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불가살이는 강했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듯, 폐부를 쥐어짜 내듯 말하는 검천의 모습은 상당히 괴로워 보였다.
“아니, 단순히 강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다 불가능하겠지. 그 괴이한 강함도 문제였으나, 더더욱 끔찍했던 것은 불가살이가 자신의 이름대로 아무리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까.”
“불사(不死)라고? 하지만 그건…….”
“그래, 자네도 알다시피 영원한 불사란 없네. 마교의 주구들 중 죽음을 속이고 생을 이어 가는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칠죄종의 주교들쯤 되면 없는 이가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지.”
반으로 베어버리면 둘로 나뉘어서 증식하는 놈.
해치웠다 싶으면 껍질 속에서 본모습을 드러내는 놈.
그냥 죽여도 부활하는 놈.
부활의 방식은 가지각색이었고, 심장이나 머리를 동시에 노린다고 해서 편하게 죽어주는 녀석은 마교의 더럽게 높은 자리에는 없었다.
그렇다 해도 그들이 무한히 죽지 않는 이들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천마고 나발이고 저들이 최고 존엄이라 자화자찬했을 테니까.’
결국 다 결함이 있는 이들이 초월적인 존재를 믿고 의지하려는 것이다.
자기가 못하는 걸 누군가가 대신 이뤄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
그 방향성이 심하게 뒤틀렸을 뿐, 누군가에 대한 믿음 하나만큼은 진실인 마교도 놈들이기에 실제로도 그들에게 부족함은 존재했다.
“내가 아는 한, 영원한 불사란 존재하지 않아. 잘 죽지 않고 잘 고칠 뿐이지. 그런데 검천 네가 그 정도로 말한다는 건 불가살이의 불사에는 그들보다 더욱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겠지.”
“특별한 무언가라… 글쎄, 잘 모르겠군.”
“잘 모르겠다고?”
천하의 검천이 불확실한 표정을 지었네.
“그에 관해 궁구하고 또 궁구했네. 하지만 불가살이는 실로 괴이하면서도 지극히 평범했다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지극히도 효율이 좋고 능률이 뛰어난 육체가 있다면, 절대적인 외공의 완전체가 존재한다면 바로 그러한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네.”
‘외공의 완전체?’
일반적인 무인이 내공심법을 통해 내기를 쌓고 혈도를 단련함을 내공을 익힌다고 한다. 그에 반해 외공은 근육과 뼈, 피부 가죽을 단련하는 것. 최초에는 그 효율이 내공보다 뛰어나지만, 결국 내공이 없으면 속 빈 강정이 되는 것이 인간의 육신이기에 일반적으로 외공을 함께 단련하긴 해도 내공에 초점을 두는 게 주류였다.
즉, 천장이 있다는 소리.
‘그런데도 외공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검천이.’
암기나 독, 신외지물 등을 단련한 나와 달리 한 자루 검과 육신만으로 하늘에 닿았다는 검천이다. 순수 내기와 육신으로 따지면 더한 존재가 있긴 해도, 나보다 훨씬 내공 수양에 힘을 실었던 검천이기에 그 평가는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끝끝내 물러나게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한계였다네. 당시 함께 떠났던 결사대 중 오직 나만이 살아남았고, 그마저도 무당으로 물러나야 했네.”
“그 팔… 때문이냐?”
녀석의 말에 따르면 이미 잘린 지 삼십 년은 됐을 텐데도.
그러고도 모자라 검천의 애검에 꿰뚫린 상태일 텐데도.
검천의 복부에 박힌 팔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꿈틀 뛰며 흉흉한 기운을 흩뿌렸다.
“그래… 자네라면 알겠지. 이 팔은 아직 살아 있다네. 그 주인이 살아 있듯, 이 팔 역시 살아 있어 원주인을 부르고 있네. 그래서… 전장을 이탈해야 했네. 그때 도망친 불가살이라면, 금방 상처를 회복해 돌아올 테고… 이 팔을 되찾았을 때 벌어질 일은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끔찍한 지옥도였을 테니까.”
