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69화 (269/350)

269화

똥개도 자신의 집 앞에선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장소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말인데, 탐 녀석의 경우는 그게 더했다.

- 크르르릉!!

녀석은 감히 자신의 집에서 웬 거동 수상자가 깝죽거리는 걸 놔둘 수 없다는 듯 사정없이 팔초어 마수를 물어뜯었다.

- 그어어어!!

덕분에 팔초어는 괴롭다는 듯 온몸을 비틀었지만, 탐은 녀석의 동체를 단단히 휘감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팔초어가 자랑하는 거대한 촉수들이 탐의 몸통을 이리저리 후려쳤지만, 그건 녀석의 검푸른 비늘들을 뚫지 못했고, 그 단단한 갑주를 걸친 녀석은 팔초어 마수를 이리저리 맛보고 뜯고 씹고 즐겼다.

과연, 내공도 못 써서 처맞고 다니는 신세인 나와 달리 녀석은 체급이 깡패라는 걸 증명하듯 마음껏 팔초어 숙회를 맛보며 자신의 강함을 드러냈다.

이대로라면 쉽게 가겠구나 싶은 순간―

- 그오오오오!!

처맞다 처맞다 못 참은 것일까.

이리저리 물어뜯기던 팔초어 녀석은 돌연 괴성을 내지르더니 그 몸을 크게 부풀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수한 이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세상 흉악한 것 많이 봤다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저것들은 어지간히도 끔찍한 것들이었다.

생리적인 혐오감이 치솟아 오르는 것은 둘째치고, 수십 수백이 넘는 이빨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탐! 피해!!”

재빨리 소리쳤지만, 현실적으로 저렇게 뒤엉킨 상황에서 몸을 빼내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콰직―

잠시 후, 끔찍한 소리와 함께 검푸른 비늘과 함께 녀석의 몸통이 한 움큼 뜯겨 나왔다.

- 크르릉!!

- 그오오오!!

물론, 그렇게 뜯겨도 탐의 동체는 워낙에 거대한 것이기에 심각한 피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분노한 탐은 더욱 광포히 적을 물어뜯었다.

콰직, 콰직, 콰직!

팔초어 마수 역시 살아남기 위해 이빨을 놀렸고, 그렇게 드러난 빈틈을 향해 촉수를 휘둘러 내리쳤다.

- 크르릉!!

비늘이 뜯긴 생살은 탐에게도 고통인 듯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녀석은 팔초어를 물어뜯길 멈추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지옥도라 표현할 만한 끔찍한 혈투가 벌어졌다.

‘큭… 내가 저 녀석을 도와야 하는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저긴 말 그대로 괴수 대전인지라 내가 끼어든다 해서 탐 녀석 비늘 하나 뜯는 것보다 유의미한 피해를 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 사실이 내게 불쾌한 무력감을 심어줄 때,

후우우웅―

저 머나먼 곳으로부터 거대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실제로도 거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 사실은 당혹감을 선사했다.

‘바람이 분다고?’

아무것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난데없이 불어오는 바람은 결코 자연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뜻.

그것도, 저 녀석들에 밀리지 않을 거대한 무언가라는 생각이 일자 온몸에 털이 쭈뼛쭈뼛 섰다.

적인지 아군인지 불명확한 무언가의 등장,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언가 고민이 될 때,

쿠르르릉!!

갑자기 천둥 벼락 치는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이윽고―

콰아아아앙!!

무언가 보이지도 않을 듯한 속도로 그대로 바닥에 내려꽂혔으니, 뇌성(雷聲)과 함께 등장한 그것은 집채만 한 크기의 대호(大虎)였다.

‘아니, 단순히 호랑이는 절대 아니야.’

녀석의 털은 다른 호랑이와 달리 새하얀색이었고, 그 안에서 윤기가 도는 것이 평범한 짐승은 가질 수 없는 영기(靈氣)를 흩뿌리고 있었다.

게다가, 조금 전 등장할 때의 속도는 뇌성과 함께 등장한 것답게 내 눈으로도 미처 좇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게 얼마나 빠르냐면―

‘저 녀석 밑에 깔린 녀석. 분명 애벌레 놈이 탈피해서 자라난 그 나비잖아.’

녀석에게 깔아뭉개진 건 다름 아닌 나태종의 마수였으니―

- 크아앗!!

