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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97화 (297/350)

297화

세상은 보이는 것보다 넓다.

당장 무림 역시 세상 속의 세상이라 불리는 곳이니까.

‘일단 존재 자체가 국법을 어기는 곳이니 대놓고 존재할 수는 없겠지.’

불법 도검 소지 및 패용을 상시하고 있고, 국가 입장에서는 언제 반역 도당으로 화해 버릴지 모를 개인 사병을 우글우글하게 키우고 있는 집단.

그것이 바로 무림이니 반쯤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해도 알 사람은 다 아는 곳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술법사들의 세상인 산해경(山海經)은 무림과는 비할 수 없는 은밀함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거긴, 진짜 들밖에 없으니까.’

산해경(山海經).

속세에 찌들대로 찌든 거짓 술법사들이 아니라, 진정 괴짜들만 모인 술법사들의 세계.

나 역시 본디 그곳에 있어야 했으나 일신상의 이유로 세상에 나왔던 환신 홍길동에 의해서나 들어본 세계였다.

다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듯,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결국 인간에게서 완전히 멀어질 수 없으며, 희소하지만 몇 안 되는 창구 역시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내가 도달한 이곳이 바로 그 몇 안 되는 창구였다.

“모산파(茅山派). 기어이 여기까지 오게 되는구나.”

자신의 정체성은 온몸으로 증명하듯 모산(茅山)에 본산을 둔 문파.

무림 문파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도교 방파의 한 분파이며 무림에 적을 둔 방술(方術) 계통의 이들에게는 대본산으로 여겨지는 곳이며, 그 저력은 결코 구파일방에 못지않은 곳으로 여겨진다.

또한,

‘본가 못지않게, 함부로 시비 걸어서 좋지 않은 곳으로 분류되고.’

그들은 각종 주문과 부적을 다루는 이들답게, 진법이나 환술, 심지어 사술이라 불리는 것에도 능통했다.

덕분에 각종 법진에 둘러싸인 모산파는 그 본산을 찾는 것조차 어렵고, 설령 찾더라도 그 주변에 설치된 술법들이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자리한다.

방어 한정으로는 구대문파 제일이라 불리기까지 하는 곳이지만, 그들이 특히 꺼려지는 것은 기상천외한 저주술.

‘어쩌다 한번 시비걸렸다가 저주 인형이라도 날아오는 날에는 문파 전체가 뒤집어지지.’

세상에 잘 나서지 않는 모산파지만, 간혹 세간에 나섰다가 그들과 시비가 뭍은 이들이 가문 통째로 멸문했다는 무시무시한 전설은 무림사에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나마 당문은 내가 당가인이요― 하고 써놓기라도 하듯 특유의 복색을 하고 다니지만, 모산파는 마주쳐도 이게 어디 산골짜기에서 도 닦다 나온 늙은이인지, 저기 굴다리 밑에서 연명하는 거렁뱅이인지 알 수가 없다.

괜히 무림에서 어린아이와 여인, 노인을 조심하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님을 방증하는 동시에, 실제로 그 셋 전부 모산파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그런 곳에 제 발로 직접 걸어왔다.

잘못 걸리면, 언제 저주 인형이 날아올지 모르는 곳에.

솔직히 찜찜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냐, 그 녀석의 흔적이 그렇게 짙게 남아 있는 것을.’

몰랐으면 모르되, 발견한 이상 모든 걸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직접 확인해 봐야 할 것들이 차고 넘치는데, 하필 이곳은 방계 놈들을 보낼 수도 없으니 내가 직접 와야만 했다.

그러니까,

“거기 계십니까?”

어쩔 수 있나.

우렁차게 집주인을 부르는 수밖에.

“집주인 안 계십니까?”

모산파의 입구 어귀에 존재하는 산문.

그곳에서 목소리 높여 그들을 부른다.

혹시나 집주인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괜한 오해에서 발생하는 분란을 막기 위한 행동.

그러한 내 외침이 닿았는지, 아무것도 없던 전방의 나뭇가지 위쪽 공간이 갑작스레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만 보면 금방이라도 누군가 나올 것 같지만,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대신,

- 너 이 나쁜 놈아!

낭랑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역시!’

