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290화 (290/350)

290화

오늘도 평화로운 사천.

“으아악!! 또 뭐야?!”

“노사부야! 놈이 떴다!!”

“젠장, 지난주에 왔잖아! 이번 주는 다른 놈들 때려야 하는 거 아니야?”

집기 깨지는 소리와 사람도 깨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와장창!

탁자가 엎어지며 그 위에 올려져 있던 내용물들이 단체로 흘러내렸고,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음주 가무를 즐기며 풍월이 어쩌고저쩌고 읊어대던 이들은 가지각색의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바빴다.

그리고, 그 모든 소란을 만들어낸 범인.

“이노오옴… 쉐리들… 삼강오륜도가… 건재하거늘… 어른 공경을… 할 줄… 모르느뇨?”

사천 제일 경계 대상.

진(眞) 잡룡파 태상(太上).

일명 노사부라 불리는 이가 재앙처럼 어느 평범한 주루에 들이닥쳤다.

“아이고!! 노사부님!!”

그의 등장과 동시에 안쪽에서 사람 하나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간사한 인상의 사내는 등장하자마자 넙죽, 자리에 엎드렸고 두 손에 불을 피워올릴 기세로 싹싹 비벼댔다.

“그간 격조하셨습니까! 노사부님을 뵙습니다!”

사내의 정체는 이곳 주루를 관리하는 지배인.

진정한 실세는 아니지만, 이곳 주루를 관리하는 뒷배들에게 운영과 관련된 일을 위임받아 이런 사고가 나타나면 도맡아 처리하는 전문가였다.

즉,

“홀홀홀… 어디서… 많이… 본 놈이렷다?”

‘개새끼야. 그럼 이틀 전에도 보고 사흘 전에도 보고 일주일 전에도 봤는데, 안 봤겠냐?’

근래들어, 저 빌어먹을 노사부와 가장 많이 마주친 사람 중 하나라는 소리였다.

“아이고, 한낱 저 같은 놈을 기억해 주시다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자자, 안으로 드시지요. 노사부님께서 언제 드실지 몰라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주상을 준비해 뒀습니다!”

속으로는 눈앞의 거짓 노괴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던, 겉으로는 인생에 둘 없을 귀빈을 맞이한 것 마냥 노사부를 안으로 들인 지배인은 부랴부랴 준비된 술상에 그를 앉히며 무려 금박으로 포장된 술병을 따랐다.

원래라면 머지않아 있을 자신의 불혹을 자축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지만, 지금 그딴 거 따질 여유가 없었으니까.

“크흘흘… 술맛이… 아주… 죽여주는구나!”

“아이고, 그렇습니까요?”

이왕이면 진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본심은 꾹꾹 억누르며 지화자 좋구나를 연발하길 한참, 마침내 노사부는 술잔을 탁자에 꽝― 하고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이놈아……!”

“옙! 듣고 있습니다!”

“거… 요새… 너희… 애들이… 우리… 구역에… 설친… 다며?”

“예? …아, 옙!! 그, 그렇습니까? 제가 곧바로 시정하겠습니다!”

지배인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얼마 전 올라왔던 보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삼춘이파가 영칠이파랑 부딪쳤다더니… 설마 그것 때문이었냐?!’

지금 눈앞의 노괴가 말하는 것은 제대로 된 무인도 되지 못한 흑사파 놈들이 뒷거리에서 부딪치는 것을 말하는 것. 한량이라고도 불리는 그놈들은 대개 주루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기둥서방 놈들이다. 저들끼리 무슨 식구니 무슨 식구니 하며 만들어 가며 술 취한 취객이 난동 부리는 것을 막아주는 것에 불과한 것들인데, 가끔 영역이 겹쳐 기 싸움을 펼치는 걸 빌미로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뜻이다.

‘아니, 그런 것까지 일일이 따져가면 이 바닥에서 장사는 어떻게 하라고?’

몇 달 전부터 잡룡파의 등장 이후 이곳 뒷세계 바닥의 판도가 뒤바뀌었다. 원래 이런 업소들은 무림 문파들에게 있어 최고의 수익을 뽑아내는 곳이지만, 기존 명문 정파들은 자신들의 체면 때문에라도 뒷주머니를 차거나 은근슬쩍 접촉하는 게 고작인 세계였다.

