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무공을 움직이는 데 내공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내공은 신체로 따지자면 혈관을 따라 흐르는 피와 같으니, 내공이 없으면 무공을 펼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건 그나마 양반인 경우.
만약, 원래라면 그 무공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람이 돌연 내공이 사라지게 된다면 어떤 결과에 도달하게 될까?
그건 바로,
“쿠웨에에엑!!”
크게 가면 주화입마, 작게 가도 내상(內傷)이었다.
“끄으으으… 하윤호, 이노오오옴!!”
한 바가지는 족히 되는 핏물을 토해 낸 가을량이 부르짖었다.
“슬슬 약효가 도시나 봅니다요.”
그에 하윤호는 담담히 응했다.
“설마… 네놈……!”
“예. 산공독입니다요. 무색무취는 기본에 하독하는 즉시 기화해 버리기에 한 번 펼치면 별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음이지요.”
당가의 악귀에게 빌려온 물건이다.
이것 하나 빌리겠다고 겪은 온갖 수모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돌 지경이지만 이 모양 이 꼴을 보니 참 싸게 먹혔다 싶다.
“아, 물론 저도 중독되었습니다요.”
“언제… 언제부터냐!”
“처음부터 입니다요.”
들어온 순간부터 산공독의 살포는 시작되었다.
산공독(散功毒).
말 그대로 내공을 흩트리는 독으로, 어지간한 독은 내공만으로 제압해 버리는 경지 높은 무인조차 한 번 걸리면 온 내공이 흩어져 버리는 무인만을 위한 독이었다.
“한데, 그 경지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리 풀리는 것을 보면… 역시, 가짜 내공이신가 봅니다요.”
“…뭐? 네가 그걸 어떻게…….”
“그러게 말입니다요. 저 역시 알기 싫었습니다요.”
하윤호는 괴로운 표정을 숨기며 오기 전 당가의 악귀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아닐 수도 있지만… 네 사문의 문주는 마공을 익혔을 가능성이 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마공 중에 그런 게 있다. 사람을 잡아먹고, 그 사람을 흉내 내는 무공이.”
광동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걸 조합하고 있을 때 악귀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시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질시하고 질투하는 놈들의 수법은 사람을 실혼인으로 만들고, 그 안에 다른 내공을 심거나 혹은 그 본체의 내공을 빼 오거나 하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에 딱 맞는 독이 있어.”
그리 말하며 건네받은 물건은 바로 이때를 위한 것.
차마 아니길 바랐지만, 입구에서 마주한 것들을 보고도 망상이나 품을 정도로 하윤호는 어리석지 않았다.
“조금은 기대했습니다요. 협곡의 입구에 드리운 진법이 본문의 절진이었기에, 그래도 형님께서 본문의 문주이길 포기하지 않으셨구나 싶었습니다요. 하지만… 진정 마교의 손을 잡고 그들의 무공을 익히시고 말았습니다요.”
“이놈이… 내가 하오문의 문주가 아니라는 것이냐!!”
하윤호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슬픈 표정을 지을 뿐이었고, 그것이 가을량을 더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하윤호!! 네가 정녕 내공 없이 싸우면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정녕 기억이 나지 않으시나 봅니다요. 없이 싸우는 것은, 저의 특기임을.”
“이놈!!”
발작하듯 가을량이 검을 휘둘렀다.
내공이 실리지 않았대도, 그가 휘두르는 안모도는 사실 명검의 반열에 오른 것이었기에 날 선 기세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디십니다요.”
어느새 뽑아든 단검으로 검면을 후려쳐 쳐낸 하윤호는 여유로이 몸을 뒤로 빼내며 물었다.
“가짜 내공으로 쌓아 올린 육체로는, 어려우십니까요?”
“어딜 내려다보느냐! 피나 토하고 있는 주제에!!”
여유롭게 몸을 빼낸 듯했지만, 사실 하윤호의 상태도 좋지는 않았다.
