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306화 (306/350)

306화

내가 살아오며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

이놈의 사파 라는 족속들은 벌레와 다름없다.

‘가만 놔두면, 우글우글 증식해 버린다고.’

집 안에서 한 마리 정도는 귀찮다고 놔두면 나중에는 집 안 뼈대까지 전부 뒤집어야 하는 결말에 이를 수 있다.

“진작 진작 때려잡아야지. 그게 사파라는 족속들이야.”

“버, 벌레요? 아하하… 그, 그렇습죠.”

“다만, 그렇다고 곧바로 움직이면 안 돼. 사파 놈들은 벌레가 맞지만, 지금 나온 놈은 벌레의 대가리쯤은 되거든.”

그놈들 무시무시한 건 솔직히 어느 정도 인정하긴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흘러내린 식은땀을 닦아 내리며 당지명이 물어왔다.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하지만, 그게 꼭 우리일 필요는 없다는 거지.”

“예?”

“정천맹을 왜 만들었겠냐? 결국 다 이럴 때 써먹으려고 만든 것 아냐.”

예전에 무림맹 있을 때는 참 팔자가 기구했다.

자기들 지켜주겠다고 앞에서 칼 맞고 있으니 뒤에서 정치질하며 누가 못했니, 누가 잘했니 평가를 해댔다.

그 꼴을 다시 보라고?

‘아, 그건 못 참지.’

“그들이… 순순히 저희 말에 따를까요?”

“싸우기 싫으면 싸우게 해주면 그만이다.”

“예? 어떻게 말입니까?”

“그야, 녀석들과 같은 방식이지.”

정치 무인 놈들을 싹 다 모아서 쥐어패 주는 법은 하나뿐.

“진정한 정치를 보여주마.”

* * *

공문이 떨어졌다.

무려, 사천성주가 주관하여 정천맹의 출정식을 거행하겠다는 공문이었다.

[모용세가는 한때 대대로 황실에 임관하여 그 충심을 보였던 가문이다. 설령 지금은 영락하여 일개 토족이 되었다지만, 그들의 공로가 어디 갈까? 대륙 반대편에 위치한 이들이라지만, 그들의 위기를 본 성주는 감히 좌시할 수 없다. 마침, 사해가 동도라는 무림인의 의미가 마침 본 성주의 의지와 부합하니, 이는 실로 좋은 일이며 본 성주는 그들의 의기를 크게 치하하는 바…….]

듣고 읽노라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연설문이었다.

뭐 이딴 개소리로 점칠된 출정식이 다 있나 싶었지만, 진짜 중요한 내용은 따로 있었으니―

[이에, 남궁세가에 본 성주가 직접 보검을 내리니, 선봉에 나서 사특한 족속들을 처단하라.]

무려, 사천성주가 직접 임명한 보검이 남궁세가에 도착했고, 낮술 한잔 시원하게 걸치고 있던 창천검문의 한태상은 버선발로 호출되었다.

“한 장로.”

“예… 예, 가주님!”

“이게 무엇인 줄 아는가?”

[아, 남궁세가! 그들의 의기는 창천처럼 푸를지어다!]

콰직―

남궁가주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격문이 구겨졌다.

“사천의 어느 유서 깊은 가문에서 양산해 성내 여기저기에 붙였다더군.”

“그, 그것이…….”

“재밌군.”

화르륵―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이리저리 구겨지던 격문 위로 불꽃까지 피어올랐다.

한 줌의 재가 되어 흩날리는 격문의 운명이 마치 자신의 그것과 같아 한태상은 바짝 얼어붙었다.

‘사천당가… 이 미친놈들!!’

그들이 사천성주를 움직였다.

사천성주와 사천당가가 유착 관계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견제하고 사천당가가 가지고 있는 힘을 빼놓는 것도 무척이나 조심스레 움직여야 했다.