하지만 이름부터 티 나게 잡룡단에서 따온 것 같은 잡룡파라 자신을 소개한 이들은 뒷세계의 기강을 잡아대기 시작했고, 참다 참다 못 참은 이들이 다른 구파와 오대세가의 연줄에 대고 하소연을 했을 때 돌아온 답변을 보고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가급적 잡룡파와의 충돌을 피할 것.’

내가 뭐 때문에 그놈들한테 비싼 술 처먹이고 주머니 두둑이 챙겨줬는데?

다 보호비니 뭐니 하며 바쳤던 상납금들은 어디론가 꿀꺽 삼켜지고, 잡룡파와의 충돌을 최대한 회피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는 걸 보며 업소의 지배인들을 깨달았다.

자신들이 모르는 곳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구나, 라고.

‘그래서 납작 엎드렸는데…….’

납작 엎드려서 기는 재주야 굼벵이의 그것과 비견할 자신이 있는 이들이었기에 당가의 비위를 맞춰줬다. 어차피 납작 엎드리는 거야 하오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잘하는 그들이었으니 문제는 없었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 맞춰주기만 하면 그들도 별문제 없이 넘어갔으니까.

그런데,

‘대체 왜!! 왜 이러는 거냐고!!’

“이놈아… 듣고… 있느뇨? 나 때는… 말이야!! 으르신이… 부르시면… 헐레벌떡… 달려왔다… 이 말이야!!”

근래 들어 이 노괴가 진정 노망이라도 났나 미친 듯이 찾아와 갈군다.

‘예전처럼 그냥 때려 부수기만 하는 거면 차라리 낫지…….’

무슨 술주정이라도 부리듯 굳이 자신을 앞에 앉히고 하소연을 해대니 어서 빨리 영업이익을 창출하러 가야 할 장사치 입장에선 죽을 맛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날벼락.

그리고 그건 이곳 업소의 지배인에게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끙, 오늘은 이곳인가?”

“쯧. 이곳으로만 끝났으면 소원이 없겠군.”

“다른 곳도 가겠지?”

“그렇지 않을까? 어제도 네 곳 정도 더 돌았잖아.”

노사부가 어느 술집에서 횡포를 부린다는 말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온 잡룡파의 무인들은 탁― 하고 이마를 짚으며 번뇌했다.

“요즘 진짜 왜 저러신다냐?”

정말 뜬금없이 아무런 사업체에 들어가 시비를 건다. 명분? 그딴 건 만들면 그만이고, 시비를 걸린 곳은 이곳처럼 헐레벌떡 지배인이 달려와 굽실굽실 비위를 맞춰 준다.

누가 봐도 행패나 다름없지만, 정말 골 때리는 건 저게 아주 당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또 아니란 점이다.

‘적절히 선을 지키며 기강을 다지고 있어.’

그가 활동하는 건 철저히 노사부의 신분일 때였다.

당유혼이라는 사천 전역에 밝혀진 사천당가 대형의 신분은 드러내지 않은 채, 잡룡파의 대사부라 할 수 있는 노사부로서의 신분으로 활동하며 여기저기 주루와 기루, 마작판을 뒤지고 다닌다.

그것들은 전부 다 국법과 불법의 중간 어느 한 즈음에 한 다리씩 걸치고 있는 곳들이니, 노사부가 사천의 치안을 위해 돌아다닌다고 해도 하등 책잡힐 게 없는 곳이었다.

그것이 실로 기가 막힌 줄타기라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마냥 이해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으니―

‘굳이 할 필요는 없는 행패란 말이야.’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들이밀었다고 해야 할까?

자신들을 부리면 해결될 일을 굳이 노사부가 나서서 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형 문파가 기거하는 주변 마을에 평화를 어지럽히는 산적이 있으면 그 토벌을 위해 대형 문파의 일대 제자들이 나서지, 문파의 장로급은 나서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

그런데 당유혼쯤 되는 사람이 노사부라는 웃기지도 않는 위장 신분으로 나서니 다들 종잡을 수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것이다.

“중보야, 넌 뭐 아는 거 없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나마 알 만한 게 네가 아닐까?”

은연중 우두머리 취급받는 구중보였으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흠.”

그 말에 구중보는 조금 고민하다가 술주정을 부리는 노사부의 모습을 시선에 담았다.

