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소년은 이름이 없었다.
그건 꽤 흔한 일이었다.
성(姓)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말 그대로 가진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니―
가진 것 없는 이들의 가정에서 첫째를 춘일, 둘째를 춘이, 셋째를 춘삼… 이런 식으로 이름 짓는 것은 이 시대에 꽤나 흔했으니까.
게다가,
‘그마저 양반이지.’
그나마 그것도 가족이라는 게 존재할 때나 가능한 경우.
태어나고 정신 차려 보니 어느 굴다리 밑에서 동냥질이나 하며 벌어먹고 있는 이들에게는 성은커녕, 이름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어이, 거기, 이 새끼 등등으로 불렸던 소년에게, 그러다 ‘상품’으로 취급당해 북방으로 끌려온 소년에게,
“넌 이름이 뭐냐?”
라는 질문은, 꽤 생소한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 자식. 내 말 씹어? 대답 안 해?”
“…몰라.”
“뭐?”
“난 이름 같은 거 없어.”
“핫…….”
그 답에 자기가 질물은 던졌다가 괜히 화를 낸 소년은 무언가 무안한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다가,
“아니, 근데 이 자식아, 왜 반말이냐?”
“너도 반말하잖아.”
“내가 너보다 형이잖아!”
“왜? 너 몇 살인데?”
“난 열 하나. 너는?”
“나는…….”
그러고 보니, 나는 몇 살일까?
소년은 또다시 답이 없어지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모르겠는데?”
“뭐?”
“나이도, 이름도 몰라. 알려준 사람이 없어.”
“아…….”
흔한 일이다.
이 시대에 흔한 일이요, 이 장소에는 더욱 흔한 일이다.
그래서,
“그럼 넌 열 살이야.”
“…뭐?”
“너 열 살이라고. 내가 알려줄게. 그리고 너 생일도 모르지?”
“그렇… 지?”
“그럼 오늘이 생일이야. 넌 오늘 이 땅에 딱 십 년 전에 태어난 거야. 히히, 좋지?”
좋을 리가 있나.
소년은 어처구니가 없어 반박하려 했지만―
“거기! 누가 떠들라고 했나!!”
“이크!”
갑작스레 떨어진 불호령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밑도 끝도 없이 생년월일을 선물한 소년 역시 입을 꾹 다물었으니, 그들 둘이 선 소년병 대열의 앞에 선 병사 하나가 굵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소리쳤다.
“이 자식들아! 떠들지 마라. 너희가 누구 휘하에 소속되었는 줄 아느냐?!”
불특정 다수를 향해 외치는 병사의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들 소년병은 사실상 ‘상품’으로서 팔리듯 이곳으로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대개 상품이 그러하듯 자신들이 어쩌다 어떻게 어째서 이곳으로 온 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즉, 여기가 어딘지를 아는 이들은 전무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병사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빠르게 말을 이었다.
“너희는 대장군 휘하에 소속되었다. 아느냐? 단 셋뿐인 대장군 중 한 분의 휘하에 소속되었다는 소리다! 흐하하, 영광이지?!”
호쾌하게 웃으며 외치는 병사지만, 다른 소년들이 그에 웃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다들 눈치만 보기 바빴고, 그 사이에서 나이를 물어왔던 소년은 속삭여왔다.
“대장군부고 나발이고, 밥이나 잘 줬으면 좋겠구만.”
안 그래?
소년은 낄낄대며 물어왔고, 그 물음에 ‘나’는 생각했다.
‘어쩌란 거지?’
조금 전에 괜히 소란을 피우다가 걸려 불호령이 떨어진 걸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어 인상을 조금 찌푸리자―
“야야, 인상 펴 새꺄. 너 그렇게 인상 안 찌푸려도 충분히 못생겼어.”
“…….”
“어쭈? 치겠다? 넌 장유유서도 모르냐?”
“장… 뭐?”
“쯧쯧, 무식한 놈. 똥물도 위아래가 있다고, 인마.”
누구보고 무식하다는 건지.
듣기만 해도 귀가 썩을 것 같은 비유에 인상을 찌푸렸으니―
그것이 ‘나’라는 존재가 ‘소년’을 만난 첫날의 기억이었다.
* * *
“헉헉! 뒈지겠네! 싯팔!”
