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310화 (310/350)

310화

그곳에는 다 늙은 노인이 있었다.

세월이 느껴지는 고목나무처럼 말라비틀어진 노인은 추레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생기가 거진 느껴지지 않는 것이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보였고, 사실 그 무엇보다 끔찍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복부에 박혀 있는 팔뚝이었다.

“대답해, 검천!! 이게 뭐냐고!!”

꿈틀… 꿈틀…….

팔뚝은 어깻죽지부터 잘려 있었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고 있었고, 그 중앙에는 부러진 검이 박혀 있었다.

그 정체가 나를 이곳으로 안내했던 부러진 검의 반쪽임을 알아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

천하의 검천이 검을 부러트렸다는 사실에 한때는 비웃음을 머금을까도 했지만, 지금 이 꼴을 보자니 터져 나오는 것은 통탄뿐이었다.

“이 개자식아!! 당장 대답하라고!!”

“…흘흘, 소리 지르기는. 내가 이런 모양이 되었다 해서 귀까지 먹지는 않았다네.”

웃기지도 않은 농담이었다.

단순히 팔뚝에 꿰뚫려 있기만 하면 모르겠지만, 그는 전신이 금줄에 묶여서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금줄은 팔뚝까지 함께 봉했기에 검천이 가부좌를 취한 자세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고통을 간직한 채로 미소 짓는 모습에서 너무나 짙은 익숙함이 느껴졌다.

“얼마나… 얼마나 이런 꼴이었던 거냐?”

“후후, 독천. 겉모습만 어려진 줄 알았는데, 속도 어려졌는가? 굳이 답을 아는 질문을 던져서 무엇에 쓰겠나.”

“이익!”

사실은 이미 깨닫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모습이 너무나 끔찍해서 현실을 부정하며 던진 질문이었다.

검천은 그것을 한낱 어리광이라고 꼬집고 있었고, 나는 부러질 듯 이를 악물다 그 자리에서 허물어져야만 했다.

“삼십 년… 삼십 년 동안이나, 그 모양 그 꼴로 있었다는 거냐?”

너무나 뻔한 답.

그렇기에 굳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검천의 모습을 바라보다 망연자실해 물었다.

“대체, 그 팔은 뭐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째서 네가 사라졌던 것이고, 왜 그 꼴로 여기 처박혀 있는 거야…….”

“흘흘, 묻고 싶은 게 많은 표정이군. 그래… 그래도 다행일세. 자네가 너무 늦지 않은 덕에, 그간 일들을 다 말해줄 수 있을 듯하니.”

정작 몸뚱어리가 꿰뚫린 것은 녀석일진대, 구멍이라도 뚫린 듯 공허함을 느끼는 나를 향해 검천은 웃으며 말했다.

“들어보게나, 모든 것은 삼십 년 전 그 날로부터 시작한다네.”

* * *

혈향이 짙다.

후각은 쉽게 마모된다는데, 이 빌어먹을 피 냄새는 도통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겠습니까, 검천. 천지 사방이 시산혈해로 가득하니, 이놈의 코가 도통 익숙해지질 않는 것이지요.”

함께 걷는 이의 짓궂은 농에 검천, 조일화는 쓰게 웃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참으로 문제였다.

어서 빨리 가지 않으면 성질 급한 친우 녀석이 왜 이렇게 굼뜨냐고 욕할 텐데, 이 끔찍한 혈향이 자신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으니.

“생각해 보면, 그쪽도 만만치 않게 혈향이 짙겠지요.”

“독천을 말씀하십니까? 하긴, 그곳이 저희보다 힘든 길을 걷고 있겠군요.”

“미안할 따름이지만 어찌하겠습니까. 지금 무림의 희망은 그 녀석뿐이거늘.”

“하하, 그 말씀은 직접 말씀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흠, 그랬다간 입술 비쭉 뛰쳐나온 녀석을 뒷감당하기 힘들 텐데…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겠습니다.”

“후후, 좋지요.”

그것은 이 시대에서나 할 수 있는 척박한 농담이었다.

왜냐면,

그들은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이었으니까.

‘독천, 자네를 살아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군.’

중천에 뜬 해를 바라보며, 검천은 그리 생각했다.

