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직감.
눈에 보이지도 않고, 글로 설명할 수 없으며, 말로 뱉었다간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인 놈이다.
그럼에도 당지명은 그것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왜?
‘그걸 증명하는 짐승 같은 놈이 있으니까.’
“형님. 이것 좀 드셔보슈. 그놈들, 고기 튀기는 솜씨 하나는 예술이라니까?”
우물우물.
짐승같이 닭 날개 튀김을 처먹는 동생 놈.
툭하면 스스로를 당가의 푸른 야수라 소개하더니 진짜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버린 놈은 직감이란 게 무엇인지를 종종 보여주고는 했다.
‘머리 뒤에서 날아오는 칼날을 보지도 않은 채 피해 낸다거나, 시야 밖에서 날아드는 화살에 고개도 돌리지 않고 쳐내거나, 길 가다가 아무렇게나 찍으면 꼭 무언가가 있다거나.’
광동 땅에서도 그 직감으로 한 건을 해낸 만큼, 직감이란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실제로, 대형 역시 녀석의 직감은 무언가가 있다고 했으니 당지명은 스스로의 직감도 그만큼만 못할 뿐, 결코 경시하지는 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선 자신의 직감 역시 경지에 도달해 있다 믿었다.
예를 들자면,
‘가만히 있다간 대형한테 두드려 맞는다는 직감!’
달리 말하자면 생존 본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맹렬히 경종을 토했다.
“일단, 여기서 나가야겠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하자 다들 시선이 몰렸다.
실로 결연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
그에,
“당주 형님 왜 저러신데?”
“몰라, 가만히 있다가 일 커지면 대형한테 처맞을까 봐 무섭나 보지.”
뜨거운 형제애가 돌아왔다.
“그래, 너희들 말이 맞다. 나는 대형한테 처맞을 게 두렵다. 그러니 여기서 나가야겠다. 그리고 내게 이런 심적 고통을 준 이들에게 톡톡히 보상을 받아내야겠다.”
“오우, 솔직하기도 하시네.”
“그런데 대책은 있으시고? 또 그 괴상한 수법을 발휘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사실 방계들이라고 여기 죽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의협맹의 이들이야 자신들을 보상금 받고 풀어준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봐온 대형의 행보로써 절대 일이 그렇게 돌아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판이 뒤집히면, 직접 나서서 다시 한번 판을 엎어버릴 게 우리 대형이니까.’
결국 어떻게든 일이 해결되기는 할 것이다.
다만, 그것은 결코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파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진심.
그럼에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그가 마지막에 보인 기이한 수법을 도저히 파훼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차라리 맞서 싸우는 거면 어떻게든 하겠지.”
“그 귀신놀음에 홀리는 수작은 도저히 답이 없잖습니까.”
“괴력난신이라더니, 이름 하나는 잘 지었어.”
실로 괴이하고 혼란한 힘.
자신들을 잠자코 닭 다리나 뜯게 만든 힘을 지적하자 당지명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 수법에 대처할 방법부터 찾아야겠지.”
우리 함께 힘을 모아서 말이야.
“…그러니까, 결국 집단 지성이란 거구만.”
“인간이 발전해 온 유서 깊은 역사다. 우선… 율기야, 혹시 아는 게 없느냐?”
“쯧, 결국 저입니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푹 쉰 당율기는 뜯고 있던 닭 다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그때의 경험을 복기하며 계속해서 무슨 수법에 당한 것인지 알아내려 했으나, 그때마다 결과를 반복해도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더군요.”
“율기, 너도 모르는 거냐? 왜 비슷한 것 쓰잖아.”
마주 닭 다리를 뜯던 당불퇴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쯧, 비슷하긴 뭘 비슷해?”
“그 뭐냐. 주변 공간이 막 뒤틀리고 뒤섞이고 하는 거. 네가 막 이상한 거 소환해 대는 거랑 비슷한 거 아냐?”
“…하.”
이놈을 어찌할꼬.
천하에 둘도 없을 무식한 놈을 바라보는 당율기의 시선이 차갑게 식었지만, 그래도 형제라고 답해 주었다.
