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87화 (287/350)

287화

차양당 방계들이 허겁지겁 소란의 근원지에 도달했을 때, 이미 사건은 전부 끝난 이후였다.

“하이고…….”

당지명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나머지도 방식만 다를 뿐 통탄을 금치 못했다.

“이 자식, 굳이 일을 만드는구나.”

“아니야, 저 녀석에게 뭐가 잘못이 있겠어? 혼자 놔둔 우리 잘못이지.”

“율기야, 네가 저 녀석 목줄 채우는 담당 아니냐?”

“…그래, 내가 다 잘못했다.”

진작 저놈의 목에다 쇠고랑을 채운 뒤 개처럼 질질 끌고 다녔어야 했는데.

빗발치는 비난에 논란의 현장에 있던 당불퇴가 볼멘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듣자 하니까 너무한 거 아니냐?”

“그 말은 일단 손에 들고 있는 거부터 내려놓고 말하지?”

“아, 이거?”

털썩―

한 손에 멱살이 쥐어져 있던 거한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미 온몸이 만신창이에, 얼굴을 얼마나 맞았는지 잔뜩 불어터져서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 수준이었다.

“사람을 무슨…….”

“사람 아냐.”

“어?”

“이 새끼, 이거. 사람 아니라고.”

말 그대로 곤죽을 만들어 놨지만, 당불퇴의 표정에는 후회 한 점 없었다.

“나도 웬만하면 이렇게까진 안 하려고 했지. 하지만 여기 쳐들어와서 좀 뒤져보니 수준이 심각하더라고.”

흘깃―

당불퇴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그곳에는 부서진 창고가 있었고, 좀 더 안쪽에는 남루한 행색을 한 십여 명이 서로를 얼싸안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다 끝났어요, 나오세요.”

“저 사람들은 누구야?”

“이 웃기지도 않는 곳에 납치된 사람들. 이놈들, 인신매매까지 하더라.”

“서안에서?”

그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약 이곳이 해안가라면 다른 대륙에 팔아넘긴다 생각하겠지만, 서안은 내륙 중의 내륙이다.

“미쳤군. 아주 제대로 미쳤어.”

“그런 것 같더라. 그러니 어쩌겠어. 죽이지 않을 거면, 정상으로 만들어 줘야지.”

자고로 대부분의 정신병에는 매가 답이더라.

기나긴 역사가 증명해 낸, 만병통치약(물리)을 자랑해 보인 당불퇴가 퉤 하고 가래침을 뱉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렇게 됐다.”

“그렇게 됐다라니…….”

억장이 무너지는 당지명이었지만, 그렇다고 뭐라 말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래, 이 녀석은 원래 이런 놈이지.’

무식하게 생겨 가지고, 하는 행동은 야만인이 따로 없지만 마음속에 자리한 협의(俠義)라는 불꽃은 방계 중 제일인 녀석이었다.

‘당장 운남으로 갈 때만 해도,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이 드니 대형한테도 대든 놈이잖아.’

그때 당시 한참 대형에게 처맞고 살 때였음에도 겁 없이 대들던 당불퇴의 모습을 생각하자면, 여기서 얌전히 있기를 바란 것이 자신의 잘못이다.

“…죄 많은 인생.”

누굴 탓할까 싶다.

“낄낄, 뭘 죄 많은 인생까지야. 너무 그러지 말고 힘내슈.”

“…네가 문제야, 개자식아.”

당지명은 자신의 어깨에 올려지는 손을 쳐내며 식은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래,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 이미 지나간 것에 신경 쓰기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책이나 의논해야지.

“다들 모여봐라.”

당주의 손짓에 차양당 방계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일단 시키면 듣기는 하겠다는 모습들로 모인 형제들을 보자니 문득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하하, 이런 쓸모없는 자식들.’

진짜 보고 있노라면 이런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 없다.

시키면 하기는 하는데, 그 와중에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는 자기들 마음대로요, 일이 터지면 전부 자신한테 떠넘기는 뜨끈한 형제애라니.

오늘도 이 뜨거운 형제애에 감탄 또 감탄하며 당지명은 물었다.

“혹시, 좋은 생각 있는 사람 있나?”

“무슨 생각요?”

“이제 어찌할지 말이다.”

“그런 건? 형님이? 생각할 게 아닐? 까?”

“몰? 루.”

“…그래, 그럴 것 같았다.”

기대도 안 했다, 이 사파 놈들아.

