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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57화 (257/350)

257화

막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혼이 났다.

꽁!

“야 이!! 너 진짜 미쳤냐?”

을량 형은 막사로 돌아오자마자 그동안 녹이 슬어 잘 돌아가지 못한 분을 푸는 맷돌마냥 빙글빙글 돌아가며 ‘나’를 갈아대기 시작했다.

“아니지, 미쳤지. 그래, 원래 넌 미친놈이지. 하하하…….”

때론 자기 혼자 화내고 자기 혼자 한숨을 쉬고 또 자기 혼자 헛웃음을 흘리기도 하는데, 진짜 미쳐버린 것은 누구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놈아, 이놈아. 암만 네가 뒤 없는 놈이라 하지만, 진짜 말은 가려서 해야 해.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쓱싹당하는 거야.”

목을 슥슥 그어가며 공포감을 유발하는 을량 형이었지만,

“글쎄.”

딱히 이렇다 할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하아…….”

그에 을량 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 진짜 왜 그랬냐?”

“뭘?”

“너 그런 녀석 아니잖아.”

‘그런 녀석.’

그 말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어떤 녀석인데?”

“…응?”

“형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 녀석인데?”

‘나’라는 녀석은 당최 어떤 녀석이기에 을량 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나름 진지한 질문이었고, 한동안 ‘나’의 눈을 바라보던 을량 형은 자신의 눈을 몇 번 껌벅껌벅거리다가 이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렇네. 너는 참,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지.”

“내가?”

“그래, 인마. 너를 처음 봤을 때, 넌 금방이라도 죽을 녀석 같았으니까.”

내가 그랬다고?

‘나’도 모르는 ‘나’에 대한 이야기.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나’의 이야기에 흥미가 이는 걸 느꼈다.

“기억하는지 모르겠다만, 다른 녀석들은 전부 울고 있었다. 우린 다들 어렸지만, 우리 운명이 이제 남의 손에 값어치를 매겨져 팔려와서는 더 이상 우리 손으로 그것을 결정 지을 수 없다는 걸 깨닫지 못할 만큼 어리지는 않았던 거지.”

그래서였을까.

“다들 하염없이 울고 불며 자신을 팔아버린 엄마 아빠를 찾아대고 있는데, 너만이 멍하니 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더라.”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연연치 않아 보였다.

그래, 분명 그래서였다.

“그래서 한번 살려보고 싶었다. 대장군께서는 천명(天命)이라 했던가? 나는 뭐 그 정도의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시체 하나 치우는 일은 피해 보고 싶었어. 음, 그러고 보면 너는 시체 같은 녀석이었다고 해야 하려나?”

멀지 않은 과거지만 마치 옛 추억처럼 떠올리고는 낄낄거리는 을량을 보며 생각했다.

‘천명. 나의 천명은 무엇일까?’

그것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었다.

* * *

“나와라.”

하루 훈련 일정을 끝내고 막사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전날 목에 검을 겨루었던 부관, 태용이 찾아왔다.

“준비해라. 대장군께서는 너희의 교육을 내게 일임하셨으니 곧바로 시작할 것이다.”

“예, 예?”

“그게 무슨 반응이지? 설마, 대장군께서 직접 무공을 가르치겠다 하셨다고 하여서 네놈들의 걸음마마저 돌보아 주실 것이라 생각했나?”

“아, 아닙니다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받아라.”

막사 앞 연무장으로 우리를 이끈 태용은 철검 두 자루를 던졌다.

명검이라 불릴 만한 것은 당연 아니지만, 이곳 북방에서 철검이란 최소 십인장의 자리에는 올라가야 패용할 수 있는 것.

소년병은 물론이요, 성인 병사 중에서도 일반 보병은 목창이나 쥐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특혜라 불릴 만한 처사.

그것을 손에 꼭 쥐자, 철검 특유의 단단한 감촉이 손에 느껴졌다.

“뽑아라.”

“예, 예?”

“두 번 말하지 않는다.”

그 감각을 막 느끼고 있을 때, 태용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퍼퍽!

“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을량 형이 제자리에서 허물어졌다.

“느려터졌군.”

어느새 그 앞에서 주먹을 내뻗고 있는 태용의 모습에 ‘나’는 머릿속 무언가가 뚝 끊기는 걸 느꼈다.

“……!”

스스로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쏠렸고, 뽑아 든 철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고, 안면에 세차게 부딪혀오는 맞바람을 받으며 이제 막 몸을 돌리고 있는 태용을 향해 검극을 내뻗었다.

