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84화 (284/350)

284화

서안에 당도했다.

성도가 보이는 산 능선에 도달한 차양당 방계 서른셋.

그 선두에 선 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럼 이제.”

그의 이름은 당지명.

당가의 방계들을 이끄는 차양당의 당주이며, 현재 전 무림에 명성을 떨치는 잡룡단 단주의 자리를 역임하는 이였으니.

그가 발아래로 서안을 오시하며 입을 열었다.

“…뭐 하지?”

“…당주 형님.”

“저 양반 저거, 불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에휴… 그럼 그렇지.”

아니!

“너, 너희들 반응이 너무 섭섭한 거 아니냐?”

좀 모를 수도 있고, 그럼 물을 수도 있는 거지!

저 아래로 바라보는 풍경만큼이나 막막한 마음에 형제들의 좋은 의견이 없나 싶어 공유하고자 말문을 떼니 돌아오는 건 폭풍 같은 질시뿐이었다.

새삼 서러워서 목소리가 먹먹해지고 있으니, 그의 방계 형제들은 비난과 야유로 답을 돌려줬다.

“그걸 우리한테 왜 묻습니까?”

“형님이 알려줘야지.”

“그게 당주 아닙니까?”

“뭔…….”

이놈들은 당주 자리를 대체 뭘로 아는 거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당지명은 억울했다.

여기가 사천도 아니고, 서안 땅은 나고 자라서 처음 와본 곳. 나란들 뭐 아는 게 있어야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디로 향해 달려가자고 얘기라도 하지…….

‘그렇다고 내가 노력 안 한 것도 아니잖아!’

서안에 오는 것도 처음이지만, 이놈들을 이끌고 임무다운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전까진 항상 대형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던 그였기에, 처음 맡는 임무 수행의 대장답게 꽤 열심히 원정을 준비했다.

‘너희들이 자기가 쓸 암기랑 독만 준비할 때, 나는 네 녀석들이 쓸 숙영 장비와 임무 수행 비용, 비상용 약재까지 다 챙겨뒀는데!’

긴장돼서 날밤을 새울 정도로까지 고심한 자신한테 어찌 이럴 수가 있는지.

당주로서의 권위가 실추되다 못해 실종되어 버린 이 건에 대해 통탄하고 있는 동안, 형제라는 놈들은 가열차게 비난을 쏟아냈다.

그리고, 참다못한 당지명이 빼액 소리쳤으니―

“조용! 조용! 조용!!”

참다못한 그는 선언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욕할 때 욕하더라도, 밥은 먹이고 괴롭혀라.

그렇게, 그들은 산중에 가장 익숙한 야영을 준비하고 주변에서 길러온 물로 식사를 마쳤다.

“끄으으… 잘 먹었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두드리며 당불퇴는 풀숲 위에 편히 기대앉았다.

“그래서, 형님. 진짜 어찌할 계획이십니까?”

“젠장, 소화 좀 하고 얘기하자.”

사천에서 서안까지.

결코 가깝지는 않은 길을 걸어온 방계들이었고, 그 핑계로 밥을 먹여 사방에서 쏟아져 오는 비난에서 잠시 몸을 피했던 당지명은 또다시 눈치 없이 일 이야기를 꺼내오는 동생 놈을 부릅 노려봤다.

하지만 그런 분노의 눈초리 따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당불퇴는 배만 벅벅 긁을 뿐.

“거 언제부터 소화에 휴식 시간이 필요하셨다고. 소화가 필요하면 뛰면 되잖수.”

소화란 곧 영양분의 흡수니. 당가에서 소화라는 것은 저기 가파른 산길을 뛰어다니며 어서 빨리 음식의 영양분이 전신으로 체내 흡수되길 유도하는 것과 같았다.

물론, 당연 그런 의미가 아닌 당지명으로서는 인상을 구길 뿐이었지만.

“나도 좀 차분하게 생각이 필요하니 그렇지.”

“흐, 입의맹인가 협의맹인가 때문에 그러슈?”

“…그래, 그놈들 때문에 그런다.”

숨겨서 뭣할까.

