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연금술사?
그건 또 무슨 술사야?
-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군.
연금술사가 어디 사는 술법사인지는 몰라도, 일단 눈앞의 양반은 꽤 높은 경지에 오른 술법사인 것은 확실한 듯했다.
“그… 제가 배움이 좀 짧아서…….”
- 아니, 괜찮네. 자네의 인종을 보아하니 동방 세계의 인물인 듯한데, 아마도 내가 소환된 이곳은 오래전 내 가르침을 전파한 곳과는 멀리 떨어진 곳인 듯하니까.
스스로 최초의 연금술사라 소개한 상대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 자네는 그저 나를 헤르메스라 부르면 된다네. 그리고… 말했듯 나는 최초의 연금술사이니 연금술로 지상의 죽음과 부활, 윤회를 공부한 뒤 점성술로 천체의 신비를 통해 성운(星運)의 뜻을 헤아리려 한 존재이니― 그대가 날 합당한 방식에 따라 깨운바. 그대에게 나와 합당한 등가교환을 제시할 자격이 있음을 알려줄 뿐일세.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들뿐이다.
‘하여튼 술법사들은 쉽게 말하는 법을 모르지.’
말할 때마다 오행이니 팔괘니 하며 자연의 이치와 법도를 섞어 말하는 게 그들의 종족 특성.
나쁜 마교도들 덕분에 하도 많이 투닥거려서 그들의 습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나로서는 결국 최선의 판단을 내리기로 했다.
“그럼, 굳이 그 교환이란 걸 안 해도 된다는 거죠?”
- 흠, 내가 못 미더운가?
“아니, 뭐 그건 아닌데…….”
원래 이런 양반들이랑은 안 얽히는 게 상책이다.
주먹으로 때리면 부수고, 칼을 휘두르면 썰어버린다는 직관성 있는 무공과 달리, 주술이나 권능을 부리는 이들은 대게 복잡하기 짝이 없단 말이지.
‘그냥 가주쇼.’
길거리 약장수 상대하는 셈 치고 온 길로 돌아가 주길 간곡히 부탁하자 상대는 또다시 허허롭게 웃었다.
- 허허허, 이건 실로 유쾌한 경험이군. 나 스스로를 일개 연금술사라 칭하긴 해도, 이런 취급을 받는 건 진실로 처음일세.
“…그 뭐, 혹시 기분 나쁘거나 한 것은 아니시죠?”
갑자기 기분 상했다고 달려들진 않겠지? 싶어 묻자―
- 설마 그러겠나. 다만, 이런 신선한 경험을 선사해 준 대가로 나를 모르는 자네에게 값진 정보를 하나 주겠네. 이보시게, 겉과 속이 다른 늙은 청년.
“…예?”
지금, 뭐라고…….
- 나는 최초의 연금술사라 불리며, 인간으로서 그 격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 최초의 연금술사이기도 하네. 내 가르침을 받은 이들은 누구나 내가 남긴 비문을 연성하여 나와 만나기를 고대하고, 또 한 번이라도 그 조건을 갖춰 나를 소환한다면 어떻게든 등가교환으로써 무언가를 얻길 원한다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난 나라는 존재는 자네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이지.
그리 말한 최초의 연금술사는 두 손바닥을 부딪치며 웃었다.
- 그래. 예를 들자면 이런 것도 알 수 있다는 것일세.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그대가, 사실은 일백 년이 넘는 시간을 품은 존재라는 것을.
“……!!”
소름이 일었다.
그의 시선은 소름 끼칠 정도로 나라는 존재를 꿰뚫어보고 있는 듯했으니―
- 하하, 놀랐는가?
그제야 원하던 반응이 나왔다는 듯 껄껄 웃은 그가 부딪쳤던 두 손으로 원을 그리며 말했다.
- 이래도 나와 거래할 생각이 없는가?
“…당신, 누구야?”
- 깜짝 놀라 경계하는 것이 마치 뱀과 같군. 그래, 자네를 휘감은 채 나를 노려보는 그 존재처럼.
이미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던 탐의 모습에도 헤르메스는 선선히 말을 이었다.
- 예로부터 뱀 혹은 용은 변화의 상징이었지. 꼬리를 문 뱀은 곧 처음과 끝을 상징하며, 그 사이에는 과정이 있기에 변화를 뜻하기도 했으니― 이는 곧 순환이요, 윤회를 뜻함이로세.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자네가 그러한 존재를 만드는 것은 곧 무의식중에도 본질이 섞여 나왔음이 아니겠는가?
“개소리가 좀 심한데.”
듣자 듣자 하니 이 양반이 자꾸만 약장수 기질을 선보이네.
“엄한 소리로 사람 현혹하려는 건 관두시지?”
- 크르르…….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니 진짜 별의별 양반들이 다 모습을 드러낸다.