버둥거리는 나태종의 마수를 깔아뭉갠 백호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다 문득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불현듯 들려오는 목소리.

- 주인! 도망쳐!

“…어?”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껌뻑거릴 때,

- 빨리! 빨리!

목소리의 주인은 친절하게 다시금 말해줬다.

“…너, 설마 헥헥이냐?”

- 아니! 나! 무민!

세상에나.

저게 내가 알던 헥헥이가 맞냐?

진짜 헥헥이는 전설이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영수의 핏줄이라더니…….’

사천당가 장원은 물론, 가주 전용 연공실까지 온 천하가 좁다고 뛰놀던 녀석이 마침내 내 심상 공간까지 찾아와버렸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든 게 오리무중이었지만 나는 일단 달리기로 결정했다.

여기 더 남아 있어 봐야 어차피 할 수 있는 것도 없을뿐더러, 내 심상 공간까지 찾아온 헥헥이가 도망치라 했다면 이유가 있을 거라 여겼다.

사실, 무엇보다도―

‘나타난 두 놈이 우연이 아니라면, 나타나야 할 놈이 하나 더 있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마지막 마수.

그건 아마도―

콰아아아앙!!

“…마교도 놈들 아니랄까 봐, 어떻게 자기 생각하는 줄 알고 바로 나타나냐.”

나타난 것은 지금까지 나타난 마수들에 결코 꿀리지 않는 거대한 동체를 지닌 마수.

놈은 네 개의 다리를 가졌고, 몸통의 뒤쪽으론 말린 긴꼬리가 자라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차적인 특징은 의미가 없었으니, 진정 녀석에게 특징적인 점을 꼽자면 다른 것이 아닌 녀석의 얼굴이었다.

“진짜, 변함없이 흉측한 낯짝이구나. 하나부터 일곱까지 전부 다.”

하나만 있어야 할 자리에 일곱 개나 달린 끔찍한 얼굴.

그것들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며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 크흐흐, 여기서 다시 보는구나, 흉왕(凶王).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이야. 너 나 알아?”

- 흐흐흐흐, 그래… 사과하지. 내가 알아보지 못할 게 없어, 영겁의 저주받을 존재인 네놈을 알아보지 못했다니.

영겁의 저주받을 존재라니.

“그놈 참 말 심하게 하네.”

- 흐흐흐…….

녀석은 괴기한 흉소를 흘리며 말했다.

- 흉왕이여, 과연 그 흉악한 이명의 주인답게 실로 끔찍한 흉계를 꾸미고 있더구나.

…뭐요?

- 외부와 단절된 억겁의 공간. 그 속에 처음 갇혔을 때 나는 지독한 절망감에 빠졌다. 진정 그대의 흉심은 심연보다 깊고 나락보다 끔찍하여 영겁의 시간 동안 나를 고통 속에 절규토록 하려 함을 깨달았다.

갑작스레 혼자 소설을 써 내리기 시작하는 칠면석척(七面蜥蜴)이었지만, 당장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내게는 이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 가만 놔두기로 했다.

-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머나먼 십만대산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그분의 위대한 의지를 잇기 위해 고생할 그분의 의지를 동포들을 위하여! 나는 조금도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포기하려 했다 이 말이지?’

원래 마교도 놈들 반은 사 할이 거짓말이고 삼 할이 허세이며 이 할은 개소리다.

적당히 알아서 걸러 듣는 능력이 필요했기에, 나같이 마교도어에 통달한 사람은 저 장황한 헛소리 중 얼마 없는 진의를 쉬이 꿰뚫어 볼 수 있었다.

-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했다. 그분께 나의 기도가 닿기를 바라며, 의지의 칼날을 벼려냈다. 그 결과, 이곳에서 흩어졌던 동포를 만났으며 우리를 얽어매던 끔찍한 사슬 속에서 한 줄기 광명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마교도 놈들이 광명은 무슨.”

- 크크, 부정하려는가? 오만하고 또한 광오한 흉왕이여. 우리를 통째로 삼켜 포식하려던 그대의 탐욕이 부른 이 기회에 감사한다. 언제나와 같이 우리를 발아래로 내려다보던 네 실수가 만들어준 이 기회에 감사한다!

구구구구…….

