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59화 (259/350)

259화

포위망을 구성하던 전사 하나가 죽자 다른 이민족들의 눈이 부릅 뜨였다.

그런 그들을 훑으며 적잖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전사장은 없나?’

십인장으로부터 시작되는 백인장, 천인장, 만인장의 순서가 북부 대장군부의 군사 체계라면, 십인장이나 백인장 없이 병사, 전사, 전사장으로 이루어지는 순서가 이민족 군대의 체계였다.

그리고, 개중 전사에 해당하는 계급은 천인장의 계급과 동급으로 인정받으나 개인의 무위만 따진다면 전사 쪽이 위였다.

‘애초에 대규모 병력을 이끄는 천인장과 개개인이 침투조로서 활동하는 전사는 그 활동 양상부터 다르니까.’

대장군부의 천인장이 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전술을 수행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면, 전사란 그만큼을 이끌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데 특화되어 있기에 개개인의 무위는 전사 쪽을 더 쳐 준다.

즉, 하나를 운 좋게 무력화시킨 지금도 위기 상황이란 건 변함이 없었다.

“가양기, 기응거, 달지개. 저놈을 맡아라!”

“알겠다!”

“애송이 놈! 죽여주마!”

세 명의 전사가 자신의 병장기를 꼬나쥐며 진열의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들은 각기 거대한 곤봉, 대부(大斧) 그리고 쇠사슬 달린 추(椎)를 들고 있었는데 어느 하나 예사로운 게 없었다.

‘무시무시하군.’

하나하나가 오랜 실전으로 연마된 강적들이 수적 우위까지 갖추며 양쪽에서 달려들었다.

‘그렇다면.’

파팟!!

“어엇?”

“도망친다!”

“잡아!”

정면 대결은 미친 짓.

그딴 자살행위에 어울려줄 생각도 없었기에 곧장 땅을 박차고 나무 사이로 뛰어들었고, 그 뒤를 쫓아 세 명의 전사들이 병장기를 꼬나쥐고 쫓아왔다.

흉흉한 살기가 뒷목을 찌르르 울리게 만드는 와중에도 두 눈은 계속해서 주변을 훑었다.

‘그냥 붙으면 필패. 내가 유리한 점은?’

북방에서의 첫 일 년.

만인장 태용에게 수없이 두들겨 맞으며 배운 생존법이란 전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었다.

개중에는 엎드려 구르는 법도 있었고, 주변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법도 있었으니, 그렇게 습관이 되어버린 생존 본능이 쓸 만한 지형지물을 포착해 냈다.

‘저거다.’

산속 여기저기 자라난 가시나무 덩굴.

얼마나 방치해 두었는지 무성하게도 자라난 그 덩굴 속은 어지간한 성인의 키보다도 높게 자라나 있었다.

즉, 어지간한 성인은 쉽게 통과할 수 없는 크기지만―

‘아직 덜 자란 나는 통과할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곧장 몸을 던졌다.

콰앙!!

간발의 차이로 내가 있던 자리에 묵직한 추가 내리찍혔다.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낄 여유도 없이 가시덩굴 사이를 빠져나갔고, 그것을 통과할 수 없는 전사 셋과 부쩍 거리를 벌리게 되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전사의 명예도 모르는 놈!”

칼을 부딪칠 생각도 하지 않자 멈춰선 그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전사의 명예라. 힘없는 이들을 마구잡이로 약탈하고, 그들에게서 얻은 전리품을 승자의 영광이라 자아도취 하는 것을 말하는 건가?”

“뭣?”

“이놈이 감히!!”

“실컷 떠들어라.”

처음부터 싸울 생각은 없었다.

저들 중 하나의 발목만 잡아도 목적 달성이었으니, 그 네 배에 달하는 인원을 빼돌렸다면 초과 달성이다.

그 증거는 어느 새부터인가 저 뒤편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

“이, 이런 미친!!”

“괴물, 괴물이다!!”

‘과연… 괴물이 따로 없구나.’