“삼재진을 통해 발동시키는 환현붕괴와 의협맹주가 보인 수법은 비슷해 보여도 다르다. 내 방식은 우리 모두가 함께 삼재진을 발동시킬 때, 극도로 예민해지는 감각을 범위 내의 상대방에게도 덧씌움으로써 역으로 우리의 심상을 각인시키는 방식이지. 하지만 의협맹주가 보인 것은 단순히 감각에 장난질을 친 게 아니야. 그건…….”
“……?”
나름대로 지난 며칠간 고민했던 내용에 대해 풀어나가고 있던 당율기였지만, 곧 허허로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말한 거 반은 이해했냐?”
“뭣?! 반이라니!! 나를 뭘로 보는 거냐!!”
“…아니야?”
“첫 마디도 이해 못 했다!”
“…그렇구나.”
그럼 그렇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당율기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노력해 보려고 이해하나 조금도 이해 못한 맏형을 보며 말했다.
“결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주 형님. 저로서는 못 풉니다. 아예 영역이 달라요.”
“끙… 그래도 우리 형제들 중 기관진식에 가장 조예가 뛰어난 이는 율기, 너가 아니더냐?”
“기관까지는 그렇겠죠. 그렇지만 이건… 예, 말하자면 율도촌의 촌장님이 알 만한 분야입니다.”
“홍 촌장이? 허… 그럼 무림의 영역이 아니란 소리지 않느냐.”
당율기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미치겠군. 그런 놈들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서는…….”
그 모습에 당지명은 고민했다.
막막해 보이는 난관이지만, 고작 이 정도로 포기하기에는 지금까지 겪었던 난관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우선, 여기서 나가자.”
“의협맹주에 대한 대책은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일단 나가고 생각하자꾸나.”
무계획이 곧 계획.
당차게 한 가지 난관을 ‘무시’하기로 결정한 당지명은 곧장 다음 난관에 봉착했다.
“예,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산공독은 어떻게 할겁니까?”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풀풀 풍겨오는 저놈의 산공향이었다.
“지독한 놈들. 저희가 일말의 내공이라도 회복할까 봐 한 시진 마다 와서 풍겨대네요. 진짜 조금이라도 내공이 모일 만하면 그대로 흩어집니다.”
“그래, 그게 문제지.”
산공독.
무인의 독이라 불리는 독이며, 생명 활동에는 지장을 끼치지 않지만 내공이 모이는 걸 흩어버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아무리 많은 내공을 지닌 이도 산공독을 한 번 맞으면 복날 더위 먹은 헥헥이처럼 쓰러져버리니, 당지명으로서도 신경이 쓰였다.
“불퇴야.”
“예?”
“어떻게 안 되겠냐?”
“제가요? 어떻게요?”
“너라면 할 수 있어. 그냥 다 마셔버려.”
“…….”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측은한 시선이 오갔다.
그런데,
“…엥? 그거 나쁘지 않겠는걸?”
정작, 그 제안을 들은 당불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뭐? 진심이냐?”
“시도해 봐야겠지만… 될 것도 같은데?”
“미친놈. 되긴 뭐가 돼?”
“산공향을 너무 쐰 거 아냐?”
수군거리는 소리가 뒤따랐지만, 물고 있던 닭 다리도 내뱉은 당불퇴는 제법 진지한 기색으로 생각했다.
‘산공독 때문에 힘을 못 쓴다고? 대체 왜?’
평소 깊게 생각하지 않는 성격의 당불퇴였다.
그렇기에 한번 깊게 생각하면 그 깊이가 남달랐다.
‘무인의 독이라 불리는 산공독이다. 제아무리 단련한 무인도 산공독에 당해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순간 그저 신체 능력 좋은 일반인에 불과해지니까. 하지만 그게 옳은 건가?’
꽉 쥔 주먹을 들어보았다.
힘줄이 선 주먹 주변으로 굳은살이 박인 게 보였다.
수없이 단련한 흔적. 남들이 좋은 거 먹고 편안한 잠자리에 누워 선선한 바람을 맞을 때, 누군가는 강해지기 위해 맛없고 끔찍한 것들을 먹으며 매일매일 험난한 고련을 반복한다.
