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85화 (285/350)

285화

무언가 이상하다.

형제들과 흩어져 정보를 조사하기 위해 독자적인 행보를 걷던 당율기가 느낀 생각이었다.

“이상해.”

처음 조사를 시작할 때부터 느꼈던 의문은 조사를 진행할수록 더더욱 짙어졌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확신에 도달했다.

“역시, 이상하구나.”

결론을 내린 당율기는 자리 앞에 놓인 찻잔을 홀짝였다.

그리고,

“끄으으…”

“으으…”

그런 당율기의 주변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이가 물경 서른.

다들 머리맡에는 우악스런 몽둥이나 흉폭한 날붙이를 떨어트리고 있는 것이, 결코 좋은 의도로 찾아온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괴, 괴물…”

그런 이들이 지금은 다들 바닥에 너부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괴물이라.”

홀로 차를 홀짝이던 당율기는 비어버린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들을 훑었다.

“내 입장에선, 힘없는 양민의 고혈을 짜내는 이들에 동조하는 그대들이 더욱 괴물 같은데? 그것도, 같은 밑바닥 인생이라는 하오문의 문도들이 말이야.”

그랬다.

흩어진 방계들은 각자 의협맹에 대해 찾아보려 했고, 으레 다른 형제들이 그러했듯 당율기 역시 자연스레 그들의 대형을 떠올렸다.

‘대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보고 배운 것이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하오문부터 털고 보는 당유혼의 모습을 보고 배운 당율기는 곧장 서안에도 있을 하오문의 지부를 찾아 나섰다.

물론, 사파의 종자라면 이 세상에서 완전히 멸종시켜도 상관없다는 그의 대형과 달리, 암만 그래도 사람을 어찌 그리 매몰차게 대할 수 있냐는 지론의 당율기는 처음엔 적합한 대가를 지불하려 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이것.

“숫자를 보아하니, 나 하나 잡기 위해 대부분이 몰려온 것 같군.”

하오문을 상징하는 표식을 찾아온 것까지는 좋은데, 그렇게 찾아온 하오문 서안지부에 의뢰를 맡기고 기다리고 있자니, 오라는 정보는 오지 않고 칼 찬 왈패들만이 우르르 몰려왔다.

“거기다 차에는 독까지 탔더군. 하오문 상황이 말이 아니라고는 들었지만, 적어도 찾아온 사람의 정체 정도는 파악해야 되는 게 정상 아닌가?”

쯧쯧-

가볍게 혀를 차며 그들 전체를 폄하하는 당율기였지만, 정작 그걸 듣는 당사자들은 누구도 감히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왜냐면, 그들에게 있어 당율기라는 침입자는 재앙과 같았기 때문이다.

‘앉은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우리를 제압한 괴물…!’

‘소 한 마리도 그 자리에서 거꾸러트린다는 극독인데…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은 모습이잖아!’

실제로도 당율기는 이들에게 있어 다른 방계의 그 어떤 형제들보다 위협적이었다.

다른 형제들이 각기 무공과 암기 등에 매진할 때, 홀로 골방에 틀어박혀 ‘독’ 그 자체에 파고들었던 결과, 당율기는 차양당 방계 중 독에 대한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이게 되었다.

그 결과 극독이라 불리우게 되는 것들도 아무렇지 않게 털어넘길 수 있었고, 앉은 자리에서 소매폭 몇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반경 삼장여를 통째로 독기로 뒤덮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것이다.

과거, 일정 경지 이하의 상대에게는 절대적 공포라 여겨지던 독인(毒人)이 서안 땅에서 재림한 결과였고, 그 압도적 공포를 만들어 낸 당율기는 자신을 위해 준비된 독차를 마저 털어넘긴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헉… 다, 다가오지 마…!”

바닥에 너부러져 있던 이들 중 우두머리 역할을 수행하던 이는 당율기가 다가옴에 깜짝 놀라 앉은 상태로 뒷걸음질 쳤다.

목숨을 앗아가기 위해 준비한 독차마저도 식후 입가심하듯 후룩후룩 털어넘긴 상대가 천천히 다가오니 그 공포에 뇌가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극에 달했을 때, 당율기는 바로 한 걸음 앞에서 멈춰 섰다.

