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88화 (288/350)

288화

삶이란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흘러가는가.

당지명은 자신의 앞에 놓인 잔칫상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지?’

분명 본래 목적은 의협맹이 벌인 악행을 비밀스럽게 조사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어쩌다 이러고 있는가.

“허허, 입맛에 맞지 않으시오? 통 들지를 않으시는구려, 잡룡단주.”

“…….”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당지명은 멍하니 고개를 내려 눈앞에 벌어진 산해진미를 훑었다.

그렇다. 산해진미다.

하나같이 귀하고 비싼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들은 어느 하나라도 빠지고 모나는 게 없으며, 그 하나하나의 값어치가 일반 농민 일가족이 한 달 치를 먹고살 수 있을 금액을 상회한다.

“하하.”

웃음이 나왔다.

평생 굶주려오다 근 일 년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 당지명이기에, 그는 음식의 값어치를 꽤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고작해야 서안이라는 작은 성내에 있는 이들이 연회의 잔칫상으로 대접해 준다고?’

자신들이 왔다고 과한 상을 준비해 준 걸까?

그건 분명 아니었다.

평소 그들의 대형 당유혼에게 개처럼 처맞지 않기 위해 극성으로 익혀낸 눈치신공은 이 와중에도 주변의 사람들을 재빨리 훑는 데 성공했고, 그들이 낯설지 않게 연회 음식들을 음미하는 걸 포착했다.

‘익숙하다. 이들에게는 이 음식이 익숙해.’

매일 같이 이런 산해진미를 먹어대는 게 익숙한 이들이 모여 있다.

그 사실에 당지명은 웃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소리 높여, 더 크게 웃기로 했다.

“음? 잡룡단주? 왜 갑자기 그리 웃으시오?”

“너무 즐거워서 그렇습니다. 이리도 귀하고 맛있는 산해진미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제가 너무 즐거워서 순간 손이 떨어지지 않더랍니다.”

“허허, 그렇소? 맹의 숙수들을 부려 한껏 준비한 보람이 있구려. 하면 이것도 들어보시오.”

껄껄 웃은 의협맹주 진태는 무려 직접 자신의 앞에 놓여있던 술병의 봉인을 따 그 주둥이를 기울여 주었다.

쪼르륵―

향긋한 주향이 올라오고, 당지명은 주도 따윈 모른다는 듯 한 번에 술잔을 털어 넘겼다.

“크하! 술맛이 아주 죽여줍니다, 맹주님!”

미주(美酒)다.

술이란 곡식으로 빚어지는 것이요, 그 값어치가 높아지려면 자연스레 약초가 첨가되어야 한다.

약학 지식이라면 이제 부족하지 않은 당지명의 눈에는 그 술의 값어치 역시 훤히 보였다.

“제가 종종 즐겨 먹는 놈이라오.”

“그렇습니까?”

“이 자리가 워낙 업무가 많은 자리라 말이오. 본맹의 이름이 의협맹이지 않소? 관아에서 미처 신경 써주지 못하는 양민들의 안정을 위해 결성한 맹인 만큼, 그들의 고충과 고난을 들어주다 보니 날밤 새우는 일들이 끊이질 않지. 그때마다 곁에 있어 주는 녀석이니 나 역시 푹 빠져버렸지 뭐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당지명은 껄껄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지랄도 풍년이구나.’

양민의 고충과 고난으로 빚어진 미주는 향긋하긴 개뿔, 당장이라도 헛구역질로 뱉어내고 싶은 끔찍한 악취를 뿌려댔다.

그럼에도 당지명은 산해진미를 집어 입 안에 털어놓고, 미주라 불리는 것들을 꾸역꾸역 마셨다.

가만 보던 방계들이 ‘어? 어? 저건 좀…’ 하며 표정이 이상해질 때까지 먹고 마시길 멈추지 않았다.

그리되자, 오히려 진태가 더욱 당황해했다.

“허… 단주는 과연 대협이오.”

“…크으, 저 같은 놈이요?”

입가에 묻은 술을 닦아내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진태는 널브러진 술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 아무래도 험한 세상이잖소……. 요즘 세상에…….”