설령 저것이 자신이 볼 수 있는 마지막 해라도 상관없으니, 살아서 그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쪽이든 이쪽이든 살아 돌아가기 벅찰 길을 가고 있으니, 언젠가 다시 재회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라 생각하는 그는 그저 옅은 웃음으로 마지막을 정리했다.

‘마교의 일곱 주교. 그들 중 셋이 모인다고 했던가.’

아는 이 얼마 없는 비밀스러운 정보였다.

맹의 정보원들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진 덕에 겨우 얻어온 정보.

이미 많은 문파들이 몰락하며, 정면 대결을 감히 장담할 수 없게 된 지금은 자신들과 같은 결사대가 마교의 요인을 암살해야만 했고, 마교에 존재하는 일곱 주교 중 셋을 상대하러 가야 하는 자신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것과 같았다.

그 사실이 저도 모르게 두려움을 실어와 검병을 쥔 손에 힘을 더했지만,

‘훗. 하긴… 그래 봐야 교주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 그 녀석과 같을까?’

곧, 자신들이 말하는 상대인 독천은 무려 마교의 수괴인 교주를 상대하러 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실소를 흘려버렸다.

“세간에서는 그 녀석과 저를 같은 삼대천의 반열로 평가하더군요.”

“예?”

함께 걷던 이들은 문득 들려온 조일화의 농담 어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평소 겸손한 성격에 자신을 세우는 걸 지양하는 조일화였다.

그런 그가 조금 전 한 말이 무엇인지 모를 이는 없었고, 다들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검천께서는… 그 평가가 박하다 생각하십니까?”

“뜬구름이라고 다 같은 구름이 아니듯, 하늘이라고 다 같은 하늘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오호.”

“허허, 그 말씀은?’

칼끝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의(義)를 위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이들이었고, 그만큼 낭만이 무엇인 줄 아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죽음으로 향하는 길에서 던지는 농 몇 마디는 거부할 수 없는 낭만.

평소 과묵하다 여기던 이들 역시 저마다 말문을 떼어내며 몇 마디씩을 던졌다.

“독천, 그 위에 검천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후후, 쉬이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지만?’

“검 한 자루를 상대하기 버거워 수백 자루 암기를 들고 다니는 녀석입니다. 그런 저와 녀석이 같은 반열에 있다면, 그건 참 섭섭한 일 아니겠습니까?”

“오오오오오!!”

“과연, 검천이십니다!”

삭막하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뜨거워졌다.

“말이 나온 김에, 이번에 가면 한번 제대로 견주어 보려 합니다. 녀석이 가진 수백 자루의 암기 중, 과연 하나라도 제 검에 닿을 수 있을는지.”

“크하하하!! 기대가 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가장 앞자리는 제가 맡겠습니다!”

왁자지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거운 걸음걸이가 조금은 가벼워졌고, 그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재밌다 싶은 농담을 던지며 앞으로 또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미리 전해 들은 계곡의 입구가 보였다.

‘저기구나.’

주교들의 회담이 있을 장소였다.

그곳에서 마교의 주교 중 셋이 모일 예정이었고, 그들은 그 자리를 급습하여 마교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켜야 했다.

계획했던 목표 지점을 앞두고 조일화는 문득 생각했다.

‘과연, 이들 중 몇이나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함께 웃고 떠들던 이들은 하나하나가 이젠 너무나 소중해진 전우들.

가족 같은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검병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자, 그럼 가봅시다. 빨리 저들을 해치우고, 교주를 상대하고 있을 전우들을 지원하러 갑시다.”

“좋지요.”

“어서 빨리 갑시다.”

죽음을 앞두고 그 누구도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들은 마침내 계곡 안으로 당도했다.

이제 숨을 만한 은신처를 찾아 곧이어 당도할 마교의 주교들을 기습하면…….

“이, 이게 무슨……!”

“흡?!”

혹여나 두려움에 도망치지 않게 머릿속에 몇 번이나 계획했던 작전을 떠올리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던 결사대의 발걸음이 멈추어졌다.

눈앞에서 펼쳐진, 너무나 비현실적인 풍경 앞에.

“이 무슨 끔찍한…….”

피 냄새가 천지 사방에 그득하다.

단순히 혈향만이 짙었다면 그들은 이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나 척박해진 이 시대에 혈향은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천인공노할 광경이구려…….”

주변에 드리워진 시체의 몰골이 너무나 끔찍했다.

