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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67화 (267/350)

267화

쿠우웅―

문은 언제나 뒤에서 닫힌다.

굳게 닫힌 폐관실의 철문이 굉음을 발했다.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외부에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은 공기가 통하는 구멍 일부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폐쇄 공간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내부가 완연한 어둠으로 가득하지는 않았다.

귀여운 야명주 덕분이었다.

“아주 반짝반짝하구만?”

어두운 밤하늘에 박힌 별들이 따로 없다.

“좋구만. 아주 좋아.”

저어기 깊숙한 지하에서 사악한 마교도의 악독한 음모를 위해 고통받던 야명주들이, 강남을 구한 대협객인 본인의 영웅적 행보로 해방되며 이곳에서 새 보금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업(善業)이지.”

참으로 복되고 또 복되도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 너희들 원하는 곳 있으면 곧 빠르게 찾아가 분양시켜 줄 테니.”

지금이야 내 연공실에 뿌리박고 있는 귀여운 아이들이지만, 인생이란 또 어찌 될지 모르는 일. 근처 벽에 박혀 있는 녀석 하나를 적당히 쓰다듬어 주니 자연스레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그때,

구우웅-

꼭 닫아 놨던 연공실 문이 열리며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

“헥헥!”

“헥ㅎ… 무민아?”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는데 웬 녀석이 들어왔나 싶어 고개를 돌리니 작은 그림자 하나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뽈뽈뽈 달려와 팟― 하고 뛰어 안기는 녀석은 헥헥이, 아니, 빵실이, 아니… 무민이었다.

“헥헥!”

품에 안겨 내 볼따구를 미친 듯이 핥아대는 덕에 어디 수분 미용이라도 한 것마냥 얼굴 전부가 촉촉해졌다.

“윽악, 잠깐만! 네가 여긴 어떻게…….”

“헥헥!”

“같이 있고 싶단 거냐?”

“헥!”

“허허…….”

전용 연공실의 철문이 보통 철문이 아니었다. 진짜 만일을 대비해 통짜 쇳덩이로 지은 철문이라 어지간히 단련된 무인도 밀어젖힐 수 없어서, 들어온다 치면 방계 녀석들쯤 되어야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영물이라 이건가?’

연신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똥개지만, 근본은 신령한 힘을 지닌 영수.

무려 상위 존재가 후은(厚恩)을 두텁게 내렸다고 하는 영수인만큼 뭔가 한 수는 있는 모양이었다.

“이 녀석아. 그래도 여기 아무나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야.”

“헥?”

워낙 붙임성 좋은 녀석이라 쉽게 떨구어 내기도 힘들어 좋게좋게 이르니 녀석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꼬리를 쫑끗! 세우더니 품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뾸뾸뾸 철문으로 다가가―

쿠웅!!

굉음을 일으키며 문을 닫고 돌아왔다.

“헥헥!”

“…그래, 잘했다.”

차라리 잘됐다. 어차피 원하는 성과를 이루기까지 하루 이틀 걸릴 것 같지도 않은데, 이 녀석이라도 있다면 좀 덜 적적하지 않을까?

마침, 이 공간은 엄청나게 넓었으니까.

“이렇게 된 김에, 안내나 해주마. 나 수련할 때 방해하면 안 되니까 그때는 이 주변이나 뛰어다녀야 한다?”

“헥헥!”

과연 알아듣기는 한 걸까?

아무튼 녀석을 데리고 지하로 이어진 연공실을 걸어들어 갔다.

‘사실, 이쯤 되면 연공실이라고 하기도 힘들지.’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주 길게길게 뻗어 있었다.

이곳은 내가 만들었다지만, 실제로 처음부터 만든 것은 아니고 과거 가주 전용 연공실로 개발된 당가의 특수 구역이나 다름없었다.

과거, 장원을 만들 때 지하에 터를 닦아 놓고 그 안에 지하수가 들어오는 물길을 만들어 식수 걱정이 없게 하고, 환경적으로도 공기가 잘 통하게 만들어 놓은 지하 공간.

실제 몇십 명이 모여 살아도 부족함이 없을 만한 공간으로, 안으로 쭉쭉 따라 들어가면 전대 가주들이 심심풀이로 심어 놓은 독초들이 몇 가지씩 심겨 있기도 했다.

‘이것들은 다행히 안 뜯어다 팔았구만.’

내가 돌아오기 전 당가의 상황이 좋지 않아 뜯어 팔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가주 전통의 연공실이라 거기까지는 참은 듯했다.

“판다고 해서, 비싸게 팔리지도 않았겠지만.”

기실, 이들 중 딱히 대단한 독초가 없기도 했다. 진짜 대단한 독초쯤 되면 또 다른 특수 구역에 보관해야 했으니 여기 있는 것들은 관상용 화초에 가까운 것들이라 보는 게 옳은 일.

