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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93화 (293/350)

293화

쿠구구―

어마어마한 굉음.

그리고, 이어 울려 퍼지는 낙진의 소음.

나무 창살과 함께 천장 일부가 무너져 뻥 뚫린 하늘을 마주한 방계들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저게… 되네?”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

“젠장!! 믿고 있었다고!!”

누군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누군가는 진심을 토로했으며, 누군가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지만 결과는 하나.

“타, 탈출했다!!”

저 지긋지긋한 감옥을 빠져나온 것이다.

“뭐냐! 어떻게 된 거냐, 불퇴야! 내공을 쓸 수 있게 된 거냐?”

시켜 놓고도 믿기지 않은 당지명이 허겁지겁 당불퇴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기대에 찬 눈빛.

방법이 있다면 빨리 공유하라고 닦달하는 당지명의 손길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당불퇴가 으윽― 하며 파리한 안색을 들이밀었다.

“보면 모르쇼, 형님. 내공을 쓸 수 있기는 무슨.”

“어… 그, 그러냐?”

어지간하면 안색이 질리지 않는 짐승 같은 동생 놈이 딱 봐도 안색이 좋지 않자 당지명은 손을 놓고 두어 걸음 물러섰다.

“요컨대 흐름이오. 이 산공독이란 녀석, 확실히 내공이랑은 상극인지 자리에 있으면 내공을 못 쓰게 하더군. 하지만, 내공을 못 쓸 뿐 체내에 있는 내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겠수?”

“…그래서, 한 번에 다 쏟아부었다고?”

“흐흐, 화끈하지 않습니까?”

“…진짜, 니가 최고다.”

두 번 화끈했다간 지진이라도 일어나겠다.

확실히 모든 내공을 퍼부은 결과로 지하 감옥은 벽력탄이라도 터트린 듯 엉망진창이 되었다.

게다가, 저편에서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려오는 걸 봐서는 적들도 감지한 듯하니, 당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튀자.”

* * *

산골짜기 맑디맑은 물이 흐르는 어느 산천.

그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저 아래로 성도가 내려다보이는 산봉우리가 등장하니, 그 위에는 기력 저하로 헐떡이는 말과 그 위에서 채찍 대신 물푸레나무를 찰싹찰싹 때려대는 내가 있다.

그렇다.

그게 바로 나다.

“아니 이놈아, 힘 좀 내 봐!”

역마장에서 말을 바꿔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놈의 말이 힘을 못 쓴다.

특별히 내공까지 주입해 주고 몸에 좋은 약초도 몇 뿌리 입에 물려 줬건만, 녀석의 네 다리는 더 이상 가면 죽어 버리겠다! 라고 협박하듯 강렬히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쯧, 여기까진가?”

실로 아쉽지만, 이 녀석과 나의 짧은 연은 여기까지인 듯했다.

흑흑, 잘 있어 말아.

은자 세 냥에 바꿔 온 말아, 좋은 곳에서 살아!

“가라. 자연의 품으로.”

나쁜 인간들에게 잡히지 않고 오래오래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다.

그렇게, 히히힝― 소리와 함께 말은 휘척휘척 나무 사이로 사라지고, 녀석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게 됐을 때 등을 툭툭 두드리며 산하를 내려다보았다.

“쯧, 말은 다 좋은데 허리가 아프단 말이야.”

내공을 소모하지 않아도 보법을 사용하는 속도와 비슷하게 나고, 그만큼 내공을 절약할 수 있기에 효율적이지만 체력의 소모와 함께 따라오는 허리 통증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고급 말 안장을 착용한다 해도 특유의 땅을 박차는 강렬한 반발력에서 올라오는 그 충격이 요통으로 이어지는 걸 어찌할 수가 없다.

그 부위를 툭툭 두들겨 주며 충격을 어느 정도 해소한 뒤, 기지개를 켜니 서안 땅의 정경이 한눈에 담겼다.

“여기도 오랜만에 오는구나.”

이렇다 할 대문파가 있는 곳도 아니고, 전략적 요충지도 아니기에 삼십 년 전에도 많이 와 본 적이 없는 곳.

물론, 대문파가 아닐 뿐 비스무리한 것은 있지만,

‘그쪽이야 사는 세계가 달라 크게 신경 쓸 곳이 아니니까.’