그건 내가 분명 아는 목소리였다.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은 목소리이며, 실제로도 어린아이의 그것이기도 했다.

다만, 그에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것은―

- 네가 만화경(萬華境)을 어지럽혔지!

녀석의 목소리에 노기가 가득하기 때문.

“어? 자, 잠깐만! 거긴 어쩔 수 없는 이유가!”

- 시끄러! 시끄러! 시끄러!

아차 싶어 변명하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떼쓰는 듯한 목소리.

게다가,

- 네게서 마기(魔氣)가 느껴져! 옛 친구가 말해 줬어! 마기를 가진 녀석들은 다 나쁜 녀석들이라고!!

세상에 누가 그런 좋은 걸 가르쳐 줬을까?

실로 옳게 된 조기 교육이다 싶지만, 하필 저 녀석은 거기서 더 나아가 선행 학습까지 수행한 듯했다.

- 나쁜 녀석들은 내가 혼내줄 거야!

구구구…….

허공 중에 생겨나는 거대한 불덩이.

겨울마다 관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소리치는 산불 조심의 구호 따위는 가뿐히 무시한 술법이 내리꽂혔다.

콰콰쾅!!

“이런 미친!!”

단순히 보기만 그럴듯한 불덩이가 아니다.

재빨리 박차고 피해 낸 자리에 터져 나간 불덩이는 거대한 화마가 되어 주변을 휩쓸었고, 곧 그것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대더니 내게 쇄도했다.

“야, 잠깐만!!”

쩌엉―!

한 손에 내기를 두른 채 후려쳐 그것을 박살 냈지만, 녀석의 술법은 이제 시작이었다.

- 시끄러! 옛 친구가 말했어! 마교도 놈들은 입만 열면 사람을 현혹하고 속이는 나쁜 놈들이라고! 그들의 사특하고 교묘한 언변은 귀 기울이지도 말고, 입 열게 하지도 말라고 했어!

“아니, 그건 맞는데……!”

맞는 말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한 말이니까.

- 시끄러! 시끄러! 시끄러!! 에잇!!

‘근데 그걸 왜 나한테 하냐고!!’

진짜 입 열 여유도 주지 않겠다는 듯 가지각색의 술법이 몰아쳐 왔다.

허공 중에 일어난 파문이 수십 개에 달하더니 그로부터 다시 수십 개의 부적이 날아왔고, 도저히 피할 방위도 없이 날아든 그것은 허공 중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실선을 만들어냈다.

“하.”

입체적인 도형으로 이루어진 감옥.

대기의 밀도가 짙어지더니 물속에라도 들어온 듯 온몸이 무거워졌고, 발걸음은 자연스레 굼벵이처럼 느려졌다.

- 만다라(曼陀羅)여, 마귀(魔鬼)를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묶어라!

“큭……!”

끝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완벽한 봉인술이 되자 히히 웃는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마(魔)에 속한 이들에게는 압도적으로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불계의 술법이지! 딱 기다려, 일후(一吼)에 만마(萬魔)를 깨부쉈다는 사자후(獅子吼)로 너를 일소시켜 줄 테니까!

그 말과 함께 대기가 파문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치는 대기의 흐름을 보자니 녀석의 말이 단순 허세가 아님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놈, 진짜 그걸 쓸 생각이다!’

살짝 경계심이 일었다.

내가 마에 속한 존재는 아니라지만, 일단 마수라 불리는 족속들을 잡아먹고 몸집을 불린 상태다.

진짜 유의미한 타격이 들어올 수도 있는 것이고, 어쩌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하… 네가 먼저 시작한 거다?”

어쩔 수 있나.

가만 당해 줄 수 없다면, 맞서 싸워야지.

혼원신공(混元神功).

탐(貪).

후(吼).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나 대신, 탐이 그 모습을 드러내어 입을 쩍 벌렸다.

저 녀석과 달리 대기를 빨아들이거나 할 필요도 없이 탐의 입에서 검푸른 빛이 뿜어졌고, 대기를 빨아들이던 파문의 중심에 적중해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 으아아앗?!

몹시 당황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덕분에 나를 묶던 봉인술도 허술해 졌고, 그 틈에 몸을 빼내 수도(手刀)를 휘둘렀다.

