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고장 났다.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완전히 망가진 맷돌처럼 버벅거리며 돌아가는 ‘형’의 모습에 ‘나’는 직감했다.
‘이건 망했군.’
계략이니 심계니, 한낱 열댓 살 먹은 애송이가 쌓아 왔을 경험을 아득히 뛰어넘은 선택지는 ‘형’을 고장 난 맷돌로 만들어버렸다.
“허허, 이제야 제법 제 나이대의 아이 같구나.”
대장군은 그마저도 재밌다는 듯 웃었지만, 가까이서 보고 있는 ‘나’는 전혀 재밌지 않았다.
‘병… 형신이야?’
정신 차려 줬으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내가 대신 나서기로 했다.
“대장군. 질문을 허락받아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거라.”
“저희의 쓰임이 알고 싶습니다.”
“쓰임이라… 재밌는 질문이구나.”
만약 다른 고관대작이라거나, 권위 높은 이었다면 경을 칠지 모를 질문이었다.
대부분의 가진 이들은 가지지 못한 이들이 자신의 의사에 의혹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화를 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내가 본 대장군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대장군을 곁에서 본 기회는 많지 않지만, 몇 번의 만남과 막사 전체적인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가진 자들의 밑에서 질리도록 눈칫밥만 먹고 살아 왔던 과거의 경험에서 반추해 볼 때, 대장군은 ‘가진 자들’ 특유의 권위 의식이 상당히 옅었다.
당장, 이런 질문을 던졌음에도 뒤편에선 그의 부관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게 그 증거.
‘이런 일들이 꽤 익숙한 걸까?’
답을 고르듯 두 눈을 감고 턱수염을 매만지던 대장군은 잠시 후 반개한 눈을 뜨며 말했다.
“아이야. 네 이름이 윤호라고 하였더냐?”
“그렇습니다.”
“네가 소년병으로서 이 혹독한 북방으로 왔다는 뜻은, 네 삶도 꽤나 기구했다는 뜻일 테지.”
글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윤호’라는 인간의 삶을 반추해 보자면, 모나기 그지없어 어딘가에 부딪치고 또 부딪치며 깎여 나가길 반복해 온 삶이었으니까.
긴 시간을 살아 왔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삶에 불행의 농도란 것이 존재한다면 결코 어딘가에 꿀리지는 않는다 생각해 왔다.
하지만,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중 자신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모진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어디 한둘일까?
‘고개를 들면 전쟁 고아요, 고개를 돌리면 사지 불구로 신음하는 이들이 기어 다니는 곳에서 살아왔다.’
담벼락 너머 저 불빛으로 둘러쌓인 도시에서는 밤이 되어도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으나, 그렇지 못한 이들이 훨씬 더 많았다.
삶의 굴레에 치여 고통받는 이들을 직접 두 눈으로 본 것만 해도 부지기수였고, 그런 이들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당장 먹고 살기도 지난한데, 어찌 그 고난이 불운하고 불행하다고 탓하고 있을 수 있을까?
나이의 적고 많음이라는 차이만이 있을 뿐, ‘윤호’가 살아온 궤적에는 대개 비슷비슷한 이들이 천지였다.
‘게다가, 이곳 북방의 병영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이들이 수두룩하니. 특별히 나만 기구한 삶을 살았다고 하기도 힘들 일이지.’
그렇기에 ‘나’는 굳이 답하지 않았고, 그런 ‘나’의 모습에 대장군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클클클. 아이야. 아니, 윤호야. 사람들은 그리 말하더구나. 인간이란 익숙해지는 존재이며, 그것에는 불공평함 마저 존재하느니라고.”
“그게… 무슨 뜻이십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다. 사람이란 처음 불공평한 일을 당했을 때야 억울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 그마저 익숙해져 버린다는 뜻이란다.”
불공평에 반항할 의욕도,
불공평에 타오를 분노도,
불공평에 생겨날 의문도,
그 모든 것이 ‘익숙함’이라는 단어에 묻혀 사라져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느냐?”
그 명제는 과연 당연한 것인가.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느니라.”