안휘에 가면 남궁세가가 황가나 다름없듯, 한 지역에서 수백 년 묵은 명가라는 것은 그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 지역 토착 유지들을 모두 한 손에 쥐고 있을뿐더러, 어마어마한 사업체와 부동산을 품속에 안고 있고, 관아와의 긴밀한 연계까지 고려하여 지금껏 당가를 견제해 온 한태상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성주를 움직여 우리에게 선봉을 임명시킨단 말이냐!!’

관과 무림은 불가침이 원칙.

다들 암묵적으로 지키면서도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어기는 기이한 원칙이다.

힘을 지닌 이라면 적당히 어기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지만, 그래도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한 장로.”

“…예! 말씀하십시오!”

여기 없는 누군가에 끝없는 원망을 풀어내고 있던 한태상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나는 한 장로를 총애하네.”

“가, 감사합니다!”

“한 장로는 남궁가의 피가 섞인 것도 아니었지만, 그 수완과 능력을 인정받아 한때 월여단에서 임무를 수행했지. 그때 증명했던 충심과 능력은 분명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어.”

“아…….”

남궁가주의 말은 분명 치하였으나, 듣는 입장에서는 지독히도 마음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본 가주가 이번 정천맹의 회의에서 한 장로에게 전권을 위임한 것은 같은 이유라네. 본가의 역사에서, 방계조차 되지 못한 이에게 그만한 자리를 내리는 일이 흔했을 것 같나?”

“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 내가 알기로 그런 일은 없었네. 그만큼, 나는 사람의 능력을 중히 여기며 그에 합당한 보상을 약속한다는 걸세.”

합당한 보상을 약속한다.

그 말은, 합당한 필벌도 따라온다는 말이었다.

‘꿀꺽.’

신상필벌.

그것이 현 남궁가주 남궁황을 상징하는 모든 것과 같았다.

“이번 자네의 의견, 썩 유쾌하지는 않아도 합당하다 생각했기에 승낙했네. 하지만 그리 결과가 좋지는 않더군.”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콰아앙!!

그 즉시 한태상은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바닥이 부서지며 나무 파편이 튀었고, 핏물과 살점이 보기 흉하게 짓이겨졌다.

그럼에도,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 끔찍한 광경에 동요하는 이는 없었다.

“흐음… 죽을죄라…….”

자신의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짐에도 그저 턱수염만 어루만지던 남궁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죽을죄기는 하지. 그대가 한 행위는 속가인 창천검문는 물론이요, 본가인 남궁세가의 운명까지 비튼 일이니까. 감히,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했으니, 그 대가를 자네가 감당할 수 있겠나?”

“……!!”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한태상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사이로 핏물이 줄줄 흘러들어 왔지만,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죽는다… 진짜 죽는다……!’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즉, 가주로서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일이다.

누구보다 고고하고 자존심 높은 남궁황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다는 것은, 그가 이번 일을 어느 정도 중대사로 여기고 있는지를 알려 주었고, 한태상은 극도의 공포감에 입도 벙끗하지 못했다.

변명도 어느 정도 뇌가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등 뒤로 식은땀만을 줄줄이 흘러내리는 한태상에게는 체감상 억겁과 같은 시간이 그를 잠식해 갔다.

그때,

“하지만 가신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해 주는 것 역시 이끄는 자로서의 도리겠지.”

돌연, 짓눌러오던 대기의 무거움이 거짓말인 것마냥 사라졌다.

“예, 예……?”

“잘 들던 명검이 이가 빠진다고 버리는 이가 있겠나? 그간의 공로를 생각해서라도, 다시금 그 날을 세워 다듬으면 그만인 법이지.”

“……!”

그 뜻은 자신을 한낱 도구로 여긴다는 뜻과 같았다.

명확한 사람 이하의 취급, 그럼에도 한태상은 한 줄기 안도감을 느꼈다.

‘사, 살았다……!’

잘못하면 자신뿐 아니라 창천검문 전체에 책임이 물릴 수 있는 일이었다.

일가친척은 물론이요, 친분이 있던 전체가, 그의 연줄 전체가 연좌죄로 쓸려나가도 할 말이 없는 상황!

그 끔찍한 파멸의 구렁텅이에서 겨우겨우 살아나왔다는 안도감이 그의 마음을 적셨다.