오로지 앞으로 정진하기 위한 순수한 노력의 흔적.
대부분의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는 세상이라지만, 당불퇴가 살아온 무의 세계에서 노력은 꽤 성실하게 대가를 돌려주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내공 하나 금제된다고 무인이 그리도 허망하게 약해질 수 있다고?’
무(武)란 무엇인가?
남들은 공이니 도니 하며 어렵게 말하지만, 당불퇴는 그에 크게 동의한 적이 없었다.
만약 무공의 경지가 깊어진다 해서 그 마음도 수양을 쌓는 도사들 마냥 깊어진다면 대체 대형은 무엇이란 말인가?
‘무(武)는 곧 강함이다. 마음이든, 육체든 어느 쪽으로도 강해지는 걸 말하는 거다.’
굳세어진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한데, 내공 하나 흩어진다고 그 경지마저 허사가 된다면, 무인의 강함이란 고작해야 내공의 강함으로 국한되는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아직 가야 할 길이 한참이나 남은 당불퇴지만, 무의 정점이라는 무극(武極)은 언감생심 꿈에도 꾸지 못할 경지인 당불퇴지만, 무(武)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내공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있다. 게다가, 나는 평범한 무인이 아니다. 사천당가의 독인(毒人)이다.’
그런 면에서 산공독이란 실로 건방진 놈이었다.
무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거니와, 독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니까.
‘산공독도 따지고 보면 결국 독이잖아.’
귀원일기공.
돌고 돌아 결국 모든 것을 품을 이 기적의 신공을 믿었다.
항상 떽떽거리고 폭력적이며 무도하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맨 앞에서 씨익 웃는 대형의 미소를 믿었다.
‘할 수 있다.’
의문 따위 가지지 않았다.
품는 것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당불퇴는 눈을 반개한 채 가볍게 벌린 입술 사이로 산공독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스스스…….
처음에는 호흡으로 흡수했다.
그게 익숙해지면 모공 사이로 저며 드는 산공독을 느꼈고, 그 끝에는 체내에서 흐르는 산공향 특유의 기운을 품었다.
“저, 저게 뭐야?”
“지… 진짜 저게 되는 거냐?!”
주변의 산공향들이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며 당불퇴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그 기류를 발견한 방계들은 경악 어린 표정과 함께 비명을 질렀지만, 극도로 집중한 당불퇴의 귓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 당불퇴의 정신세계 속에서는 오로지 내부로 흐르는 산공독의 흐름만이 존재했다.
‘확실히, 쉽지는 않아.’
산공독은 장난꾸러기 같은 녀석이었다.
내공이 지나가야 할 혈도를 달리면서 그 안에 가득 차 도도히 흘러야 할 내공을 마구마구 흩트려 놓으면서, 정작 자신은 의지로 제어해 보려니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버렸으니까.
덕분에 어째서 산공독에 당하면 내공을 쓸 수 없게 됐는지 확실히 깨닫게 되었지만, 당불퇴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쉽지 않을 뿐. 불가능한 건 아니야.;’
말 그대로 내공을 흩트려 놓아 산공독이다.
하지만 산공독은 내공을 흩트려 놓을 뿐 소멸시키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흐트러진 내공은 어디에 있을까?’
그 답은 간단했으니―
‘당연, 내 안의 어딘가에 있겠지!’
인간의 몸은 소우주.
스스로도 인지할 수 없는 아득한 공간이나, 결국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는 하나의 그릇이다.
그렇기에 어디 있는지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어딘가에는 있으니까.’
번쩍―
그 사실을 깨닫고 눈을 뜨는 순간 당불퇴는 푸른 안광을 뿜으며 감옥의 나무 창살을 마주하고 웃었다.
할 수 있다.
그 사실이 그의 입가를 비틀어 미소를 만들어냈다.
“큰 거 간다.”
그리고,
꽈악―
당가불퇴진무(唐家不退進武).
청야권(靑野拳).
푸른 야수가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