사실, 그 모습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짐작 가는 게 있긴 해.”

“응? 진짜?”

“그래, 아마 너희들도 알 거다.”

“우리가?”

다른 이들은 몰라도 잡룡파를 구성하는 인원의 특수성이라면 저 마음을 아주 모르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래서 더욱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말마따나 잡룡파에서 가장 당유혼의 시중을 많이 들었던 구중보이기에 어슴푸레 느껴지는 게 있었다.

“저분, 생각보다 여린 분이시거든.”

“…응?”

“내가, 잘못 들었나?”

다들 자신의 청각을 진지하게 의심하고 있을 때, 구중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이다. 진 빚이 너무나 막중해서 어디서부터 갚아야 할지 몰랐는데, 아주 일부나마 갚을 기회가 왔으니까.”

그의 발걸음이 어디론가 향했다.

* * *

억울하다.

억울하고 또 억울하다.

평생을 북방 이민족과 싸우고도 간신배들의 모략에 불려와 처형을 달았던 대장군 악비의 배신감이 이러할까?

“억울하다!! 나는 무죄야!!”

내가 생각해도 피를 토하는 외침이었다.

하지만,

“…….”

정작, 그 외침을 듣는 위혼이 녀석은 조용히 난을 다듬을 뿐이었다.

‘세상에, 이제는 난까지 다듬는구나.’

일반적인 난초는 아니고 특수한 독을 채취할 수 있는 독란(毒蘭)이다. 드디어 가주로서 고품격 취미를 가지게 되다니, 이 형은 참 기부니가 좋ㅇ…….

“형님.”

“으, 으응?”

비통한 외침을 토하다가 슬쩍 난초를 보고 있자니, 어느샌가 위혼이가 나를 돌아보고 있다.

“근래, 특이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모함이다! 나는 모르는 일이야!”

“…무슨 소식인지는 알고 그러십니까?”

“어…….”

그러게?

찔리는 게 하도 많아야…….

“형님.”

애써 시선을 돌려보려는 나를 다시 한번 불렀다.

고저 변화 없는 목소리지만, 그 안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끙, 내가 너무 난리 치고 다닌 것 때문에 그러냐? 그래도 그거 정치적으로 문제 될 일은 없을 거다. 나름 생각하고 한 거니까.”

결국 주절주절 내뱉는 것은 변명.

이 나이 먹고 변명이나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원래 뒤가 구린 놈일수록 제 발 저리는 건 어쩔 수 없잖아?

남녀노소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나면 소금을 구하러 다니는 게 전통이라고.

그런 느낌으로 조심스레 죄를 구해 보지만,

“형님.”

세 번째로 나를 불러오는 녀석은 여전히 진중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게 못내 마주하기 힘들어 머리만 벅벅 긁다가 물었다.

“후, 그래. 무슨 일이더냐?”

“무슨 일이라… 그건 오히려 형님께 있지 않겠습니까?”

숨 막힌다.

이게 바로 압박 면접?

네 죄를 네가 알렸다―로부터 시작하는 명판관의 외침이 들려오니, 일평생 청렴함을 기조로 살아온, 그러다가 살짝의 부정부패를 몇 방울 찍먹한 나로서는 가슴이 오들오들 떨릴 뿐이었다.

‘…뭐가 들킨 거지?’

춘식이파한테 술병 몇 개 꼬불친 것?

땡칠이파한테 외상 달아두고 안 갚은 것?

그거 아니면…….

“형님.”

“자, 잠깐만!”

다시 한번 들어오는 압박 면접에 참다못해 소리쳤다.

“위혼아! 네가 너에게 이럴 수는 없다! 내가 암만 흑사파 놈들에게 받아먹은 게 좀 있다지만, 내가 그동안 본가에 해온 공로가 얼마인데……!”

마치 부정부패로 일신의 재산을 쌓아 오다가 가문의 어린 후기지수에게 지적당한 장로와 같은 심정이었다.

이 정도는 조금 해 처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 곧장 재산 몰수당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대체 나의 귀여운 비밀 장부가 어디까지나 들켰을까 생각하며 하늘을 향해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는 그 순간,

“…후우, 형님.”

위혼이 녀석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말해 왔다.

“그만 솔직해지셔도 됩니다.”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해 왔다.

“형님께서는 사실, 두려운 것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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