“사지가 멀쩡하지 않은 것보다, 그런 것을 헤아리는 게 훨씬 빠르겠군…….”

“실로 악의적인 광경이구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어느 하나 온전한 시체가 없었다.

팔다리가 잘린 것은 예사에, 그마저도 곱게 절단된 게 아니라 우악스레 찢긴 흔적들이 가득했다.

짐승이 물어뜯었으면 이런 몰골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결코 짐승이 할 만한 짓은 아니었다.

“한데, 누가 이런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는지… 아니, 잠깐. 이들은?!”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가 싶어 그 장소를 향해 가던 누군가가 순간 발걸음을 멈칫했다.

그건, 시체들의 복색이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마교도?! 마교도들이 어째서 이렇게……?!”

그들이 목표로 했던 이들이 바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마교도라고? 이들이 마교도란 말입니까?!”

“분명합니다! 이들의 복색과 병장기를 보십시오!”

“헙! 진정…….”

처절하리 만치 싸웠던 이들의 복색은 제아무리 핏물과 오물에 젖어 있다 해도 못 알아보는 게 이상했다.

거기다,

“검천!!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이들은……!!”

하나둘 혈사의 흔적을 훑던 중 누군가 더 이상 놀랄 수 없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왜 그러십니까? 그들이 누구… 허?”

익숙했다.

혹여나 잊을까, 몇 번이나 외우고 또 외웠던 인상착의.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나란히 흩어져 있는 세 구의 시체들의 정체는…….

“주교?! 이들이 어째서…….”

“크아아악!!”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현실에 그가 놀람을 숨기지 못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

재빨리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서는 방금 전 가지 농을 던지던 이 하나가 괴인에게 습격을 받고 있었다.

“이런……!”

피 칠갑을 한 괴인이 나타나 결사대 하나의 팔을 뜯어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검천은 자신의 애검을 휘둘렀다.

태극혜검(太極慧劍).

정천태극(正天太極).

검천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계곡 일대의 대기가 비틀렸다.

완만히 흐르던 기류는 어느 순간 비틀린 굴곡의 성질을 지니게 되었고, 막 결사대 무인의 팔을 뜯고 그것을 입에 가져가려던 괴인은 등 뒤에서부터 가해지는 막대한 압력에 온 관절이 비틀리는 것을 느꼈다.

뿌득… 뿌득……!!

살벌한 소리와 함께 괴인의 몸이 뒤틀렸다.

범위 내를 모두 태극의 영역으로 두고 그 흐름을 지배하는 검천의 태극혜검이 펼쳐진 것이다!

“끄, 아아아악!!”

괴인은 괴로움에 온몸을 비틀어 댔고, 검천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짝 거리를 좁혔다.

이미 이 일대는 그의 권역에 들어온 상황, 검천의 안광이 빛을 토해 내자 서슬 퍼런 검기가 괴인의 가슴팍에 길쭉한 자상을 남겼다.

“크학!!”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른 괴인은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어딜!’

태극혜검(太極慧劍).

굴공검(屈空劍).

그보다 검천의 검이 휘둘러지는 게 더욱 빨랐고, 그의 검이 그리는 완만한 궤적을 따라 주변 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현상이 일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가세하겠습니다!”

다른 이들 역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수십 가지 절기가 펼쳐졌다.

그것이 괴인의 육신을 난자하는 순간, 무인들은 저 괴인의 숨통을 끊으리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단 한 명,

‘잠깐!’

검천 조일화만은 기이한 위화감을 느꼈으니―

“다들, 물러ㅅ……!”

비명에 가까운 경고성을 내지를 때,

“크흘흘…….”

괴인의 음험한 흉소가 그의 귓가를 때렸다.

콰직, 콰지직!!

“크아악?!”

“커억!!”

직후 울려 퍼진 것은 끔찍한 파육음.

굴공검의 압박을 찢어낸 괴인이 양손을 휘둘러 들이닥치는 무인들을 도륙해 냈고, 삽시간에 주변에 있던 무인 둘의 심장을 뜯어버렸다.

이윽고,

우직우직우직.

그것을 입에 가져가 씹어먹으니, 괴인의 몸 위에 났던 상처들이 빠른 속도로 아물어갔다.

그제야 그 정체를 깨달은 검천의 표정은 일그러졌으니,

“불가살이…….”

불현듯, 누군가의 공포 어린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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