그러나 남궁황의 말을 거기서 끝나지 않았으니―

“어찌 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나. 굳이 책임을 따지자면, 그것을 잘 관리하지 못한 본인의 실수겠지.”

덤덤히 이어진 말은, 그의 심장을 다시 한번 옥죄어왔다.

‘큽……!’

흘려듣기에는 자신의 관리 미숙이지만, 그 말은 달리 말하면 관리하는 방식을 바꾸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못 써먹을 검이면 부술 수 있고, 날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갈아댈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남궁황의 ‘관리’란 일개 개인으로 끝나는 법이 없으니―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쿵… 쿵… 쿠웅……!!

한 단어 한 단어를 뱉을 때마다 강하게 머리를 찧으며 소리쳤다.

그 굳은 다짐이 어느 정도 통한 것일까?

“…흐음, 그래.”

고개를 주억거리는 남궁황이 손을 흔들었다.

“잘해 보게. 비록, 자의로 선봉에 선 것은 아니었으나… 남궁제황가의 천명은, 언제나 무리를 이끄는 최선두였으니까.”

떨어지는 축객령에 겨우겨우 한태상은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휘청휘청 쓰러질 것 같았지만, 안간힘을 쓰고 버텨냈다.

‘살았다, 나는 살았어…….’

살아남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남으려면 할 일이 많았다.

* * *

이래저래 소요가 많았지만, 결국 정천맹의 출정식은 결정됐다.

애초에 존재 자체가 사패천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사패천이 이리 거하게 움직여주면 정천맹 역시 응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난번 광동 원정 이후로 정천맹이 위치한 사천은 다시 한번 떠들썩해졌고, 사천당가에 깃드는 전운 역시 팽배해졌다.

‘원정이라…….’

이번에는 전과 다르다.

광동 원정은 사실, 굳이 따지면 눈속임에 가까웠다.

있지도 않은 사패천을 토벌하겠다고 떠난 것이니, 실제로는 구패 중 최약체라는 하오문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 행위에 불과했다.

‘그 와중에 사패천과 부딪칠 뻔했지만, 그마저도 지형적 이점과 공갈, 사기 등으로 겨우 물러나게 했고.’

위치가 좋지 않았다면, 정보의 이점이 이쪽에 있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불리했을 것이다.

아니, 생각해 보면,

‘그 퇴각마저 뭔가 의심스러운 게 있었지.’

그때야 잔뜩 날 선 기세로 응대했기에 적들이 이를 갈며 물러서는 게 당연해 보였지만, 지금 와서 복기해 보면 그들의 행동에는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그게 대체 뭘까?

의문이 일었지만, 사실 지금 내게는 그마저도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무당파라…….’

사패천과의 거대한 대전을 앞두고 있음에도, 내 머릿속에는 온종일 그 한 단어만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도령, 이 녀석.’

내게 어째서 그런 혼란을 심겨준 것인지.

차라리 거기서 다 설명해 줬다면 좀 좋을까?

‘…아니, 다 어리광이지.’

정도령이라고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는 법이고, 무엇보다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은 결국 다 결자해지(結者解之)다.

맺은 자가 풀어내는 것이 순리이며,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길 수 없는 과업과 같았다.

‘사실은, 결국 두려운 것뿐이잖아.’

아닌 척해도, 나의 마음이란 참 얄망궂은 것이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했고, 그 사실을 덤덤히 받아들이려는 척해 봐도 그것이 안 됨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런 이를 직접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하…….”

완전, 애새끼가 따로 없네.

“쯧.”

어려진 것은 몸뿐이 아닌지, 자꾸만 궁상맞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자꾸 무거워지는 엉덩이를 떼며 천천히 기지개를 쭉 켰다.

“에효, 나이 먹으면 주책만 늘어난다더니.”

누가 보면 세상 괴로움 전부 다 짊어진 줄 알겠네.

“그래.”

참 힘들고, 버거우며 제대로 눈을 뜨고 바라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한번 가보자고.”

무당파.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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