즉답이었다.
“외부의 충격에 익숙해진다는 것. 구부리면 구부려지고 두드리면 부서지는 것. 그것은 사람이 아닌 ‘도구’에게나 해당될 말이다.”
대장군은 말했다.
“사람이란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무뎌지지도 않는다. 굽혀지더라도 펴지는 것이 사람이고, 부서지면 또다시 나아 나아가는 것이 사람이지.”
그렇기에,
“쓰임이라는 말은 틀린 표현이다. 그 역시 ‘도구’에게나 해당될 말이니까.”
질문의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을량. 윤호. 나는 그대들을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불렀느니라. 또한, 나는 너희들을 쓰임을 위해 뽑은 것이 아닐지니, 그 질문은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지.”
시작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면 만사가 그를 수밖에 없는 법.
단호히 명제부터 지적해 오는 대장군의 말에 ‘나’는 물끄러미 대장군의 주름 진 눈을 바라보았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구나. 이 노장의 말이 어딘가 그릇되었다 생각하고 있는 표정이로군.”
“…아닙니다.”
“아닌 것이 아니겠지. 말해 보아라, 사람에게는 도구에게는 달리지 않은 이목구비가 있는 것이니, 듣고 보며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이지 않겠느냐.”
특권이라.
그 말에 ‘나’는 생각했다.
생각으로 부족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고장 난 맷돌에서 고쳐진 맷돌이 된 을량과 시선이 마주쳤다.
‘안 돼! 말하지 마! 안 돼! 말하지 마! 안 돼! 말하지 마!’
정정해야겠다.
아직은 덜 고쳐진 것 같다.
애처롭게 무언가를 반복하는 듯한 을량의 모습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멈추고 다시금 ‘대장군’을 향해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말했다.
“예. 저는 대장군의 말씀이 위선이라 생각합니다. 이 북방이야말로 그 증거의 온상이지 않겠습니까.”
“…이런 정신 나간 놈이!”
반응은 곧장 돌아왔다.
뒤편에서 듣고 있던 부관의 사나운 외침이 들려왔다.
“보자보자하니 못 뱉는 말이 없구나!”
채앵―
어느새 왔음인지 못 뒤에 서늘한 칼날이 드리웠다.
‘이것이, 무공?’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 드리워진 칼날의 감촉에 조금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있을 때―
“허허허허허, 정말 재밌는 아이로고.”
별안간 거대한 웃음소리가 밤의 군영에 울려 퍼졌다.
“검을 치우거라, 태용.”
“대장군! 이건 아이라고 봐줄 수 있는 선을 넘었습니다!”
“허허허, 아이라고 봐준다? 태용아, 너는 내가 진정 그리 무른 사람이라 생각하느냐?”
“…….”
툭 하고 가볍게 던진 말에 목에 드리워진 검 끝이 덜덜 떨렸다.
검수의 고민이 잔뜩 느껴지는 검극의 떨림을 맨살로 느끼고 있자니 곧 드리워진 검이 치워졌고, 쯧 하는 소리와 함께 태용이라 불린 부관이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야. 어찌하여 위선이라 생각하느냐?”
그런 내게 대장군은 흥미롭다는 듯 물어왔고, ‘나’는 이젠 실신해 버린 을량을 한번 일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대장군은 쓰임이 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라 하셨으나, 실상 이곳에 온 이들은 그 누구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북방에 이르게 된 이들입니다. 알고 계시듯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그 삶이 박복하지 않은 이들이 없고, 그들 중 제 발로 북방을 택하게 된 이들은 없습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발걸음.
“그들 중 대다수가 팔려 오지 않은 이들이 없습니다. ‘쓰임’이 도구만이 가지는 특징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 저 또한 그리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쓰임’에 의해 도구에게 매겨지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도구의 ‘값’입니다.”
값이 맞다면 팔 수 있고, 값이 맞다면 살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팔렸고,
그렇게 우리는 사졌다.
그 결과가 바로 이곳 거대한 인간 시장인 북방이며,
“대장군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음이시지 않습니까?”
