진다더니, 자신의 육중해진 몸체를 생각하지 못해 지하 공동을 부숴버린 건가?

입에 물고 있던 어느 전대 고인의 애병을 내려놓을 생각도 못 한 채 고개만 도리도리하는 놈을 째려보고 있을 때,

쿠당탕!

녀석이 부순 벽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응? 이건 또 뭐야?”

그 정체는 석관이었다.

다만, 다른 석관들이 벽에 박히듯 잘 박제되어 있었다면, 이건 벽 안에 숨겨져 있어서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듯했다.

“이거 설마…….”

딱 봐도 엄청나게 수상해 보이는 석관.

아직 차례를 기다리는 석관보다 그 외양이 품격있고,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을 풍기기까지 하는 것이―

“탐아. 너도 드디어 밥값을 하는구나?”

- 크, 크르르!

여기 뭔가가 있다.

확신할 수 있었다.

“뭘 이리도 소중하게 숨겼는지 볼까.”

곧바로 석관을 개봉박두.

이미 떨어지는 충격으로 위쪽 일부가 부서진 석관은 어렵지 않게 열렸고, 곧 그 안에 있던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정체는,

“이건… 녹주석(綠柱石)?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녹주석비(綠柱石碑)겠군.”

흔치 않은 색채를 자랑하는 녹주석으로 이루어진 석비였다. 이걸 석비라 생각하는 이유는, 그 위에 새겨진 알 수 없는 열네 줄의 글귀 때문이었고.

- 크르르……?

눈치를 살피던 탐 녀석도 은근슬쩍 옆으로 다가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런 게 나오면 일단 입에 넣고 볼 녀석도 당장 먹기보다 의문을 표하는 것은, 이 알 수 없는 석비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상당이 특이했기 때문이다.

“마기는 아닌 것 같은데…….”

마교도 소굴에서 나왔다면 당연 유혈이 낭자한 인신공양을 통해 탄생한 마도구(魔道具)가 아닐까 싶지만, 그렇다기에 느껴지는 기운에서 마기 특유의 질척거림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神氣)에 가깝군.”

일반적인 자연지기보다 상위 차원의 것.

평범한 이는 범접하기 힘든 기품까지 느껴지는 게, 딱 봐도 엄청나게 비싼 물건처럼 보였다.

‘마교도 놈들이 이런 걸 사용했던가?’

암만 생각해도 내 기억 속에 놈들이 이런 기이한 물건을 부린 전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거, 먹어봐.”

- 크르르?!

“아니, 백문이 불여일견 몰라? 네가 삼키면 뭐든 나오겠지.”

- 크르르륵!!

“이 새끼, 이제 머리 컸다고 개기네?”

딱 봐도 수상한 물건이요, 내버려두면 마교도 놈들이 뭘 해도 할 게 분명한데 그냥 방치하고 가기엔 너무나 크다.

“그럼 네가 먹어야지.”

- 크르르르!

“미친놈아, 내가 저걸 어떻게 먹어?!”

검은 머리 짐승 키워봐야 소용없다고, 기껏 키워줬더니 주인보고 네가 처먹어 보라고 으르렁거린다.

“평소엔 이것저것 잘 주워 먹던 게, 저건 왜 안 먹는 거냐?”

- 크르릉! 크르!

“먹기 싫다고? 왜?”

- 크릉!

“시팔, 그냥이 어딨어?”

노사 간의 갈등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상을 달렸다.

기껏 귀해 보이는 거 먹게 해주려 했더니,

“그럼 어쩔 수 없지.”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는 수밖에.

‘대충 박살 낸 뒤에 파편 몇 개 챙겨가면 홍수월이 알아내 주겠지.’

도와줘요! 홍수월!

든든한 술법사 님의 뒷배를 믿으며, 무식한 무공쟁이는 한 손에 내공을 모아 갈겼다. 이 정도면 석비 하나 정도는 산산조각내기 충분하겠지 생각하며―

그런데 그 순간―

쩌어엉!!

