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76화 (276/350)

276화

잡룡단.

이 이름부터 잡스럽기 그지없는 무력단은 그 근본 역시 잡스럽기 그지없었다.

정천맹이 막 개설되고, 정파 무림을 넷으로 쪼개 놨다고 봐도 무방할 권력 구도의 축소판인 사신단이 그 몸집을 불리기 위해 마구마구 무인들을 받아들일 때 걸러진 쭉정이 같은 이들이 바로 잡룡단원들의 정체였으니까.

가진바 무재도 특출나지 않을뿐더러, 소속된 문파나 가문의 재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다.

만가쟁패의 시대, 그리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이들이 정천맹이 설립된다는 소식에 어떻게든 자신의 자식만이라도 밝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보낸 이들이 반절이요, 또 망해 가는 자신들의 문파와 가문을 살리기 위해 눈물겨운 상경을 한 게 반절인 이들이니까.

그렇기에, 그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성은 집에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천맹이 설립되고 첫 번째 대규모 원정을 다녀오며 주가를 연일 갱신시키는 지금, 다른 문파들은 이게 돈이 되는구나 싶어 추가적인 자본 유입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이제 슬슬 고향으로 돌아가 고향에 남겨두고 온 문파를 걱정해야 할 게 바로 그들이란 소리였다.

게다가, 잡룡단 자체가 급조되다시피 만들어지다 보니 맹에서 제대로 된 숙소를 지급받지도 못했다.

내정 부서에서 그들을 챙겨 줘야 마땅하나, 존재 자체가 외당 소속 내부 감찰을 위해 존재하다 보니 그들의 견제와 경계를 받으면 받았지, 사랑과 관심을 받지는 못한 덕에 숙소 상황 역시 열악했다.

맹에서 받는 봉급 대부분을 고향으로 보내느라 제대로 된 숙소도 구하지 못했기에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까지 처했던 그들.

그래도 다행히 그들을 거둬들인 곳이 있으니, 사천의 온 집단이 사신단의 눈치를 봐야 함에도 홀로 그들의 눈치 따위는 엿이나 먹으라 하며 잡룡단을 흡수한 곳―

그곳은 바로 잡룡단은 직접 길러내다시피 했던 사천당가였다.

* * *

“자, 다들 모였나?”

“옙! 교관님!”

“옙!! 교관님!”

당불퇴의 선창에 열띤 후창이 뒤따랐다.

우렁차게 소리치는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바로 당가의 식솔이 되다시피 한 잡룡단원들.

오갈 데 없는 그들을 길러 주고 키워 주고 먹여 주기까지 한 당가에 대한 충성심이 한계치를 찍은 그들이었기에, 당불퇴가 직접 나서서 기본 소양 교육을 하겠다는 말에도 아무런 반발 없이 집결했다.

그렇게 모인 이들을 둘러본 당불퇴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다들 미리 들어 알다시피,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당가에서 지내기 위한 기본 소양 교육을 위해서다.”

말하자면, 당가에서 지내려면 필수적으로 알아야 되는 사항이라 할까?

어쩌면 가장 중차대한 사항일 수 있기에 목소리에 내공까지 담아 외치자 자연스레 잡룡단원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너희들, 당가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 줄 아냐?”

무인이라면 누구나 익힐 무공?

독에 대한 이해?

암기술의 조예?

당가의 특수성을 감안해 일리 있는 추측들이 하나씩 나왔지만, 그 어떤 것도 답이 될 수는 없었으니―

모인 이들에게 혼란을 심겨준 당불퇴는 긴장 어린 목소리로 답을 알려주었다.

“그건 바로, 서열이다.”

“…서열 말입니까?”

“그렇다.”

당가에서는 첫째가 서열이요, 둘째도 서열이며, 셋째 역시 서열이었다.

즉,

“당가는 곧 서열이다.”

확고부동한 진리를 말하듯, 당불퇴는 다시 한번 그 절대 명제를 선언했다.

“당연, 당가의 서열 일 위는 가주님이시다.”

“가주님이시라면… 당위혼 대협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분이시다.”

누가 감히 그 사실을 부정할까.

이제서야 회자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당가는 지금처럼 전 무림에 명성을 떨치지 못했다. 오히려 언제 멸문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몰락한 상태. 그 상황에서 당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 가주된 위치에서도 스스로 독초를 캐러 다녔던 일화는 사천인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뿐만인가?

