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삶이란 실로 마른하늘에 떨어지는 날벼락과 같다.
언제나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거든.
“…이게 왜 여깄냐?”
지금이 딱 그랬다.
“아니, 아니지. 이게 여기 있어서 이상할 건 없지. 있다면 오히려 이 땅에 있어야 하긴 하는데…….”
그래도 왜 하필?
“진짜, 인생 난이도 거지 같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무한미로진(無限迷路陳)… 이게 왜 하필 이딴 곳에 펼쳐져 있냐고.”
의협맹.
방계 놈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능성 가장 높은 곳을 찾아온 내 눈에는 분명 보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널따란 장원과 그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만이 있을 뿐이겠지만, 그 안에는 보이는 것보다 아득히 넓은 공간의 왜곡이 존재함을.
그리고 그걸 펼친 녀석이 여기 있다면, 절대 그 녀석들 수준으로는 뚫지 못할 것임을.
“…아니, 암만 그래도 그 녀석이 여기 있지는 않겠지.”
가장 최악의 경우를 떠올렸지만, 곧장 그건 아니겠지 싶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녀석’이 아직까지 살아 있음이야 딱히 이상할 것도 없지만, 그 녀석이 고작 이딴 웃기지도 않은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건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질 확률보다 더욱 낮은 확률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가능성은 ‘그 녀석’이 여기 있다기보다는 연이 어느 정도 닿은 걸로 추측되는데…….
“쩝, 지금 그걸 고민해 본다고 답이 나오나.”
어차피 뭐든 여기서 고민해 봐야 답 안 나오는 문제다.
그러니,
‘답을 풀기 위해선, 역시 직접 들어가야겠지. 젠장.’
입맛이 썼다.
전략에서 제일 멍청한 짓거리가 쩌억 벌어져 있는 호랑이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건데, 내가 지금 그걸 하게 되다니…….
‘이 새끼들, 나 좀 편하게 살려고 키워 놨더니. 일을 만들어 오고 있어?’
아득바득 이를 갈며, 의협맹의 담 위로 몸을 날렸다.
우웅―
공간을 뛰어넘는 순간 기이한 감각이 전신을 뒤덮었다.
대기의 밀도가 달라지고, 물속에라도 들어온 듯 움직임 하나하나에 원래는 없던 변수가 생겨나는 기분.
이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왜냐면,
‘실제로도, 이곳은 이계(異界)니까.’
실재하는 다른 세상.
그리고 그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가 바로 무한미로진의 정체였다.
“하, 이 거지 같은 곳을 내 발로 들어오게 되네.”
내부에 들어서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니 실로 거지 같은 정경이 돋보인다.
밖에서 볼 때는 평범한 장원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오고 나니 내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양쪽 지평선의 끝에서 끝까지 돌담이 쭉 늘어져 있다.
사실은 의협맹이 황궁의 뺨을 갈길 정도로 재력을 갖춘 비밀 집단이라 이렇게 넓을 리는 당연히 없다.
만약 그랬다면, 저 하늘에도 똑같은 광경이 상하 반전으로 펼쳐져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참… 지랄 맞은 풍경이야. 이놈의 만화경(萬華境)은.”
면경과 면경을 같은 각도로 겹쳐 만든 것만 같은 풍경, 이것이 바로 만화경이라 불리는 이 세계의 진면모였다.
‘이론상 무한에 가까운 공간이라 했나.’
세계를 비추어낸 수면과 같은 공간이며, 그렇기에 그 공간은 비추어진 각도에 따라 무한히 존재한다.
길을 아는 이가 아니면 누구든 미아가 돼버릴 수밖에 없고, 길을 아는 이가 있다면 비추어진 세계를 통해 어디든 한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
본질을 비춘 거울 같은 세계에 불과하기에, 원래의 세계보다 격은 떨어진다는 것이 이 공간을 소개해 준 녀석의 첨언이지만, 세계의 넓이란 한 인간이 평생 걸음을 내디뎌도 결코 일 푼조차 완주할 수 없기에 의미가 없는 비교라는 것도 머리 한편에서 드문드문 떠오르는 쓰잘데기없는 기억.
지금 중요한 건, 그딴 쓸모도 없는 설정 놀음이 아니라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는 가였다.
“무한미로진. 그러니까, 만화경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세 가지야.”
이왕 떠올린 거, ‘녀석’의 조언 중 쓸모 있던 것만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보자.
