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307화 (307/350)

307화

사패천의 토벌대가 결성되었다지만, 곧장 출발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거대한 대군을 결성하려면 그에 따른 사전 준비만 한참 걸리는 법이다.

당장, 그 편제만 봐도 그렇다.

대군을 운용하려면 그에 따른 물자 보급이 필수적이다.

기본적으로 밥은 먹이고 싸워야 하니 대규모 식량 공급과 그것을 유통할 길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밥만 먹고 끝인가?

설마 그럴 리가 있나.

그들이 사용할 주 무장인 검이나 활, 창 등을 보급해야 한다. 무인이라면 저마다 자신의 개인 병장이 있다지만, 말단으로 갈수록 그 수준은 실로 처참해진다. 제대로 된 전쟁을 시키려면 일정 이상 수준의 병장기를 보급하는 게 개인이나 집단에게나 둘 다 이롭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활. 한 번 보급되면 날이 조금 나가도 부러지지 않는 한 계속 쓸 수 있는 검이나 창 같은 것들과 달리, 활에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하는 화살은 소모품이다. 그것도 관리하기 더럽게 까다로운.

‘습기진 곳에 보관하면 깃이 다 상해서 명중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지.’

그걸 보관할 전용 마차도 따로 수배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의복과 비상 약품 등 각종 소모품에 눈이 가게 된다.

예를 들자면, 장거리 이동에 닳아 없어질 신발과 같은 것.

무인들의 전쟁이라지만, 그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가면 당연 군대 간의 전쟁에 버금가게 된다.

그럼 행군용 신발을 보급할 수밖에 없고, 예비용품도 잔뜩 준비해야 한다.

이걸 보급하는 상인들은 떼돈 번다고 좋아하지만, 이것들을 일일이 감찰해야 하는 중간 관리자들로서는 며칠을 밤새워도 시간이 부족할 지경.

그렇게 함에도 전부를 보급할 수는 없어 개개인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분명 따로 존재하니, 그나마 사문의 위세가 있는 이들이야 그 부분에서 철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발품을 팔아 물품을 구비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앞에서 정천맹 차원으로 대량 규모를 해버렸는데 다른 물품들의 개인 구매가 쉬울까?

‘그럴 리가 있나.’

당연 웃돈을 주고서도 못 구하는 물품들이 종종 발생하고, 암거래 시장은 이때 활발해진다.

전쟁에 있어 부무장의 개수만큼이 여벌의 목숨이나 다름이 없으니, 잔뼈 굵은 이들은 사천 전역을 돌아다니며 제대로 된 질 좋은 금속 무장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다행히 사천에는 그에 특화된 가문이 하나 있었다.

아니, 무림 전역을 전부 뒤져봐도 손에 꼽는 야금술을 보유한 가문이 하나 있다.

그렇다.

사천당가였다.

* * *

“불티나게 팔리네.”

“그러게.”

방계 둘이 정문 밖으로 길게 늘어진 줄을 보며 감탄했다.

“저게 다 오늘 손님이야?”

“모르지. 지난번에 온 사람들이 몇 번씩이나 오는 걸 보긴 했어.”

“재구매하려고?”

“그것도 있고, 구매하지 못한 일도 있고.”

“아아.”

처음에는 제법 돈 있는 집안의 이들이 찾아와 질 좋은 병장기를 구매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점점 입소문이 퍼지자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경쟁하듯 웃돈을 더 얹기 시작했다.

장인들 입장에서야 물건이 잘 팔리면 가문에 보답이 되니 고개를 끄덕였지만, 자고로 모든 경쟁은 과열되기 마련.

출전이 점점 다가오는데 반해, 예상했던 만큼 보조 무장을 챙기지 못한 이들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작은 다툼이 일기 시작했고, 그것은 어느샌가 주먹다짐으로 바뀌었다. 만약, 이곳이 다른 평범한 도검소 같았으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됬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사천당가였다.

“우와, 난동꾼이다!”

“취객인가?”

“이거, 이거. 대형이 자중하라고 해서 가만있었지만…….”

“집안에서 일어나는 다툼은 중재할 수밖에 없잖아?”

신난다고 달려든 방계들이 난동을 부리는 이들을 두들겨 패 제압했다.

말이 제압이지, 과잉 진압에 가까운 폭력의 세례였고, 맞다 못한 이들 중에는 눈이 돌아가 그들에게 맞서 싸우려 했다.