그것은, 당시 검천이 할 수 있었던 최선.
동료들의 죽음을 뒤로하고, 전장에서 벗어나 비굴하게 도망쳐서라도 반드시 전해야만 했던 것.
“신승(神僧)께 부탁해 소림의 신물인 금마박(禁魔縛)을 빌렸네. 무당산의 정기를 이용해 기운이 흘러나가지 않게 봉인했고, 다행히 깨달음이 있어 무당산 내에서라면 이런 잔재주도 부릴 수 있게 되었지.”
반파된 검이 허공을 노닐었다.
이 자리서 수십 리 떨어진 무당산 어귀까지 이기어검을 부릴 수 있는 무지막지한 내공이지만, 달리 말하면 그 정도의 내공으로도 저 팔을 봉인하는 게 고작이란 뜻이 된다.
‘이 녀석은…….’
그런 최악의 흉물을 삼십 년 동안 봉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 복부에 꿰뚫은 채, 그 끔찍한 기운이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게,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 녀석이 문득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네. 그때, 혼자 두어서 미안하다고. 그런 자네가 돌아올 곳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리고…….”
“입 닥쳐, 이 멍청한 자식아!!”
콰악!!
녀석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너무나 가볍다.
검천은 검수였지만, 검을 단련하는 자는 육신도 게을리 단련해서는 안 된다고 피력하며 외공 역시 수준급으로 익힌 녀석이었다.
‘그렇게나 무겁던 녀석이…….’
어떻게 이리 왜소해져 버린 걸까.
“…독천.”
녀석의 눈빛에 원망 따윈 없었다.
삼십 년 전, 결사대와 함께 산화해 버린 내게.
꼭 이기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던 내게.
이렇게 고통스레 삼십 년을 방치한 내게.
그 어떤 원망의 기색 한 점 없이 녀석은 말했다.
“정말로, 미안하네.”
“입… 닫으라고, 이 개자식아……!!”
툭.
이렇게 가벼운 녀석이건만, 차마 더 이상 들어 올릴 힘이 없었다.
멱살을 쥔 손을 놓고, 비틀비틀 뒤로 물러나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대체 뭘 어떻게 하란 거냐? 넌 내게 뭘 원하는 거고, 어째서 그 시간을 버텨 온 거야.”
“후후, 그렇군. 또 자네에게 이런 부탁을 하게 되는군. 그러고 보면, 자네는 언제나 우리의 빛이었고, 희망이었으며, 해결사였지.”
“되지도 않는 금칠하지 마. 결국 이뤄 낸 거 하나 없는 멍청이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아니까.”
한심하기 짝이 없어 동료 하나 지키지 못한 놈이다.
가족 하나 지키지 못한 놈이고, 결국 돌아와서도 뭘 할지 몰라 우왕좌왕 헤맨 놈이다.
그런 내게, 이 녀석은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믿음을 간직한 채 말했다.
“독천.”
“…말해.”
“하남으로 가시게나.”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리 낯설지 않은 곳이다.
무당이 있는 호북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에 하루면 갈 수 있는 곳.
그리고,
“삼십 년 전 그날로부터, 신승 역시 오늘을 대비하였으니. 자네가 그것을 수득하여 주게나.”
삼대천의 마지막, 달리 신승이라 불리었던 권천(拳天)이 있는 곳.
“소림으로 행하시게나.”
* * *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솔직히, 이게 전쟁을 나가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한적했다.
“저기, 형님.”
터덜터덜.
말이 끄는 수레에 올라탄 당불퇴가 고개만 빼꼼 들어 당지명을 불렀다.
“우리, 이렇게 평화로워도 된답니까?”
“…글쎄다.”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마찬가지로 수레에 올라탄 채 흘러가는 강물마냥 이리저리 움직여지던 당지명으로서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 모습에 뒹굴뒹굴 구르던 당불퇴는 괜히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참, 더럽게 찝찝하네.’
이번 원정에서 당가는 보급을 담당하여 후열로 빠지게 됐다.