어느새 나머지들의 시선이 몰리는 걸 느끼며 당지명은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쁜 놈들은 쥐어패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막막하더구나.”

“허 참, 뭐가 또 막막하기까지야. 쥐어팰 놈들은 쥐어팬다. 그것보다 더 간단하고 명료한 게 또 있답니까?”

당불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

어깨를 으쓱하며 뭘 고민하냐고 물어오는 모습에 당지명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지.’

여기 없는 어린 대형의 밑에 있을 때는 굳이 많은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틀린 것이 있다면 틀리다고 소리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잡으면 그만이었지.’

옳지 않은 일이 있으면 뛰어들어 주먹을 휘두르고 암기를 흩뿌리면 그만이었다.

그 상대가 강하고 약하고 따위 역시 조금도 중요한 요소가 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하는 일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확신만이 있으면 될 뿐.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날뛰었으니, 이제와 돌아보기에 그게 다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립습니다, 대형.’

당유혼.

이전까지는 항상 사고뭉치에 가장 윗사람인 주제 가장 사고를 많이 친다 생각했던 이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지명아, 지명아. 왜 또 그리 궁상맞은 표정을 짓고 있니?”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며 말해 오던 대형의 모습.

“지명아, 이 멍청한 놈아. 또 사고를 만들어내는구나?”

“야, 이 새끼야. 일하라고 했더니 일을 만들고 있네?”

‘…생각해 보면 또 그렇게 그립지는 않습니다.’

미화될 뻔한 과거를 허겁지겁 바로 잡으며 생각했다.

‘대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전까지는 결국 큰일은 대형이 다 처리해 주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마음껏 날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

“자, 모여봐라.”

그 생각이 당지명에게 책임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미 모여 있던 동생 녀석들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집중을 끌어모았다.

“다들 배도 채웠으니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마. 너희도 알겠지만, 우리가 상대해야 할 놈들은 뒤가 구리다는 의혹이 있긴 해도… 일단은 정파에 속한 이들이다.”

그것은 지금껏 그들이 상대해 왔던 이들과는 다른 가장 큰 차이점.

사파라면 뒤 없이 쥐어팰 수 있지만, 정파에 속한 이들은 쉽게 팰 수가 없다.

“물론, 지금까지 너희들은 잡룡단이랍시고 사천 내에서 정천맹 소속 무인들을 많이도 두들겨 팼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와 이 경우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때는 법이라든가 맹 내의 규정 등 모든 게 자신의 편이었다면, 이제는 그 상황이 정반대라는 것.

“그때야 굴러 들어온 돌이 그쪽이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굴러 들어온 돌이 된 것이다. 여기서 무슨 일을 함부로 만들었다 친다면, 이미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각 무림 방파는 물론이고 관까지 그들의 편을 들 확률이 높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고, 외부에서 온 타지인보다는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이들을 감싸 도는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우린 의혹이 있는 의협맹을 조사해야 하니, 이건 꽤 비밀스러운 작업이 되어야 할 거다.”

하오문에서 정보를 얻어 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대형은 현재 하오문 내부에 문제가 있어 그들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라 일러주었다.

작전의 첫 단계인 정보 수집부터 그들 스스로 해야 될 판이었으니, 당지명은 다시금 서른두 명의 형제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이쯤 말했으니 다들 알겠지.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정보 수집이다. 절대, 우리들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서.”

* * *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그 말을 당지명 역시 흘려듣지 않았다.

굳이 말 안 듣는 동생 놈들을 한데 모아놓고 밥 먹이고, 같은 말 또 하고 또 하며 강조시킨 것도 같은 이유.

‘우리를 최대한 알리지 않고 의협맹의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자신은 그들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

힘없는 농부 아저씨 말 하나만 듣고 찾아간 타지는 말 그대로 연고 하나 없는 곳이었으니, 정말 만약 그들의 이 행보가 처음부터 그릇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당최 의협맹이 뭐 하는 곳인지 알아내는 것이 그 첫 번째 단계였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곳은 역시 여기밖에 없지.’

만약 대형이 여기 있었다면 어찌했을까, 그런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도달한 곳.

그곳은 바로―

“점소이.”