‘적게는 수십 일, 많게는 몇 달 혹은 몇 년을 박혀 살아야 하니, 보기라도 좋은 걸 심어놨겠지.’

덕분에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오히려 화초의 숫자는 늘어났다. 물론, 당가의 취향이 듬뿍 반영되었기에 일반적인 화원(花園)과는 다른 당가 특색이 잔뜩 반영되었다는 점이 있지만.

“헥헥!”

내 옆을 따라 걷던 헥헥이도 신기한 것을 잔뜩 봐서 좋은지 연신 꼬리를 흔들어댔다.

“그게 좋냐?”

적당히 풀때기 하나를 뜯어 녀석의 눈앞에서 흔들어 주자, 헥헥이는 곧잘 바닥에 벌러덩 뒹굴며 통통한 아랫배를 자랑했다.

“그래그래, 잘 놀아라.”

역시 개 키우는 데는 강아지풀만 한 게 없지.

“헥헥헥!”

세상으로 나오고, 하필 가문의 장원에 갇혀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던 녀석에게 이 공간은 별세계인지 기분 좋은 티를 팍팍 내며 사방천지를 뛰어다녔다.

다만,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어? 어? 야, 그건 안 돼!”

“헥헥헥! 헤ㄱ… 우웁?”

텁―

잘만 뛰어다니던 녀석은 웬 표주박 같은 것을 발견하고는 냅다 달려가 고개를 처박았다. 그 안에선 달콤한 냄새가 풀풀 풍겨왔기에 녀석은 그게 꿀인 줄 알고 들이민 것이겠지만―

“…그거 식충초(食蟲草)다.”

하필 그것의 정체는 풀때기인 주제에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초였다. 그것도 보통 식충초가 아니라 독충은 물론 독사까지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독식충초였다.

“헤구웁! 헤구웁!!”

“그래도 영수라 이거냐?”

원래라면 목숨이 위험했겠지만, 다행히 녀석은 영수의 핏줄이기 때문인지 독식충초가 풍기는 독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단지 고개만 처박혀서 버둥거릴 뿐-

“조심 좀 해라 이 천진난만한 녀석아.”

빵실한 빵뎅이를 잡아다 뽁― 하고 뽑아주니 녀석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연신 헥헥거렸다.

‘이게 진짜 용맹하고 민첩한 녀석이 맞나…….’

암만 생각해도 똥꼬발랄한 녀석인데.

겁먹은 녀석을 적당히 어루만져주니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건지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그리고는 곧잘 다시 독식충초에 다가가는데,

“헥헥… 헤구웁!!”

“…그거 움직이는 놈이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내부를 구경하려던 녀석은 다시금 독식충초에 잡혀버렸다.

그냥 풀때기도 아니고, 독물을 먹고 자라나는 독풀때기가 평범하길 바란다는 게 잘못.

한낱 풀때기인 주제 무려 반경 일 장 범위까지 자신의 포충낭을 쏘아 보낼 수 있는 독사 같은 녀석이다.

뿅―

“헥헥헥!”

다시금 파랗게 질린 녀석은 이젠 진짜 겁이라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는지 주변 물가로 호다닥 달려가 얼굴에 묻은 독액을 씻어냈다.

그게 또 귀엽기는 하다만,

“거기라고 안전하다고는 안 했다.”

“헤구우웁!”

첨벙―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녀석의 작은 몸뚱어리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쯧쯧. 물뱀 계열인가?”

당연한 일이지만, 수십 년간 방치된 이곳에서 독물을 먹고 살아가는 저놈이 아직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건 다 이유가 있는 일.

이곳은 단지 화원일 뿐 아니라, 역대 가주들이 취미에 따라 각종 동식물들을 기르던 작은 생태계의 현장이기도 했다.

‘당가 가주들의 전용 연공실이 다른 가문의 연공실과 같을 수는 없지.’

지금 헥헥이 녀석을 휘감고 있는 건 물뱀도 꽤 지독한 독을 가진 독사였고, 자신의 사냥터에 사냥감이 오자 냅다 뛰어들어 온몸으로 휘감은 듯했다.

저게 녀석의 사냥 방식인 듯했지만―

“상대를 보고 덤벼들었어야지.”

“헥헥!”

재차 말하지만 녀석은 영수의 핏줄.

처음에야 물에 빠져 당황했지만, 곧잘 솟구치듯 물속으로 빠져나오더니 물뱀 녀석을 바닥에 패대기쳐 버렸다.

“켁?”

자신의 상상과 다른 현실이 펼쳐지자 당황한 물뱀은 다시금 자신의 사냥터로 돌아가려 했지만,

“헥헥!”