굳이 입을 열어 표현하지 않아도, 타는 듯한 갈증이 목구멍을 푹푹 찔러왔다.
그래서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통을 삼켰고, 옆에 있는 자칭 ‘형’은 옆에서 빼애액 거리며 괴로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걸 보다 못한 ‘나’는 말했다.
“…형. 가만히 있어. 그러면 더 힘들어.”
“내 마음대로 힘들다고 말도 못해? 힘든 건 내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는 건데, 힘들다고 말하는 건 내 마음대로 하자.”
“…마음대로 해.”
더 말해 봐야 들어먹을 것 같지 않으니 눈과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툭―
무언가가 머리 위로 던져졌다.
별로 커 보이지도 않는데 달짝지근한 냄새가 풍겨오는 그것은―
“…육포?”
“흐흐, 한 번에 꿀꺽 삼키지 말고. 천천히 음미해 먹어, 자식아.”
고작해야 엄지 한 마디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없어서 못 먹는 육포 쪼가리였다.
“이, 이 귀한 걸 어떻게?”
“이 형님께서 구해 오셨지. 저기 저 병사 형님새끼들한테 말이야.”
형님은 형님이지, 형님새끼는 뭘까.
사실 그 답을 알고 있는 ‘나’는 육포 쪼가리를 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결국, 성공했구나?”
“아암, 나는 이걸 호감작이라 부르기로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저 형이 평소 나이 많은 병사들에게 치근거리며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며 여러 가지 허드렛일을 자행하는 것을.
“아이고! 형님!!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어유, 근육이 많이 뭉치셨네!! 제가 좀 풀어드릴깝쇼?”
“헤헤, 목마르시죠? 여기 시원한 냉수 드십쇼! 미리 떠놔서 저기 그늘에 딱― 보관했습죠!”
대체 저게 뭐하는 짓일까 싶은 갖가지 기행들.
하지만 형은 당당했다.
“인마. 우리 같이 가진 것 없는 이들은 자존심 같은 거 다 갖다 버리고 납작 엎드려야 해. 그래야 뭐 하나라도 떨어지지. 이 육포 쪼가리라거나, 무공 한 자락 같은 거 말이야.”
“…왜?”
“왜라니?”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노력하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교환비는 압도적으로 이쪽이 손해인 경우가 왕왕 있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너무나 적다는 걸 형도 잘 알잖아.”
“앙? 무슨 소릴 하나 했다.”
그 말에 형은 피식 웃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노력한다고 모든 걸 얻을 수 있다? 싯팔, 그만큼 웃긴 이야기가 어딨냐?”
웃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낄낄거리는 형은 말했다.
“만약 모든 것이 노력에 상응했다면, 우리는 대체 전생에 뭘 얼마나 게을렀다는 것이겠냐? 가진 놈들은 뭐, 응애 애기 때부터 우리랑 다른 노력을 했을까?”
그럴 리가 있나.
“그렇지만 노력은 해야 하는 거야. 가진 놈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뭐가 막막 떨어지지만. 우리 같이 없는 놈들은 말이야, 아무것도 안 하면 진짜 아무것도 되지 않거든.”
“…노예병이 되던데?”
“아, 그래. 쓰레기 같아진다. 됐냐?”
이 새끼가 어디서 형님의 말에 꼬투리를 잡아?
“아아아악!!”
머리를 조여오는 팔뚝을 잡고 탁탁 두들기는 ‘나’는 생각했다.
‘노력, 해볼까?’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해서 꼭 무언가를 얻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거나, 이 형은 무언가를 얻어내고 있잖아?’
그날 밤, 육포 쪼가리를 한 시진 넘도록 오물거리며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 * *
“흐아아압!!”
앳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합이랍시고 내뱉은 것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고, 그 기합과 날아온 주먹 역시 빈약하기 짝이 없었으니―
“흡!”
주먹의 궤도를 예측하고, 피해 내며 반격으로 날린 주먹이 상대의 명치를 두들겼다.
“쿠엑!!”
완벽한 반격에 주먹을 날린 상대는 나가떨어지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명치를 부여잡고 켁켁거렸다.
그러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야, 이 싸가지 없는 새꺄! 그렇게 인정사정없이 형님을 줘패냐?”
“…먼저 들어온 건 형이잖아?”