녀석의 일곱 개의 면상이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같은 말을 동시에 떠들어댔다.

덕분에 일어나는 소음에 귀에서 피가 날 것만 같았지만―

‘중요한 정보 하나는 얻었네.’

저 개소리를 참고 들어준 보람은 어느 정도 있었다.

‘내가 저 녀석들을 통째로 삼키고 소화하려 했다?’

기억은 나지 않아도, 저 녀석들이 내 내면에 존재했던 건 분명했다.

어쩌다 쇠사슬에 감긴지는 몰라도, 덜 소화된 상태로 이 어딘가에 처박혀 있었고―

그러다 내가 이 공간에 오며 그 봉인이 흔들려 깨어난 것 같은 게 지금 가능한 추론.

즉,

“여기서 네놈들을 썰어버리면, 완전히 소화가 된다는 거지?”

- 크흐흐, 잘도 나불나불거리는구나. 네놈이 무언가 문제가 있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보지 못하였을 듯하더냐?

“…그걸 봤냐?”

그럼 좀 상황이 좋지 않은데.

- 네 목숨을 취하고 이 심연을 빠져나가리라. 형제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광명이 찾아왔음을 알리리라!

일곱의 얼굴이 동시에 소리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일곱 개의 아가리가 쩌억 벌어지더니 광구(光球)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아, 저건 좀.’

폭식종의 촉수보다 빠르고, 나태종처럼 한 갈래로 날아오는 것도 아니다.

퇴로가 보이지 않는 광선의 포화.

- 죽어라!

콰와아아아앙!!

어둠 속, 더럽게 밝은 빛무리가 폭발했다.

* * *

‘…뭐야.’

정신이 흐릿했다.

눈을 떠 보니 흑색으로 물든 세상이 아닌 생동감 넘치는 자연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단순히 그것으로 표현할 수 없다.

저 아래로 펼쳐진 산하는 십만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찬란한 자연의 장엄함이니―

그것을 품은 천혜의 요새를 단 하나, 알고 있었다.

‘십만대산?’

내가 대체 왜 여기에…….

흐릿한 의식 속에 눈만 깜빡이고 있을 때―

“대형, 뭐 합니까?”

“갑시다, 이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뭐?’

그건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들이었다.

이젠 듣지 못한지 일 년이나 지났으나, 언제나 눈만 감으면 선명히 들려올 것만 같았던… 한시도 잊지 못한 목소리들이었다.

“흐흐, 설마 대형도 쫄리는 거요?”

“하긴, 대형도 사람이니까. 쫄리겠지. 상대가 상대잖아.”

“그래, 천하의 그놈을 상대하는데.”

낄낄 웃고 떠드는 왁자지껄한 목소리.

그러니까,

‘너무나, 너무나…….’

듣고 싶었던, 그런 목소리들.

‘너희들!!’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아교라도 붙인 듯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럼 우리 먼저 갑니다?”

“어허, 길 뚫는 건 내 전문인 거 모르냐?”

그런 나를 지나쳐 지나가는 녀석들이 있다.

산발이 된 머리에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 않는 녀석.

삿갓에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 않는 녀석.

그리고,

“먼저 가겠습니다, 형님.”

나보다 약한 주제에 언제나 나보다 앞에 있었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녀석까지.

“아~ 가주님은 인정이지.”

“비켜 인마, 네가 암만 선두라도. 가주님이 허락해야 선두지.”

“쳇, 그럼 어쩔 수 없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제멋대로 떠드는 녀석들이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안 돼… 가지 마… 제발……!!’

소리쳐 부르고 싶지만,

어떻게든 잡아 보고 싶지만…….

“자, 시작이다.”

“무림의 평화, 한번 지켜보자고!”

그들은 언제나와 같이 망설임 없이 나아가서는―

‘…아.’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다.

‘…하, 하하하… 하하…….’

허망하게 내뻗은 손.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손만이 허공을 허우적거린다.

거센 물길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으나 그 어느 것도 잡지 못한 것마냥,

힘없이, 또 힘없이 허우적거리던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붉다.’

붉은 세계.

어느새 산천초목이 붉게 물들어버린 그 세계에서 나는 눈앞에 홀로 남은 상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천마(天魔)…….”

그 녀석이 홀로 오롯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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