“첫째. 원래 세계에서 보이던 것에 너무 의존하면 안 돼. 이 세계는 분명 원래의 세계에 비추어져 만들었기에 그와 비슷해 보이지만, 비추어지는 각도에 따라 그 모습이 천차만별일 수 있어.”
아주 조금의 각도 변화에 따라, 지금까지는 원본 세계와 비추어 똑같던 공간이 아득히 길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둘째. 이 세계는 결국 비추어지고 만들어진 공간. 공간의 연속성을 신뢰하는 것도 금물이야.”
결국 비추어져 만든 세계는 모방품에 불과하다.
정교해 보일지라도 속 빈 강정인 게 태반이고, 당연히 내디뎌야 할 길이 사실은 물에 비추어진 광경일 뿐이라 그대로 쑥 꺼져버리는 곳도 왕왕 있다.
그야말로 어딜 가나 함정 가득한 즐거운 꿈과 행복의 동산!
너무나 즐거워서 팔짝팔짝 뛰어버릴 것 같지만,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셋째.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데, 거기도 일단 하나의 세계거든. 그래서 살고 있는 이들이 있어. 물론, 세계 자체가 현실 세계보다 격이 떨어지다 보니 그쪽의 존재들도 격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건 존재로서의 완성도를 말하는 것뿐이야. 불확실한 미완의 존재, 수면에 비추어져 만들어진 존재. 이들은 항상 완성된 존재를 부러워하기에 우리 같은 이들을 보면 적의를 표할 확률이 높아.”
바로, 이 세계에 사는 원주민들.
“물론, 세계의 넓이 자체가 워낙 넓다 보니 그들을 만날 확률은 극도로 낮아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녀석은 그들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면서도, 또 그들을 만날 일은 생각보다 별로 없기에 안심해도 좋다고 첨언해 줬지만―
“…그래, 내 인생에 어디 잘 풀릴 일이 있겠냐.”
- 그으으우어?
머리 위.
상하반전으로 뒤집힌 장원의 위에, 마찬가지로 천장에 발을 디디고 선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나와 참 비슷하게 생긴 놈이 하나 있다.
이 세계의 원주민이었다.
“어… 그러니까, 안녕?”
내가 녀석을 발견했듯 녀석 역시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모든 걸 폭력으로 해결하는 건 문명의 지식인답지 않기에 우선 손을 흔들며 인사부터 해보지만,
- 그… 그르르… 그르르으아아아아!!
“하하, 기대도 안 했지.”
나랑 똑 닮은 얼굴을 한 주제, 내 외형을 비추어져 만들어진 놈인 주제 어디 광견병 걸린 것마냥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은 암만 봐도 호의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 그르라아아아아!!
거기서 멈추지 않은 녀석은 두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이 선 바닥을 내려쳤다.
그러자,
부웅―
“으아아아아!!”
내가 선 바닥이 수직으로 치솟더니, 거기 서 있던 나는 기울어진 세상을 따라 저 무한한 돌담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조심해야 돼. 녀석들은 만화경의 원주민. 비추어진 세계를 어떻게 관측하는지는 녀석들의 의지에 달려 있어.”
비추어진 세계는 결국 관측된 모습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한다.
어느 시점에서 관측하느냐에 따라 상하좌우가 전부 반전돼버리는 경우도 허다하고, 밟고 선 땅은 직각으로 기울이는 순간 벽이 되어버린다.
즉, 나는 벽을 밟고 서 있다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꼴이 돼버렸다.
‘만날 일 없기는 개뿔!!’
무시무시한 낙하 속도가 붙었다.
이 속도로 어딘가에 추락하면, 무공 고수고 나발이고 꼼짝없이 낙사(落死)할 게 분명한 노릇.
하지만 상하좌우가 반전된 공간이라 함은 곧 어딜 가도 짚을 게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파파파팍!!
사방으로 뻗은 암기가 담벼락에 꽂혔다.
그 끝에 매달은 은사를 통해 재빨리 몸을 반전시켰고, 원래라면 굽이진 돌담 벽이 이제는 바닥이 된 곳을 찾아 올라탔다.
‘놈은… 저깄군!’
겨우겨우 균형을 잡고 있으니, 저편에서 사족보행으로 미친 듯 뛰어오는 놈이 보였다.
내 몸뚱어리로 저러고 있는 모습에 유감을 느끼는 것은 둘째 치고, 수직으로 쭉쭉 달려오는 모습은 과연 만화경의 원주민답게 벽이든 바닥이든 상관없이 운신이 자유로워 보였다.