그 정점에 있는 대장군 역시 크게 다름은 없음이다.
그 말을 뱉는 순간,
카앙!!
고막이 찢어질 듯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켜라, 무명(無名). 이놈은 선을 넘었다.”
흘깃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인 것은 어느새 멀어졌던 거리를 좁히며 검을 휘둘러 오던 태용이라는 부관과,
“…선을 넘은 것은 너다.”
대체 어디 있다 나타난 건지, 북방 야인의 복색을 입은 검수가 자신의 검을 맞부딪치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놈은 대장군을 모욕했다!!”
당장이라도 ‘나’를 찢어 죽이겠다는 듯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태용의 무지막지한 기세에도 무명이라 한 검수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읊조릴 뿐이었다.
“나는 그런 것 모른다. 내가 대장군께 명받은 것은 자신의 명 없이는 눈앞에서 칼부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뿐.”
“이런 고지식한 놈이!!”
사나운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던 태용은 결국 대상을 바꿔 소리쳤다.
“대장군!! 당장 이놈을 베셔야 합니다! 이건 선을 넘은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명만 내려준다면 오체분시라도 해버리겠다는 외침.
그럼에도,
“하하하하!”
대장군은 더더욱 즐겁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왜 그러느냐, 태용아. 나는 옛 추억이 떠오르는 것 같아 즐겁거늘.”
“옛 추억이라니…….”
“그렇지 않느냐. 마치 소싯적의 네 모습을 보는 것 같은데.”
“대, 대장군!!”
순간 어린 살기가 꺼진 듯 태용은 얼굴을 붉혔다.
“됐다. 네가 그때의 일들 덕에 이런 일만 있으면 칼을 뽑아 들지 못해 난리인 것은 알겠다만, 주변을 둘러봐라. 너 말고 아무도 흥분하는 이가 없느니라.”
그의 말대로였다.
‘나’ 역시 어째서 이런 말을 한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선을 넘는 발언들이었으나, 놀랍게도 주변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장내의 상황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묘하다.’
그들이라고 딱히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기색은 아니었다.
단지 일어난 상황을 상황으로 받아들일 뿐인 듯했으니, 태용이라는 부관이 마지 못해 검을 거두어들일 때 대장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윤호야.”
“…예.”
“너의 식견이 참으로 넓구나. 일견하기로서니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온 듯함인데, 어찌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시야구나.”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나, 가장 낮은 곳에서 올려다보는 것이나 관점만이 다를 뿐 바라보는 세상은 같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 역시 현답(賢答)이로다.”
대장군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이 북방에 온 이들은 사실 전부 팔려 온 이들이 맞다. 너와 네 형이 그러하듯, 나 역시 마찬가지인 따름이다. 내가 이 북방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 한들, 그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없음이지.”
북방.
인간이 살 수 없다 여겨지고, 식물 한 포기 자라나기 힘든 이 거친 불모지에 오게 된 것은 결국 모두가 같은 이유다.
“나는 황실의 정치하는 이들에 의해 팔려 왔고, 너는 가진 이들의 돈 놀음에 의해 팔려 왔음이다. 그런 주제에 ‘쓰임’이란 도구에 붙은 말이라 하는 내가 위선적으로 보이겠지.”
“…대장군이시라면, 바꿀 수 있지 않음이십니까?”
“이 북방에 사람이 팔려 오는 것을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허허허…….”
대장군은 옅게 웃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을 헤아렸고,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저 하늘의 바라보았다.
무수히 박힌 별들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대장군은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째서입니까?”
“그것은 내 천명(天命)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의 별들이 수없이 많아도, 그 별들이 각기 다르게 빛나듯―
“도구에 ‘쓰임’이 있다면, 사람에게는 ‘천명’이 있는 법. 그것은 타인이 정해 주는 것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정하는 것일지니. 이 차이가 사람과 도구가 가장 큰 간극이니라.”
대장군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리 말했다.
‘천명이라.’
그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였고, 나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이기 때문일까?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서인지, 그때의 ‘나’는 그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