“우선… 저분들부터 돌려보내자.”

당지명이 생각하기에, 어차피 이 정도로 난리를 쳤으면 의협맹인가 뭔가 하는 놈들이 찾아올 건 기정사실이었다. 비밀 작전이고 나발이고 이제 다 헛짓이 돼버렸다는 걸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하니, 그보다는 여기 납치되어 있다는 사람들이 더 신경 쓰였다.

“어디로 돌려보낸답니까? 납치된 사람들인데 이대로 돌려보내면 위험해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다 책임져 줄 수는 없는 사람들이지 않느냐.”

“그럼요?”

“우리가 책임져 줄 수 없으면, 다른 놈들이 책임져 주면 되죠.”

“그러니까 그게 누구… 아.”

의문은 곧 해소되었다.

동생 놈들 덕에 짜증이 잔뜩 난 당지명은 화가 잔뜩 났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쿵쾅거리며 쓰러져 있던 거한에게 다가갔다.

거한의 눈은 반쯤 돌아가 있었지만, 그것 역시 문제 될 건 없었다.

철썩― 철썩―

“끄, 끄아악?”

양 볼에 불이 나는 듯한 고통에 번쩍 정신을 차린 거한이 두 눈을 부릅뜨며 일어났다.

“웨, 웬 놈이냐!!”

“웬 놈이다.”

“허억!”

으르렁거리는 대답에 정신을 차린 거한이 허겁지겁 주변을 둘러봤다.

풍비박산이 난 주변 풍경과 그 곳곳에 나자빠져 있는 부하들의 모습을 보자니 실신하기 전 기억이 떠올랐다.

“괴… 괴물……!”

“그래, 내가 그 괴물 놈 형이다. 자, 입 벌려.”

“무, 무슨 짓을… 우웁? 구우웁?!”

무언가가 강제로 입 안으로 쑤셔지는 이물감.

본능적으로 그걸 삼켜서는 안 된다는 거부감에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지만, 혈도를 몇 번 짚이자 입 안으로 들어온 무언가는 꿀떡꿀떡 잘도 목구멍 너머로 삼켜졌다.

“…꿀꺽! 너, 이놈, 이게 무…….”

“무엇인지는 말 안 해도 알려줄 거야.”

당지명은 짜증스럽게 옆에 있는 기둥으로 손을 휘둘렀다.

검푸른 무언가가 그 위로 흩뿌려졌고, 잠시 후 나무 기둥은 푸스스 소리를 내며 녹아내렸다.

“우리 가문이 한번 쫄딱 망했어서 못 들었을까 봐 알려주마. 본가는 독의 조종이라 불리는 사천당가이며, 나는 차양당주 당지명이다. 자, 이제 내가 뭘 처먹였는지 알겠지?”

“도, 독……?”

“그래. 한 달마다 해독제를 받아먹지 않으면 네 오장육부가 녹아내려 볼일 볼 때 질질 새는 광경을 겪게 될 거야.”

“허억……!”

끔찍한 공포가 거한의 뇌를 마비시켰다.

“책임지고 저들을 안전한 곳이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고 한 달마다 그들에게 직접 서신을 받아 본가에 가져와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의 쓸데없이 비대한 체중이 반으로 감량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테니까.”

반으로 녹여버리겠다는 협박.

단순 위협이라 생각하기에는, 웬만한 장정 몸통만 한 나무 기둥이 녹아내리는 걸 두 눈으로 본 뒤였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자, 잠시… 저들이 글을 못 쓰면 어떻게 합니까……?”

문득 합리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떻게 하기는?”

“예, 옙?”

“그건? 니가? 생각할 게? 아닐? 까?”

“…아.”

털썩―

두 무릎을 꿇는 거한을 뒤로하고, 가래침을 탁 뱉는 당지명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며 방계들을 생각했다.

‘역시, 당주 형님이야.’

‘아닌 척해도, 저 양반이 제일 심해.’

만물사파론에 입각한 사파에 일 떠넘기기.

수틀리면 독 먹이고 협박하기.

생각하기 싫으면 다른 놈 쥐어짜기.

방계들은 개중 하나씩 했던 것들을 홀로 전부 다 해내 버리는 수완을 보이며 당지명은 한숨과 함께 돌아왔다.

“됐다. 이제 안전할 거다.”

“사파 놈들을 믿슈?”

“제 놈들 목숨이 걸렸는데 지들이 어떡할 거야?”