“…흥.”

검극이 그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꽂히기 직전, 그의 한쪽 입꼬리가 뒤틀리는 게 보였다. 진심으로 같잖다는 듯한 감정이 짙게 배어 나오는 그의 표정이 눈에 들어올 때,

파팟―

어느새 그의 신형은 또다시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누가 검을 그따위로 쥐라고 했나.”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을 땐, 검은 형체가 시야의 아래에서 솟구치며 하복부에 둔탁한 충격을 때려 박는 중이었다.

울컥하는 충격과 함께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이 작렬했다.

“검을 놓치다니. 군인으로서 실격이군.”

손에 힘이 풀리며 쥐었던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질 때, 어느새 지면이 눈앞으로 훅 다가오고 있었다.

‘큭!’

쾅!

그대로 쓰러지기 직전,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몸을 일으켰다.

“호오?”

작은 경탄성을 흘리는 태용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퍽―

“버틴 것은 제법 용하다만. 이런 막 주먹이 될 것 같으냐?”

손목과 손목을 부딪쳐 주먹이 채 뻗어지기도 전에 그 힘을 흘린 태용은 곧장 발을 휘둘렀다.

다리가 걷어차이며 몸이 빙글 돌았고, 그대로 땅에 내팽개쳐지기 전에 몸을 웅크리며 낙하의 충격을 경감시켰다.

탓―

둥글게 말았던 몸을 펴며 그 탄력으로 다시금 일어났고, 나 역시 최하단에서 바닥을 쓸듯 발차기를 날렸다.

당장 충격을 주지 못한다면 발목이라도 노려 균형을 흩트리려는 속셈이었지만―

“멍청하긴.”

퍼억―!!

“큭!!”

그 역시 마주 발차기를 날린 덕에, 나만 정강이에 끔찍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윤호야!!”

그쯤 되었을 때 허물어져 있던 을량 형이 눈을 부릅뜨며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아… 안 돼…….’

고통에 허우적거리느라 말이 입 밖으로 뱉어지지 않았다. 고작 몇 번 부딪쳐 본 게 끝이지만, ‘나’는 그 몇 번의 충돌로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우리 수준에서는 항거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강자.’

냉정하게 작전을 짜도 모자랄 판에 저렇게 눈이 돌아가서 달려들어 봐야―

“흥. 그렇게 처맞고도 달려들 수 있는 배짱은 인정해 주지. 그러나.”

뻐억―

을량 형이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날듯이 앞으로 몸을 날려 가슴팍을 걷어차 버린 태용은 차갑게 이죽거렸다.

“감히 누구한테 달려드는지는 알고 달려들어야지.”

“익… 죽인다!!”

또다시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는 을량 형을 보자 마음속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검 따위는 이미 찾을 수 없었기에 두 손에 다른 것을 쥐고 휘둘렀다.

“모래? 어디서 잔 수작을…….”

연무장 바닥에 가득한 흙과 모래가 태용의 눈을 노리고 흩뿌려졌지만, 태용은 아무렇지 않게 뒤로 물러나 피했다.

그래도 실망은 없었다.

어차피 통할 거라 생각은 안 했으니까.

“죽어!!”

대신 또다시 주먹을 휘둘렀고,

“학습 능력이 없나? 그딴 건… 응?”

또다시 같은 수법.

손목을 들어 내 주먹을 맞받아치려던 태용은 그 순간 눈에 호를 그리며 빙긋 웃었다.

“이 깜찍한 놈이.”

퍼억!

다음 순간 그는 또다시 시야에서 사라졌고, 복부를 강타하는 충격과 함께 나는 준비했던 ‘계획’을 시작도 못 하고 바닥에 허물어져야 했다.

“흐흐, 모래는 속임수. 진짜는 주먹을 휘두르는 척하며 손안에 드는 돌멩이를 던지는 것이었구나.”

이제는 진짜 한계치를 넘어서는 고통에 허물어진 육신은 가는 숨을 헐떡이는 게 고작일 뿐이었고, 그 옆에 처량하게 떨어진 돌멩이만이 바닥을 굴렀다.

눈앞에서 손안에 있던 돌멩이가 굴러다니는 모습만을 힘없이 바라보길 몇 차례.

겨우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일어나라, 이 게으름뱅이들. 언제까지 누워 있을 테냐.”

딱 움직일 수 있을 정도까지의 체력이 돌아왔음을 귀신같이 알아챈 태용이 버럭 소리쳤다.