그 비명의 진원지에는 한 자루 대검을 휘두르는 검사가 있었으니, 만인장 무명이 자신을 둘러싸던 포위망이 옅어지자 괴물 같은 무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찌 일족의 전사 열 명을 상대로 혼자서…….”

“그 하나를 상대로 열 넷이서 덤벼들던 것은 잊으셨고?”

“그게 무… 자, 잠깐 언ㅈ… 커억!”

무명 장군의 무위는 과연 충격적이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그 광경을 보던 이들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그 틈에 낮은 포복으로 가시덩굴 사이를 재차 건너왔고, 방심하던 이민족 전사 하나의 등 뒤에 칼침을 꽂아 넣었다.

푸욱― 소리가 섬찟하게 울려 퍼질 때, 다른 이들 두 전사가 서둘러 고개를 돌렸지만,

“이, 이놈이?!”

“쥐새끼 같은 것!!”

‘나’는 곧장 뒤도 안 돌아보고 가시덩굴 사이로 뛰어든 이후였다.

“나를 돌아보고 있을 시간이 있나?”

안전거리를 확보한 뒤에 이죽거려주자 이민족 전사들을 이를 갈다가 재빨리 몸을 돌려 달아났다. 북방의 대장군부가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는 이들이라면, 저들은 한순간의 협업을 위해 뭉친 도적 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모두가 물러나고.

“…….”

그사이에 전사 여섯을 추가로 도륙내 버린 무명이 다가왔다.

“장군을 뵙습니다.”

을량에게 배운 방식대로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자 ‘나’를 가만 바라보기만 하던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검채(劍債)를 졌군.”

검채?

무명을 상징하는 단어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검채를 갚기 위해 움직인다.’

‘검채를 갚을 뿐.’

‘검채를 졌군.’

타인에게 하는 말을 몇 번 들어보기는 했지만, 그걸 직접 들을 줄은 몰랐기에 순간 고개를 들자 그는 자신의 등에 패용하고 있던 검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우득―

“……?”

가죽 장갑으로 검날을 쥐어 검병을 뽑아내더니, 그걸 불쑥 내밀어왔다.

“받아라.”

“이건…….”

“검채(劍債)다.”

평소 무명이 여러 자루의 검을 들고 다니며 검채를 진 상대에게 그중 한 자루의 검병을 내민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직접 경험하게 될 줄이야.

“당치도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받아라.”

“…알겠습니다.”

을량에게 배운 대로 겸양을 떨어봤지만, 검병을 내민 그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기에 얌전히 받아들었다.

그런데, 저렇게 하면 검 한 자루가 비는 게 아닌가…….

철컥―

‘아,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이민족 시체 하나를 뒤적여 철검 한 자루를 꺼내 등 뒤로 패용하는 모습을 보니 의문은 곧장 사라졌다.

그리고,

“윤호야!!”

얼마 안 가, 저편에서 피 칠갑을 한 을량이 허겁지겁 뛰쳐 왔다.

“이민족 놈들이 후퇴하고 있다! 이건 역시… 허어억! 자, 장군을 뵙습니다!”

처음엔 ‘나’만 발견한 것인지 허겁지겁 뛰쳐 오던 을량은 곁에 있던 무명을 발견하곤 까무러치는 표정을 지으며 군례를 취했다.

“…….”

“…….”

“…….”

“…저, 장군?”

하지만 무명은 그를 가만 바라보기만 했으니―

뭔가 잘못한 게 있나 싶어 땀만 삐질삐질 흘리던 을량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무명은 이내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네게는 검채를 진 일이 없다.”

“…예?”

뭔 말인가 싶어 눈만 껌벅거리는 을량이었지만, ‘나’는 대강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직접 구해 준 나에게만 검채를 진 건가.’

굳이 말해 줘 봐야 왜 나만 검병을 받지 못하냐 난리 칠 게 뻔했기에 입을 꾹― 다물었고, 그런 우리들에게 무명 휘하의 다른 천인장들이 다가왔다.

“윤호, 을량!”

“고맙네. 신세를 졌어.”

“아이고, 신세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요, 형님들!”

