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천마는 인간의 굴레를 초월한 영역에 닿아 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소리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충격은 크지 않을지도?’
그 이야기를 들은 내 심경은 꽤나 덤덤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 그런가?’
천마(天魔).
말 그대로 하늘에 닿은 마(魔)이며, 그 이름만큼이나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솔직히 말해, 재생의 비술 따위 없어도 그놈이 멀쩡히 죽음에서 돌아온다는 말이… 영 믿기지 않은 수준이 아니거든.’
그만큼이나 흉악무도한 새끼였고, 자다가 꿈에 나와 벌떡 일어날 것 같은 새끼였다.
다만,
“…거, 그놈이 나랑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무슨 소리십니까?”
그 말만큼은 묘하게 신경 쓰인단 말이지.
- 글쎄. 그건 나도 알 수 없다네. 내가 아는 건 그저 인과의 실이 닿아 있다는 것뿐. 그것에 대해 더 자세히 알자면 마찬가지로 제물을 소모해야 하나, 이미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제물이 소비되었다네.
보시게나.
헤르메스가 가리킨 손가락 끝을 따라가자, 어느새 대접 위에 올려진 제물이 대폭 사라져 있는 게 보였다.
“아니, 이게 뭐야?!”
내 영약!
내 독초!
내 금궤!
협객으로서 합당한 노동의 대가로 축적했던 제물이 눈 크게 뜬 상태로 도난당해 버렸다.
- 험… 거 미안하게 됐네.
“거 싯팔! 미안하면 답니까?!”
이런 이변은 헤르메스 역시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스러워했다.
- 크르르르!!
아끼던 개뼈다귀를 잃은 탐도 열심히 항의했고, 두 명분의 성원을 받은 지성인 헤르메스는 머리를 긁적이다 말했다.
- 허 참… 이런 경험은 나도 처음이라 몹시 당황스럽군. 본의 아니게 그대들을 속이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아니, 어찌하긴 어찌합니까. 합당한 보상과 배상을 해줘야지!!”
무엇이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지?
설마, 말로만 어찌할꼬… 하면 다 해결되는 세상인 줄 아는 건가?
- 그야 당연한 말일세. 나는 사기꾼도, 한낱 길거리 약장수도 아닐세. 최초의 연금술사로서의 명예를 걸고 합당한 배상을 할 테니 그리 흥분하지들 마시게나.
워워 하며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한 마리 뱀과 한 마리 인간이 함께 으르렁거리는 걸 진정시킨 헤르메스가 턱을 괴며 고민했다.
- 나를 부르는 데 성공한 이가 범상치 않을 리가 없다지만, 이번 경우는 특히나 범상치 않군.
“아니 거, 뭐 최초의 연금술사나 된다면서요? 왜 이런 일이 처음 겪는다는 겁니까?”
- 그야 나를 소환하는 데 성공한 연금술사들은 다들 자신의 역량을 잘 알기 때문일세. 등가교환, 내가 세상에 남긴 가르침을 배운 이들은 누구나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만을 바라기 마련이기 때문일세.
즉, 이렇게 무지성 등가교환을 시도한 이들은 너희가 처음이라고.
묘하게 돌려버리는 연금술사 양반의 설명에 나도 괜히 뜨끔해졌다.
“큼… 거, 뭐 그러니까. 다른 양반들은 다들 자신이 무언가를 바쳤을 때 무언가가 나올지를 정확히 알았으니까 그에 따른 대가를 내놓고 그에 따른 합당한 결과물을 요구했다는 겁니까?”
- 정확히 그러하다네. 그들이 내게 요구한 것은 깨달음의 한 자락이자, 저 녹주석비와 같은 현자석(賢者石)의 모방일지니, 그대와 같은 이는 없었다는 말일세.
“아니, 그럼 뭐 어쩌자는…….”
- 내 자네에게 제안을 하나 하겠네. 자네가 이미 천칭에 올린 것과 이제 사라져 없는 것들 중 내 과실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합산하여 한 가지 선물을 주겠네.
선물요?
“그게 뭔데요?”
- 자네에게 가장 쓸 만하다 싶은 것을 주겠네. 물론, 그 판단 역시 나의 주관이 아닌 천칭의 판단일지니― 자네에게도 결코 손해되는 선택지는 아닐걸세.
“흐음…….”
그게 뭘까?
나는 고민이 들었지만, 곧 그게 썩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뭐, 손해 볼 건 없잖아?’