석비 위로 신묘한 기운이 어리더니, 반투명한 방어막이 생겨나며 내 일 장을 튕겨내 버렸다.

“뭣?”

- 크락!

만만치 않은 반탄력에 일 장은 튕겨 나갔고, 하필 옆에 있던 탐이 얻어맞고 비명을 내질렀다.

“이걸 막아?”

웅웅웅―

비문의 반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색채와 같은 녹광을 사방으로 뿜어내기 시작하더니, 스스로 부유하며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 크르르!!

“뭘 했냐고? 몰라, 인마. 한 대 쳤다고 떠오르는 석비 같은 걸 내가 언제 봤겠냐고!”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그 사실에 품에서 잡히는 대로 암기를 꺼내 쥐며 전투 자세를 취했고, 탐 역시 재빨리 내 몸에 휘감기며 하악질을 시작했다.

- 크르르!

그렇게 비문의 발광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우우웅…….

돌연,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비문은 오히려 안정을 찾더니 고고하게 부유 상태로 반듯하게 세워졌다.

그리고 사방으로 뻗어 나가던 빛무리는 서서히 비문의 전면으로 모여들더니 작은 구체를 이루다가 점점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어 갔다.

‘상위 존재?’

그 사람 형상의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격이 보통이 아니었다.

최소한 영수(靈獸)급의 존재이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어떠한 적의도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마기(魔氣)와 같은 음습한 기운은 터럭만큼도 존재하지 않다는 점.

그럼에도 전투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자, 빛무리로 이루어진 광인(光人)이 번쩍 눈을 뜨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 …그대가, 나를 깨운 존재인가?

세상에, 말도 하네?

- 크르르!

- 기이한 존재군. 자네의 애완동물인가?

하악질을 하는 탐을 흘깃 바라본 광인은 아무런 적의도 느끼지 못하는지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고 내게 물어왔다.

“비슷하긴 한데… 그쪽은 누구십니까?”

- 나를 모르면서 나를 깨운 건가?

“깨웠… 다구요?”

-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우더군. 무슨 일인가 싶어 나와봤더니 자네가 있는데, 틀렸음인가?

“아…….”

이야, 이걸 이렇게 해석해 주네.

사실상 자고 있는 중에 선빵 갈긴 격인데 이렇게 해석해 주다니.

최소 배우신 분이 분명했다.

“예, 뭐. 비슷하네요. 그런데… 그, 그 비문이 그쪽 집이십니까?”

- 흠. 아무리 봐도 자네는 나를 모르는군. 그럼에도 이렇게 그럴듯한 녹주비문(綠柱碑文)에서 나를 찾은 것으로 보아, 그대는 원주인에게서 이것을 강탈한 것일 터.

순식간에 인과 관계를 간파한 상대의 말에 나는 흠칫 놀라서 힘을 뺏던 암기를 다시금 꼭 쥐었다.

‘설마 여기서 싸워야 하나?’

딱 봐도 보통 아닌 존재인 데다가, 지금 내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은데?

“…그렇다면, 어찌 되는 것입니까?”

긴장하며 묻자―

- 내 말이 정답인 듯싶군. 한데, 그렇다고 내가 자네와 일전이라도 치를 듯싶은가?

“아니라는 것입니까?”

- 그럴 이유도, 인과도 없지. 내가 추구하는 것은 등가교환(等價交換). 그대와 나 사이에는 그럴 만한 이유도, 연유도 없음이니 어이하여 내가 가치에 맞지 않은 일을 행하겠나.

녹광의 광인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 그대가 나를 모르는 듯하니 소개하겠네.

바짝 긴장한 나와 달리 무척이나 선선한 어조로 답했다.

- 나의 이름은 Ἑρμῆς Τρισμέγιστος. 그 뜻은 세 배 위대한 헤르메스란 뜻이며, 최초의 연금술사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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