당황에서 빠르게 빠져나온 을량은 언제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냐는 듯 재빨리 두 손을 비볐다.

가히 빛보다 빠른 아부 신공에 가만 바라보고 있자니 을량이 슥슥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다들 무슨 일들이십니까요? 저희는 대장군의 명령으로 이곳 일대의 수상한 동태를 파악하라 하여 임무 차 나왔는데…….”

“그래? 쯧, 그 소식을 우리도 일찍 들었다면 좋았을 것을… 우린 전방 지역을 순찰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네. 그러다가 습격을 받은 것이고.”

이제 막 복귀하던 무명 부대는 갈추산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때문에 아무 방비 없이 귀환길로 통하던 갈추산을 지나갔고, 그러다가 습격을 받게 된것이다.

“예?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저들의 숫자가 적은 것도 아닌데 어찌…….”

“그래, 가능한 일이 아니지.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고.”

천인장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건 단순히 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니―

“정보가 새어나갔군.”

누군가 하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거대한 박도를 꼬나 쥔 천인장이었다.

“재미없는 상황인데.”

“그러게 말이야.”

“자, 잠깐! 형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무슨 뜻이긴. 말 그대로야.”

군사 작전은 기본이 대외비.

거기다, 만인장 단위로 움직이는 군단의 움직임은 최소 일급 기밀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미연에 발각되고, 그들의 복귀 행로에 만 명도 넘는 이민족들이 숨어 기습을 노린다?

“좋게 가면 세작이 숨어든 것이고, 나쁘게 가면 배신자가 있는 거지.”

“미친…….”

전자라면 색출만 하면 그만이지만, 후자라면 분란의 씨앗이 심어진 셈이다.

“어, 어떻게 합니까? 아니지, 일단 만인장께…….”

“됐다. 우리가 안 걸 만인장께서 모르시겠냐. 저길 봐라, 이미 찾아보고 계시잖냐.”

허겁지겁 고개를 돌리니 저편에서 시체를 뒤적이고 있는 무명이 보였다.

말수가 적다 못해 없다시피 한 무명이지만, 그가 가진 능력을 대장군부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단순 무력만으로도 대장군부에서 수위를 다투는데, 내력를 알 수 없는 그는 과거에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추적술, 시체 검문, 비밀 작전 등등 다양한 방면에서 달인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었다.

그리고,

“지율, 백천, 군하.”

시체를 뒤적이던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세 명의 천인장의 이름들이 호출되었다.

“옙! 장군!”

“찾으셨습니까!”

“근방을 수색하라.”

짧은 명령.

근방이라고 해도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수색하는지, 무엇을 수색하라는지 그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은 불친절한 명령이지만, 그것을 하달받은 천인장들은 아무런 반발도 없이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흩어졌다.

그리고, 엉겁결에 남겨지게 된 우리에게 그가 다가왔다.

“함께 간다.”

“예, 예?”

이번에도 어디로 간다는가 등의 부연 설명은 없었다.

을량이 당황하는 사이 그는 자신의 말을 타고 훌쩍 달려가기 시작했고,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

별수 있을 리가 있나.

마침 히이잉― 소리와 함께 여유로이 다가오는 말의 등위로 올라타며 말했다.

“가야지.”

“아니… 내 말은…….”

“먼저 갈게.”

“야, 야?!”

들려오는 을량의 다급한 외침을 뒤로하며 무명의 뒤를 쫓았다.

“이 치사한 놈. 더러운 놈. 배은망덕한 놈.”

그 뒤를 쫓아 후다닥 달려온 을량은 대장군부의 근방에 도착하고 나서도 입이 댓발이나 튀어나온 채 툴툴거렸지만,

“…쉿.”

안타깝게도, 그걸 들어줄 여유는 없었다.

“왜 그래? 무슨… 저게, 뭐야?”

임무 수행을 위해 고작해야 요 며칠간을 비웠다가 돌아온 대장군부.

그중에서도 대장군을 상징하는 막사와 그 주변에는 낯선 깃발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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