저 천칭에 남은 것들만 해도 당장 여기서 들고 가기는 버거울 정도로 양이 많다.
질투종의 사제 놈이 이 비밀 창고에 얼마나 많은 걸 꿍쳐놨는지―
사실상 여러 번 왕복하더라도 다 챙기기 힘든 것들을 탐하는 것보다는, 당장 내게 도움이 된다는 걸 받아가는 게 훨씬 이롭지 않을까?
“그, 이번에는 갑자기 사라지거나 하지 않겠죠?”
- 허허, 이번엔 나의 주관하에서 이루어지는 합당한 등가교환이라네. 내가 이러한 교환을 몇 번이나 주관했다 생각하는가?
걱정 붙들어 매라 말하는 최초의 연금술사에게서는 꽤나 확신이 느껴졌다.
“그렇다면야… 잘 부탁합니다.”
이런 건 자고로 경력직에 맡겨야 된다고, 두 손 모아 부탁하니 그는 듬직한 미소와 함께 두 손을 부딪쳤다.
- 물론. 그럼, 시작하겠네.
우우웅―
대가를 받아들인 천칭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눈부신 녹광이 터져 나와 지하 공동 내를 가득 채웠고, 대접 위를 가득 채웠던 제물들이 그에 휩싸여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르르…….
미세한 빛의 알갱이로 화했던 것들은 이내 다시금 내 발치 앞에서 새로이 뭉쳤다.
그것은 점점 형상화하기 시작하여 종내에는 네 개의 발이 담긴 무언가로 형상화하기 시작했으니―
그 모습은 허리가 길쭉하고, 그에 비해 네 발 달린 다리는 상대적으로 짧았으며―
- 헥헥?
귀를 쫑긋 세우고, 혀를 길게 내민 채―
- 헥헥!
빵실한 빵뎅이를 자랑하는―
“개?”
개였다.
- 허허, 개라니. 이래 봬도 영수의 핏줄일세.
“영수요?”
- 헥헥!
…요새 영수는 저렇게 사람을 반기나?
- 크르르르!
- 헤엑?!
녀석의 등장에 탐이 하악질을 시도하자 영수의 핏줄이라는 놈은 깜짝 놀라 발라당 뒤집어졌다.
녀석은 탐의 하악질에 저항하듯 빵빵한 뱃살을 드러낸 채 열심히 네 다리를 허우적거렸지만, 탐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가리를 쩍 벌리다.
“왜 애를 괴롭혀, 인마.”
쾅!
- 크르르!
나한테 한 대 처맞았다.
- 크르르르!!
왜 때리냐는 눈빛으로 쏘아보는 녀석이지만, 아무렴 자기 머리보다 작은 놈을 괴롭히는데 내가 가만 두겠냐?
뭣보다―
“이 녀석이 진짜 그 보물들 값을 한다는 겁니까?”
쪼그만 주제, 적당히 비싼 몸이어야 말이지.
- 물론. 그 부분은 내가 보증하지. 오히려, 등가교환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내가 후하게 삯을 쳐준 것이라네.
“…진짜요?”
- 당연하지. 조금만 더 성장하면 저 아이는 영수로서의 권능을 부릴 수 있게 된다네.
“그게 뭔데요?”
- 기본적으로 거대화, 비행, 삿된 것에 대한 저항 등이 있다네.
“그게 끝이에요?”
- 나머지는 자네가 알아봐야지.
“아니…….”
무엇이지?
똥 싸고 덜 닦은 듯한 이 찜찜함은.
- 여기까지가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일세. 자네가 날 즐겁게 해준 것에 대한 답례까지 더한 것이니, 더 이상의 요구는 과한 것이라네.
상당히 찜찜했음에도, 지금까지 사람 좋아 보이는 면모만을 보인 최초의 연금술사 양반이 보인 단호하기까지 한 면모는 더 이상의 요구를 불허했다.
왠지 더 요구했다가는 괜히 적을 만드는 일일 것 같다는 직감에 나 역시 더 말하지 않고 소환된 개를 바라보았다.
- 헥헥!
“이 녀석, 이름이 뭡니까?”
- 그것은 자네가 지어주게나. 자고로 영수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서로 간의 인과를 맺는 각인 의식의 하나이니, 자네가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일종의 계약을 맺게 되는 것과 같다네.
“그렇다면야…….”
이 녀석의 이름은 내가 지어주게 되었다.
그런데,
‘뭐라고 짓지?’