굳이 부딪칠 일 없는 양반과 긁어 부스럼을 만들 생각은 없지만, 이렇게 수상함을 풀풀 풍기는 자라면 못 싸울 것도 없다.
- 자네야말로 굳이 싸울 생각도 없으면서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건 관두는 게 어떻겠나? 자네는 모르겠으나, 뱀이란 예전부터 내가 좋아하던 동물이라서 말일세.
하지만 나와 탐의 그러한 반응에도 상대는 그저 귀엽다는 듯 웃어 보일 뿐이었다.
- 뱀은 날카로운 독니와 품에 머금은 독액과는 달리 상당히 온순한 인물이지. 자신을 건드린 존재는 지독하게 물어뜯지만, 기본적으로 필요할 때를 제외한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않아. 평소에도 가만히 자신의 영역에서 똬리를 튼 채 있길 좋아하니, 자네 역시 비슷한 인물상이지 않을까 싶네.
“…거 혹시 점술가요?”
- 말했잖아. 점성술도 배웠다고.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그보다 더 많다네.
대놓고 투기를 드러내도 상대는 일언반구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
진실로 그 모습은 마치 평생 무언가를 탐구하던 학자와 같아서 나 역시 괜스레 솟구쳤던 날 선 기세도 사그라지는 게 느껴졌다.
“쯧. 해서, 대가를 바치면 나한테 뭔가를 주긴 한다는 거죠?”
- 물론. 자네가 나의 소환에 성공한 이상, 등가교환을 행하는 게 나의 업(業)이기 때문일세.
“준다는 게 무엇인데요?”
- 그건 자네가 바친 것에 따라 다르다네.
“…그럼, 내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인지도 알려준답니까?”
영 의심스럽지만, 만약 이 양반이 진짜 그것까지 알고 있다면…….
‘솔직히, 알고 싶은 게 사실이지.’
나라고 내가 왜 눈 떠보니 삼십 년 뒤의 이 시대에서 이러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걸 알려줄 만한 양반도 없고, 그걸 알아보겠다고 천방지축 온 세상을 날뛰기에 당장 천마 놈이 부활할지 모른다는 현실이 급급한 게 문제였을 뿐.
- 정보를 원한다라. 그래, 누구나 자신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섭리이지.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단 겁니까?”
- 당연히 가능하다네. 가치만 옳다면.
우웅―
가볍게 웃은 헤르메스가 수인을 맺자 그의 앞에 녹색 서광이 어리더니, 곧 거대한 천칭(天秤)이 생성되었다.
“이건?”
- 그대가 바칠 제물과 그대가 받을 대가가 합당한지를 알려다 주는 저울일세. 그대가 바치려 하는 제물을 올려보시게나.
“흠, 그래요?”
등가교환이라.
처음 듣는 말이지만, 세상의 법리에 가까운 말에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혹시, 여기 있는 것들을 제물로 바쳐도 된답니까?”
그가 하고자 하는 건 상위 존재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
사실상 중단전 활용의 연장선상에 있는 행위인데, 그가 보이는 성질이 꽤 공명정대한 그것과 같아서 괜히 장물(贓物)은 받지 않는다고 할까 봐 쫄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 여기 있는 것들은 자네 외에 소유권을 주장할 이가 없어 보이는군. 얼마든지 가능하다네.
이 양반, 은근히 넉넉하단 말이지.
“그렇다면야.”
어차피 다 들고 가기도 힘든 물건들인데, 나는 곧장 너부러진 병장기들을 주워다 천칭의 한쪽 접시 위에 올렸다.
“이게 그… 절… 명도? 여튼 예전에 꽤 날렸던 무인이 쓰던 무기거든요? 이것도… 질풍? 흠, 쾌검을 주로 사용하던 검수가 쓴 명검인 듯한데…….”
- 그렇게 싸구려 약장수 같은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네. 자네가 바치는 제물에 얽힌 사연이 어찌 되든 간에, 내가 연금술로 만들어낸 이 천칭은 제물이 가진 정확한 인과를 계산해 줄 테니.
그러니까 괜히 풍둔 아가리술 쓰지 말라고. 은근슬쩍 비술을 사용해 보려던 나를 제지하는 헤르메스의 단호한 말에 얌전히 제물이나 천칭 위에 올렸다.
“쳇. 어떻답니까?”
- 기다려보시게.
헤르메스는 진언을 읊었고, 잠시 후 천칭의 위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게 뭡니까?”
- 보면 모르나? 대가가 부족하다는 뜻이지.
“아니…….”
천칭의 접시는 그 결과를 알려주듯 내 제물을 담은 쪽이 위로 들어 올려져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압도적으로.
“사기 아니죠?”
- 그럴 것 같나?
“…아뇨.”
하긴, 암만 병장기들이 값비싸 봐야 사람이 죽었다가 어린 몸뚱이로 살아나는 것보다 더 값어치가 나갈까.