용맹하고 민첩한 헥헥이의 앞발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케켁!”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녀석은 곧장 땅바닥에 엎어졌고, 평소 기어 다니던 모습보다 더 낮게 몸을 엎드려야만 했다.

“헥헥!”

…혼내는 건가?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상대지만, 영수 특유의 선한 마음은 어디 가지 않는지 헥헥이는 물뱀을 훈계할 뿐 딱히 그 이상의 폭력을 가하려 하지는 않았다.

한 번쯤 으르렁댈 만했음에도 연신 혓바닥만 헥헥거릴 뿐, 이빨을 드러내지는 않은 것이다.

‘하긴, 저 독초에 걸렸을 때도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았다면 알아서 빠져나왔겠지.’

괜히 저 녀석은 예외로 두고 이곳까지 데려온 게 아니었다.

“알아서 잘 노니 다행이구만.”

혼자라면 외롭지 않을까 싶었지만, 가만 놔두면 알아서 이곳의 왕으로 군림할 기세다.

그런 녀석은 적당히 놔두고 연공실의 가장 안쪽까지 도달했다.

“후, 오랜만에 뵙수다.”

지하 공간의 가장 깊은 심처.

내가 심어 놓은 귀여운 야명주들이 아닌, 역대 당가의 가주들이 박아 놓은 야명주가 빛을 발하는 공간에는 주변 벽에 각종 글귀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전대 고수들이 남긴 깨달음의 한 자락이며, 후손들이 왔을 때 그로부터 도움을 받길 원했던 소망의 발로였다.

동시에 후대를 향한 선조의 서신과도 같았지만―

“거, 적을 거면 좀 쉽게 적어 놓지 그러셨소.”

그걸 남긴 이들이 다들 가주 자리를 역임했던 고수들이라서 그런지, 지금 당가에서 이 깨달음 자락들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위혼이 녀석도, 그것 때문에 스스로가 아직 이 연공실을 이용할 자격이 없다고 했었지.’

위혼이라고 이 공간의 정체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안에 적힌 글귀들이 너무나 난해해서 함부로 시도했다간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했기에 포기했을 뿐.

나 역시 삼십 년도 전에 와봐서 알지만, 이건 그때 당시로도 알아먹을 만한 녀석이 많지 않았던 고등한 무리의 결정체였다.

‘그리고 차마 당가의 유산이 실전되는 걸 눈 뜨고 보지 못했던 발악들이기도 하지.’

당가칠대금기(唐家七大禁忌).

너무나 위험해 차마 후손들에게 남기는 것조차 금하기로 했던 그 기록들이 남겨진 곳도 바로 이 공동이었으니, 그것들을 습득할 때 몇십, 몇백 번이나 고심하고 또 고심했던 전대 당가주들의 글귀를 읽었던 적이 있는 나는 조금 묘한 감상이 들었다.

“…쯧. 내가 당신들 마음을 이해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스스로들이 금기라 정해 놓고, 또 그것을 기록에 남기는 이들의 기분은 어떨까.

한때 나는 그것이 실로 어리석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오니, 내가 가장 어리석었구만.”

금기라 칭해질 만한 힘은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당연함이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런 편안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사치인지 이제 지독스레 느꼈다.

“모든 죄악을 오로지 내가 짊어진다는… 그런 각오였겠지.”

실제 당가칠대금기가 남겨진 글귀에는, 그와 관련된 기록보다는 후손들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가득했다.

자신의 부덕함으로 이것을 남기니, 후손들은 부디 삿된 것에 눈 돌리지 말고 오로지 당가의 안녕과 평화만을 위해 이 힘을 사용해 달라는 애절한 부탁.

번영은 바라지도 않으니, 부귀영화가 아닌 안온을 택한 그들의 심정은 얼마나 그들이 살아온 시대가 버거웠는지를 나타내는 방증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였다.

이 글귀들을 읽을수록, 나는 굳이 헥헥이까지 데리고 오며 발걸음을 늦추고 또 늦추며 그 시간 동안 고민해 왔던 것의 방점을 찍을 수 있었다.

“당가의 영령(英靈)들이여. 거기 있다면 부디 내가 틀리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쇼.”

굳이 되지도 않는 정파 놈들 수작질이나 당해 주며 여기까지 온 이유.

“나 역시, 금기 하나 남겨보려 하니까.”

나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힘’들을 일깨우며 눈을 감았다.

‘시작해 볼까.’

구우우우우…….

그와 함께 음울하고 불길한 힘이 점점 치솟기 시작하니, 그것들이 전신을 채워 오는 것을 느끼며 각오를 다졌다.

‘마공(魔功)의 연마(練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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