그게 최악의 악수인지도 모르고.

“반항이냐?”

“으허허허, 이? 거? 어? 쩔? 수? 없? 는? 걸?”

그런 이들에겐 특별히 합격진까지 구사하며 손님맞이 대환영 절차를 밟았다.

실제로 관절 단위로 자근자근 밟힌 이들은 가진 불만도 쏙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되자 당가는 언제 시끄러웠냐는 듯 평화가 찾아왔다.

“장사 잘되네.”

“그러게.”

질 좋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데다, 시시비비에 걸릴 일도 없는 곳.

품질 보증까지 확실하며, 신용도도 최고 등급인 사천당가는 곧 보조 무장을 필요로 하는 이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잘 팔리니 좋긴 한데. 이게 이렇게까지 잘 팔릴 일인가?”

오히려 방계들 몇몇이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할 정도로.

“뭐, 우리가 평범한 병장기를 팔았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겠지.”

“평범한 병장기면, 검이나 도 같은 것 말이냐?”

“그래. 그것들은 이미 개개인이 소지한 것들이 꽤 있어서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있을지언즉,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라는 수준에 불과했을 거다. 하지만 암기 등은 이야기가 다르지.”

그에 몇몇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잘 읽는 이들이 답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잘 팔리는 검과 도를 다루는 도검장은 많아도, 질 좋은 암기를 다루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여류 무인들이 사용하는 은장도나 소검이라면 모르지만, 그것들은 암기 대신으로 사용이 가능하더라도 결국 대신일 뿐이지.”

“그게 이해가 안 돼. 이 정도로 수요가 많으면 왜 그런 도검장들이 많이 없다는 거야?”

“상황이 다르잖아. 저런 보조 무장들은 결국 여벌의 목숨. 제아무리 무인들이 칼끝에 목숨을 걸고 살아간다 해도, 진짜 매 순간 목숨을 걸고 살아가지는 않지. 지금은 말하자면… 전시(戰時)잖아.”

“아…….”

전쟁 특수(戰爭特需) 덕에 대호황을 맞이한 당가.

덕분에 수입이 잔뜩 늘어난 점은 좋았지만, 방계들은 그 모습에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여벌의 목숨이 필요로 하다는 점은 그만큼이나 세상이 위험해졌다는 뜻이니까.

“쩝, 모르겠네. 견습 도공분들이 연습 삼아 만든 것도 저렇게 잘 팔릴 정도니…….”

“너희들도 단단히 잘 챙겨둬.”

“우리야 잘 챙기고 있지. 우리가 굳이 챙기려 하지 않아도 장인분들이 앞다투어 챙겨 줬잖아.”

한쪽은 이미 전쟁통이지만, 방계들만은 여유로운 이유.

그건 그들이 뭔가 구하려 하기 전에도 장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각종 암기 꾸러미를 챙겨 줬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도련님들!! 이거 왜 안 챙기셨습니까!!”

“예? 이, 이미 이만큼 있는데요?”

“아니!! 지금 무슨 마실이라도 나가십니까?! 전쟁 나가는 데 겨우 그 정도로 무슨!!”

“아이고, 아이고. 우리 도련님들 못 돌아오면 어떻게 해!! 이놈아!! 왜 이것밖에 안 챙겨드렸어!!”

“자, 잠시만요!! 챙길게요!! 챙긴다니까?!”

평소보다 제법 많은 암기들을 채용했다 생각하는 방계들에게 몰려와 땅을 치며 꺼이꺼이 통곡하는 장인 어르신들 덕에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건 다 당가의 특수성 때문.

‘힘들었겠지. 지난 삼십 년간의 기억이.’

누군가는 전쟁터에 나가면, 누군가는 기다려야 한다.

장인들은 이미 수십 년간 당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이들이었고, 이미 그들의 가족들이 전쟁터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 지금의 방계들은 그때의 직계나 다름없고, 같은 이름을 쓰는 이상 친손자들과 같았기에 다들 그 나이 먹고도 주책 맞게 한 아름씩 짐을 챙겨주는 것.

“거참, 이것도 곤욕이구만.”

그것들을 다 지켜봐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마냥 웃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래도, 다들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한 시름 놓았다 해야 하나.”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놈들이지만, 그래도 진짜 내놓으려 하니 걱정이 앞서는 게 솔직한 마음.

자꾸만 시선들이 녀석들을 향했다.