그러니 그사이 문제가 생긴 곳이 있다면, 그건 분명 다른 곳일 터.

“기다려라, 이 형님이 간다.”

말보다 튼튼한 두 다리가 바삐 움직일 시간이다.

* * *

감옥을 빠져나온 방계들은 재빨리 의협맹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정천맹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해도 의협맹 역시 넓기는 엄청나게 넓었다.

애초에 서안을 주름잡는 문파들이 이루어져 결성한 연맹이니 좁을 수가 없었고, 당연히 도망친다고 도망치는 방계들의 뒤편에는 추격대가 우르르 편성되어 쫓아오고 있었다.

“젠장! 불퇴야, 어떻게 안 되냐?”

“아, 거 뛰기도 힘드니 말 시키지 마십쇼!”

사실 쫓아오는 이들이라고 해 봐야 대게 수준 이하의 무사들이었다.

평소라면 한주먹거리도 안될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 그들은 내공을 금제당한 상태.

적당히 나무 창살을 부순 것이었다면 숨 돌릴 틈이라도 있었겠지만, 천장까지 화려하게 박살 낸 덕에 산공독을 해독할 틈도 없이 허겁지겁 도망쳐야 했다.

그리고,

“저기다!!”

“포위해라!!”

그들의 도망은 곧장 벽을 맞닥트려야 했다.

“흐흐,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오. 잡룡단주.”

한 무리의 무인들을 이끌고 나타난 의협맹주 진태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 특별히 신경 써서 머무르시는 곳이 부족하지 않게 준비해 드렸는데, 크게 성에 차지 않으셨나 보군.”

능글맞게 다가오는 진태의 모습에 당지명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귀하게 자란 몸이라, 누추한 곳은 영 맞지 않아서 말입니다.”

“허허, 그럼 귀한 곳으로 안내해 드리면 얌전히들 있으시겠소? 얌전히 신병을 맡기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맹 내의 귀빈이 머무르는 특실을 내어 드릴 수 있소만?”

“무언가 착각하는 게 있으시군.”

“착각?”

도망치던 바쁜 걸음을 멈춰선 당지명은 더 이상 숨을 헐떡이지 않았다.

대신, 더 없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진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추하고 쾨쾨한 냄새가 나는 것은 우리가 머물렀던 곳이 마른 짚풀 깔린 지하실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협의를 기치로 삼았다는 이곳 의협맹이, 자신들의 존재이유 조차 망각한 채 그 근본부터 썩어 빠졌기 때문이지요.”

“이, 이런?!”

“악취 중 시체 썩는 냄새는 일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답니다. 사람이 썩는 냄새가 가장 지독하고 끔찍하단 뜻이지요.”

지금 이곳이 그렇습니다.

“그런 의협맹 어디에 머물든, 그 악취가 어디 가겠습니까?”

“정녕… 끝까지 입만 살았군. 그래서, 실천하지도 못할 협의만을 입에 담겠다는 거냐?”

분노 충천한 진태의 손짓에 뒤편에 있던 이들이 한 걸음씩 다가오며 포위망을 좁혔다.

그들이 의협맹의 정병임을 증명하듯, 하나하나가 질 좋은 무구를 착용한 채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 선두에서 진태는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폭발을 보아하니 벽력탄이라도 숨겨둔 듯하더군. 그 말은 즉 내공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일 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확실히 저 모습을 보자면 벽력탄이 터졌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겠지.’

어떤 미친놈이 가진 내공을 모두 쏟아부어 저런 광경을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처구니없는 오해지만, 굳이 그 오해를 풀어 줄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할 뿐.

“재밌군요. 그런데, 그렇다면 더 위험한 것 아닙니까?”

“무엇이 말이지? 아하, 설마 벽력탄을 우리에게 던지기라도 하시겠다?”

“…안 그러겠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크크, 당연한 것 아닌가.”

진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사천당가. 그대들은 예전부터 협의지문이라 불렸다지? 사람을 향해 벽력탄을 던졌다간 그 시체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육편으로 화할 터. 그런 짓을 잘도 하겠군.”

“아니…….”

그, 그건 맞긴 한데.

‘이번에도 좀 오해해 주면 안 되냐?’

다른 건 잘도 오해해 주면서 왜 이럴 때만?!