“타인이 주는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의심도 하지 않고 먹는 이들은 드물다는 겁니까?”

“…뭐, 비슷한 이야기이기는 하군.”

최대한 돌려 말할까 싶다가도 직설적으로 질러오는 화법에 진태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당지명은 끌끌 웃으며 또 다른 술병의 봉인을 풀었다.

“꼴에 사천당가의 독인이라는 몸입니다. 이 술병 안에 설령 무슨 독이 들어 있든, 그걸 먹길 두려워한다면 성을 갈아야지요.”

그리고는 곧장 새 술병의 내용물을 바닥까지 벌컥벌컥 들이키고 바닥에 쿵 하고 내려놓으니, 장내의 분위기가 어느새 식어서 모든 이들의 시선과 관심이 한곳에 집중되는 걸 느꼈다.

바로, 자신에게.

“단주.”

조금 가라앉은 어조로 진태가 입을 열었다.

“이 몸이 배움이 길지 않은 사람이라 그런데, 말씀의 의도가 헷갈리는구려.”

외교적 수사(修辭)라는 게 있다.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듯, 직설적이게 뱉을 수 있는 말도 구태여 돌려 돌려 말하며 완곡히 표현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그걸 모르는 당지명이 아니었으나, 지금 그는 이 자리에서 그것들을 다 집어던졌다.

단순히 불특정한 ‘음식’ 안에 독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넘어, 자신의 손에 들린 ‘술병’ 안에 독이 있을 수 있다는 표현을 직설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 연회의 의도 자체를 의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의도라고 할 것까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당지명은 비죽 웃었다.

“그 말씀은?”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뭐, 이 술병 안에 독이라도 탔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말이.”

“…….”

분위기가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느새 연회장 내에 가득하던 말소리는 사라지고, 무희들이 연주하는 풍악만이 장내를 가득 채웠다.

물론 그들이라고 자신들만의 곡조를 가득 채우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할까. 애써 지금 이 자리에서 오간 소리들을 못 들은 척하려면 필사적으로 악기라도 연주해야 하는 것을.

“악기 소리가 듣기 좋군요.”

연회의 흥을 살리기 위해 들려오는 경쾌한 곡조가 무겁게 가라앉은 연회장의 분위기와는 실로 대조적이었다.

“…단주께서는 이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오?”

“허허, 저는 맹주님께서 왜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여 불편한 것이 있다면 속 편히 말씀해 주길 바라오.”

“불편한 것이라…….”

당지명은 마침내 먹던 것들을 내려놓고 주변을 훑었다.

이미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린 것은 다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가 바라보는 것은 다른 이들의 시선이 아니었다.

오로지, 그 중간중간 섞여 있는 형제들의 눈빛.

“…….”

그들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으나, 눈빛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했으니,

그것은 도저히 맏형이라는 사람에게 보일 만한 예의 가득한 시선은 아니었으나, 그 이전에 무한한 신뢰가 밑바닥에 깔린 것이었다.

‘마음대로 하십쇼.’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껏 짖어보고,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마음껏 질러버리라고.

‘이 건방진 놈들.’

맏형을 공경할지도 모르고, 선을 넘으려면 뒤에서 말려주지도 않는 놈들이다.

오히려 당장 달려나가라고 등 떠밀어 주기까지 하는 그 시선들을 보자니 마지막까지 한 명 한 명 훑던 당지명의 동공은 마침내 마지막, 당불퇴에게로 향했다.

씨익―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짓궂은 미소.

‘역시, 당주 형님이 제일이지.’

누가 누굴 저렇게 보는 건지.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어느새 닮은 미소를 지어버린 것도 모른 채 당지명은 의협맹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맹주님.”

“말씀하시오.”

“제 귀에 근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허, 그게 무엇이오?”

“서안의 양민들이 억울하기 그지없는 변고를 겪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허허.

그 말에 의협맹주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답했다.

“부끄럽구려.”

“부끄럽다니요?”

“의협맹을 세우고 이 자리에 앉은 이유는 관아에서 미처 해결해 주지 못할 서안의 고충을 해결해 주기 위함이지. 그럼에도 일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고, 그 소문이 사천 땅에 있으신 대협의 귓가에 들리기까지 했으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소이까.”

