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뭐?”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가만 해석하니 알아먹을 수 있었다.
‘잠깐만, 달이 세 번 바뀐 건 세 달이 흘렀다는 말이고 낮밤이 여섯 번 바꼈다는 건…….’
“…너 이 새끼, 설마 생후 삼 개월이냐?”
아니겠지.
나의 해석이 틀렸겠지.
설마설마해서 묻는 나였고,
- 그렇다!
녀석은 당당하게 답했다.
나의 부정이 틀렸고,
나의 계산이 맞음을.
그러니까,
“이… 이 어린 노무 쉐끼가!!!”
- 뭐, 뭐랏?
“뭐랏은 새끼야, 내가 네 친구야?”
- ……?!
와, 내가 살다 살다 이런 꼴을 다 겪네.
“내가 인마, 느그 천마랑 이것저것 다 하던 사인데. 천마 본인도 아니고, 아니, 하다못해 느그 주교급도 아닌 한낱 생후 삼 개월짜리가 나한테 말을 까?!”
- 케, 케엑?
“느그 천마가 그따위로 가르치더냐!!”
- ……!!
아니, 마교도 새끼들은 진짜 그… 위아래가 없나?
“이런 싸가지 없는 것들이. 나랑 겸상하려면 대마수쯤 돼야 하는 것도 모르나? 너 마수 급 몇이야?”
- 그, 급?
“모르는 척하지 말고. 너, 준성체는 됐냐?”
마수에도 급이 있다.
그건 영수에게도 통용되는 급인데, 가장 먼저 란(卵) 상태를 벗어나면 시작되는 총 여섯 단계의 계급 체계였다.
- 그, 그 정도까지는… 그, 그래도 우습게 보지 마라!! 나는 가장 빨리 유체를 벗어났다고 마수들 사이에서도 촉망받는……!!
“이노오오오오오오옴!!”
- ……?!
“아니, 그럼 이 어린 노무 자슥이, 고작 아성체인 주제에 나랑 말을 놨다고?”
- 뭐… 뭐!! 우린 적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
“으허, 으허허허허허!!”
이거 진짜 앙증맞은 애새끼였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허파에 구멍이라도 뚫릴 것 같았다.
“…됐고, 남은 둘은 뭐냐?”
- 그, 그건 왜 묻는 것이냐! 내가 왜…….
“어르신이 물으면 닥치고 대답이나 해. 내가 칼을 섞어도 너거 어르신들이랑 섞던 연배인데,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부탁해야겠냐?”
- 큭! 그 둘은 그래도 저 하늘의 태양이 스무 번은 변화하였을 때 태어났음이다!
“확인. 너까지만 딱 정상 참작의 가망이 있는 놈이다 이거지?”
마교도 놈들은 전부 족쳐야 했지만, 역설적으로도 그들 중 딱 하나 구제할 가망이라도 있는 것은 저놈들 ‘마수(魔獸)’였다.
마교도 놈들이야 지들이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라지만, 근본이 짐승 놈들답게 결국 사람의 손에 길러지는 것들은 사람에 의해 강제적으로 자라날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오랜 기간 살아오며 스스로 혈겁의 업을 쌓아 사람을 헤친 놈들은 곱게 보내줄 수 없지만,
‘세 달이면 그냥 주는 것만 받아 처먹으며 자랐겠지.’
어디 짐승의 새끼가 영유아 시절 받아먹은 것이 사람 고기일지언즉, 그것을 가져다준 부모의 업이지, 받아먹은 새끼의 잘못일까?
업이란 쌓이고 쌓여 처음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고, 인과란 연쇄와 같아 종국에는 떼어낼 수 없는 것이기에 때론 누군가가 그것을 끊어내야만 한다.
내 자랑스러운 동생이자, 고금 제일 가주인 당사유의 말이었다.
“넌 운 좋은 줄 알아라. 내가 참 착한 동생 놈이 내 귀에 피딱지가 생길 정도로 일러준 것만 아니었으면 즉결 처형인데.”
- 익!! 듣자 듣자 하니 못 하는 말이 없구나!! 힘을 어느 정도 쓸 수 있다 해도, 아직 온전치도 않을 텐데!!
“어, 맞아. 근데 반만 맞네.”
확실히, 이곳에서는 내공도 뭣도 쓸 수 없다.