원래 일신의 건강과 안녕을 챙기는 것 하나는 제일인게 사파 놈들인데.

“것보다는 우리의 앞으로 일정이나 생각하자꾸나.”

이미 비밀스럽게 일을 진행하기에는 늦었다.

자신들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풀렸을지는 몰라도, 그들이 차양당과 사천당가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면 가뜩이나 비밀스럽게 진행하던 일들을 더더욱 비밀스럽게 숨길 것은 뻔한 노릇.

‘차라리 맞서 싸워주면 고맙겠지만…….’

머리가 커지고, 정천맹에 뿌리 박은 노회한 노괴들을 보니 새삼 깨닫는 게 있다.

‘진짜 거대 세력을 일군 놈들은, 애초에 도전자들이 자신들에게 분쟁 거리 자체를 만들지 못하게 한다.’

전투라는 것도 급이 맞고 격이 엇비슷해야 일어날 수 있는 것.

그건, 그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이 전장 상황 자체를 그리 주도하기 때문이었다.

‘놈들은 분명 자신들의 악행을 숨기려 들 거다.’

떳떳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기만 해도, 괜스레 자신들과 충돌하기보다는 그 사실 자체를 덮으려 하겠지.

“어떻게 할 거요, 형님?”

“별수 있나. 이제부터는 전면전이지.”

“전면전이라면?”

“의협맹. 어떤 곳인지 한 번 직접 찾아가 보자꾸나.”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가야 하는 법.

역시, 처음부터 이게 맞았다.

“흐, 그거 완전 내 취향이구만?”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지.”

“에휴, 우리가 그럼 그렇지.”

무려 한 지역의 패주와 정면 대결을 하게 됐음에도 방계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워낙 위험한 상황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이젠 목숨을 바깥에다 내다 건듯한 모습을 보이는 동생들을 보며 당지명은 피식 웃었다.

“그래, 우리가 다 그렇지.”

“당주 형님. 대형 보는 거 안 무섭수? 분명 일 키웠다고 뭐라 할 것 같은데?”

“흠…….”

확실히 그건 좀 무섭긴 했다.

하지만,

“…뭐라 하면 뭐 어쩌시겠어? 그러게 걱정되면 우리만 보내지 말든가.”

이미 뇌의 부하가 한계에 달한 당지명은 아몰랑을 시전했다.

그 모습에 방계들도 결국 한 번씩 웃어버리고는 그 뒤를 따랐다.

“그럼, 의협맹부터 찾아가면 되는 겁니까?”

“우리한테 문 안 열어주면 어떻게 한답니까?”

“에이, 문은 열어주겠지. 그래도 이제 본가 정도면 어디 거지 소굴도 아니게 됐는데, 밥이라도 좀 주지 않을까?”

“거기 밥맛은 괜찮으려나?”

한 지역에서 제일 가는 흑사파를 박살 내고도 마실이라도 나온 듯 한마디씩 두런두런 내뱉는 그들.

뭔가 이젠 단체로 어디 한군데씩 고장 나버린 방계들 앞에,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저희가 다른 건 몰라도 밥맛 하나는 끝내주니까.”

“당신들은…….”

못해도 최소 서른은 넘는 무리.

하나하나가 허리춤에 병장기를 패용한 채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며 도열해 있었다.

‘흑사파 놈들과는 수준이 다르군.’

얼핏 느껴지는 기도에서 그들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의협맹에서 나오셨습니까?”

그에 당지명이 앞으로 나서며 묻자, 선두에 선 이는 포권을 취하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부족하지만, 의협맹의 총 군사이자 거열맹의 총관 자리를 역임하고 있는 이대유라고 합니다.”

“귀한 분이 오셨군요. 당… 잡룡단의 단주. 당지명입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제 소문이 서안까지 퍼졌답니까?”

“감숙에서 추풍대를 토벌하고, 당대 제일 후기지수라 불리던 검룡과 자웅을 결하셨다는 당 대협의 위명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대, 대협? 제가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헤헤.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에 뒤편에서 탄식이 하나둘 들려왔다.

하지만 저쪽에서 그러든 말든, 이대유는 미소를 지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하여, 서안에 오신 영웅분들을 감히 이놈 이모가 초청하고자 합니다.”

“…저희를요?”

“예. 밥맛이 괜찮으실까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괜히 그 말을 꺼냈던 방계 하나가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와중 이대유는 환영하듯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서안에서는, 저희 맹 내 식당이 제일 맛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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