그건 마치 자신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능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당지명은 이야기를 듣다 말고 묵묵히 연회상을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침묵이 내려앉고,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진태가 목소리를 냈다.

“단주?”

“맹주님.”

그에, 기다렸다는 듯 당지명은 실컷 마시던 술병을 집어 들었다.

“이 술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의 이름을 모르겠는가? 이건 오두미주(五斗米酒)라오.”

“오두미주. 잘 알고 계십니다. 하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도 알고 계십니까?”

“허허…….”

진태는 당혹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갑작스레 명주에 관해 문답을 나누자는 겁니까? 좋소, 단주의 취미가 그것이라면 내 흔쾌히 어울려주지. 답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다섯 두의 쌀이 들어가기 때문이라소. 그러니 값비싼 술일 수밖에 없지.”

알겠는가?

빙긋 웃는 진태의 말에 당지명도 빙긋 웃었다.

그리고,

“틀렸습니다.”

그의 말을 전면으로 부정했다.

“으음? 틀렸다니?”

“오두미주가 오두미주라 불리는 이유는 다섯 두의 쌀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그만한 쌀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요.”

“허허… 그만한 쌀이 들어가는 데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것은 무슨 말이오? 혹여, 내가 알지 못하는 농이 있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곳에 있는 건 싸구려 농담 따위가 아니다.

그저, 참혹한 현실뿐이지.

“오두미주는 오두미초(五斗米草)라는 약초로 만들어져 그리 이름 지은 것입니다.”

“그, 그렇소? 그건 처음 듣는군.”

“예, 그러실 겁니다. 왜냐면, 오두미초는 그 풀 한 포기가 쌀 다섯 두가 자라나는 지기를 해칠 정도로 독한 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초꾼들 사이에서는 발견하는 즉시 뽑아내야 할 악독한 놈이라 불리고, 그래서 또 희귀한 놈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걸로 술을 담가 드실 분쯤 되면 쌀 다섯 두 정도는 우습지도 않은 것이 될 테니 더더욱 그 의미를 알 리 없지요.”

둘의 표정이 극명하게 갈렸다.

“참 우습지 않습니까? 양민의 고통과 고충을 해결해 주신다는 분께서 평소 즐기시는 것이 양민의 피와 눈물로 빚어진 오두미주라는 것이.”

“…당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게요?”

무슨 말이라.

그 말에 당지명은 환히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쩌면 그 답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뭘 이리 빙빙 돌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잡룡단주로서 체면?

일을 시키는 대로 못 했다가 대형한테 처맞는다는 두려움?

아니면, 어설프게 머리가 커버렸음에 다른 정천맹의 노물들처럼 일 처리를 해보고자 했던 헛바람?

그 무엇도 명쾌한 해답이 될 수 없기에 당지명은 그냥 그 전부라 결론 내리고 말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처음부터 간단했는데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라… 그게 무엇이오?”

“별 것 아닙니다.”

껄껄 웃은 당지명은 마지막을 동생들을 훑어봤다.

분위기가 여기까지 치달았는데도 녀석들은 한 손에 술병을, 한 손에는 닭 다리를 쥐고 있다.

좀 전까지는 먹어라고 해도 깨작깨작 젓가락질만 해대던 놈들이, 어느새 격식이고 나발이고 전부 내던져 버리고는 양손 가득 주전부리를 쥐고 있다.

‘뭐, 구경거리라도 났어?’

길거리에서 싸움이라도 난 듯 흥미진진한 눈빛.

뭘 저리 부담스레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보냐, 싶다가도 저 정도의 기대를 받으면 역시 응답해 주는 게 맏형의 도리가 아닐까 싶어 씨익 웃게 된다.

‘그래, 원한다면 해줘야지.’

고개를 끄덕인 당지명은 마음속으로 이 자리에 없는 당유혼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형님. 이거 다 형님한테 보고 배운 겁니다?’

그러니까,

“맹주님.”

“말하시오.”

“저는 당신의 그 상판대기가 참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나는, 잘못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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