“아오, 이 새끼. 형이 치면 맞아줘야지!”
“싫어. 그럼 아픈걸.”
“어후… 이놈 자식. 이젠 머리가 커져서 말도 안 듣고.”
무공을 익혔다.
병사들에게 무공 한 자락이라도 얻어보겠다고 몸부림치던 ‘형’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자신들이 병영에 온 지 한 달이 지나자 ‘대장군’의 명으로 그들에게 군용 무공이 전파된 것이다.
그것은 동방의 어느 고대 국가에서 전해져 온 무공인데, 맨손으로 익힐 수 있는 데다 그 살상력이 뛰어나 병사들에게 기본적으로 익히게 하는 무공이라 들었다.
“형, 그… 괜찮아?”
“괜찮냐니?”
“형의 노력이… 수포가 됐잖아.”
남들은 아무것도 안 할 때, ‘형’은 무엇이라도 하나 더 익히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한 소절 한 소절 얻은 무공인데, 정작 그걸 아무런 조건 없이 윗사람들이 뿌려버렸다.
그 노력이 짓밟힌 것과 다름없어 걱정스레 묻자―
“야, 설마 넌 내가 고생한 게 수포가 됐다고, 헛걸음이 됐다고 우울해할 줄 알았냐?”
그런 걱정이 같잖다며 ‘형’은 오히려 활짝 웃어 보였다.
“인마. 어쨌든 그리도 바라마지 않던 무공을 익히게 된 거잖냐. 그것도, 감질나게 한 소절 한 소절이 아니라 완전한 무공. 그리고 뭐… 내가 그렇게 노력해서 한 소절씩 얻은 게 뭐가 문제야? 그게 다 선행 학습이라니까?”
있는 집의 잘난 도련님들은 어릴 때부터 선행 학습이랍시고 남들보다 더 빨리 배운고 익히는 걸 자랑이라고 여긴다는데.
자신 역시 그걸 한 것뿐이니, 자신 역시 그것을 자랑하고 다니면 그뿐.
오히려, 남들보다 더 빨리 진도가 나갈 것이라 웃는 형의 모습에 ‘나’는 그날도 가슴 속 무언가가 뭉클하는 걸 느꼈었고,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났다.’
자신 역시 홀린 듯 무공을 익히기 시작하며, ‘형’과 ‘나’의 격차는 이젠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해졌다.
“이 새끼. 예전부터 좀 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젠 진짜 내가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네.”
그 사실을 ‘형’도 인지하는지, 낄낄대며 좋아라 했다.
“이렇게 잘난 동생이 옆에 있으니, 나… 어쩌면 줄을 잘 탄 것일지도?”
“줄? 그게 무슨 소리야?”
“인마, 원래 인생은 다 인맥이란 거야. 네가 나중에 잘나가서 십인장, 백인장이 됐다고 생각해 봐. 그럼 당연히 그 옆에 있는 나도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겠냐?”
“그런…….”
“뭐냐, 너 그 표정?! 설마, 나한테 아무것도 안 주려고? 이 자식!! 내가 널 업어 키운 걸 벌써 잊은 거야?!”
“뭔 개소리야, 형! 우리 만난 지 아직 반년도 안 됐는데!”
자신의 노력이 부정당한 것에 대한 절망도.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에 대한 허탈함도.
그 어떤 질투도 질시도 없는 형의 모습에 ‘나’는 또다시 소탈하게 웃어버렸다.
* * *
“야!! 그거 들었냐? 우리 동기들이랑, 딱 위의 기수까지 해서 무술 대회가 열린다는데?”
“무술 대회?”
언제나처럼 하루 종일 계속된 훈련에 탈진해 쓰러져 있을 때, 도통 피로라는 것을 모르는지, 촉새처럼 숙소 밖으로 나갔다 온 ‘형’이 또다시 무언가 정보를 물고 돌아왔다.
“그래! 듣자하니 우승한 사람에겐 대장군님께서 직접 상을 내리신단다! 흐흐, 이거… 어쩌면 대장군의 무공이라도 한 자락 얻을 수 있는 것 아냐?”
또 헛된 단꿈을 꾸고 있는 ‘형’이었지만,
‘대장군께서… 직접 상을 내린다고?’
어째서일까.
그날따라, ‘나’는 심장이 쿵쿵 뛰는 걸 느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