내공이 없는 상태로 묵직한 안모도를 단검으로 쳐 냈으니, 원래 입었던 내상이 심화되어 입가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이다.
그 상태로 검이 날아들어 어깨를 스쳐 지나갔지만,
“……!”
하윤호는 검 끝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틈을 노려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뭣?”
당황한 가을량이 검을 휘둘러왔지만, 하윤호는 그 순간 빙그르― 몸을 반 바퀴 회전시키며 그것을 피해 냄과 동시에 웃옷을 벗어 던졌다.
이미 걸레쪽이나 다름없던 웃옷이 연처럼 펄럭이며 날아올라 가을량의 시야를 가릴 때,
퍽―
무언가 자신의 하복부를 꾸욱 눌러옴을 느꼈고―
푸욱!
그 위를 관통하는 뜨거움이, 가을량의 두 눈을 크게 뜨이게 만들었다.
“…하.”
뜨거움이 곧 차가움으로 변모해갔다.
어느새 자신의 복부에 박힌 칼날이, 자신을 찌른 하윤호의 손등 위를 관통했음을 발견한 가을량의 두 눈은 이내 호를 그렸다.
“…미치겠군.”
힘이 빠진다.
사실, 산공독에 의해 가짜 내공이 흩어지며 그의 몸은 삐걱거리기 시작했었다.
‘아니, 어쩌면… 단(丹)을 먹을 때부터, 이 결과는… 정해졌을지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허망함을 느끼며, 가을량은 자신의 품속에 안기듯이 파고들어 있는 하윤호를 향해 물었다.
“윤호야.”
대답은 없다.
하지만 녀석의 어깨가 들썩거림이 그 답을 대신했다.
“울지 말고 답해 줘라. 내가… 이 내가, 틀렸던 거냐?”
“…울긴, 누가 운다고 그러십니까요?”
“새끼. 다 큰 놈이 질질 짜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균형이 무너져버린 몸은 어느새 반쯤 녀석에게 얹혀진 듯했다.
“무시 받지 않길 원했다. 힘없는 이들이라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이라고. 멋대로 북방으로 팔아 넘겨지고… 그렇게 팔린 이들을 북방군이라며, 변방의 개처럼 부리는 이 세상을 바꾸길 원했다…….”
그리고,
“그런… 그러했던… 우리를… 거두어 주신… 대장군을… 돌아가시게 만든 그놈들에게… 그래… 가진 놈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랬었다.
분명 그랬는데,
“…이제는, 모르겠구나…….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문주 님… 아니… 형님…….”
겹쳐진 두 어깨가 들썩였다.
“형님께선… 혐오해 마지않는 이들을 상대하시다가… 그만, 그들처럼 되고 말았습니다요…….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시다… 결국… 모두를 소외시키고 말았습니다요…….”
“하… 하하… 그런가?”
역시, 그랬던 걸까.
“단전은… 괜찮으냐?”
정작 단전이 박살 난 건 자신이면서도, 가을량은 자신의 단전을 박살 낸 하윤호에게 물었다.
그에,
“…아시지 않습니까요? 반푼이라는 것을…….”
순간 움찔했던 하윤호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처연히 웃었다.
“그래… 그랬지……. 그러니… 우리 동기 중… 가장 뛰어난… 무골을 지녔던… 네 녀석이… 그 모양… 그 꼴이겠지…….”
끽해야 일각이려나.
조금 전까지 자신의 공세를 피해 내던 하윤호지만, 그가 무공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일각뿐이었다.
그 이유까지 알고 있는 가을량은 남은 힘을 쥐어짜 내 하유호를 뒤로 밀어냈다.
그리고,
우당탕!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를 의지하여 기대던 둘은 함께 바닥에 무너졌다.
“크흐… 역시, 그때구나. 모든 게 무너지던 그 날… 그 상처를… 아직, 아직 고치지 못했어…….”
부서진 단전.