“옙! 부르셨습니까요!”

주루(酒樓)였다.

‘대형께선 항상 이런 곳에 정보가 모인다고 했지.’

주루란 무엇인가.

고된 하루 일을 끝마친 이들이 술 한잔에 피로를 녹이며 그것을 털어내는 곳이었다.

사람의 피로가 쌓이고 또 쌓였기에, 그것을 풀기 위해 취기의 힘을 빌리는 곳인 만큼 그 안에는 이성의 고삐를 느슨하게 한 이들이 내뱉는 소리로 가득했다.

원래라면 쉽게 뱉지 못할 말도 뱉어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타지에서 온 이들이 여독을 녹이며 주변의 흥미를 끌기 위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마음껏 떠드는 경우도 왕왕 있으니, 그걸 주워들은 이는 자연스레 쓸 만한 정보통이 될 수밖에 없다.

“주문하실 게 있습니까요?”

그게 바로 점소이, 취객을 가장 많이 하는 상대하는 직종이었다.

“흠, 이곳은 뭐가 제일 잘 나가는가?”

“헤헤, 음식을 말씀하십니까, 아니면 주류를 말씀하십니까?”

“자네가 추천해 보시게.”

“가격대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상관없네.”

시작은 돈주머니를 여는 것.

정보는 돈이 되는 것이기에, 반대로 말하면 또 돈이 있어야 정보를 살 수 있기도 했다.

적당히 돈 자랑을 해줘야 점소이의 눈이 혹해지는 법이고, 그 상황에서 은근하게 돈을 찔러 줘야 정보도 돌아오는 법.

가격 따위 상관없다는 듯 부르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껏 불러보라는 당지명의 말에 자연스레 점소이의 눈이 커졌다.

“아이고, 제가 귀인(貴人)을 몰라 봤습니다요! 저희 가게로 말씀드리자면…….”

점소이 주제 애사심이 투철한 건지, 자신의 직장에서 자신작으로 여기는 것들이 하나둘 튀어나왔다.

당지명은 그중 몇 개를 골라 주문했고, 주머니에서 은화 대여섯 개를 꺼내 점소이의 주먹에 쥐여 주었다.

“헉? 대, 대협! 돈이 너무 많습니다! 이 정도면 거스름돈으로 바꿔오는 것이…….”

“됐네. 남은 건 자네 가지게.”

“저, 정말입니까?”

“싫으신가?”

“아이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혹시나 줬다 뺏을까 싶어 점소이는 재빨리 공손히 내밀었던 두 손을 회수하려 했다.

척―

그전에 뻗어온 손아귀가 그의 손목을 움켜쥐지만 않았다면.

“그전에 잠깐.”

“허, 허억?! 무, 무림 고수?!”

자신이 인지하지도 못할 사이에 뻗어온 손길이 맥문을 잡아채는 걸 본 점소이가 당황해 눈을 크게 떴을 때, 당지명은 검지를 들어 입술 앞에 세우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 돈을 자네가 가지는 건 좋은데, 대신 다른 방법으로 거스름돈 일부를 채워 줬으면 하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듣고 싶은 게 있거든.”

“듣고 싶은 것… 아……!”

그제야 탄성을 내뱉는 점소이는 눈앞의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 몸을 납작하게 숙였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끔 이런 이들이 있었다.

멀리서 온 타지 사람들이 돈을 뿌리며 이것저것 물어오는 것.

점소이의 비공식 수익으로 유명한 ‘정보료’가 바로 손안의 것이었으니, 겨우 이빨 몇 번만 털면 되는 부업이라면 얼마든지 한탕이든 두 탕이든 뛸 생각이 있었다.

‘좋아.’

그 태세 전환을 인지한 당지명도 히쭉 웃었다.

이대로만 가면 생각보다 일이 싶겠구나 싶어서.

“자네, 의협맹에 대해 뭐 좀 아는 게 있는가?”

하지만,

“헙?!”

“응?”

“죄, 죄송합니다… 거, 거스름돈은 필요 없습니다요!!”

점소이는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며, 받았던 은자를 돌려준 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갔으니―

“이게 뭔…….”

예상보다 일처리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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