‘진짜 더럽게 싸우네!!’
저것이 만화경의 원주민들이 위험한 이유.
맹렬한 적의를 가지고 달려오는 데 더불어, 이 세계의 상하좌우 반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평범한 검사라면 딛고 설 땅도 온전치 않아 힘을 못 쓰겠지.’
하지만,
‘나는 한낱 칼잡이 따위가 아니거든!’
차오르는 즐거움에 이를 악물며 천골저를 다발로 투척했다.
파파팟!!
- 그르아악!!
신나게 달려들던 원주민 놈은 천골저 세례에 맞아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졌고, 그 틈에 나는 사방으로 은사가 맺힌 비도들을 던졌다.
파파팟!!
“시비는 네가 먼저 걸었다.”
거미줄처럼 반전 세계에 연결된 은사들이 내가 내디딜 징검다리를 만들어줬다.
그것들을 밟고 뛰어올라 나가떨어진 원주민 놈을 추격하자, 놈은 으르르 하고 좌우로 거칠게 고개를 흔들어대더니 곧 정신을 차리고 땅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우르르르!
이번엔 담을 구성하던 돌벽들이 파도처럼 솟구치며 퍼부어졌다.
자연스레 밟던 길도 성치 않게 되었고, 그것에 시야가 가린 사이 어느새 접근한 녀석이 손을 뻗어왔다.
후욱―
‘칼?’
생긴 건 손톱 발톱 휘두를 것 같은 놈이, 어디서 구해왔는지 철검 하나를 들고 있었다.
보나 마나 이 근방에서 비추어졌겠지 싶어 보는데, 어째 그 철검의 모습이 익숙하다.
‘저거, 지명이 놈이 쓰는 거잖아?’
독검술(毒劍術)을 쓰겠답시고 가지고 다니는 당지명의 검.
녀석들이 여기 있다는 확실한 방증이었고, 조금 더 서두를 만한 이유기도 했다.
‘탐(貪).’
- 크르르르!
녀석의 이름을 작게 부르자 등 뒤로 호접의 날개가 솟구쳤다.
발 디딜 곳 제대로 없는 공간은 두 발 달린 이들과 땅을 기는 이들에게 끔찍한 전장이지만, 날개 달린 이들에게는 쉬어갈 곳 없는 땅에 불과할 뿐.
콰장창!!
뒤로 조금 물러났다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접근해 발차기를 갈기자 원주민 놈은 반응도 못 하고 피격당해 한쪽 벽에 처박혀 버렸다.
놈이 박힌 벽은 사기처럼 깨져 나갔고, 그 파편들은 저 아래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후우. 역시, 내구도는 약하다더니.”
비추어진 존재들인 만큼, 저들은 내구력이 턱없이 약했다.
세상을 비춘 수면을 때리면 쉽게 깨지는 것처럼, 저렇게 부서져 내리는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문제는 해결했다.
세계의 넓이에 비해 원주민 놈들이 존재하는 밀도는 극히 낮은 편이 없고, 한 구역에서 한 놈을 처치했다면 두 번째를 볼일은 없다라고 생각해도 무방한 수준.
그렇게 생긴 여유에 재빨리 기감을 확장시켜 방계 녀석들의 흔적을 쫓았다.
‘분명 녀석들이 위기에 처했다면…….’
다른 건 몰라도, 어디 되지도 않는 곳에서 객사하는 꼴은 면하도록 키워 놨다.
생존 하나만큼은 확실히 보장되도록, 뼈에 새길 정도로 학습시킨 게 삼재진이기에―
“…찾았다!”
기감을 확장시킨다면, 서른세 명이 동시에 같은 운공법을 연마함으로써 생겨나는 기이한 기류의 흐름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한 일.
“거기냐!”
무한이라 칭해지는 길을 달린다.
호접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길은 저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끝없는 추락의 낭떠러지!
그 끝을 관통하는 어느 순간,
후웅―!
물속에서 빠져나온 듯했고―
“에라이 당유혼 나쁜 놈아! 네 똥 굵다!”
콰아아앙!!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후우우…….
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렸더니 바닥의 모래로부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 충격에 의한 피해가 아직 가시지는 않았지만, 애써 고개를 들며 감히 대형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상불순한 동생 놈의 면상을 시야에 담았다.
“나 불렀냐?”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