- 얌전히 대가나 더 올리시게.
“예, 예, 올릴게요. 올리면 되잖아요.”
주변에 있던 병장기들을 싸그리 긁어모았다.
탐 녀석이 개뼈다귀로 써먹던 병장기를 올릴 땐 살짝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지만, 돈 되는 것이라고는 다 올려봐야지.
“잠깐만요.”
과연 술법으로 만들어진 대접이라 그런 지, 십수 개의 병장기들이 올려져도 끄떡없었다.
거기다 더해 미리 구해 놓은 영약과 독초들을 올려놓기까지 했지만―
- 기별도 가지 않는군.
“…….”
드높게 상승한 대접은 내려올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잠깐만.”
거기다 더해 이곳까지 오며 쟁여놨던 야명주도 올려보았다.
그럼에도,
- 더 올리시게.
천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잠깐!!”
이쯤 되면 오기가 붇기 시작했다.
대체 내 탄생에 얽힌 비화는 무엇인가?
아직 개봉하지 않았던 석관들도 따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나온 무공 서적이니, 보화니, 하는 것들도 전부 다 천칭 위에 적재했다.
하지만 역시―
- 허허, 이거 생각보다 자네의 재생에 얽힌 비밀이 무거운가 보구먼.
어림도 없지.
천칭은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환술인가?’
- 실로 기이한 일이구먼. 척 보기에도 자네가 바친 대가가 적지 않은데… 내 눈에 그대에게 윤회와 전생, 재생의 인과가 보이기에 무언가 있는 존재임을 예상했지만… 이래서야 나도 함부로 그 비밀을 엿보다간 손해가 막심하겠어.
누구는 답답해 죽겠는데, 연금술사 양반은 실로 신기한 경험을 했다는 듯 팔짱을 끼며 유쾌함을 뽐냈다.
“…이거, 어찌합니까? 이거 환불돼요?”
- 내가 받은 게 없는데 무슨 환불이겠나. 가져가려면 가져가시게. 다만, 나는 다른 방법을 추천한다네.
“그게 뭡니까?”
- 다른 대가를 받는 것이지. 솔직히, 자네도 여기까지 와서 물러나기는 오기가 생기지 않나?
그건 맞지.
‘솔직히, 여기서 어떻게 물러나?’
“거 뭐냐. 혹시 천마라는 개새끼를 아십니까?”
- 천마(天魔)? 실로 광오한 이름이군. 나는 잘 모르겠지만, 대가만 맞다면 허공록(虛空錄)에 접속하여 알아봐 줄 수는 있지.]
허공록? 그건 또 뭔지…….
“그럼 그놈에 대해 알아봐 주세요. 그놈을 저승에서 끌어내려 한다는데, 그게 어찌 되고 있는지, 대체 어디서 그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아, 하는 김에 대체 그놈은 뭐하는 놈인지 등등이요.”
- 해보겠네.
헤르메스는 군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칭을 향해 손을 뻗는데―
파지지직!!
갑작스레, 천칭에서 검은 번개가 튀어 오르더니 광채로 이루어진 헤르메스의 손을 쳐내며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 이런?
그 모습에 헤르메스 역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허… 이번 만남에선 놀랄 일이 실로 많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 보는 그대로일세. 자네가 원한 정보는, 상당히 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것인 듯하더군.
비싼 대가?
“그러고 보니… 그 자식들이 재생의 비술인가 뭔가 하며 흉계를 꾸미고 있다던데. 그 비술 때문입니까?”
술법 쪽은 전문이 아니지만, 술사들이 술법전을 벌일 때는 무공보다 더욱 치열하게 서로의 술법에 간섭하기 위한 공방전이 벌어진다고 한다.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영역의 싸움이 아니기에 더더욱 간섭이 쉽기에, 그를 방비한 대비도 상당히 잘되어 있다고.
만약 헤르메스가 그런 쪽으로 접근하다 방어 대책에 튕겨난 거라면…….
- 아니, 그게 아닐세.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그는 황망함이 느껴지는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 그들이 무슨 술수를 부리고 있는 것쯤이야 이미 파악했다네. 그리고…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 있어 인간계의 술법은 이미 별것이 아닐세. 죽음에서 망자를 돌아오게 하는 재생의 비술? 그쯤이야 나 역시 인간 시절에도 여러 번 시도해 봤으니까.
죽은 이 살리는 걸 주머니 속 물건 꺼내듯 취급하면서 이번 일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일이라고―
- 그러니, 지금 거부당한 것은 고작해야 재생의 비술 따위가 아니네. 더더욱 본질적인 것. 즉, 천마(天魔)라고 불리는 광오한 존재에 의함일세. 게다가 이 거부 반응이 의미하는 것은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것이니―
최초의 연금술사는 말했다.
- 그 존재는 그대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미 그 본질은 인간의 굴레를 초월한 영역에 닿아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