이제 아는 이라고는 단 둘뿐인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곱씹으며 가을량은 벽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
“그럼… 그 왼손도… 그런… 의미냐?”
자신의 하단전을 꿰뚫으며 함께 관통한 하윤호의 왼손.
그걸 가리키자,
“…기억하고 계셨습니까요?”
하윤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흐… 그럼……. 다… 잊은 줄… 알았느냐?”
빌어먹을 놈.
가을량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어이, 거기 너. 저기 선반에서 상자 좀 가져오거라.”
그리고 턱짓으로 자영을 부르니, 호명당한 자영은 당황해하다가도―
“…….”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 한쪽 벽면에 설치된 선반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가져왔다.
“열어봐라.”
딸칵―
“…형님, 이건?”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작은 단약이었다.
그 냄새가 범상치 않은 것이 결코 평범한 단약은 아니었으니―
“약 가리지 말고 먹어라. 네 반쪽짜리를 채워줄 게다.”
이걸 어떻게 얻은 거더라?
아, 그래. 생사귀의(生死鬼醫) 놈을 죽이고 뺏은 것이었지?
이젠 가물가물해지는 의식 속, 안개가 낀 듯한 기억을 뒤적이며 피식 웃었다.
“근본이 구려도, 그걸 어찌 쓰느냐가 또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까지는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것 같던 목소리가, 지금은 무척이나 또렷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는 하윤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형… 님…….”
“가져가는 김에 저것도 가져가라.”
가을량은 그런 하윤호의 부름에 답하지 않고, 대신 반대편 선반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건 단약을 담기에는 꽤 큰 상자였다.
“내 나름대로 조사한 거다. 마교도 놈들과 손을 잡을 때, 혹시나 놈들이 뒤통수를 갈길까 봐 내가 먼저 갈기려고 모아 놓은 것들이지. 뭐, 그거 말고도 나름 일기랍시고 적어 놓은 것도 있다.”
자영이 묵묵히 그 상자를 가져오니, 안에는 꽤 많은 문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후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하지만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결말이지.”
회광반조(廻光返照).
해가 지기 직전이 가장 밝듯, 죽음을 맞이하기 전 잠깐 기운을 되찾은 가을량이 어느새 흐느낌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하윤호에게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턱턱―
그리고, 힘없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경고하마. 괴물과 싸울 때는… 너 역시 괴물이 되지 않게 주의하거라. 나는, 그것을 너무나 늦게 깨달아버렸으니까.”
너무나 늦고, 너무나 멀어져 버렸다.
“실로, 먼 길을 와버렸구나. 너무나… 먼 길을 와버렸어.”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그게 불가능함을 알기에 가을량은 대신해서 씨익 웃기로 했다.
“인상 펴라, 윤호(贇號)야. 더럽게 태어나도, 우리 인생은 아름답게 가야지. 그게, 우리 약속 아니더냐.”
“예쁠 윤(贇)에, 이름 호(號). 시팔 더럽디더러운 인생이지만. 그래도 갈 때는 예쁘게 가야지. 안 그러냐?”
먼 과거에서, 기억 속에 울려 퍼지는 그 외침에 하윤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형… 님……?”
하지만,
“형님… 형님… 형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으니―
“아…….”
하윤호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
* * *
북방(北方).
사람이 살아가기는 너무나 가혹하고, 벼 이삭이 자라나기에도 너무나 혹독한 곳.
그곳을 찾아오는 것은 오로지 오랑캐라 불리는 이들이니, 그렇게 이름 지은 이들부터가 오랑캐를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라 여기지 않았다.
해서, 북방으로 차출되는 이들도 대게 사람 취급을 받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어이, 꼬맹아.”
그렇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여, 상품으로써 취급되어 북방으로 팔린 소년은,
“넌 이름이 뭐냐?”
딱 봐도 자기랑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소년이, 자기도 꼬맹이인 주제 자신을 꼬맹이라 불러오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