‘나름대로, 이 녀석들도 긴장했겠지.’

지난번 광동 원정이야 약한 놈 쥐어패러 가는 것이지만, 이번 원정은 사패천이라는 거대 세력과 정면으로 승부를 결하는 일전이다.

그걸 아는 방계들로서는 의식이 될 수밖에 없을 테고, 다른 얘기를 하며 의식을 돌리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다들, 많이 긴장했겠…….

“공자님. 이것도 챙기시지요.”

“예, 예? 아, 옙…….”

“공자님. 이것도 챙기시지요.”

“아, 감사합니다!”

“공자님. 이것도…….”

“저… 저, 적 소저?”

“네. 공자님.”

저건 인간 찰떡인가?

당불퇴의 곁에 찰싹 달라붙은 적세희가 자신의 몸통보다 더욱 거대한 보따리를 옆에 두고 무언가를 하나하나 건네고 있었다.

“이건… 무엇입니까?”

일단 받긴 받는데 개중에는 정체를 알 만한 것보다 추정도 못 할 것들이 더 많았다.

“아아, 그건 일족의 주술로 만든 부적입니다. 행운을 기원하지요.”

“…그럼 이건요?”

“그것도 일족의 주술로 만든 부적입니다. 주로 눈먼 화살이 스쳐 지나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건…요?”

“그것도 일족의 주술로 만든 부적입니다. 소유자의 기력이 회복을 도와줍니다.”

“어…….”

많다. 뭐가 많다.

아무 생각 없이 하나둘 받기 시작하는 부적이란 것들은 고운 비단 주머니에 쌓인 것이 있는가 하면 목걸이나 반지 등 장신구의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좋은 거기도 하고 마음이 감사하기도 해서 받았는데, 이게 계속되다 보니―

“저… 소저. 이거, 너무 많지 않습니까?”

어째, 온몸이 고대의 주술사마냥 장신구로 가득 뒤덮이게 됐다.

그것들이 외형적으로 전혀 조화를 이루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이래서는 싸울 수가 없겠는데요?”

장신구도 하나둘이어야지, 양손 열 가락지 전부 다 차버리니 무투파인 당불퇴의 입장에선 주먹 쥐는 것도 어색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다 익숙해질 겁니다.”

“…예? 아니, 그런 문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신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부 소유주의 몸에서 잘 떨어지지 않도록 귀속의 의식을 해두었습니다.”

언제 그런 걸 해두셨을까.

정신 못 차리고 눈만 껌뻑거리는 당불퇴와 달리, 이제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한 것인지 적세희는 당불퇴 뿐 아니라 옆에서 파닥거리는 삑삑이에게도 각종 부적을 둘러주었다.

“삑삑아, 네가 공자님을 잘 챙겨주렴.”

“삑삑!”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원격 통신 부적부터 시작해서, 당불퇴를 찾을 수 있는 각종 수단이 삑삑이의 몸에 걸려 있었다.

저쯤 되면 무거울 만도 하건만, 삑삑이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왜냐면,

“삑삑!”

“그래, 천천히 먹으렴.”

삑삑이의 목에는, 뇌물로 받은 간식 주머니가 묵직하게 그 존재감을 발했기 때문.

“훌륭하구나, 너는 장차 훌륭한 영물이 될 거야.”

“삑!”

밥 잘 먹는 삑삑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적세희는 아기 새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럼, 계속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다시금, 당불퇴에게 붉은 바위 일족의 정수가 담긴 물품들을 챙겨 주었으니―

“아이고. 서럽다, 서러워.”

“챙겨주는 사람 없는 우리는 죽어야지.”

방계들의 야유가 당가를 가득 채웠으니,

“지랄한다, 진짜.”

사파 놈들 전에, 저 새끼부터 족쳐버릴까?

그런 생각이 진지하게 일었다.

* * *

그리고,

고즈넉한 밤.

사패천을 향한 원정대가 결성되던 날, 누군가는 보이지 저 하늘이 있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오는가.”

세월이 엿보이는 주름진 눈에는 별과 같은 총기가 가득했다.

비록, 그가 있는 곳은 하늘을 볼 수 없지만,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자였다.

“긴, 정말로 긴 기다림이었다네.”

남들은 알지 못하는 세월, 홀로 억겁의 고통을 인내하며 참아온 그는 웃었다.

“이제서야 오다니, 자네는 여전히 짓궂다네.”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아는 남자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깊게 내려앉는 적막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