“이해할 수 없군. 눈앞에 있는 나를 그리 두려워하면서도, 의협맹에 대해 얘기할 생각은 없나?”

혹시, 내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당율기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물론 그 역시 다른 형제들처럼 의와 협을 중요시하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은 이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데 소금의 망설임도 없을 사람이기도 했다.

특히나, 약한 이들을 괴롭히고 그들의 피눈물 어린 결실을 앗으며 부귀와 영화를 쌓은 이들이라면 이 자리에서 한줌 혈수로 녹여버린들 조금도 후회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 서늘한 진심이 전해졌는지 우두머리를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나,

“젠장… 죽일테면 죽여라. 어차피 이리되도 죽고 저리되도 죽는 몸! 그냥 죽이란 말이다!!”

발악하듯 소리치는 우두머리는 결코 입을 열 기색이 없어 보였다.

“흐음…”

참으로 이상하다.

딱히 충성심이라 불릴만한 게 있어 보이지는 않는 종자인데, 이 지경에까지 와서도 자신의 말에 답할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살기를 내비치 않은 것도 아닐진대 이렇게까지 당당한 모습에 결국 한 가지 결론에 귀결됐다.

‘아무래도 이곳은 의협맹에 연관이 있는 곳인 것 같군. 그리고, 그런 의협맹은 자신과 연이 닿아있는 이들이 허튼소리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성향인듯하고.’

조금만 뻥끗해도 죽음이나 그에 준하는 끔찍한 처벌이 준비되어 있을 테니, 여기서 그냥 죽으려는 속셈일 터.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당율기의 마음은 차라리 편해졌다.

“여기서 정보를 얻긴 글렀군.”

“흐흐. 어딜 가든 마찬가지일 거다…”

공포에 미쳐버린 건지, 계속되는 자극에 뇌가 마모되어 버린 건지.

음험한 미소를 짓는 그를 보며 당율기는 결국 한숨을 쉬며 품에서 단환 하나를 꺼냈다.

“입 벌려.”

“뭐라? 응? 그건 뭐… 자, 잠ㄲ… 쿱… 쿠웁…!”

당율기는 방계들 중 그 체구가 가장 작은 편인지라, 그 손아귀도 결코 큰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우악스러운 힘은 자신보다 머리통 두 개 만큼은 커다란 우두머리의 입에 단환을 쑤셔 넣기 충분했다.

그리고,

“이, 이게 무ㅅ… 끄, 끄아아악?!”

잠시 후, 끔찍한 고통이 찾아들었다.

“끄, 끄아아… 으아아아…!!”

우두머리의 몸부림은 일각 가량 이어졌고, 그 시간이 지나 그 고통이 충분히 뇌에 각인되었다 싶을 때 당율기는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나는 그렇게 피를 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야. 하지만, 방해가 되는 걸 좋아하지도 않지.”

“으으….”

“네게 먹인 것은 월락(月落)이라는 이름의 독이다. 한 달 안에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온몸의 장기가 녹아내려 죽음에 이르는 극독이지.”

“헉… 허억…?”

우두머리의 눈이 부릅 떠졌다.

그런 독이 어디 있냐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렇게 마냥 부정하기에는 조금 전 느낀 고통이 너무나 끔찍했다.

“한 달만 입다물고 있어라. 그렇다면 돌아와 해독제를 줄 테니까. 알겠나?”

“아… 알겠소…”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우두머리를 뒤로 한 채 당율기는 밖으로 빠져나갔다.

“후우.”

짧지만 생각할 게 많았던 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한숨이 세어 나왔다.

그때, 저편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당주 형님?”

“아, 율기구나.”

마침 자신과 비슷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당지명의 모습.

그에 당율기는 본능적으로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형님도 이십니까?”

“허허, 그 표정을 보니… 율기 너도 썩 유쾌하지 못한 일을 겪은 듯 하구나.”

“그런 듯합니다.”

서로 있었던 이야기를 토로하자 당지명 역시 표정에 그늘이 어렸다.

“생각보다 의협맹이라는 이들이 더한 공포로 서안에 군림하는 듯 하구나.”

민중은 입을 여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하오문은 정보를 사러 온 사람을 뒤통수쳐 그 정보를 역으로 팔아넘기려 한다.