“…헉, 허억…….”

“으으…….”

우리가 일어난 건 동시였고, 조금 전 느꼈던 압도적인 무력함에 질려 태용을 올려다봤을 땐 어째서인지 그의 표정이 처음과 달리 꽤 풀려 있는 듯했다.

“제법이었다. 딱 봐도 제대로 무술을 익힌 것 같지도 않은데, 제법 싸울 줄 알더구나.”

칭찬인가?

뭐 이런 칭찬이 다 있나 싶어서 눈쌀을 찌푸리자니,

콰앙!

“눈 곱게 떠라, 애송아.”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이 나를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큭!”

“헉! 윤호야!”

“호들갑 떨기는.”

후다닥 내 곁으로 달려오는 을량 형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찬 태용은 이내 자리에 쭈그려 앉으며 우리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래도, 아주 싹수가 없지는 않구나. 네 녀석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겁 많은 네놈이나, 싸가지 없는 저놈이나. 정신머리를 고쳐야 할 게 한두 가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가지고 있는 듯하구나.”

“가장 중요한 것이시라면…….”

을량 형의 물음에 태용은 자신의 심장어림을 쾅쾅 두들겼다.

“사나이의 뜨거운 가슴이다.”

“…예?”

“사나이라면 자고로 곧 죽어도 싸워야 할 때 싸워야 하는 법. 너희 같은 놈들은 싸워야 할 때 싸울 줄을 알지.”

싱긋 웃는 남자의 모습이 매우 낯설다.

이 남자…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

“네 녀석들. 친형제는 아니겠지?”

“엇? 어떻게 아셨습니까요?”

“그럼, 그렇게 다르게 생겼는데 친형제라고 우길 생각이더냐?”

“…아.”

사실상 답이 뻔한 질문을 던져놓고도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낄낄 웃으며 말했다.

“나 역시 너희들과 같은 소년병 출신이다. 대장군께서 거두어주셨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랐지.”

“대, 대장군의 직속 부관 자리에까지 말입니까요?”

“흐흐, 놀랐냐? 놀랄 만하지. 그런데 대장군 밑에는 나 같은 놈 많아. 지난번에 내 칼을 막은 놈, 그놈은 심지어 북방 이민족 출신이야.”

낄낄 웃던 그는 돌연 인상을 찌푸렸다.

“…뭐, 그 기분 나쁜 놈은 대장군에게 은혜를 잎은 주제, 검채(劍債)니 뭐니… 그런 것만 갚는다고 하는 괴상한 놈이지만.”

어쨌거나,

“그런 면에서 보자면, 네놈들은 나랑 같은 과인 것 같거든.”

“같은 과라면…….”

“사나이 뜨거운 가슴을 지닌 놈들이란 거지.”

그게 대체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어 고개만 갸웃거리는 우리에게 태용은 일견 사납게까지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장군께서는 나에게 너희의 교육을 일임하셨다. 물론 나중에는 대장군께 직접 무술을 사사 받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 급한 것은 내게 생존술을 배우는 것이라 여기셨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이제 검을 집도록 해라.”

“자, 잠깐 질문이 있습니다요!”

그 모습에 멍하니 있던 을량 형이 허겁지겁 손을 들며 물었다.

“저희는 무술을 배우는 게 아니었습니까요? 생존술이라니 당최…….”

“흐흐, 기지도 못하는 놈이 벌써부터 뛰어다니려고 하는군. 말했지 않느냐, 무술보다 급한 것이 생존술이라고.”

“그게 당최 무슨 말씀이신지…….”

“이놈아. 전사가 강해지는 법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건 바로 살아남는 것이다. 강해지는 것도 살아남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니, 자고로 가장 강한 전사란 가장 오래 살아남은 전사를 일컫는 말인 것이다!”

을량 형의 표정은 사기당한 것마냥 처참했지만, ‘나’에게 있어 묘하게 확신 어린 그의 말은 알 듯 말 듯한 신뢰감을 주었다.

“전장이란 그런 곳이지. 살아남기만 하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으니, 내가 지금부터 너희에게 가르칠 ‘어디서든 살아남는 법’은 곧 네놈들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강해지는 방법일 게다.”

그러니까,

“이젠 검을 뽑아라.”

그렇게 다시금 시작된 끔찍한 수련.

우린 그게 맞는지 틀린지 알 수 없지만 일단 검을 뽑아 들어야 했고, 그날 하루 종일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아야만 했다.

그리고,

몇 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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