들어올 때 가져온 암기 통도 어디 갖다 버렸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병신같은 헛짓거리였다는 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무기라면, 처음부터 있었는데 말이지.”
- 그게 뭔… 쿠웨에엑?!
쿠르르르!!
바닥에서 솟구친 쇠사슬이 녀석을 휘감았다.
깜짝 놀란 녀석이 퍼덕이며 몸을 피하려 했지만, 솟아난 쇠사슬은 수십이 넘을뿐더러 단순 바닥뿐 아니라 전후좌우상하에서 전부 쏟아져나왔기에 결코 피할 수가 없었다.
- 크으윽……?!
“가만히 있어라.”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했다.
이곳이 내 심상 공간이고, 저들을 잡아먹어 여기 처박은 것이 나라면, 그들을 옭아맨 쇠사슬은 누구에게서 나왔단 말인가?
‘당연 그것이 나의 무기였을 텐데.’
다른 놈들이 봉인에서 풀려난 것도, 내가 무의식의 영역에 의식적으로 들어와 놓고 그걸 다루지 못했음이 뻔한 일이었는데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달았다.
“…뭐, 늦었으면 늦은 대로 하면 되지.”
엎지른 물을 담을 수는 없어도, 닦을 수는 있는 거잖아?
“넌 여기 일단 기다리고 있고.”
이 망망대해와 같은 어둠 속은 걸어가기에는 너무나 넓다.
초인의 신체 능력이 견제한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기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웃차―
가볍게 뛰어올라 기다렸다는 듯 솟아오른 쇠사슬 위에 탔다.
이것이 내 의지가 버려낸 쇠사슬이라면, 그 속도는 마찬가지로 의지의 속도에 달하는 게 당연한 일.
“가보자고.”
콰콰콰콰콰!!
폭급한 굉음과 함께 쏘아진 쇠사슬은 단번에 나를 태우고 다른 둘이 있을 곳으로 향했다.
‘방향은 고민할 필요도 없지.’
어차피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
그들이 있는 곳에 가고 싶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 쇠사슬은 한 호흡 만에 그곳에 나를 도달하게 만들었다.
- 크아아아아!!
- 크르르릉!
팔초어와 탐이 물고물리는 대접전을 벌이는 곳.
그곳까지 도달한 나는 우선 손을 휘저어 쇠사슬을 퍼부었다.
콰콰콰쾅!!
- 크아아악?!
단번에 팔초어의 몸통과 모든 촉수에 꽂힌 쇠사슬이 녀석을 팔초어 꼬치로 만들었다.
“숙회로 무쳐주려 했는데, 그건 안 되겠고.”
딱―
손가락을 튕기자 쇠사슬은 단번에 녀석을 휘휘 감았다.
마치 팔초어잡이 통발에 갇힌 것마냥, 녀석은 강제로 이리저리 꼬이더니 통째로 쇠사슬에 휘감기며 좁은 공간에 갇혔다.
- 크르, 륵?!
원통에 가득 찬 시선만이 나를 향했다.
못 다한 말이 있는지 괴성을 터트리려는 녀석이지만,
“시끄러, 인마. 세입자 주제에.”
건물주는 무적이다.
세입자는 밥이고.
바로 둘둘 말아 원래의 알 상태로 환원시켜줬다.
“깝치지 마.”
- …….
결국 아무런 괴성도 뱉지 못하게 된 녀석은 잠잠해졌고, 어느새 상처투성이가 된 탐(貪)이 검푸른 안광을 피워올리며 나를 응시했다.
“…그래, 뭐. 고생했다. 근데 조금만 기다려라.”
할 말 많지만, 아직 순번이 남아 있어서.
다시금 쇠사슬에 올라타 이동하니 그다음은 헥헥이와 나태종의 마수가 혈전을 벌이고 있는 곳.
뭐, 사실 혈전이라고 보기는 좀 그랬다.
“헥헥!”
“…그 우렁찬 포효는 어디 갔니?”
나태종의 마수는 자신의 날개를 이용해서 어두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고, 헥헥이는 그 녀석을 쫓아보겠다고 헥헥거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처음에는 운 좋게 내려찍는 데 성공한 모양이지만, 한 번 놓치니 실로 여름날 나비 쫓는 강아지가 따로 없다.
“그래도 고생했다.”
보상으로 뼈다귀라도 몇 개 내오라고 할게.
녀석에 대한 포상을 생각하며 손을 내밀었다.