“애초에, 하찮은 민초들을 위해 뛰어드는 네 녀석들 아니더냐? 나는 그런 놈들을 잘 알아. 아주 멍청하기 그지없어서, 목숨이 위험한 순간까지 선을 넘는 짓거리는 못 하지.”

“…형님, 저 새끼 우리 가문에 첩자라도 심어 넣은 게 아닐까요?”

저렇게까지 나오니 할 말이 없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둔중한 충격에 멀거니 입을 다물었고, 그 모습에 진태는 기세가 오른 듯 득의양양해서 소리쳤다.

“곱게 보내 주려 하니 구태여 험한 길을 택하는군. 이번엔 좀 거칠게 제압하더라도, 지하에서 벽력탄을 터트린 흔적이 남아 있으니 뭐라 못 하겠지.”

그 장황한 선언을 듣는 순간, 당지명은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실로 어처구니없게도, 여기 전혀 없는 이의 행동 양식을 깨닫고 만 것이다.

‘대형의 행동이, 결코 의미가 없었던 게 아니구나.’

그 예전, 가난의 순간을 모두 겪고 지금에 이른 당지명이기에, 지금 당가가 가진 위상을 톡톡히 알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어떤 영향력을 가졌는지까지는 아직 잘 몰랐지만, 당가의 성세와 그 힘은 확실히 알았다.

그 힘은 과거 사천삼주라 불리는 이들을 합친 것보다 훨씬 커졌고, 방대해졌으며, 이제는 무림 전체에 그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그런데도, 꼭 시비를 걸어오는 것들이 아직 있지.’

사천에서는 지금도 잡룡단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이름의 집단이 다른 흑사파들과 투닥투닥 부딪치고 있다.

그건, 잡룡단의 행동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악질적인 면모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한 시비거리를 만들어 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그 답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어지간히도 만만해 보였나 보구나.”

물어뜯을 만하니 물어뜯는 거고, 덤빌 만하니 덤벼드는 것.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미연에 줘 패 놔야 한다는 대형의 큰 뜻일 이제서야 알아챈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력에 의한 진압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게 무엇보다 효과적임을 부정할 수는 없겠군요.”

“끝까지 허세를 부리는군. 내공도 쓰지 못해 약해빠진 주제에!!”

“약하다라… 그래, 지금의 우리는 무척이나 약해진 상태가 맞습니다.”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글쎄요. 저희가 약해졌다는 말이… 딱히, 당신들이 강해졌다는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뭣……?”

“그리고, 고작해야 이깟 내공이 문제라면… 똑같아지면 그만이지요.”

여유만만한 미소.

그 모습에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진태는 서둘러 공격명령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당지명의 손이 들어 올려지는 것이 먼저였으니.

“시작하자. 얘들아.”

“크, 기다렸수다.”

“제가 축을 맡겠습니다.”

그의 등 뒤로 당불퇴와 당율기가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와 뒤를 받쳤고, 나머지 서른의 방계들 역시 대열을 구성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몰아치기 시작하는 심상치 않은 기류!

구우우우―

“뭐 하느냐! 당장 저들을 제압하지 않고!”

진태가 발작하듯 소리쳤고, 그 기이한 기류의 흐름에 의협맹의 무인들은 당황하면서도 명령에 따르기 위해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 했다.

“엇?”

“이, 이게 뭐야?!”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당황 섞인 목소리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고, 그것은 하나둘 주변으로 전염되기 시작했다.

“젠장! 뭣들 하느냐!”

그에 분노한 진태는 고함을 내지르며 그들을 독촉했다.

“당장 제압하지 못하겠느냐!!”

경이라도 칠 듯 노호성이 터져 나왔으나, 그 누구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 누군가 울듯 소리쳤으니.

“이, 이상합니다! 맹주님!! 내공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뭐?”

답답해서 직접 움직이려던 진태의 발걸음마저 우뚝 멈추어졌다.

설마, 하는 생각이 그가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들 때,

“공평이라는 단어.”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때렸으니.

“아마도, 당신과는 가장 먼 단어일 것입니다.”

저벅저벅.

이어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진태는 저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리는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그러니, 이제부터 알려 드리지요.”

“너… 이…….”

“공평하게 붙읍시다.”

내공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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