‘용독문주. 그 씹어 삼킬 놈.’

비겁한 술수로 당가의 사업체를 강탈하며 자신들의 몰락에 크나큰 일조를 했던 용독문의 문주 놈.

비록 얽힌 감정은 좋지 않아도, 불과 일 년 전까지 사천 제일에 가장 가까웠던 이를 꼽자면 당연 그놈이었다.

가진바 수완도 나쁘지 않고, 개인의 무위 역시 사천일세를 주장할 만큼 떨어지지 않던 놈을, 비록 여러 가지 조건을 달았지만 일대일 대결로 패퇴시킨 것이 바로 현 가주 당위혼이었다.

‘업무 능력, 무공 수위, 독과 암기술의 조예 그리고… 다른 분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인품까지…….’

그 밑에 분들이 사정없이 방계들을 쥐어팰 때, 홀로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시는 분이 바로 당위혼이었기에, 당불퇴를 비롯한 당가 방계들에게 최고의 존경과 선망의 시선을 받는 것 역시 당위혼이었다.

“스스로 내세우지 않는 성품 덕에, 비록 세간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금 본가의 서열 일위는 가주님이시다. 그건, 바로 밑의 괴팍하기로 소문난 두 분도 인정하시는 바이시지.”

마지막 말은 쥐꼬리만큼 작아졌다.

이 자리에서야 잡룡단원들을 호령하듯 하는 당불퇴지만, 가주님 바로 밑의 둘 앞에서라면 언제나 쭈구리가 되는 것이 자신의 신세.

서열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자신도 잘 아는 그였고, 어쩌면 여기 불러 모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기에 진중한 눈빛과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읊었다.

“사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가주님이 아닌 그 바로 밑의 두 분이다. 실질적으로 가주님께서 너희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 일은 없으니까.”

“저, 그 말씀은…….”

눈치 빠른 몇몇은 긴장 어린 당불퇴의 모습에 무언가를 깨닫고 조심스레 물어왔다.

“다른 두 분은…….”

“그래. 너희의 추측이 맞다.”

그리고 빠르게 돌아오는 긍정.

“다른 두 분은, 너희를 충분히 곤경에 처하게 만들 분들이시다.”

꿀꺽―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칼침을 맞을 때도 물러섬 없던 당불퇴가 진심 어린 두려움을 보이자, 저도 모르게 긴장한 것이다.

자연스레 장내의 분위기는 무거워졌고, 그 속에서 당불퇴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두 분의 이름은 너희들도 분명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너희들이 가장 두려워 마지않아야 할 그분들의 이름은…….”

바로,

“당궁상 이 개자식아!! 내 돈 네가 훔쳤지!!”

“개자식? 이 어린 노무 쉐기가!!”

바로…….

“…저, 교관님?”

“…….”

“저 우렁찬 외침들은 대체…….”

온 당가가 떠나가라 외치는 고성방가가 들려온다.

“하…….”

자연스레 새어 나오는 한숨.

“뭐긴 뭐야.”

세계관 최강자들의 싸움이지.

* * *

옛날 옛날 어느 위인이 하신 말씀 중 이런 말이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그 뜻이 무엇이냐,

수신. 일단 내것부터 챙기고.

제가. 가족이랑 친인척 등등 집안일을 하고.

치국. 그리고 남는 걸로 나라를 챙겨야.

평천하. 세상이 평화롭다.

그렇다.

암만 천하무림을 위한 대협객의 행보를 걸어온 이몸 당유혼이라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논리에 따라 그것들을 집안일보다 우선할 수 없다.

곳간에 쌀을 아무리 채워 놔도 갉아먹는 쥐 새끼가 있다면 매번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

그동안은 밖의 일이 바빠 안의 일을 오냐오냐 용인해줬지만, 더는 이 방만한 태도를 용서할 수 없다!

내 오늘 판관 포청천이 되어서라도 이 도둑놈을 잡고야 말겠다.

‘너 이 새끼, 내가 그래도 총관이라고 대우해 줬지만 내 주머니 손대는 것은 선 넘지.’

“당궁상 이 개자식아!! 내 돈 네가 훔쳤지!!”

콰앙!!

그대로 놈이 머무르는 별관의 문을 걷어차며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별관 마당에 있던 녀석이 나를 발견하고는 흉신악살마냥 주름진 얼굴을 더욱 주름지게 만들었다.

“개자식? 이 어린 노무 쉐기가!!”