자신들이 할 말은 아니지만, 명색이 협과 의를 논하는 집단에서 사파와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은 가볍게 볼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율기한테는 독을 먹이려고까지 시도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렇게, 둘의 표정이 점점 굳어갈 때 흩어졌던 방계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당주 형님.”

“율기, 너도 여기 있었구나?”

그들이 몰려와 하나씩 뱉은 말들은 결국 대동소이했다.

누구에게 물었냐의 차이만 있을 뿐, 물은 이들의 신분 직책이 달라도 결국 대게 반응은 비슷했으니-

“위험하군.”

그 이야기를 들은 당지명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악명과 공포로 군림하는 곳에 하나도 아니라 서른 명이 묻고 다녔으니, 우리 소문이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하겠어.”

처음에야 흩어져서 정보를 수집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렇게 되니 어지간히 악수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니, 문득 방계 하나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응? 그런데 불퇴는 어디 있냐?”

“예? 먼저 와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여기 있을 줄 알았는데…

“잠깐, 설마?”

“…아니지?”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공통의 불길함.

그것은-

“으아아아아아!! 저 새끼 뭐야?!”

“죽여!! 어디서 외지인 놈이!!”

“…”

곧 현실이 되었다.

* * *

다른 형제들이 그러하듯, 당불퇴의 사고 회로 역시 아주 당연한 논리를 타고 흘렀다.

‘대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다들 보고 배운 게 그 나물에 그 밥임을 증명하듯, 딱 당유혼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떠올렸다.

물론, 사람이 각인각색이듯 다들 같은 것을 봐도 어떻게 보는지는 다르기는 했다.

그리고, 개중 당불퇴는 당유혼이 습관처럼 한말을 되새겼다.

‘더러운 사파 종자 놈들.’

밥 먹으면서 사파멸시.

길 걸으면서 사파멸시.

숨을 쉬면서 사파멸시.

모든 상황에서 사파를 멸시하는 당유혼의 모습은 당불퇴에게 한 가지 사고를 각인시켰다.

‘모든 길은 사파로 통한다.’

어디서나 있는 게 사파라는 종자 놈들이다.

인간이 잘 나갈 때면 부스러기 하나 주워 먹을 게 없나 싶어 모여드는 게 사파요, 인간이 또 힘들고 괴로우면 그런 이들을 끝까지 쥐어짜내는 게 또 사파였다.

즉, 그들을 잡아 족친다면 무엇이든 답이 나온다는 결론.

그 생각은 즉각 행동으로 이어졌다.

콰아앙!

“뭐, 뭐야?”

“웬 놈이야!”

“흑귀단. 여기가 이 근방에서 제일 나쁜 놈들이라며?”

“이놈이…”

“아, 굳이 답해줘도 돼. 이런 흉악무도한 놈들. 얼마나 양민의 고혈을 짜냈으면 사파 놈들 사는 곳 대문이 그렇게 으리으리해?”

발로 차서 박살 낸 대문은 그 파편조차 어지간한 집 문짝보다 크다.

뚜둑- 뚝.

가볍게 목을 풀며 다가가는 당불퇴에게는 위기감 하나 느껴지지 않았고, 반대로 그런 침입자의 모습을 보는 흑귀단의 무인들에게는 본능적으로 불길함이 엄습했다.

‘좆된거 같은데…’

사파란 눈치에서 시작해 눈치로 끝나는 인생.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밑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생존 감각과 눈치가 끝이었다.

아무리 세상이 넓고 미친놈이 많아도, 이 일대에서 가장 악명을 떨치는 흑귀단의 정문을 걷어차고 들어온 놈이 평범한 놈일리 있겠는가.

대게 이런 경우 입구나 지키는 자신들과 같은 이들이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지만,

‘싯팔, 안 막아도 죽는 건 매한가지잖아…’

그들은 자신들의 뻔한 불운을 예견하면서도 칼을 뽑아들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살아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그래, 그래. 그 마음 이해한다. 니들도 먹고살아야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파먹고 살아가는 송장벌레도 있는데, 이런 놈들이라고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지 않을까?

그러니까,

“딱 그러고 있어.”

내가 즈려밟기 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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