어차피 의지만으로 모든 게 이루어지는 공간이라지만, 이렇게 행동을 가미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훨씬 편했기에.
그렇게―
콰드드드득!!
- 크하아아악?!
헥헥이를 피해 날아다니던 나태종의 마수는 하늘에서 쏟아진 수백 개의 쇠사슬에 휘감겨 땅바닥에 추락했다.
놈이 자랑하던 날개는 갈기갈기 찢겨 졌고, 흉측한 몸통만 남은 채 땅바닥에 박힌 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지.”
- 크륵!
“뭘 꼬라 봐. 너도 유죄야, 인마.”
아까 질투종의 칠면석척이야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정상 참작이 가능해도, 수십 년 동안 혈업을 쌓아 온 놈들은 할 말이 없지.
특히나,
“사교도의 숭배 대상으로서 군림하며 마을 사람들을 마물로 만든 죄는, 더없이 무거운 바.”
내가 감히 그들을 대신하여 이놈을 심판할 자격은 없을지언즉, 이렇게라도 하여 덧없는 고혼을 위로할 의무는 있었다.
콰드득!!
추가로 내려꽂힌 수십의 쇠사슬이 비석처럼 박혀 들고, 마찬가지로 나태종의 마수 역시 봉인 당해 어둠 속으로 침전되었다.
“후우우…….”
- 주인! 주인!
전투가 끝나기 무섭게 빵실이가 달려들었다.
녀석의 빵실한 빵뎅이는 여전했지만―
“크학! 자, 잠깐만!! 너 크기! 크기를 생각해, 인마!!”
녀석의 몸통은 백 배도 넘게 불어났기에, 똑같이 달려들면 나는 압사당할 수밖에 없다고?
- 헉! 미, 미안!!
방계 놈들이었다면 단매에 후려쳤겠지만, 송구하다는 듯 연신 까딱거리는 헥헥이의 꼬리를 보고 있자니 차마 화를 낼 수가 없다.
‘…그래, 하나쯤은 나도 보고 마음을 치유할 게 있어야지.’
애써 찌릿한 허리를 펴며 내 이마까지 오는 녀석의 코를 쓰다듬었다.
“무민이냐?”
- 맞아! 나! 무민!
“그래, 어찌 여기까지 온 지는 묻지 않으마. 너도 영수의 혈통이니 신묘한 능력 하나쯤은 있겠고, 내가 위험하겠다 싶어 뛰쳐 왔겠지.”
- 헥헥! 맞아!
마음속으로도 헥헥거리는 녀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넌 돌아가 있어라. 나가는 길은 알지?”
- 응! 알아! 기다릴게!
따로 배변 교육도 안 했는데 말 잘 듣는 헥헥이는 나타난 것과 같이 사라졌다.
콰르르릉!!
한 줄기 뇌성이 몰아치더니 녀석의 신형은 저 하늘로 솟구쳤고, 어두운 공간을 한번 백색으로 물들였던 거구는 곧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후우… 그 연금술사 양반, 그래도 사기친 건 아니었구나.”
헥헥이가 있어서 시간을 번 것은 분명 맞는 말.
나중에 가면 진짜 뼈다귀라도 몇 개 던져줘야겠다,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 크르르…….
“그래, 기다렸냐.”
당연하다는 듯, 검푸른 안광을 빛내는 탐(貪)이 있었다.
“우리 좀, 할 말이 많지?”
- 크르르…….
씨익 웃으며 묻자 녀석은 낮은 울음소리를 흘렸다.
다른 놈들은 잘만 말한다 싶은데, 왜 이 녀석만 그저 으르렁거리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지만, 그게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흩트리며 녀석을 마주 바라보았다.
‘탐(貪)이라…….’
내가 지어준 이름이지만 실로 잘 지어준 이름이지 않나 싶었다.
‘아니, 어쩌면.’
원래부터 정해진 이름이 또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가 지었다 생각하지만, 애초에 그 이름밖에 정할 것이 없었던 그런 이름.
그래, 말하자면―
“넌, 역시. 또 다른 나(我)인가?”
애초부터, 그런 본질이 아닐까.
형식은 질문이었지만, 사실은 이미 확신하고 있는 나 였기에 그저 으르렁거리는 녀석에게 재차 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녀석의 정체는 사실,
“나의 탐욕(貪慾)인가?”
그런 것이구나,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