“허……?”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궁상이 놈은 오히려 당당하게 소리쳐 왔다.

“업무 중인 거 아니 보이느냐? 괜한 시비 걸지 말고 썩 꺼지지 못할까!”

“이, 이 미친놈이?!”

뭐 믿고 이렇게 당당해?

“갈 때 가더라도, 그냥은 못 가지. 내 돈 내놔! 다 알고 찾아왔으니까.”

“돈? 허, 맡겨 놨느냐?”

“뭐, 뭣?”

“일도 안 하고 싸돌아다니기만 하는 놈이 돈은 무슨 돈!”

“……?!”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내가… 내가 싸돌아다니기만 했다고?

‘이 나이 먹고 온 무림을 발바닥 땀나도록 뛰어다니는 것도 서러운데……!’

눈뜨자마자 십만대산 끝자락부터 사천까지 뛰어왔다. 거기서 다시 감숙까지 갔다가 운남을 찍고 장강에서 물귀신이 될뻔했다가 끝끝내 광동까지 갔다 온 몸이다.

뿐만인가?

‘죽을 뻔한 횟수도 몇 번인데...!’

집에 돌아오니 웬 이상한 놈들이 집안 땅문서까지 강도질해가서 혼자 되찾으려 갔다가 죽을 뻔하고, 북방에서 마적떼 놈들을 상대하느라 죽을 뻔하고, 장강에서는 인간도 아닌 놈이랑 싸우다가 죽을 뻔했다.

그 이후로는 마기를 다룰 때 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기혈이 꼬이며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 내가 일을 안 해?

“애송이 놈이, 더럽게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구나.”

“그럼 아니냐?! 내가 인마, 이놈의 망한 집구석 살려 놓겠다고 이 넓은 중원 땅을 일주한 몸이야!”

감숙부터 광동까지면 진짜 대륙을 횡단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내게 이런 핍박을 하다니!

나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한 외침.

솔직히,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다.

“흥, 일을 한 게 아니라, 일을 벌여 놨겠지.”

하지만 돌아온 당궁상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뭣……?”

“좋다. 네놈이 사업체를 되찾고, 두 개의 거대 상단과 협약을 하여 자본 줄을 트여온 것은 인정하마. 그런데… 그거 뒷수습은 누가 했지?”

“……!!”

나왔다.

내가 다른 놈이 내게 일 가지고 뭐라 했다면 당장에 머리를 으깨버렸겠지만, 놈에게는 억울함만을 느꼈던 이유.

“네가 벌여 놓은 일이 한둘이더냐? 그리고… 일이 어디 벌여 놓기만 하면 그대로 끝이 나더냐? 그 내정과 관련한 일은 전부 나와 가주님 둘이서 다 했다.”

“그, 그건……!”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무공 한 자락 제대로 못 익힌 둔재 주제에……. 하지만 녀석의 일침은 여태껏 맞아본 그 어떤 암기보다 따끔했다.

“누, 누가 혼자 일하라고 했냐?! 내가 광형상단에서 데려온 먹물 먹은 녀석들이 한둘이냐!!”

입의당에서 자의로 따라온 이들이 수십이 넘는다. 비록 장강수로상단의 운영을 위해 많은 이들이 투입됐지만, 개중에서도 몇몇은 분명 사천에 남은 것으로 아는데 왜 그놈들은 안 써먹고……!

“흐, 애송이답게 사람의 입으로 개소리를 뱉어대는 재능이 있구나. 집안 살림을 가다듬는데 외인을 부리란 말이더냐?”

“……?!”

조소로 가득 찬 이죽거림이 들려오는 순간 깨달았다.

나의, 완패(完敗)라는 것을.

‘내가, 내가… 궁상이 따위에게 진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현실 도피까지 하려는 그때,

“어이, 애송이.”

“뭐… 뭣?!”

녀석은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나를 불러왔다.

‘아니, 근데 내가 나이가 몇인데 자꾸 애송이라…….’

참다 참다 발끈하려는 순간―

“내가 왜 널 애송이라 부르는지 알고 있나?”

불현듯, 당궁상이 말했다.

“예전에, 너 같은 놈이 하나 있었다.”

마치, 먼 과거를 떠올리는 듯한 목소리로.

“싸가지는 더럽게 없었으나, 가진바 재주 하나는 뛰어났던 놈이.”

그리고,

“녀석은 분명 천재라 불릴 만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지.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그 내용은 내가 익히 아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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