제아무리 머리에 든 거 없는 자신이라지만, 그래도 이것이 다른 이들보다 훨씬 편한 환경이라는 것은 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투가 시작됐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상황이겠지.’
애초에 장기전을 고려하고 벌인 원정이기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최후방에 놓여 있는 보급 부대가 가장 전투를 덜 치르고 편할 것이란 것은 뻔한 일.
그 사실이 참,
“불편하냐?”
“형님?”
어느샌가 다가온 당지명이 당불퇴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며 피식 웃었다.
“불퇴야, 나도 엄청나게 불편하다. 어차피 누군가는 보급을 담당해야 하는 것도 알고, 우리가 아니었다면 뒤에서 편히 있고 싶어하는 이들이 이 자리를 탐했을 것도 안다. 우리가 먼저 이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놈들에게 뒤통수를 맞았겠지.”
보급을 제때 안 해주거나, 필요한 분량을 덜 챙겨주는 등. 군법에 저촉될 만한 사항은 아니더라도, 당가의 기를 죽이고 힘을 빼기 위해 벌였을 일들이 훤히 보였다.
“그런데도 참 답답하지. 그 사실을 뻔히 아는데도, 우리가 후방에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구나.”
“…형님도 그러슈?”
“비단 나뿐이겠느냐. 저길 봐라.”
당지명이 한쪽을 조심히 가리켰다.
그 끝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수레 위에 탄 채 불편한 기색을 잔뜩 들어내고 있는 당율기.
“우리가 이용당하는 걸 가장 싫어할 저 녀석도 저렇게 자리가 편치 않은 거다. 다른 녀석들도 매한가지고.”
“에잉, 뭐 이런 호구 가문이 다 있답니까?’
“쉿! 조용히 해, 인마. 가주님 들으실라.”
“앗차차!”
제 입을 막는 당불퇴였지만, 결국 다 같은 마음이구나 싶었다.
한숨을 푹 내쉰 당불퇴는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데굴데굴 굴러다녀도 될 정도로 넓은 수레. 예전에는 이것보다 더 넓고 무거웠던 것을 끌고 다녔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어 옛 추억이 물씬 풍겼다.
‘…아니, 정정.’
암만 그래도 그게 추억은 아니지.
“형님.”
“왜 그러느냐.”
“참 시간이 빠르지 싶습니다. 그 예전, 이것보다 더 무거운 수레 끌고 수련이랍시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우리가, 정사 간의 거대한 대전이 벌어지는 전초전에서 후방 대열에 빠져 있다고 답답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게.
생각해 보니 고작 일 년 전일 텐데, 언제 이리도 많이 변하게 됐는지 당지명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건 아무래도,
‘역시, 대형 때문이군.’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신들의 변화에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대형이었다.
‘입으론 언제나 불합리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한다고 하지만, 행동은 정반대인 사람. 어느샌가 갑자기 데굴데굴 굴러들어와, 당가의 너무 많은 것을 바꾸어 버린 사람.’
그런 사람의 뒤를 따라 여기까지 왔기에, 개개인은 변하지 않았어도 선 자리는 참 많이 바뀌었구나 싶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니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이렇게 변한 우리를, 대형은 어떻게 보고 계실까.’
예전 아무것도 아는 거 없고, 철없던 시절의 그 아이들로만 보고 있을까, 혹은 이젠 그래도 머리 좀 큰 놈들이라고 봐주고 있을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이 들 정도로 무료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멍하니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시선 속에 문득 저 멀리서 누군가 허겁지겁 빠르게 뛰어오는 게 보였다.
“응?”
툭 하면 대형이 날려 보내는 투골저를 피하기 위해 극한으로 단련된 안력.
그 모진 핍박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두 눈이 저 지평선 끝에서부터 누군가 달려오는 걸 포착해 냈다.
“저기, 사람이 오는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여기에 사람이 왜… 있네?”
진짜 있잖아?
곧, 하나둘 다가오는 이를 발견한 방계들이 고개를 들었다.
“급보!! 급보입니다!!”
그런 그들의 귀에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습격입니다!! 선발대가 습격을 받았습니다!!”