새 생명에 이름을 지어주는 삶과는 거리가 있는 인생을 살다 보니, 몹시나 난감하게 되었다.
탐 녀석이야 이래저래 되는대로 지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 헥헥헥!
저렇게 열렬히 빵실한 빵뎅이를 씰룩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도저히 대충 지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이건 좀 반칙일지도…….’
덤으로 꼬리까지 좌우로 흔들어오는 모습은 붙임성이라고는 갖다 버린 탐과는 대극점에 위치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생각해 보면, 저 녀석 처음 만들었을 때는 꽤 고생도 했었으니까.’
엄마 말 더럽게 안 들어먹게 생긴 외양을 증명이라도 하는지, 뭐 하나 시킬 때마다 온몸으로 저항하던 덕에 울혈을 토해 낸 것만 몇 번에 달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렇게 헥헥거리는 녀석을 보자면 좀 고민 좀 해주고 싶은데…….
“헥헥이는 어떨까?”
우리 집에 삑삑거리는 삑삑이도 있으니 헥헥거리는 헥헥이는 나쁘지 않을…….
- 헥헥?!
“…지 않지 않겠구나?! 지, 진정해 봐. 그렇게 세상 끝난 표정 짓지 말고!”
개상으로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빵실한 빵뎅이가 축 처지고, 좌우로 까딱이던 꼬리도 아래로 떨어지니 심대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럼 뭐… 빵실이는 괜찮…….”
- 헥… 헥…….
“…을 리가 없지?!”
이젠 아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아니, 헥헥이랑 빵실이가 어때서?’
- 자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참 더럽게 이름 못 짓는구만.
“거, 도와줄 거 아니면 끼어들지 마쇼.”
- 허허, 볼장 다 봤다고 안면몰수하는 게 일품이구먼.
최초의 연금술사 양반은 팔짱을 끼며 껄껄 웃었다.
- 그러지 말고 가진 것 있으면 좀 내놓아보시게나. 내 작명술에도 일가견이 있으니 합당한 작명을 선사해 주겠네.
“어… 가진 거요?”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얌전히 품에서 암기 몇 개와 독 몇 종류를 꺼내 바쳤다.
그것들을 천칭에 올린 헤르메스는 이전 것과 같이 제물들을 빛의 알갱이로 만들어버리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 수령했네. 동방 세계의 형식에 맞추어, 이 아이의 이름은 굳셀 무(武)에 민첩할 민(敏)을 더하여 무민이 어떻겠나?
“무민이요?”
난 빵실이가 더 나은 것 같은데…….
- 헥헥!
- 그 아이도 좋아라 하는군.
확실히 다른 반응이기는 했다.
조금, 섭섭할 정도로.
“그런데… 조금 전에는 제가 이름 지어줘야 한다고 한 거 아닙니까?”
- 자네가 적법한 대가를 치르고 내게 의뢰를 요청했고, 그를 통해 내가 길한 이름을 알려주었으니 이는 곧 자네가 지어준 셈이지.
“그렇습니까?”
무민이라…….
“그럼 뭐, 그렇게 합죠.”
- 헥헥!
진짜 마음에 든 것일까?
빵실이… 아니, 무민은 자신의 빵뎅이를 씰룩거리며 좋아라 했다.
- 축하하네. 이로써 자네는 영수의 핏줄과 연을 맺게 되었으니, 그 이로움은 말로 다 할 수 없겠지.
껄껄 웃음을 터트린 그는 잠시 후 점점 형체를 구성하는 빛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가시게요?”
- 업을 다 했으니 돌아가야지.
“어디로 가는데요?”
- 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일세. 자네도 어느 정도 짐작하다시피, 자네와 나는 사는 세계가 다르니까.
역시, 그런가.
- 즐거웠다네.
끝을 고하는 최초의 연금술사는 담백한 말과 함께 빛무리가 되어 사라졌다.
거대한 천칭도, 공동을 가득 채우던 녹광도 사라졌으니―
“그 양반, 갈 때도 예술적으로 가는구먼.”
남은 것은 뭔가 허전해진 주머니요,
- 크르르!
한 대 처맞고 아직도 뿔난 탐 한 마리와,
- 헥헥!
빵실한 빵뎅이를 자랑하는 빵실… 아니, 무민까지.
“뭐, 빈손으로 와서 이 정도면 가득 챙겨가네.”
이제는 돌아갈 때가 되었다.
아직 정리가 덜 된 혼돈의 땅, 광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