서걱―

부적 몇 개를 부수는 것만으로도 봉인술을 상당 부분 헐거워졌다.

- 내 봉인술이?!

그 사실을 깨달은 녀석이 당황성을 내뱉더니 이내 이를 갈며 소리쳤다.

- 이익! 가만히 있어!!

또 다른 파문이 수십 개 일며 배로 늘어난 부적들이 날아들었다.

만다라(曼陀羅)가 추가로 그려지며 입체적인 도형이 장내를 채웠지만, 같은 수법에 두 번 당해 주는 멍청한 짓을 이 내가 할 리가 있나.

파팟―!

- 빠, 빨라?!

가장 잘 써먹고 있는 나태종 마수의 날개로 그 자리를 벗어나 파문 근처까지 도달했다.

‘이게 만악의 구멍이렷다.’

부적을 쏟아내는 파문의 중심.

혼원신공을 발휘해 그곳을 향해 내공을 퍼붓자, 파문은 극렬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 이익!!

녀석은 저항하듯 이를 악무는 소리를 냈고, 실제로도 저편으로 날아갔던 부적들이 빠르게 돌아와 내 팔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타닥, 탁탁!

직접 봉인이라도 하겠다는 듯 한쪽 팔을 완전히 휘감는 부적들이지만, 이미 탐의 기운을 듬뿍 두른 손아귀는 법술의 핵을 단단히 움켜쥐고 놓치지 않았다.

‘술법이란 그 범용성과 가능성이 무공을 한참이나 상회하지만, 그 때문에 내구도 면에서는 상당히 뒤떨어지지.’

덕분에 이미 녀석의 술법은 상당 부분 약화되었고, 그 증거로 부적들이 내 손을 저지하려 열심히 부들부들거리지만, 핵의 파훼는 실시간으로 가속화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 이 녀석아.’

- 아, 안 돼!!

단말마와 같은 외침을 끝으로, 뿌득―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일순간 파문이 크게 뒤흔들렸다.

무언가를 뽑아내는 듯한 감각과 함께 안쪽에서 흡수했던 거대한 기류가 쏟아져 나왔다.

천근추의 수법으로도 다 버티지 못해 뒤로 쭉 밀려났지만, 그래도 다행히 넘어지거나 하는 꼴은 면했다.

그리고,

“으아악!!”

쿠당탕―

나와는 달리, 파문의 안쪽에서 내동댕이쳐진 ‘녀석’은 균형도 잡지 못하고 땅바닥을 굴렀다.

“으으으…….”

법술로 온몸을 보호했겠지만, 그럼에도 충격이 보통이 아닌지 신음을 흘리는 녀석.

조금 전까지 들려오던 목소리의 주인답게 실제로도 어린아이의 외형을 한 녀석이 고개를 들며 나를 노려봤다.

“이 나쁜 놈! 무단으로 모산에 침입한 것도 모자라서, 나를 이렇게 아프게…….”

그러다가,

“…에? 에에에?”

문득, 괴상한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에에? 어, 어째서? 그럴 리가 없는데? 대체 왜?”

도저히 이해 불가한 것을 보았다는 듯 눈이 크게 뜨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가 뜨길 반복하고, 자신의 눈을 씻듯 비벼댔다.

“그, 그렇지만 맞는데? 너무 똑같은데?”

그리고는 폴짝 일어나서 내 주변을 빙그르르 도는데, 그 참으로 익숙하고도 아련한 모습이 기억 한편에 밟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만. 어지러워.”

그 말에 겨우겨우 멈춰선 녀석이 내 앞에 섰다.

똘망똘망한 시선이 내 눈과 마주치니, 녀석이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지금의 내 외형이 아닌 그 너머에 존재하는 본질임을 익히 알 수 있었다.

“너… 설마, 독천(毒天)이야?”

‘독천이라…….’

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적어도, 이 몸뚱이로 부활한 뒤 그 이름을 들은 기억은 없으니 최소 삼십 년 만이겠지.

조금은 아련해지는 기억.

그 옛 기억을 떠올리며 녀석의 물음에 긍정했다.

“그래, 오랜만이다. 정도령(鄭道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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